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4:19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개역개정판)
이사야 4:6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개역개정판)
악인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넘어지는 삶을 살아도
넘어졌다는 사실만 인지할 뿐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어떻게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지
그들은 저마다 답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만이 진리를 가지고 산다고 불신자들에게 말하는 것은
맞는 말을 어리석게 하는 셈이 된다.
진리는 한 길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여러길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목적지가 하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사실 다른 방향으로 가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사람에게는
부산에서 제주로 가는 하늘길과 뱃길은 한 길이라고 대답하면 된다.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인해
부산과 제주를 오가는 정기여객선은 2022년에 100년 전통의 바닷길을 폐쇄해버렸고 (사천 삼천포항으로 대체됨)
부산과 제주를 잇는 화물선도 서서히 감소 추세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제주 자체의 경제력은 꾸준히 성장해야 하겠지만,
전국의 모든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산업과 공업 분야에 있어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610년전인 1416년
조선은 고려 말기 몽골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있던 제주를 전라도로 편입시켰고
130년전인 1896년
13도제 실시로 전라남도 제주군, 정의군, 대정군이 되었다.
80년전인 1946년 8월 1일 미군정에 의해 제주도는 전라남도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최고행정구역인 도로 승격된다.
20년전인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의 출범과 동시에 북제주군은 제주시에, 남제주군은 서귀포시에 통합되고, 우리가 오늘날 일컫는 제주특별자치도의 모습이 갖춰졌다.
26년전 남부산교회 청년부는
여름수련회를 5박 6일로 가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40여명의 많은 인원이었고, (제주도 간다는 말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CCC출신 청년들이 연극을 준비했는데
한라산 정상에서 연극을 하기로 했다.
3달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내가 자리에 없는 사이에 주인공 역을 맡겼고(...)
한라산 정상에서 공연을 한다는 호기로운 계획을 세웠다.
스피커와 앰프를 들고 올라가야 했는데,
그것 또한 내 몫이었다.
169마일(272킬로), 11시간 반 배를 타고 온 우리를 맞이한 여행사 담당자는
남부산교회 팻말이 아닌 남부상조회 팻말을 들고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한참 찼았던 해프닝을 보였다.
(모든 여행 자료가 남부상조회로 출력되어 있었지만, 청년들은 그 자료를 거의 보지도 않았다.)
비수도권 최초로 이마트가 제주에 생겼다는 자부심(?)에서였는지 여행가이드는
“부산에 까르푸 있어요?”라는 충격적인(??) 질문으로 청년들의 비웃음을 샀다.
(실제로 제주시에서는 까르푸까지 입점할 계획까지는 있었으나 입점한 점은 없었고, 지금처럼 동부산 쏠림 현상이 심하지 않았던 부산에서는 당시 서면, 장림, 해운대, 사상 4곳에 까르푸 매장이 있었으나, 지난 20년전 모두 홈에버에 이어 홈플러스(...)로 이어졌으며, 혼란의 홈플러스 사태로 인해 사상점이 2026년 6월말로 폐점함으로써 4곳 모두 사라졌다..)
제주에서의 선교 일정은
5년전인 1995년 필리핀 선교여행 일정에 비해서는 관광과 자유 시간일정이 충분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놀기만 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새벽 5시부터 밤 늦게까지 수련회 일정을 잡았던 당시 분위기에 비해 70% 정도되는 시간을 주며, 휴식 시간을 충분히 제공한 것은 당시로서는 다소 파격이었고, 청년들에게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자아냈다는 점이다.
뭐, 그때도 무슨 공연 연습한다고
남들은 자전거 타고 제주도 여행을 나갔을 당시 혼자 연습했던 기억도 있다.
사실 2000년대 초반 제주의 분위기는 지금과는 달리 올레길, 둘레길 이런 이야기들보다는
제주시 연동과 신시가지, 일도지구 등 택지 개발 이야기들이 (육지에..)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한라산 공연을 가던 날
산정상까지 가는 길에 제주 답게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비오는 날에 공연은 어렵다고 말했으나
선배‘님’들께서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니가 들고 올라가봐라고 해준다음 비닐로 친절하게 스피커를 묶어 주셨다.
산정상까지 그 무거운 스피커와 다른 짐을 들고 오후 3시쯤 겨우 백록담까지 올랐으나
한라상 정상은 바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빽빽이 꼈으며, 비도 조금씩 내렸다.
(하필 안개와 비는 입산금지를 할 정도까지 내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백록담 근처의 바위들은 무슨 공연을 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의욕만 앞섰던
그리고 그 의욕으로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올라가 버린 다른 청년들이 그곳 교회 섬긴다고 내려오지도 않던 이들을 괘씸하게 여기며 (주로 사랑의 교회와 온누리교회로 집중되긴 했다.)
그나마 자주 부산에 내려왔던 소수의 인물들에게 그 모든 부담을 전가했던
다소 거칠었던 그때 그 시절 풍경이기도 했다.
공연 대신
목소리크던 어느 청년이 (당시 유행하던) 짜장면 시키신 분 이라는 유행어를 외치며 주변을 폭소케했고
당시 청년부 담당이셨던 황한열 목사님(현 송정제일교회 담임목사)의 위로가 이어졌다.
“경태야. 다시 들고 내려가야겠다. 고생했다. 인생이 그런 거야. 군대에서도 겪게 될 일이니까...”
(미군 부대 출신이라 어마어마한 그네들의 군수 시스템을 경험하긴 했다.)
맞다.
인생은 대체로 그런 식이고
나의 삶도 대체로 그러했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도
한라산의 험준한 산세와 더 험했던 날씨 때문에 보이지 않았고
허무하게 올랐던 스피커와의 등반은
오를 때보다 더 힘들었던 하산으로 이어졌다.
