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내내 므흣한 비디오를 보느라 정신이 나가 있느라고
밥먹는 것도 잊고 있었다. 오....배고픈지고...
승표는 지금쯤 분명 버스정류장에서 천원에 3개짜리 붕어빵 사서
오지게 먹고 있겠지...칫...
입천장데라.....배신자 곰탱이
팔팔 끓는 물에 김치를 몇 쪽 넣고..(이건 순..형 취향이다.
나는 달걀 넣은 것을 좋아한단 말이다!)
사랑하는 辛라면을 두개 톡톡 뿌러뜨려 넣고
달큰시원하게 훅 풍겨나오는 라면스프냄새를 맡고 있자니..
스읍.......
배고프다..
해준은 채 익지도 않은 라면을 불앞에 서서 뚜껑에 덜어 먹는다.
오독오독..엣,,아직 안익었네...
오독오독...엣..아직도 안익었네...
오독오독.....엇..........
배부르다.
"흠흠..형....라면 다됐어..
형....여....
형.......!!!!!!!!!!!!!!"
성급하게 스위치를 눌러끄는 은상..
"스읍.....허..허허..다 됐냐....
먹자...."
"형.......지금.....--"
"이..임마..나는...그저..감독차원에서 니가..."
"형..."
"으..응? "
"형도...... 보고 싶어?"
후룩후룩...아삭아삭..
후룩..후루루룩...
짭짭..오..........얼~
후룩...짭........엇..리와인드..리와인드..
죽인다........!!!!!
후룩,,,,아삭...
뚝....
형...젓가락 줏어..
다정히 좁은 마루에 기대앉아
보기에도 부담스럽게 삐리리한 여자의 므흣한 장면에
홀딱 빠져
눈은 TV에 박은 채로, 젖가락은 거꾸로 들고
라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되는대로
쳐 넣고 있는 우리.......
나와 나의 다정다감한 매부.
이제....누나는 없지만..
우리는 서로.....세상에 단하나뿐인 가족이다.
They are.....(下)
우리는 꽤 오래 같이 살았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였으니까
우리는 이 집 - (난 이집에서 나서 이집에서 자랐다.
이 코딱지만한 집은 부모님의 유일한 재산이였다
가정환경조사서에 부모님 이름 적는칸이 항상 나를 우울하게 했지만
맨 아랫칸... 자택..란에 동그라미를 치며 어린 맘을 위로했었다)- 에서
십년의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냈고
스물다섯번의 생일을 같이 치뤘다.
예전에는 3의 배수로 생일을 치뤄 나갔지만
5년전부터는....나와 그....의 생일만 채워져 갔다.
누나와 결혼했을 때 형의 나이는 겨우 열아홉이였고
고등학교도 못마친 가난한 공돌이였다.
우리 누나는 가난하고 꿈만 많은 착해 빠진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않고
윤은상, 잘생긴 얼굴에 넘어가서는 두살이나 어린 형하고
덜컥 결혼이라는 것을 해 버렸다.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 어떻게 만났는지
듣긴 들었지만, 십년전 기억은 가물가물...
형에게 다시 묻고 싶어도 이제는 그러면 안될 사이가 되어 버렸다.
누나와 형은
결혼식도 안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같이 살았다.
나....라는 혹을 하나 달고서..
가끔 내가 승표를 데리고 올때 빼곤 아무도 찾아 오지 않는 집에
어느날 작은 가방하나 달랑 매고 들어선 키가 큰 남자.
어린 나에게 매부는 ..... 특별한 사람이였다.....
천성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은상이형은
조금은 엉뚱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였는데,
누나에게도 잘 했고, 나에게도 잘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담박에 형이 좋아졌었다.
회사일로 바쁜 누나를 대신해 집안일도 둘이 같이 했고
TV를 보다가 같은 베게를 베고 잠이 들었다.
모든 발달이 조금씩 늦었던 나는
(후에 생리학 공부를 하면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마도
나는 집안 환경에서 오는 심리적 위축 때문에
형을 만나기 전까지는 남자로써의 모든 발달이 늦어졌었던 듯하다.
자신도 아직 어린 누나는 나 먹이고 입히느라 항상 바빴기 때문에
내게 자신도 모르는 남자의 세계 따위를 알려 줄 시간이 없었다.)
남들 보다 좀 늦은 16살에
늦게 몽정을 경험했고.....
두려움에 잠에서 깨어 울고 있을 때
나를 달래주며 내 속옷을 빨아 주었던 사람도 매부였다.
