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에베레스트(해발 고도 8848.86m) 정상 아래에서 목숨을 잃은 케냐 등반가의 유족이 시신을 그냥 산 위에 두기로 했다고 영국 BBC가 지난 30일(현지시간) 전했다. 세계 최고봉 정상을 아프리카인 최초로 무산소 등정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오르다 정상 아래 48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크레바스에 떨어져 목숨을 잃은 조슈아 체루이욧 키루이(40)의 유족은 그렇게 높은 고도에서 시신을 수거하는 일은 구조 대원들의 목숨마저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 이같이 결정했다.
키루이의 유족은 전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폭넓은 자문을 구하고 주의깊게 모든 여건을 고려해 그의 주검을 산에 그냥 놔두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들은 어떤 생명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면서 "체루이욧은 산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고, 산은 그를 사랑했다. 우리는 그가 행복한 장소에서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위안이 된다"고 덧붙였다.
키루이는 동행했던 네팔 산악 안내인 나왕 셰르파와 함께 크레바스에 추락했다. 얼마 안 있어 키루이의 시신이 발견됐는데 셰르파는 여전히 실종 중이다.
하지만 네팔 관광청 관리들은 산 위에 주검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키루이의 유족은 수도 나이로비와 고인의 고향인 리프트 계곡 지대에 있는 쳅테릿 마을에서 장례 의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베레스트에서 시신을 되찾고, 그 뒤 고국으로 옮겨져 안장되는 일은 비용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여덟 명정도가 산에 올라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관계로 비용은 얼추 18만 달러(약 2억 4930만원)를 웃돌게 된다. 네팔 관리들은 키루이의 등반을 조직한 등반업체가 다음 등반 시즌이 열리기 전까지 시신을 되찾아오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차피 올 봄 시즌 막바지에 이런 사고가 일어나 어쩔 수 없이 다음으로 미뤄야 하지만 내년 봄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는 시신을 치워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키루이의 주검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다고 관리들은 입을 모았다. 네팔 등반업체연합회의 담바르 파라줄리 회장은 업계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신들은 신속히 치워져 산 아래로 끌고 내려와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두 산악인이 비운을 맞은 크레바스가 중국 티베트 쪽에 위치해 있으며, 그렇지 않았으면 눈 아래 깊이 파묻혀 아래로 끌고 내려갈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베레스트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대다수 가족은 그대로 산 위에 주검을 놓아두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비용도 문제이지만, 산악인이 가장 좋아하던 곳에서 영면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봉을 오르다 죽음을 맞은 200~330구의 주검이 그대로 산 높은 곳에 방치돼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은행원 출신 키루이는 케냐에서 많은 팬을 거느렸고 동료 산악인들은 그의 도전이 의미있다며 온라인에서 빈번하게 최신 소식을 업데이트해 왔다. 이번 등반을 앞두고 그는 BBC 인터뷰를 통해 힘든 도전을 앞두고 방대한 체력 준비를 해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마지막 인스타그램 포스트를 통해 산소 지원을 받지 않고도 에베레스트 등정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피력했다. 그러면서도 비상 시에 대비, 셰르파가 산소통을 지원할 것이며, 본인이 어려움에 처하면 긴급 구출 복안이 있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이들 대다수는 4월과 5월 가운데 날씨 여건이 좋은 날에 정상을 겨냥하기 마련이다. 사실상 막을 내린 봄 시즌 4명의 산악인이 이곳을 오르다 비운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