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553) - 제6회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일본기행록(11)
1. 따뜻하게 맞아준 시민과 시즈오카 민단
5월 15일(월), 흐리고 선선한 날씨다. 아침 7시 반, 숙소에서 가까운 광장에 나가니 당일참가자들이 많이 와 있다. 잠시 후 출발식에서 구리다 후지에다 시 부시장이 인사를 한다. 한국어로 안녕하십니까,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이후는 일본어, 통역은 시청에서 7년 째 근무한다는 변창희 씨,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후지에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일우정워크는 두 나라의 우정과 교류를 증진하는 뜻깊은 행사입니다. 후지에다 시는 양주 시와 결연 5주년, 활발한 시민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두 나라 우호의 가교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도쿄까지 안전하게 도착하기를 기원합니다. 선상규 회장은 후지에다 시가 최초의 통신사 역할을 한 이예(李藝)를 영화로 만들었고 울산에 이예 길이 생기는 등 인연을 맺었음을 환기하며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가 한일양국의 신뢰와 우호증진에 기여하기를 다짐하였다. 가나이 씨는 후지에다가 예부터 상업의 중심지였고 소금의 도시로 알려졌다며 이곳을 지난 조선통신사 일행의 기록을 소개한다.(10회 통신사 때 우쓰노야 고갯길이 가파르고 힘들어서 쉬어가는 곳을 새로 만들었다는 등)
8시 반에 후지에다를 출발하여 한 시간 반가량 걸어가니 오카베숙(岡部宿)에 이른다. 오카베숙은 국가지정문화재로 보존되는 등 시설관리가 잘 되어 있는데 주민들이 ‘어서 오십시오, 오카베숙소에.’라고 쓴 플래카드로 맞아주며 오차를 대접한다.
오카베 숙소에서 차 마시며 휴식하는 일행들
10시 15분에 오카베숙을 출발하여 한참 걸어가니 앞서 조선통신사 일행이 가파르고 힘들었다고 기록한 우쓰노야 고갯길이 나타난다. 정상의 높이가 200미터 넘는 오르막길이 위로 갈수록 좁아지고 가파르다. 1860년대의 明治 이후 大正, 昭和, 현재의 平成 천왕에 이르는 동안 각 천왕 때마다 이곳에 네 개의 터널을 뚫어 힘든 고갯길은 역사의 유물로 남은 셈, 무로이 코스리더는 일본의 손꼽는 영웅과 호걸들도 힘들게 이곳을 지났다고 설명한다. 고개를 넘어서 살핀 표지판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다. 우쓰노야는 시즈오카 최 서부의 험난한 고갯길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O 니무 우거진 오솔길, 내리막길이라 읊은 일화를 소개하며. 가파른 고갯길 넘느라 힘든 일행들이 또 다른 난코스가 없느냐 묻기도 한다.
다행이 이후로는 평탄한 길, 12시 지나 점심장소로 예상한 슌부숙에 이르니 상점들이 휴일인 듯 문을 닫았다. 30여분 더 걸어 마리코숙(丸子宿)의 식당과 편의점에서 각기 식성에 맞는 식사를 한다. 우동이 먹고 싶던 차, 흐리다가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여 따끈한 국물이 제 맛이다. 시즈오카에 사는 나카니시 하루요 씨가 준비해 온 주먹밥에 깍두기를 곁들여서.
1시 45분, 점심을 들고 오후 걷기에 나섰다. 20여분 걸어 시즈오카 중심부로 들어가는 큰 다리에 이르니 멀리서 풍악소리가 울린다. 4년 전 이 다리 중간쯤 이르렀을 때 풍악으로 맞아주는 시즈오카 민단의 풍물패가 감격을 안겨주었는데 이번에는 다리 건너까지 마중 나왔다. 풍물패를 앞세우고 다리를 건너니 ‘시즈오카 잘 오셨습니다.’는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강재경 단장 등 민단관계자와 교민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시원한 수박과 오차, 과자류를 준비해 놓고.
풍물패의 흥겨운 장단에 맞춰 시즈오카에 입성한 일행들
다과를 즐기며 담소를 나눈 후 기념촬영을 하고 계속 걷기에 나섰다. 30여분 후 시즈오카 중심부를 관통하여 시청에 이른다. 청사 앞에 시청의 역사문화과 이와다 과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나와 환영하며 팸플릿과 등록상표에 自安我樂이라는 문구가 적힌 고급과자를 선물한다. 친구 사이라는 중년의 부인은 과자와 사탕봉지를 들고 와서 전달하고.
아직도 남은 깅이 15km, 3tl 20분에 시청을 출발한 후 발걸음이 빨라진다. 한 시간 반가량 걸어 휴식한 곳은 시즈오카 쿠쓰나이 종합운동장, 이전에도 그곳에서 쉬었던 기억이 난다. 운동장을 나서니 오후 5시, 어디에선가 종소리가 들린다. 이곳에 사는 나카니시 하루요 씨에게 무슨 뜻이냐 물으니 하교하여 짐으로 가라는 종소리일 것이라는 대답, 우리도 서둘러 집으로 가자며 발걸음이 빨라진다. 목적지는 시미즈(淸水) 역, 역 광장에 이르니 6시 35분으로 36km를 걸었다. 45일째 걷기 중 가장 늦은 도착, 바로 옆의 숙소(시미즈호텔)에 여장을 푸니 7시다. 내일은 문화탐방일, 일주일간 열심히 걸었으니 푹 쉬고 따뜻한 우정을 나누며 알찬 문화탐방에 나서자.
