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40:1]
우리가 사로잡힌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년 정월 십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본절부터 시작하는 본서의 마지막 아홉 장은 연대기상 1-39장보다 훨씬 후대에 기술된 것이며(33:21) 그 내용 또한 전혀 판이한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혹자는 이 부분을 지적해 본서가 여러 저자의 기록을 편집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본장 또한 본서의 뒤에 삽입된 별개의 문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다음 두 가지 근거를 고려할 때 설득력이 없다. (1) 본서의 초두(1-3장)에서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방문하시는 하나님의 이상이 본서 후반부(40-48장)에서는 고토로 귀환하여 옛 성읍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이상으로 나타난다. 이로 볼 때 두 부분(1-39장;40-48장)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2) 성전의 타락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난 여호와의 영광이 재건된 성전으로 다시 돌아오는 광경의 대비적 묘사가 두 부분의 일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새 성전, 새 예배, 새 땅으로 대별되는 마지막 아홉 장은 고토 귀환과 뒤이어 이어질 이스라엘 회복 사업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1-39장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나아가서는 본서의 절정인 동시에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사로잡힌 지 이십 오 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 년 정월 십 일 곧 그 날에 - 이는 B.C. 573년으로 에스겔 선지자가 소명을 받을 때(B.C. 593)로 부터 약 이십년이 경과한 시기이다..한편 본 구절은 원전상 '그 해의 시작'구절이 두 문장 사이에 첨가되어 있는 바, 이 구절의 해석과 '새달'이란 문자적 의미의 '정월'(호데쉬)의 해석 여하에 따라 두 가지 견해로 대별된다.
먼저 첫 번째 견해는 '그 해의 시작'에 '정월'의 의미를 찾아, 이 '정월'을 이스라엘 종교력상의 첫 달인 '아빕 월'로 보는 것이다. 곧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유월절을 예비하던 날인 동시에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첫 발을 내디딘 의미있는 날이었다
두 번째 견해는 본 구절의 연도를 B.C. 575년으로 보고, 그 해가 희년이라는 사실에 주안점을 두어 '그 해의 시작'을 '신년' 곧 49년이 지난 후 오십 년째 되는 '희년'으로, '정월'을 1월이 아닌 종교력상의 '첫 달'이란 의미에서 희년을 시작하는 첫달로서의 7월 10일인 '속죄일'로 이해한다
곧 이 속죄일은 희년에 이루어질 자유와 회복을 위한 전제로서의 속죄가 행해지는 날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견해중 어느 것을 취해야 할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본 구절에 특정하게 제시된 '그 날'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잘 알려진 날이었으며, 회개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함축하고 궁극적인 자유와 회복의 의미를 내포한 특별한 날이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겔 40: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 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 놓으시는데 - 여기서 '극히 높은 산'은 1장 이하에 언급된 에루살렘의 멸망과는 대조적으로 온전한 회복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들 거룩한 산 '시온'을 지시한다. 곧 시온산은 본래 기드론과 두로베온 골짜기 사이에 솟아있는 봉우리의 명칭이었으나, 후에 예루살렘 동남쪽에 위치한 '다윗 성'을 지칭했으며,
더 후대에는 예루살렘 전체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명칭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 '시온 산'은 곧 새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예루살렘을 이처럼 탁월하게 묘사한 것은 여기서의 새 성전이 궁극적으로 온전하게 회복될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 나라의 영광스런 위상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읍 형상 같은 것 - 혹자는 이것이 실제적인 성읍을 가리킨다고 말하나 실제 성읍에 관한 기사는 45:6;48:15, 30에 가셔야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는 하나님의 도성, 곧 성읍까지를 포괄하는 새 성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겔 40:3]
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
놋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 1:7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천사를 가리킨다. 비록 이 사람이 44:2, 5에서 '여호와'로 불리웠지만 본절에서 유추해 볼 때 여호와의 천사를 가리키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놋'은 성경의 용례상 '견고함', '확실성'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상징하는 바, 여기서는 천사의 초자연적 특성을 암시하고 있다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 - 이들을 모두 건축에 필요한 도구들로 먼저 '삼줄'은 긴 공간을 재는 도구로서 주로 땅의 길이를 잴 때 사용되었으며, '척량하는 장대'는 비교적 짧은 공간 곧 성벽 등의 높이를 잴 때 사용된 도구였다. 따라서 이러한 도구가 언급된 것은 앞으로 기술될 성전의 구조가 극히 세밀하게 제시될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이들은 이스라엘의 심판 때 사용된 파괴적 기구들(9:1)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문에 서서 있더니 - 여기서의 '문'은 에스겔이 남으로 성전을 바라보았다는 2절 점에서 최초로 다다른 '북문'으로 생각된다. 곧 천사는 그곳에서 에스겔을 '동문'으로 안내했을 것이다
[겔 40: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찌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찌어다 하더라......."
눈으로 보고...생각할지어다 - '눈으로 보고'는 성전의 실재성을, '귀로 듣고'는 천사를 통한 세밀한 성전 구조의 해설을, '마음으로의 생각'은 모든 것을 보고 들은 사실에 근거해 성전의 전체적인 윤곽을 마음속에 그려 볼 수 있었음을 가리킨다.비록 새 성전이 역사적으로 세워지지는 않았으나, 이미 완성된 것으로 묘사하여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