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 호숫가 산봉우리들 어둠 속에서도 위용 빛나 오직 눈으로만 담을수 있는 자연의 위대한 선물이었다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유럽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내려서 하룻밤을 잔 후, 토사데마르로 이동, 거기서 1박을 하고 바르셀로나로 왔다가 밀라노와 파리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이것만 해도 힘든 여정인데, 남편의 주장으로 밀라노와 파리 사이에 루체른 1박이라는 일정까지 집어넣어야 했다. 밀라노에서 루체른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창밖 풍경이 아주 근사하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흠, 나는 그 1박2일을 밀라노나 파리에 할애하는 게 훨씬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원래 도시 여행을 즐기는 타입이고, 자연을 보거나 휴양지에 가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휴양지는 신혼여행 때 어쩔 수 없이, 딱 한 번 가봤고, 자연 경관은 정말이지 즐기지 않아서, 뉴욕에 다섯 번이나 놀러갔지만 단 한 번도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 본 적이 없었다.
알프스산을 보기 위해 스위스를 간다? 내가 하고 싶은 종류의 여행은 절대 아니었다. 산이 다 똑같은 산이지, 뭐. 게다가,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렇게까지, 그러니까 막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로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냥 보기 좋다? 정도? 그러므로 루체른으로 향하는 동안 내 불만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런 내 불만은 루체른역에 도착한 후 바깥으로 나온 순간 사라졌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랬다. 호수 쪽으로 가서 그 풍경을 한눈에 보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그런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 너무 아름답다.
도시와 접해 있는 호수는 알프스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초록에 가깝다기보다는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하늘로 솟아오른 산봉우리들은 어떤 종류의 경외감마저 불러일으켰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알프스산맥을 보러 스위스에 오는 거구나. 혹은 중국의 장자제나,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는 거구나.
자연이란 건 정말로 위대한 거구나.
그 풍경을 더 잘 보고 싶어서, 무제크 성벽 탑 위로 올라가는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에 한 외국인을 만났는데, 그는 숨을 헐떡이며 이렇게 힘들게 올라갈 가치가 있는 풍경이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완전 그렇다고, 엄지손가락 두 개를 치켜올리며 대답해주었다.
그날 밤, 나는 막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호숫가로 혼자 산책을 나갔다. 사람들은 호숫가 콘트리트 둔치에 앉아 간단히 싸온 저녁과 와인 따위를 먹고 있었다. 나도 그 근처에 앉아 멍하니, 호수와 저 멀리 있는 산들을 바라보았다. 산봉우리와 하늘이 맞닿은 부분이 석양 때문에 약간 불그스레한 띠를 두른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는 점점 어두워졌다. 호수 수면 위로 건물들의 불빛이 일렁였고 그 뒤편 산들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보다 한층 더 깊은 어둠을 품은 채, 빛나고 있었다. 어둠을 품은 채, 빛나고 있었다, 정말로 그랬다.
나는 그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었다. 휴대전화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리저리 노력을 해봐도, 그 순간 내 눈으로 보이는 것만큼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진 선배가 아주 오래전에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인간의 눈은 찰나의 순간에도 흐르는 빛과 공기, 감정까지 담아내지만, 아무리 성능이 좋은 카메라라도 그런 건 담을 수가 없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구나. 그 어떤 훌륭한 기술도 인간의 눈을 따라오지는 못하는 거구나. 인간의 눈이, 그러니까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이 그때만큼 절실하게 다가온 적은 내 평생 없었던 것 같다.
[손보미 소설가]
열대의 매력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산(4,095m).
'열대'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찌는 무더위, 아마존 정글과 낯선 동물들, 아름다운 백사장과 야자수, 풍성한 열대 과일…. 우리에게 익숙한 열대 자연의 이미지는 이색적인 낙원으로 그려진다. 한편으론 지독한 가난이나 야만, 내전의 땅처럼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선 열대의 환경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오늘날 천연 열대 정글은 지구상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녹색 사막'이라 불리는 그 땅은 사람이 살기 힘들어 토착민이 거의 없다. 오히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열대 몬순, 사바나 땅이 더 넓고 곳곳에 산악 지대가 있어 다채로운 자연환경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열대 주민은 그런 곳에 살고 있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유학 온 제자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철 장마통에도 항상 긴 옷에 히잡을 쓰고 다니는 친구였다. 한번은 걱정 반 궁금증 반으로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제자는 어릴 때부터 늘 그렇게 살아와서 문제없다고, 오히려 한국의 겨울이 너무 춥고 낯설다고 대답했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으며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 다."라는 존 러스킨의 말이 생각났다.
제자의 고향인 코타키나발루는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올해는 열대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열대 정글과 맹그로브 숲을 걷고 동남아 최고봉인 코타키나발루 산을 오르다 보면 열대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멸종 위기 동물인 오랑우탄도 만나고 기름야자 농장에서 열대가 우리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생각해 보라. 그곳을 삶터로 삼은 다양한 주민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며 색다른 문화를 만들었는지도 살펴보라. 뜻밖의 재미와 의미를 듬뿍 안겨줄 것이다.
이영민 | 지리학자, 교수
오랑우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