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 또는 대의를 위해 알몸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11세기 상황에서, 그것도 영주의 부인의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고다이바는 농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단을 하고 거리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레오프릭 백작의 영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고다이바가 말을 타고 시간에 외출도 안하고 창문도 열지 않기로 하고,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 내다보지 않기로 했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다이바 부인의 사랑과 희생정신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고다이바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거리에 나서 결국 농민들의 세금을 줄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귀부인이 농민들을 위해 나신으로 말을 탄 여인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의 마음에 감동을 받아 그 정신을 기리고
지금도 그녀를 "레이디 고다이바(Lady Godiva, 레이디 고다이버)"라고 부릅니다.
이런 이야기에는 꼭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 레오프릭 백작과 코번트리 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인의 선행에 감동을 받은 레오프릭 백작은 그날이후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인과 함께 수도원을 설립하였는데,
이 수도원이 코번트리를 그 일대의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코번트리는 15세기에는 모직물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 도시가 대부분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어 지금도 교육 도시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코번트리 시에는 오늘 날의 코번트리 시가 있게 한 “레이디 고다이바”를 기념하는 상징물과 행사들이 있습니다.
코번트리의 대성당 앞에는 말을 탄 <레이디 고다이바 동상(Statue of Lady Godiva, Coventry)>이 있습니다.
그리고 17세기부터 해마다 고다이바 축제(Godiva Festival)를 하면서
당시 그녀의 모습대로 말을 타고 시내를 지나가는 ‘고다이바 행진(Lady Godiva Procession)’을 하고 있습니다.
11세기와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창문도 닫지 않고, 코번트리 시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