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재은행 '한국, 과도한 가계-기업 부채가 경제성장 저해' / 9/12(목) / 한겨레 신문
◇ 은행보고서가 경고
한국의 가계와 기업의 부채 규모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수준이라는 국제기구의 분석이 나왔다. 부채가 성장을 촉진한 시기를 지나 부정적 영향이 더 큰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경고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최근 발표한 정례보고서를 11일 확인한 결과 2000년대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대부분의 신흥국에서 민간신용(부채)이 크게 확대됐다. 민간신용은 통상 금융기관을 제외한 가계와 기업 부문의 부채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2000년 이후 아시아 신흥국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평균 1.3배 이상으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이 비율이 2배 가까이 상승했다.
민간신용 증가는 자금조달 접근성을 높이고 실물자산과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려 성장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부채 규모와 성장률의 관계를 감안할 때 초기에는 정비례하지만 일정 시기에 정점을 찍고 반비례 양상을 띠면서 역U자형 곡선을 그린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차입을 통해 소비와 투자를 늘리면 단기적으로는 성장률 상승에 도움이 되지만 부채 규모가 늘어날수록 상환 및 이자 부담이 늘어나 미래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많은 신흥국은 아직 민간신용 증가가 성장을 촉진하는 영역에 있지만 아시아 국가는 성장을 저해하기 시작하는 변곡점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특히 보고서에서는 한국과 최근 중국 경제가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우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100%대를 웃돌던 시기에 경제성장률이 정점을 찍고 우하향하는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22.7%(BIS 기준)다. 한국의 민간신용비율은 1980년대 100% 수준에서 등락(외환위기 직후 160%)했고 2007년 2분기 150%를, 2020년 1분기 200%를 넘어섰다.
국제결제은행은 가계신용이 주택 수요 증가와 맞물려 생산성이 낮은 건설·부동산 부문으로 넘어가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건설업·부동산업 대출 비중이 더 많이 늘어난 나라일수록 총요소생산성과 노동생산성 감소폭이 더 컸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건설·부동산업에 대한 신용재배분은 과잉투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이후 관련 대출 증가세가 둔화된 이후에도 생산성과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계속 미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정책 대응을 통해 민간신용 성장에 대한 '역U자형' 흐름은 개선할 수 있다"며 "불균등한 신용 증가를 완화하고 주식시장 역할을 확대하는 등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신용이 유입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