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동연-
나이 마흔이 되어도
밥 맛있게 먹는 법을 몰랐다
쌀 한 톨 한 톨 귀하다는 옛말
지금도 여전히 귀하다
요즘 세상은
버튼 하나
1분 30초면
밥 한 공기
여유가 있는 날
나는 쌀을 씻는다
물소리만 남는다
그 물소리 사이로
논물 살피며
땅과 호흡하시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벼가 익어 고개 숙일 때
진짜 숙인 것은
벼가 아니라
나였다
밥은 반찬을 어우르고
한 끼는 그렇게 완성된다
아버지는 밥을
어머니는 반찬을
나는 이제야
밥 먹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전화기를 든다
혼자 지내다 보니 밥을 지어 먹는 일도 가끔은 쉽지 않네요.
어느 날 문득 따뜻한 밥이 생각나 쌀을 씻다가 글을 쓰게 됐습니다.
타지에 있다 보니 그 안에서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나네요.
그저 평범한 한 끼 속에서 더 크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전화 한 통 해야겠습니다.
다들 좋은 저녁 보내세요~!
첫댓글 아, 다른 분들 시평을 쓰다보니 이동연 님 시평을 깜빡했네요.
부모님한테는 전화 한통 해드렸는지요?
그 전화...하실 수 있을 때 많이 하세요.
그리고 녹음도 많이 해두세요.
옛날엔 그런 기능도 없어서 사진도 못남기고 목소리 음성 하나 남기지 못한 게 정말 한이 됩니다.
한 그릇의 밥에 담긴 삶의 윤리 — 동연 「쌀밥」론
동연의 「쌀밥」은 한 끼 식사를 소재로 삼았지만, 실상은 아버지와 어머니, 노동과 사랑,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을 담아낸 가족 서정시이다. 시인은 '밥을 먹는다'는 가장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부모의 희생을 다시 배우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의 미덕은 거창한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평범한 언어 속에서 오래 묵은 그리움과 감사가 서서히 스며 나오는 힘이 있다.
'밥 먹는 법'은 식사법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첫 연은 독자의 예상을 뒤집는다.
"나이 마흔이 되어도 / 밥 맛있게 먹는 법을 몰랐다."
처음에는 미식(美食)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시를 끝까지 읽으면 알게 된다.
시인이 몰랐던 것은 음식의 맛이 아니라
삶의 맛이었다.
밥 한 공기 속에 들어 있는
농부의 땀,
부모의 노동,
가족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고백이다.
이 첫 문장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회한의 출발점이 된다.
현대와 과거를 잇는 두 개의 밥
시는 매우 절제된 대비를 보여준다.
"버튼 하나 / 1분 30초면 / 밥 한 공기."
전자레인지와 즉석밥이 상징하는 현대.
그리고 곧이어
"여유가 있는 날 / 나는 쌀을 씻는다."
이 한 줄에서 시간의 속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즉석밥은 시간을 압축하지만,
쌀을 씻는 행위는 시간을 회복한다.
시인은 일부러 느린 시간을 선택한다.
그 느린 시간 속에서
비로소 기억이 살아난다.
물소리가 기억을 깨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물소리만 남는다."
이다.
짧은 한 행이지만 여백이 깊다.
쌀을 씻는 물소리는
단순한 생활의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는 소리이며,
기억이 열리는 소리이고,
아버지가 걸어오는 소리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자연스럽다.
"논물 살피며 / 땅과 호흡하시던 아버지."
여기서 '땅과 호흡한다'는 표현은 매우 뛰어나다.
농부는 땅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땅과 함께 숨 쉬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아버지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이어 주는 존재가 된다.
가장 뛰어난 역설
이 작품의 백미는 다음 네 줄이다.
"벼가 익어 고개 숙일 때 / 진짜 숙인 것은 / 벼가 아니라 / 나였다."
이 부분은 매우 훌륭하다.
