https://namu.wiki/w/%ED%91%BC%ED%81%AC%ED%88%BC
1. 개요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1]에서 제기한 철학적 개념. 사진을 감상할 때, 사진 작가의 의도나 사진의 상식적인 의미 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감상 순간의 강렬한 충격과 여운의 감정을 말한다.
2. 상세
푼크툼(punctum)은 라틴어로 '찌름'이라는 뜻으로, 사진을 봤을 때의 개인적인 충격과 여운의 감정을 말한다. 우선, 푼크툼과 반대되는 개념인 스투디움을 알아야 하는데, 스투디움(stúdĭum)이란 라틴어로 '교양'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사진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 문화적 맥락을 살펴야 된다는 점에서 문화기호학적(또는 구조주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반대로 푼크툼은 일반적인 이해방식이 아닌 개인의 취향이나 경험, 무의식 등과 링크해서 순간적으로 확 오는 강렬한 자극을 말한다. 스투디움과 비교해 좀 더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상, 생각, 경험 등을 총동원해서 사진의 의미를 스스로 규정하고 결정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때 푼크툼은 그것이 스투디움이었을 때와 달리 '더는 기호로 환원될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롤랑 바르트는 원래 기호의 구조를 통해 이미지의 신비성을 벗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문화ㆍ사회의 모든 것은 기호 상징의 사회맥락적 의미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어머니를 잃는 경험을 겪었고, 그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그녀의 옛 사진들을 찾는 과정 중에, 어머니의 사진을 불현듯 '맞닥뜨렸다.' 그 순간 그 사진의 인상은 그를 사정없이 찔렀다. 그것은 기호의 구조에서 나오는 보편적인 의미가 아니라, 개인적 추억과 정서에서 비롯된 감정적 의미였다. 이렇게 돌발적이면서도 강렬한 만남의 감정으로써 사진을 매우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으로 감상하는 것을 푼크툼이라고 한다.
3. 여담
구조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을 철학적으로 잡아낸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스투티움이 구조주의를 가리킨다면 푼크툼은 포스트모더니즘(후기 구조주의)을 가리킨다.
누벨바그 사조, 특히 장뤽 고다르에 이르러 사진 뿐 아니라 영화 용어로도 도입되었다. 기본적인 골자는 같다.
http://m.srbsm.co.kr/view.php?idx=20751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
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라틴어를 언급하고 있는데 스투디움과 푼크툼은 사진 이미지를 해석할 때 이론적 기준선 같은 것이다.
스투디움은 사물이나 혹은 사람에 대해 열성적이면서 호의적인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특별한 강렬함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감정을 의미한다.
푼크툼은 라틴어로 점(點)이라는 뜻이며 화살처럼 찔려오는 어떤 강렬함을 뜻한다.
이 말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남산의 불상 사진을 앞에 두고 이 사진은 불상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사진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요소 등을 스투디움이라한다. 하지만 롤랑 바르트는 똑같은 남산의 불상 사진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진이미지의 어떤 작은 요소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의 가슴을 찌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현상을 가리켜 푼크툼이라고 한다.
사진 속의 남산 불상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일상적인 정보에 관한 것은 스투디움이라 하였고, 푼크툼이란, 코드화될 수 없는 사진의 어떤 작은 요소가 자기의 마음을 찌르는 것, 즉 주사, 화살, 창, 칼, 작은 구멍, 작은 반점, 작은 흠, 그리고 ‘주사위 던지기처럼 우연성까지도 내포한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타인에게는 특별한 감정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진이지만, 자신에게는 필(feel)이 꽂히고, 가슴을 찌르고, 오랫동안 응어리가 지는 그런 요소를 ‘푼크툼’이라고 한다.
롤랑 바르트는 푼크툼이 없는 사진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사진이라고 말한다.
전시장에 전시된 사진과 마주했을 때 사진을 찍은 작가와 공감대가 형성되어 그 어떤 감동을 했다면 가슴 깊이 푼트쿰은 작용하고, 그 찰나 자신의 일탈(逸脫)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스튜디움, 푼크툼, 아우라를 아우르는 사진적 지식이 없다면 그 사진 앞에 서 있는 자신이 초라해지기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튜디움과 푼크툼을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는다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사진은 미술, 철학, 언문까지도 아울러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시류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을 만들어 가는 강렬한 작가만의 내면적 의식이 필요하다.
김종욱. 경주대 사진예술학 석사.
서울시립미술관 작품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