다정다감한 그는 내가 놀라지 않게 조목조목 남자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나는 기름때 낀 그의 손톱을 내려다 보며
이 사람이 우리 매부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크면...매부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공부 욕심이 많았던 나를 위해 몰래 돈 쥐어 주면서
'과외 못 시켜줘서 미안하다' 하며
학원에 보내 준 것도 형이였고,
고3때 늦게 공부하고 돌아오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켜주던 것도 매부였다.
그런 매부가 나는 ....너무너무 좋아서
공부를 하다가도 이제는 혼자 TV를 보는 형이 심심하고
소외감을 느낄까봐
일부러 오지도 않는 잠..오는 척하며 같이 한베게를 베고
바닥을 뒹굴기도 했었다.
그는 내게 아버지였고 형이였고 친구였고.....오래된 동경의 대상이였다.
그가 처음으로 작아 보인것은 내가 '그의 돈'으로 대학에 진학한 어느날이였다.
사실 대학에 대해서.....할말이 많다.
난 간호학을 전공했고 지금 직업은 좀 다르지만 모출판사 단행본팀에서
근무중이다.
간호학과....가고 싶어 간 곳은 아니였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되고 3부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당이 많으며...여차하면 마취과나 방사선과 기사같은
자격을 따면 전직이 가능하다는 아주 실제적인 이유로
주저없이 그곳에 진학했다.(밀고 나갔어야 했는데...쯧)
의대에 갈수도 있었지만 그곳은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좀더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나의 선택에 대해 학교 선생님과 누나 부부는 매우 안타까와 했지만
여태껏 신세만 지고 살아온 나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였다.
문학과 그림을 좋아했지만
그런 굶어 죽기 딱 좋은 엉뚱한 곳에 갔다가는
이도 저도 안되고 또 짐만 될지 모른다는...그런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
과외를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타이틀 학교에 간호학과...
그렇게 들어간 학교 ..... 여자들만 득실득실..
하나도 즐겁지 않은 하루하루를 지내다
술에 취에 밤늦게 돌아온 날..
내게 그가 수학문제를 물어 왔다.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그는 스물 셋에 뒤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그날 그가 물은 문제는 아주 ... 너무나 쉬운 방정식 문제였다.
그가 풀어 달라고 가져온 연습장에는
너무 쉬운 영어 단어가 빼곡이 써 있었고..
열심히 외운 듯 이리저리 동그라미까지 되어있었다.
처음으로 내가 그의 위에 서 있었다.
자꾸만 실수를 하는 형에게 나는 술 깨면 내일 하자며
졸리운 눈을 감아 잠이 들었고
그는 그후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야간 대학에 다니게 될 때까지
다시는 내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형과 나사이의 굴곡과 상관없이
우리는 여전히 가족...
줄창 십년을 공백없이 같이 살았다.
(신검당시 학력이 중졸이였던 그는 군대도 갈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의 그에대한 애정은 변함없었고....
그의 나에대한 애정도 변함없었다.
누나와 그와 나는....가난했지만 행복했었다.
.......그와 나도....가난했지만 행복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의 단편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누나가 없는 우리 둘......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를 맞대고
내가 흘린 면발을 그가 주워 먹을 수 있는
우리 사이.....
이 억지로 이어진 위태한 가족의 관계에 대해.....
그를 다른 사람과 구분하여 주며
내게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불어 넣어준
'존경'의 시작.
그는 그렇게 십 년을 두고 조금씩 내 마음속으로 들어 왔다.
<제 1 화>
上
그를 부르는 key word...........
다/정/다/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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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부에게 나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내게 있어 매부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은상이 형은 내가 남자가 되도록 도와주었고
바보에서 탈출시켜 주었다.
그는 비록 가난하고, 못배웠고, 어눌했지만,
그래도.....
내게는 너무나도 멋졌던 ........
하지만
정작 내가 그를 존경하고
그를 진심으로 아끼는 것은........
그가 진정 위로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
.
.
그날은 대학 졸업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이였다.
나는 갑자기 일상에 싫증이 났고
그래서 모든 것에 삐딱해 졌다.
평생을 알코올 냄새 맡으며....
그것도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로 산다는 것...
내가 원했던 일도 아니었고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던 일......
매일 웃고 있지만
내 속의 자존심은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할
거대한 기둥이였다.
힘들고 따분하게 살아온 시간들..
이제 뭔가 나...를 위해 살고 싶다는
두주먹불끈..의 신화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갑자기 나는 다른 일이 하고 싶어 졌다.
모두 마지막 자격시험과 병원실습으로 바쁠 때
나는 도서관 서가를 훑으며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나는 하루에 5섯권 씩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전법-(책을 쭉 쌓아 놓고 목차를 편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장만 읽는다. 또한 선대의 거쳐간 선배의 중요표시 흔적이나
형광팬의 날림 그리고 dog-eared된 곳을 중심으로 읽어 간다.