악인들의 삶이 보통 그렇다.
빽빽한 어둠(잠 4:19)을 지나가다가 넘어져도
왜 이렇게 된건지,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후회만 가득할 뿐
현실은 불가항력적인 환경으로 가득하다.
결국 뭐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씁쓸하고 쓸쓸한 마무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짧은 이사야 4장은
시궁창 같은 현실 묘사로 문을 연다.
사 4:1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 (개역개정판)
사 4:1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애원하리라. "먹여달라, 입혀달라, 조르지 않겠으니 당신의 아내라는 말만이라도 듣게 해주십시오. 이 부끄러운 신세를 면하게 해주십시오." (공동번역개정판)
이 일곱 여자들이
이사야 3장에 나오는
이례적으로 여성용품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한 부분의 장신구들을 착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사야 3장 18-26절)
18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이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19 귀 고리와 팔목 고리와 얼굴 가리개와
20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21 반지와 코 고리와
22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 주머니와
23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24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 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이며
25 너희의 장정은 칼에, 너희의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26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폐하여 땅에 앉으리라
이런 20여가지의 주렁주렁한 장식들을 다 찼던 (스피커보다는 가벼웠겠지만) 여인들이
전쟁으로 인해 남자들이 줄어
시집만 가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절망적인 상황...
잠언 4장 19절 같이
눈앞이 캄캄하면서도
도대체 뭐가 뭔지도 알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다.
그런데
이사야 4장 2절부터
갑자기 방향이 바뀐다. (이사야를 읽다보면 자주 그런 일들이 나타난다.)
심판을 말하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그 날’이 등장한다.
재앙의 날을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회복의 날이 등장하는 것이다.
사 4:2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개역개정판)
심판이 홀연히 임하듯, 회복도 예상치 못한 때에 임한다.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회복이 임하지는 않는다.
(악인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싹수가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이 스스로 돋게 하는 싹이 있고,
하나님께서 돋게 하시는 싹이 있다.
여호와의 싹 (사 4:2)
사람이 돋게 하는 싹은 본능을 따라.. 죄와 욕심과 탐욕의 싹을 틔우고 심판과 멸망의 열매를 맺게 되겠지만
하나님이 돋게 하시는 싹은 아름다워지고 영화로워진다고 했다. (사 4:2)
어떻게 되는 걸까?
이사야 4장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사야 4장 3-6절
3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5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6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3절 기록된 모든 사람들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고
4절 더러움을 씻기시며 청결하게 함을 얻는다
5절 그 옛날 광야에서처럼 낮에는 구름, 밤에는 화염의 빛이 임하고
6절 초막이 있어 더위를 피하는 그늘과 풍우를 피하여 숨는 초막이 되어주신다.
지옥을 닮은 여름에 꼭 필요한 그늘과 피난처...
26년전 여름보다 더 뜨거운 제주의 햇볕은
제주와 육지에 거하는 모든 이들을 힘들게 하지만
주님은 더위를 피하는 그늘과 풍우를 피하여 숨는 초막도 마련해 두시는 선하신 분이시다.
사람이 돋게 하는 싹은
욕망의 열매를 맺어
20여개의 장신구를 무겁게 걸게 했다.
결국 그 장신구들은 다 벗겨졌다.
그러나 그 벗겨진 자리에, 사람이 만들지 못하는 그늘이 대신 덮인다.
사람의 손으로 두른 것은 벗겨지지만, 하나님이 두르시는 것은 벗겨지지 않는다.
시온이라는 심판의 자리가
어떤 이들에게는 회복의 자리로 이어진다.
잠언 4장 19절의 악인들처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여호와의 싹이 돋게 된다.
심판으로 인한 수치를 면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그 자리...
7여인들 가운데 누가 남편을 얻었는지 알 수 없으나
(제일 예쁜 여자가 남편을 얻는게 인생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에 우리 소망이 있다.)
어떤 주석에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초대 교회의 신부(일곱 교회)에 찾아가신다는 것과 연관을 시키는... 내용도 보기는 보았는데...
심판의 자리가 수치의 자리로 이어져,
제발 수치만 면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심판의 자리가 회복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죄로 인한 아픔과 슬픔을 겪었을 때,
그리고 잠언 4장 19절처럼 더 캄캄한 절망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때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죄로 인한 심판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는 절망하되
하나님께는 소망을 두는 삶이어야 한다.
그래야 회복이 임한다.
끝으로
한라산에서의 공연은 무산되었으나
몇몇 청년들에게는
말없이 산을 (스피커들고) 오르내리고
몸이 불편한 지체를 섬겼던 모습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나눔을 마지막 날에 전해주었다.
그래... 그거면 된거지.
이제는 끊긴 그 뱃길로 돌아온 11시간 30분간의 항해...
3등칸에는 CCC 인원들이 엄청나게 많이 타고 있었고
한라산에 대한 사전 정보 입수에 실패했던 선배님들은
배에 대한 사전 정보를 충분히 확인한 후 선박 관계자분들의 허락을 구하여 공연을 진행했다.
그 CCC인원들과 믿지 않는 일부 승객들 앞에서의 공연은
성공적이었는지는 몰라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제주에서의 소중한 추억이
벗겨질 장신구가 아니라
여호와의 싹과 같이 소망을 틔워내길
그리하여
더위를 피하는 그늘과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과 같은
소망의 은혜를 누리게 하길
그리고 그 소망이
제주에도, 부산에도,
그리고 이 나라와 온 열방에 가득하길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