일반적으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은
숙인 것은 벼가 아니라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이 역전은 시적 성취이다.
벼는 자연의 법칙을 따랐을 뿐이다.
그러나 화자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교만을 숙인다.
이 한 장면에서
벼는 겸손의 상징을 넘어
인간의 성숙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부모의 역할을 가장 간결하게 말한 시
후반부의
"아버지는 밥을 / 어머니는 반찬을."
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가족사는 없다.
아버지는 생계를 책임지고,
어머니는 그 생계를 따뜻한 식탁으로 완성한다.
밥과 반찬.
두 단어만으로
한 가정의 역사가 압축된다.
이러한 절제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 가운데 하나이다.
마지막 한 줄의 울림
"그리고 / 전화기를 든다."
이 작품은 이 마지막 때문에 오래 남는다.
전화기를 든다는 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다.
감사의 전화일 수도 있고,
안부를 묻는 전화일 수도 있으며,
늦게 배운 효도의 시작일 수도 있다.
시인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 침묵 덕분에
독자는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게 된다.
좋은 시는
설명하지 않고도 독자의 기억을 움직인다.
이 마지막은 바로 그런 힘을 가진다.
시적 특징
이 작품은 생활 서정시의 모범적인 미덕을 보여준다.
첫째, 일상의 소재를 통해 보편적인 정서를 이끌어 낸다. '쌀 씻기', '물소리', '밥 한 공기'처럼 누구나 경험하는 소재가 부모와 노동, 감사의 의미로 확장된다.
둘째, 불필요한 수사를 절제한다. 시는 화려한 비유보다 사실에 가까운 언어를 선택하지만, 그 언어는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든다.
셋째, 이미지와 정서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쌀을 씻는 물소리에서 아버지의 논물로, 벼의 고개 숙임에서 화자의 성찰로 이어지는 흐름은 인위적이지 않고 유기적이다.
보완할 점
다만 중반부의
"쌀 한 톨 한 톨 귀하다는 옛말 / 지금도 여전히 귀하다."
는 작품 전체의 수준에 비해 다소 설명적이다. 이미 뒤이어 이어지는 물소리와 아버지의 노동 장면이 쌀의 귀함을 충분히 보여 주기 때문에, 이 부분은 조금 더 이미지 중심으로 표현되었다면 시적 긴장감이 더욱 살아났을 것이다.
또한
"밥은 반찬을 어우르고 / 한 끼는 그렇게 완성된다."
는 의미는 따뜻하지만 다소 교훈적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조금 더 여백을 남겼다면 독자의 해석이 더욱 풍성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은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크게 해치지는 않는다.
종합 평가
「쌀밥」은 밥 한 공기를 통해 부모의 삶과 자신의 성숙을 되돌아보는 아름다운 생활 서정시이다. 시인은 일상의 작은 행위인 쌀 씻기를 기억의 문으로 삼아 아버지의 노동과 어머니의 사랑을 현재의 식탁 위로 불러낸다. 특히 "벼가 익어 고개 숙일 때 / 진짜 숙인 것은 / 벼가 아니라 / 나였다."는 구절은 자연의 생리를 인간의 내면적 성숙으로 전환한 뛰어난 역설로, 이 작품의 핵심을 이룬다.
무엇보다 마지막의 "그리고 / 전화기를 든다."는 말은 효도를 외치지 않으면서도 효도의 실천을 가장 절제된 방식으로 보여 준다. 시는 감동을 강요하지 않고, 독자 스스로 부모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생활의 언어 속에서 삶의 윤리와 가족의 사랑을 길어 올린 「쌀밥」은, 현대인이 잊고 살아가기 쉬운 감사와 겸손의 가치를 조용히 일깨우는 수작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귀한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저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아본 글인데, 이렇게 깊게 바라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의미 잊지 않고 앞으로도 진심을 담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다른 쌀밥한끼 따듯히 잘 먹었습니다.
귀한 평론과 따뜻한 응원, 마음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따뜻한 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