속도 무쟈게 빨라진다.-_-v)-으로 분야를 섭렵해 갔다.
계속되는 졸업시험에 대한 압박과 자격시험의 벽 앞에서도
나는 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불/타......오른 것이다.
이제서야 내 길을 찾은 것 같고
왜 그 동안 잘 있는 오렌지 맨살, 주사기로 쑤셔가며 먹을 것을 헤집어 놓고
잘 찾아 지지도 못하는 정맥 찾기에 고심하면서 승표와 형의 팔을
마약환자의 그것처럼 만들어야했으며, 동풍산부인과 실습담당 간호사 아줌마에게
비굴하게 머리를 숙여야 했느냐 ............에 대한 회의가 물밀듯 밀려왔다.
나의 지난 대학 생활이 모두 무의미해 보였으며
지금 잡고 있는 이 책들이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로와서......
그래 역시......사람은 생활에 치이면서 살면 안되는 거야......
미래를 향해 나가야지....이제라도 난 할 수 있어!!!!!!
그리고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이러한 나의 꿈을 찾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을
매부와 의논...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는 다정하고 솔직하며, 착실하고 좋은......나의 친구이지만..
그는.........
세상에서 약자....였기 때문이다.
.
.
.
10월..........
속속 이름을 알만한 광고회사의 대졸사원 공고가 나기 시작했다.
.
.
.
.
그래그래...겨우겨우......실기시험을 보러갔었다.
몇번을 미끌어 지고 또 미끌어 지고
거기까지도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이던지..
겨우 얻은 기회가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그리고 주제를 받았다.
中
감기..... 였나보다.
그렇다 분명 감기였다.
기침이 나지는 않았지만
몸이 불덩이 처럼 달아 올랐고
뼈와 살이 따로 노는 것 같이 흐믈흐믈 온몸의 근육이 아파왔다.
내 몸의 횡단면에서는
뼈를 동그랗게 둘러싼 열의 기원들이 식물의 물관처럼
구멍을 뚫고 나를 괴롭히고 있었고
언젠가 읽었던 게으른 아이 혼내주기 동화에서처럼-
(정말 무서운 동화였다. 아이의 엄마는 씻기 싫어하는 아이를
혼내 주기 위해 아이의 살갗에 씨앗을 눌러 놓아서는
언젠가 부터 싹이 트기 시작한 '깨'는 아이의 살갗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마침내 아이는 스스로 몸을 씻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내 피부는 까슬한 기운이 몰아치는 아픈 세상의 잔뿌리에
쓸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몸이......너무 아팠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몇번이고 주저 앉고 싶었다.
.
.
.
.
.
나는.......
공부도 자존심 때문에 해왔고, 사랑,이별도 자존심 때문에,
...때로는 피하지 않고 때로는 피하며........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척
하지만
모든 나의 행동들의 근원은....자존심.........
어쩌면 내 피속에는, jajonsim이라는 혈구가 백혈구의 일종으로
더불어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의 기대들이 깨어지는 전화기를 내려놓을 때마다
나의 jajonsim의 수는 들어오는 항원을 막기 위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다시말해 나는 '나와 세상' 이라는 병마에 맞서 싸우느라고
매우....앓고 있었다.
집으로 기어 들어와 오한에 손이 덜덜 떨려와서
잘 맞추어 지지 않는 열쇠구멍에
한바탕 짜증을 냈다.
두 구멍 중 하나는 안 잠겨 있었던 듯하다.
두 구멍을 모두 돌려놓으니 당연히 안 열리는 문...
어디가 안 잠겨 있던 구멍일까.
가뜩이나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코 잔등이 찡해와서 서있기가 힘든데
지금 다른 곳도 아닌 내 집문이....열리지 않고 있었다.
짜증이 났다.
가지가지한다....
왜......내게 이러냐고..
안그래도 힘든 사람....
왜......너까지 이러냐고..
눈물이.....났다.
사내자식 눈물한방울 훔쳐내면 그만인 것을
눈물나는 자신이 더 서글퍼서 내친김에 대문앞에 쪼그려 앉아
엉엉 울어 버렸다.
나는 몸이 아프니까. 몸이 아픈데 문까지 안열리니까.
따뜻한 내 방에서 찬찬히 누워 한숨만 자면
금방 나을것 같은데 그게 안되니까.....
난 울고 있는거다.
'형....나간 다음에 다시들어와 포트폴리오 들고 나간 사람....
그건......나였지'
후후....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돌아 본 옆에는
우리 착한 매부가 벽에 기대 졸고 있었다.
내 몸 아래로 그녀가 간 이후 한번도 꺼내 쓰지 않았던
누나의 전기 담요가 깔려있고
몸 위로는 두터운 이불이 덮여 있었다.