* 4년 전 후지에다에 도착하였을 때 비단벌레애호회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환영하였다. 여러 달 지나서 그때 회원 중 한 분이 도착 장면을 찍은 사진을 동봉한 편지를 보내주었다. 비단벌레 표본도 함께. 그때 일을 회상하여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였는데 비단벌레애호회 회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시청의 변창희 씨에게 그 정황을 말해주며 간단한 기념품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2, 충실한 문화탐방, 뜻깊은 교류
5월 16일(화), 청명한 날씨에 빠듯한 일정이다. 문화탐방의 날, 아침부터 부산하다. 평소보다 일과가 늦게 시작되는데도 7시 아침 식사에 빠짐이 없다. 오전 9시, 시즈오카에 사는 나카니시 하루요 씨의 안내로 전철을 타고 시즈오카 역으로 향하였다. 목적지는 현청과 순푸(駿付) 공원이 있는 시즈오카의 중심부, 먼저 순푸 공원으로 들어갔다. 입구는 고려문,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온 목수들이 지은 문이라고 나카니시 씨가 설명한다. 순푸 공원은 막부의 실권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은퇴 후 거주지로 1607년에 축성한 성을 1951년에 순푸 공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공원에는 육중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가 심은 귤나무가 지금도 열매를 맺는다.
순푸 공원에 세워진 도쿠가와 이에야스 동상, 걷는 동안 여러 곳에서 그의 족적을 살폈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 후 10시 시 반에 맞은편의 현청본관에서 현청관계자들과 예방인사의 시간을 가졌다. 마쓰이 히로시 지역외교관의 인사말, ‘한일우정걷기 여러분, 잘 오셨다. 조선통신사도 이곳에 머물며 교류의 기회를 가졌다. 기록에 의하면 1607년의 첫 통신사가 이곳에 거주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고자 하였다. 통치권을 아들에게 물려준 도쿠가와는 통신사 일행을 귀로에 만나 환대하였다. 그후 여러 차례 이곳을 지나는 통신사들이 숙소인 세이켄지(淸見寺)에 많은 시문을 남겨 유네스코 기억유산 신청 자료의 상당수가 세이켄지에 남아 있다. 이런 전통을 살려 앞으로도 한일 양국의 우호증진에 기여할 수 있기 바란다.’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은 10년 전 첫 우정걷기 때는 미약하였으나 점차 기반을 넓혀가는 이 행사가 한일 양국의 살아 있는 평화의 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시즈오카가 그 중심이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11시에 현청을 나와 재일본시즈오카현하인연합회가 초청하는 오찬장으로 향하였다. 이 자리에는 한일협력과 우호를 증진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양국의 젊은이들도 함께 하였다. 점심메뉴는 샤브샤브, 일행 모두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에 흡족한 표정이다. 귀한 자리를 마련한 관계자들의 호의와 노고에 감사.
점심 후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세이켄지에 도착하니 오후 2시, 평택대학교에서 수년간 교수로 활약한 조선후기한일관계사 연구의 권위자 오바다 씨가 일행을 안내하며 조선통신사와 사찰에 얽힌 자료와 내용을 소상하게 설명해 준다. 4년 전에 찾은 적이 있지만 기록과 실제자료를 토대로 그때보다 충실한 학습을 한 셈이다. 현장학습을 통하여 유네스코 기억유산에 등재할 많은 자료와 증거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조선통신사의 의미와 공과를 조명하는 전문가의 견해와 참여자의 활발한 토론도 진지하였다. 2년 전에는 1607년에 최초의 통신사로 이곳을 거쳐 간 여우길 정사의 후예가 수백 년이 지나도록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선대의 시문을 살핀 역사적 해후 등 감동을 주는 사연들도 들어가며. 세이켄지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공부했던 방, 그가 심었다는 누운 용 모양의 매화나무도 볼거리로 남아있다.
조선통신사의 유적이 많은 세이켄지, 동해명구라 쓴 출입문의 현판이름도 통신사가 남겼다
오후 5시,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연회장에서 시즈오카 현 재일민단 등 여러 단체가 참여한 제6회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워크 환영행사가 열렸다. 강재경 민단 단장은 환영사를 통해 ‘서울 광화문을 출발한 지 수십일 동안 한국과 일본의 여러 지역을 거쳐 시즈오카에 온 것을 환영하며 한일 양국민간단체가 주축이 되어 추진하는 유네스코 세계기억유산이 성사단계에 이른 것을 축하한다. 그러한 일에 앞장서서 활동하는 우정워크 멤버들의 활동을 적극 지지하며 성공을 빈다.’고 말한다. 다카기 시오즈 시미즈 구청장도 참석하여 축하인사와 함께 지역명주를 선물로 제공한다. 엔도 대표와 선상규 회장의 감사인사가 이어지고.
계속 걷는 일행은 한국 12명, 일본 21명, 대만 2명이었는데 연회 도중 최효경, 강징자, 박경숙, 오애선 씨 등 한국인 4명이 도쿄까지 함께 걸으려 한국에서 날아왔다. 이제 남은 일정은 6일,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고 격려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도쿄까지 180여km, 끝까지 완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