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다른 띠들은 동물 이름을 바로 불러주면서 왜 유독 원숭이띠만은 ‘잔나비띠’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 나쁘게 생각하던 원숭이였기에 잔나비라고 부르는 것이 짜증스러웠다. 사람들이 원숭이띠를 놀리기 위해서 일부러 비하해서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다. 차기 대권을 꿈꾼다는 어느 인사의 이름이 원숭이에 가깝다보니 그가 못마땅한 사람들은 ‘박원숭'이라고 내놓고 부르지만 정작 본인은 그러한 반응까지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받아들이는지 반박하는 걸 볼 수가 없다.
나도 어렸을 때 이 양반처럼 무심하게 받아들였더라면 마음 상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잔나비는 원숭이의 옛 이름으로 18세기 들어 한자어인 ‘원성이’로 부르기 전까지는 다른 이름이 없었으니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잔나비는 원래 ‘납’이었다. 여기에 동작이 날쌔고 재빠르다는 ‘재다’의 형용사형 ‘잰’이 붙어서 ‘잰나비’가 되었다가 후에 잔나비로 바뀌었다. 은혼식 기념으로 일본 닛코日光를 찾았을 때였다. 일행을 안내한 여행가이드가 원숭이 경계령을 내렸다.
야생 원숭이들이 바글바글한 공원에 당도했을 때 여자 여행객들에게 당부했던 것이다. 원숭이들이 핸드백을 순식간에 낚아챈다면서 차에 두든지 몸에 엑스자로 걸치라고 했다. 돈이나 귀중품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과 껌 사탕 같은 게 가방 안에 들어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비호같이 채간다고 했다. 그날 우린 그곳 도쇼구東照宮까지 탐방했다. 일본을 통일하고 에도막부江戶幕府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사당이었다.
이곳 8개의 원숭이 조각은 각각 서로 다른 의미로 인간의 일생과 처세술을 나타내고 있어 흥미롭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3마리의 원숭이상인 ‘산자루三猿’는 각각 눈과 입과 귀를 막고 있었다. 유년기에는 세상의 나쁜 것을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교훈이 담겼다는 것. 야생원숭이들이 강인하게 살아가는 현장을 맞닥뜨린 것도 일본에서였다. 일본열도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르는 히다飛田산맥의 북알프스를 종주하면서 해발 3천 미터 지대에 사는 원숭이들이었다.
능선으로 뻗은 등산로 가까이에서 세 마리가 혼자 뒤처져 지나가는 나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배가 고파서 그러는 줄 알고 비스킷 조각을 던져주었더니 자신들을 해코지하는 줄 알고 화들짝 놀라면서 달아났다. 빠르게 도망간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스무 마리 가까이나 무리지어 있었다. 야생종인지라 인간이 막사를 지어주었을 리 없을 텐데 험준한 고산지대의 겨울을 그들은 어떻게 살아내는지가 궁금했었다. 각종 축제행사장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들어서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동양문화권인 중국이나 인도 일본 태국 베트남의 명승지에도 이미 오래 전부터 금속이나 돌로 된 십이지신상을 세워놓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분수공원에선 금년에도 국화꽃축제를 열었다. 그 전시장 들머리에 형형색색 국화꽃으로 단장한 십이지신상이 길게 줄지어 늘어섰다. 가을햇살 쏟아지는 한낮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자신과 배우자의 띠를 찾았는지 자잘한 글자로 된 설명문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족들의 것도 챙겨보는지 사람들은 긴 시간을 붙어서 있었다.
신상은 열두 방위에 맞추어 순서대로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얼굴 모양으로 만들고 몸은 사람이었다. 십이지신을 순서대로 외우는데 왕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네 개씩 묶어서 리듬을 붙여가면서 소리 내어 읽다보면 저절로 암기가 되더라는 경험담을 소개한다. 쥐소범토 용뱀말양 원닭개돼 자축인묘子丑寅卯 진사오미辰巳午未 신유술해申酉戌亥. 띠별로 장단점을 열거해놓고 있지만 이를 온전히 믿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우선 반신반의하게 되는 것은 서로 상충되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믿거나 말거나식으로 십이지신중 아홉 번째인 원숭이띠에 대한 설명을 살펴본다. '원숭이띠는 어려움을 견디는 것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그래서 자연히 움직이길 좋아해서 사교적이며 감각도 뛰어나 모방하는 재주가 넘친다. 또한 양陽의 기질을 가져서 성격이 밝고 항상 긍정적으로 살고자 한다. 따라서 대중이나 조직을 이끄는 위치가 되면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잘 움직이고 기운이 산만해서 지속성이 부족하고 말이 많아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기 쉽다. 고로 신중하고 지속성을 갖도록 노력하고 잔재주 때문에 큰일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원숭이띠는 申년생으로 申시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이고 방위는 서남서 달은 여름인 7월 계절은 7월 입추에서 8월 백로 이전까지. 오행은 금金 음양은 양陽 대응하는 서양별자리는 사자좌에 해당한다.' 마치 연재하듯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문은 '오늘의 운세'를 알려준다.
그만큼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는다는 방증일 것이다. '간절하게 기도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니 하늘이 도움을 준다'는 하나마나한 풀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지만 이마저도 노인들의 운세는 뺀 것을 보면 백세시대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의 십이지신도 원래는 중국에서 달력의 해를 표기하던 수단이었는데 인도의 십이신수의 영향을 받아 오늘과 같이 바뀌었다. 또한 십이지신은 도교의 방위신앙까지도 한몫을 거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