내 한숨에 형이 깨어났다.
눈을 비비적...비비적..거리며
"이제 좀 어때?"
그래...이사람 아직 이십대중반이지.
자기도 아직 어리고.....
남들같으면 아직 대학...다닐 나이이지...
제길....나 누구한테 짜증을 부린건지..
단하나 내게 남은 가족, 우리 착한 매부.....은상이형...
"형....열나는 사람한테 이불덮어 주고 전기요 깔어 주면 어떻해.."
"춥다길래...밖에서 오래 기다렸고.."
"환자 말은 다 믿지 말했잖아.
열나면 춥게 되어 있어.
그럴땐 찬물로 닦아서 열을 떨어 뜨려줘야 한다고...
바보......"
내 잔소리.....나긋나긋..했던 것 같다.
반쯤 몸을 일으켜 베게를 세로로 고이고 앉아서
형을 보았다.
밀어 놓은 죽그릇을 당겨오는 그의 긴 팔이
그날따라 왜 그리 하얗고
사강..하던지...
우리 누나....이래서 형을 사랑했었나....
"아.....다 식었네..."
"생각없어..
아님 그냥 밥 주던가..소화는 잘돼."
"아냐. 너 감기 아니고....몸살이야.
체하기 쉽다고...데워올께 이거 먹자..."
"형! 누가 더 잘 알겠어...
난 괜찮으니까 아무거나 줘"
잠시..
형이 나를 꼭..하고 눌러 쳐다 보았다.
그리고..
다정하게 볼을 감싸쥐고..
"꼬맹아.
어른말 들어.
너 진짜 꼬맹이때부터 배앓이 도맡아 하고
감기든 몸살이든 소화부터 안되는거
형아가 몰라?
아프면 고집부터 피는것도 형아가 몰라?"
붉어진 내 얼굴을 뒤로 하고 매부는 죽을 덥히고..
우리는 마주앉아 죽을 먹었다.
손이 큰 형.....죽조차도 많이 하지...
같이 앉은 밥상에 반찬은 하나.... 물김치..
자박자박...소리내며
얇은 무우 씹어 내고 .... 새큼한 신향기가 입안으로 침이 돌게 했다.
"형.....호텔..프랑스 식당에 가본 적...있어?"
"아니"
고개를 죽그릇에 타려박고 바닥을 긁다가 그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 내가 어디를 갔는데...
거기서.....거기....자랑을 해 보래..."
"식당 자랑?"
"응"
"왜?"
"그냥... 어느어느 호텔에 식당이 새로 생겼는데
거기.....자랑을 해 보라더라..."
"맛있는 집..이라고 하면 되잖아"
"그래..나도 알아.
근데..우리...가본 적이 없잖아...
그래서 뭐가 어떻게 맛있는지..말해 줄 수가 없더라."
"치....그럼 프랑스 는 잘 모르겠고 다른 데라도 맛난데 알려주겠다고 하지..
너 많이 알잖아....."
"알지.....많이 알지.
근데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잘 많이 아는가 보더라고.
그리고.....자랑을...해 보라는데..
다르게..할 수도 있잖아..
그니까.....분위기가 좋다고 그럴 수도 있잖아."
"그렇지"
"근데......그렇게 말하기가 싫어지더라.
형...이해할 수 있어?"
"흐음........"
형은 짧게 내 눈을 응시하고
이내 고개를 돌려 입맛을 다시며
상을 물렸다.
형이 지어온 약을 먹고 물을 마시며
설거지를 하는 형 옆 싱크대에 기대어 서서
형의 옆모습을 보았다.
표정 없이 그릇을 물에 부시고 있는
그의 잘생긴 이마에....가슴이 또 옥죄어 왔다.
"형......
나 요즘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참....의문이야..."
자리에 누워 천장을 보니
아스라한 두통이 다시 몰려왔다.
이대로....혼자 좀 생각을 하고 싶은데....
형....오늘은 내 걱정말고 그냥..가서 자라고 ....해야겠다..
물소리가 끊어지고....
손에 물기를 뚝뚝 흘리며 들어서는 형의 손에는
쟁반에 받혀든 사과 하나와 숟가락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거 먹자.."
얇지만 힘있는 손으로 사과를 반으로 뚝 가르는 형의 손등으로
핏줄이 둘 솟았다.
형은....승표보다 혈관찾기 쉬운 사람이였는데...
하긴...승표놈은 살때문에...
샤각샤각...
"내가....애긴가...."
내 얘기를 들었는지.....못들었는지..
말없이 구부려 앉아서
숟가락으로 사과를 긁고 있는 형은.....
내가 너무 사랑하는.....우리 매부.
"자..아....."
그리고
핀잔하면서도 입을 딱딱 벌리며 누워 받아 먹는 나
달콤한 사과즙이 목을 적셔오며
까끌하던 목줄기가 조금 시원해 왔다.
얼마나....달고 시원했던지........
가끔이였지만 언제나 내 병수발은 누나 몫..
그래도 언제나 옆을 지키며 웃음을 주던 그.
이제는 그가 누나처럼 사과를 갈아주며
나를 위로한다.
샤각샤각...
조용한 침묵속에
사과가 점점 껍질만 남아 가고...
아쉬운...마음......
..........서글픈 마음......
나머지 반쪽을 집어들어 능숙하게
씨를 파내는 그의 숟가락질에 눈녹듯 녹아지며
눈물이 났다.
그리고.............
흔하디흔하고
투막하고 밋밋하고
멋대가리 하나 없는 그의 한마디.
"해준아........
..........................힘내......."
.......뼈속까지....진심으로....나를 걱정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매부의 한마디....
이래서....누나는 그를 사랑했을까.....
비록 그가 나의 부푼 마음과 고단한 지난 두 달을 알지 못했을 지라도
그는 나를 걱정하므로
그는 나를 아끼므로
우리는....서로를 사랑하므로.....
아마
내가......골목어귀에서 고단한 그에게 짜증을 내던 순간부터
그는 이 말을 준비하고 있었으리라.......
샥샥..샤각샤각...
달콤한 마지막 한 모금이 지나가고....
"형.............오늘 같이 자."
.
.
.
.
.
어쩌면 위로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힘들고 지친 사람.....그냥...진심으로...
정말 거짓하나 없이...마음속 깊이부터...
힘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쉽고도 가장 어려운 이 한마디 제대로 할 줄 아는
세상의 단 한사람....
그를 부르는 나만의 또다른 이름....
다/정/다/감/
제 2 화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의 고비를 맞이한다.
그 두텁고도 가파른 둔덕은 보통 극복이라는 인내의 힘을 빌어 넘게 되는 것이고
강인하지 못한 인간조차도 시간이 등을 밀어... 결국은 넘어서게 되는
경험의 핵이다.
우리는 종종 이런 것을 '나이발'...이라 부른다.
나의 매부...
그는 못배웠고 가난하고 어눌하며 너무 정직하여 어리석었지만...
내 등을 받치고 있는 세상하나뿐인 기둥이었다.
.
.
.
그를 부르는 나만의 키워드...
다/정/다/감/
.
.
.
23살 나는 졸업을 하고 출판사에 취직을 했다.
(간호대학을 나온 내가 어째서 출판사에 다니게 되었는지는
후에 얘기하기로 하자.)
어쨌든 나는 꽤 이름있는 곳에서 나의 직업인생의 첫단추를 끼게 되었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첫 출근을 준비했다.
'합격하셨습니다...'
아주 추웠던 1월의 어느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 좋아하면 귀신이 샘낼지도 몰라..'
전화를 받고 괜시리 비집고 나오는 실실웃음을 손으로 쓱 닦아 내고...
내 인생에 모처럼만에 아니 처음 찾아온 이런 행운을 몰래 자축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 다녀온 직후라 아직 냉기가 그대로 남아
책상의자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걸려있는 파카를 다시 꾀어 입고
지갑을 찾아 안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먼저 동네 어귀에 있는 양복점에서 양복을 두벌 맞췄다.
머리 세가닥이 평행하게 머리를 덮고 있는 앙르페 양복점 대머리 주인 아저씨는
먼지 낀 이탤릭채 간판과 어울리는 작은 체크무늬 줄 세운 바지에
멜빵을 매고 얼굴이 비치도록 광이 난 구두를 신고 있었다.
겨자색 실크남방 깃에 새겨진 꽃무늬 자수가 매우 튀었다.
그런 아저씨의 모습에 나는 잠시 불안해 졌지만
얼마전 누나 결혼식때문에 휴가를 나왔던 승표가 자신있게 소개하던 것을
떠올리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내가 생각하는 스타일을 이야기했다.
"요즘은 원보톤은 잘 안하는디. 쓰리보톤이 유행이잖여"
아저씨 뒤에 놓여있던
한 다리에 노란색 하루방 테이프가 감겨있는 의자위로 빳빳한 남성복 카다로그들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내가 맞춤양복을 갖게 된다면 이런 모양을 했으면
좋겠다고 이부자리에 누워 생각했던 일자로 잘 뻗은 원버튼 자켓은 거기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유행들이 내가 이불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동안
밀려와 있었고 나는 고집을 버리고 그중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
조금 다른 모양으로 두 벌을 맞췄다.
그리고 백화점에 갔다.
새로 맞춘 양복에 어울린 새 구두를 사기 위해서 였다.
구두는 생각보다 비쌌다. 세일 기간이 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빈손으로 집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예산에서 오버가 되었지만
나는 기필코 '오늘' 새 구두를 사기로 했다.
기쁨이 분에 넘치는 조바심을 만들었고
오늘만은 이런 이례적인 나를 용서하기로 한 것이다.
이십만원 가까이 주고 산 구두는 세련되고 날씬했다.
앞이 조금 끼는 듯했지만 새구두가 주는 약간의 부담감이
내 등을 꼿꼿하게 했다.
새구두를 신고 시원한 겨울 바람을 목도리도 않고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 오는 길에 슈퍼에 들려 형이 좋아하는 감자국거리를 사고
귤을 낱개로 조금 사서 비탈을 오르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비탈로 난 계단 중간에 간밤에 술취한 누군가가 토해놓은 흔적들이 추위에
얼어 있었다. 나는 새구두를 신고 가볍고도 조심스럽게 발을 놀려 오물들을
넘어 집으로 향했다. 날개달린듯 튀어 오르는 내 발걸음에 저절로 흥이 났다.
그리고
형이 너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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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 조금 나리고 있었고, 그래서 집안에 있던 나는 너무나 행복해졌다.
등산양말을 신고 발을 꼼지락대며 매부에게 말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창가로 날아와 붙는 눈송이들이 삭삭 녹아 내리다 어느 순간부터 쌓이기
시작했고 매부는 늦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주문이 밀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온 매부는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은상이형, 나 취직했어"
그는 잠시 눈을 꿈뻑꿈뻑하고
들고 있었던 밥 말은 감자국을 한수저 입에 마져 넣으며
씩 .........웃었다.
입안에 있던 밥을 꾹꾹 씹으며 그는 나를 향해 계속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오늘 감자국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잘 무른 감자가 그의 웃음과 함께
담백하게 으깨지는 상상을 하며 나는 덩달아 웃었다.
벅차오르는 그러나 아주 조용한 축하였다.
밥을 목으로 넘기고 숟가락질을 다시 하려던 형이
만쯤 올린 숟가락을 국에 꽂아 놓고 그 긴 몸을 어추줌이 일으켜
벽에 기대 그를 보고 있던 나를 안아 왔다.
"이제 ..... 어른이네.."
등을 도닥이고 뒷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과
귀로 울리는 그의 낮은 음성,
담백한 감자국 냄새가 가슴을 울리며 나를 행복하게 했다.
소박한 그가 진정 온 몸으로 나를 축하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사람이 내 매부임이......눈물나게 행복했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가 축복하는 마음으로 나를 안고
웃고 있음을 나는 확신했다.
경박하지 않은 그의 축하를 사랑했다.
그를 도울 수 있는 내가 되었음이...
어른이 되었음이...너무나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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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버튼 새 양복을 입고 날씬한 새구두를 신고 첫출근을 했다.
처음 1주동안 나는 누구보다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느꼈다.
예의바르고 빠릿한 나를 모두 좋아했다.
나는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출근을 해서 회사에 도착하면
슬리퍼로 갈아 신고 새구두는 케이스에 넣어 책상 저 아래로
고이 모셔두었다가 술집으로 향할 때 꺼내 신었다.
'해준씨... 구두가 되게 세련됐다'
'되게..'의 꼬리를 길게 끌어 강조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서영씨의 칭찬에 나는 내 새구두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나는 말초까지
세련된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아주 이론적인 과정을 거쳐 도출된 결론들을
의견으로 내기도 하고 나의 그런 기획들이 전격 채택 되기도 했다.
의기양양...
나는 병원에 취직하지 않은 것을 너무나 다행으로 여기며
회사사람들과 어울렸다. 매일 밤늦게 비틀거리며 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안아 옷갈아 입히고 이부자리 봐주고 자리끼를 놓아주는 것은
모두 형의 몫이였다.
형은 군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한참 나를 바라보고 자러가곤 했다.
금새 들려오는 익숙한 코고는 소리에
큭큭 웃음이 났다.
이번 주말에는 형과 함께 갈비라도 뜯으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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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한지 꼭 일주일이 되던 날 내 날씬한 구두는
내 발에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그날은 외근이 있었던 날로 선배가 필자와 만나는 자리를 따라다니며
나는 꼬박 하루를 새구두를 신고 걸어야 했다.
해가지고 돌아올 무렵 선배가 술한잔을 권했지만
나는 고사하고 절룩으며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집이 가까와 지자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고 싶었지만
왠지 모를 오기로 정신이 아득해 질때까지 버텼다.
돌아와 신발을 벗어 보니 회색양말 뒷꿈치로 발간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조심스레 양말을 벗고 눌린 발가락들과 벗겨진 살갗을 따뜻한 물에 담갔다.
처음엔 악...소리가 나게 아팠지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노곤한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욕조에 걸터앉아 잠이 들었다.
흠칫 하는 감각에 눈을 떠보니 바지를 동동 걷어 붙인 은상이 형이
두시간쯤 물에 퉁퉁 불은 내 발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쑥스럽게 웃으며 쪼글쪼글해진 발을 꺼내 물을 버리고는
"토요일 저녁인데 외식할까?"
"그러던지"
토요일 저녁이라 외식을 한적은 우리가 같이 살면서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사무실 사람들은 토요일 저녁은 특별하다고 말했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말해 보았다.
등을 돌려 표정을 알수 없는 형이
다시 바지를 내리고 새등산양말을 꺼내 신는 것을 보고
나는 신발장을 뒤져 스니커를 찾아 신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재촉하는 나를 따라 나서며
내 날씬한 새구두를 잠시 응시하는 그에게 팔짱을 끼어 끌어 당겼다.
성급하게 웃으며 종종대는 나에게 끌려 우리는 고기를 먹으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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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두주째 갑자기 일이 험해졌다.
오전에는 출판사 모두가 매달려 일용노동자처럼 책을 나르고
오후에는 매달려서 교정을 보았다.
쫀쫀하고 짜증스런 작업들이 이어졌다.
다음날 열린 회의에서는 내 기획에 대한 가상 시뮬레이션이 있었고
나는 군데군데 드러나는 헛점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누구에게도 대안따위는 없었지만
내가 낸 의견이기 때문에 눈길은 모두 내게 모여 있었다.
갑자기 무능력해 진것 같았다.
시간을 주지 않고 마음대로 시뮬레이션에 대한 대안을 물어 오다니..
이건 반칙이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새구두를 갈아 신고 사무실을 나섰다.
발이 ........ 발이 너무 아팠다.
꽉끼는 앞머리가 가슴을 죄어 왔고, 들썩이는 뒷꿈치로
내 여린 살갗들이 다시 벗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집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오늘을 이대로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과감히 가장 가까이 보이는 신발 가게에 들어가서
새구두를 사 신고 조금은 어중띤 걸음으로 필자와의 만남 장소로 향했다.
짜증은 머리끝까지 차있었고
누군가가 나를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머리카락 하나하나에서 그 짜증이 둑둑 떨어져
우리 모두를 상처입일 정도였다..
필자는 약속시간보다 한시간이나 늦었지만
"아이고 미안합니다"
한마디만하고 털썩 주저 앉아서
"접대비죠?"
하고 가장 비싼 음료를 시켜 먹으며 왜 이번 계약을 뒤늦게 취소할 수 밖에 없는지
침을 튀기며 이야기했다.
그는 인기작가였지만 비논리적이었고 거짓말쟁이였으며 능글맞기까지 했다.
걸죽한 그 목소리가 더이상 지껄이는 꼴을 더는 봐줄수가 없어서...
나는 조목조목 그에게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당신말의 모순과 부조리함을 예의바르게 꼬집어 주었다.
그리고는
누군가의 흉내를 내며
"앞으로 전혀 같이 일 안하실 것도 아닌데......"
내 목소리가 조금 달떴지만...나는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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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잖은 마음으로 집에 돌아 갔을 때 형은 자고 있었다.
우리 착한 매부에게 하소연을 하고
위로 받고 싶었는데 너무 곤히 자고 있는 그의 얼굴에
조금은 심통이 났다.
그를 깨워 이야기를 들어 달라 했으면 그는 분명 일어나서 졸린 눈을 열심히
부벼가며 내 이야기를 들어 주고 맞장구도 쳐주고 했을텐데...
하지만 나는 깨우지 않고 미워하기로 했다.
오늘 하루를 철저히 되는 일이 없는 하루로 치부하기로 하고
머리끝까지 달아 올라 터질정도로 화를 내기위해 그를 깨우지 않기로 했다.
혼자 불도 켜지 않고 맥주를 마시고 있던 나를 화장실 가던 형이 발견하고
비척비척 다가왔지만 나는 발을 퉁퉁 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루 한가운데서 잠이 덜 깨 그 모양을 바라보던 형의 벙찐 얼굴을
뒤로 하고 문을 쾅 닫았다. 보란듯이 그가 깨어날 때까지 그 추운 마루에 쪼그리고
청승을 떨던 내 모습에 절정으로 화가 나서.......젠장맞을 그날은 내 소원대로
철저히 재수가 없는 날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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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났다.
할일도 없는데 나는 구정 전날 늦게까지 남아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하고
아주 피곤한 얼굴을 하고는 집에 들어 갔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도 내게 말을 걸어 오지 않았다. 변함없이 느긋한 걸음걸이를 하고 맛나게
밥을 먹고 전에없는 저녁 산책도 하는 눈치고.....
내 심통의 원인조차 물어 오지 않는 그에게 나는 점점 더 화가 났다.
그와의 관계가 불편해 질수록 나는 서러워졌다.
신출내기 신입사원 이해준은 그동안 2년 같은 2주를 보내고
이제 좀 쉬고 싶은데 돌아갈 곳이 없어 지려함이 서러웠다.
그와 나 사이에 자존심같은 것은 없었는데....
나는 어디서 들어온 것인지 출신성분을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의해
꽉막한 쫌생이가 되가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니 고기국 냄새가 났다.
꼬래 그래도 명절이라고 그가 음식을 하나보다.
휴일 같은 명절들이었지만
외로운 나를 위해 그는 항상 조금의 음식은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변하지 않는 올해의 명절을 지키는 그에게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 따뜻한 등에 얼굴을 묻고 싶었지만
"나 왔어"
형이 주방에서 머리를 내놓는 것을 뒷통수로 느끼며
한마디 놓고 방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 나와 보는 것도 쑥스러워 대충 옷을 갈아 입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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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이 풀려버린 나는 하루를 꼬박 자고 겨우 다음날 저녁
그와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청명한 겨울 하늘이 보라색이 되가는 무렵이었고
때이른 형광등 아래서 소파에 앉아 저녁을 내오는 형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아주 오래간만에 내 마음을 너그럽게 했다.
그가 끓인 떡국은 맛있었다.
"만두 사온거야?"
"응."
퉁명스런 내 질문에 짧게 끊어 대답하고 빙그레 웃는 그가....너무나 그다왔다.
"나 부장한테 혼났어"
"왜"
"필자한테 협박했다고"
"그랬어?"
"아니"
"그럼?"
"설명하기도 더러워"
"알아서 겨주지 그랬어"
"그렇게 돼?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데"
"그것도 일이야"
울컥...했다.
"해준아..."
"응"
"새신발...자꾸 사지마"
"왜"
"신발사서 처음 몇 주는 다 아파"
"나도 알아"
"근데 왜 자꾸 사"
"당장 너무 아프니까"
"반창고 붙여"
"다음에는...."
울컥...했다.
"떡국에 감자는 왜 넣어"
"그냥 있길래"
"탁해 지잖아"
"맛없어?"
"아니"
울컥...했다.
"해준아..."
"응?"
"새해 복 많이 받아"
우리 매부...우리 은상이형....
가수들이 나오는 청백전 TV프로를 뚫어져라 째려보며
눈물을 삼켰다. 입안에서 감자가 부드럽게 으깨지며
쌉쌀한 눈물내와 섞여 목구멍이 짠...해졌다.
모른척 나를 보지 않고 만두를 쪼깨는 그가 고마웠다.
설겆이를 하고 물튀기고 장난도 하고...
깔깔대고 웃고, 껴안고 뒹굴고...
그리고는 나란히 낡은 소파에 앉아 귤을 까먹으며
오래간만에 아주 편하게 늘어졌다.
청백전이 끝나고 뉴스에 몰입하여
"길이 많이 막히나보다, 부모 없어 좋은 것도 있네"
하는 그의 발에는 상처가 많았다.
발가락은 휘어져 있었고 새끼발가락의 발톱은 다른 것보다
두꺼웠다. 발등에는 거뭇한 눌린자국이 오랜 흔적을 남기고 있었고
아마도 저 너머의 발바닥은 단단히 굳어져 있을 것이다.
그의 가슴을 쿠션삼아 튕기듯 일어나서 그의 발을 안마해 주었다.
몸을 뒤로 기대 팔로 받치고
조용히 웃음짓는 그의 작고 하얀 얼굴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발바닥을 엄지손가락으로 꼭꼭 눌러 쓸어 내리며...
"형...
세상이...상상속의 원버튼 양복같은 곳은 아니더라.
그 촌스러운 양복점 아저씨도 그렇게 안생겼어도
참 잘 살고 있는 거더라.
새로운 카달로그하고 쓰리버튼 양복하고..."
그의 가슴에 일찌감치 기대고 울었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
발이 참 이쁘다...우리 누나...형 발에 반했나?"
내가 클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준 우리 매부...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
그가 몸을 숙여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나는 무릎꿇어 오랫동안 그가 그렇게 해 주는 것을
느끼며 미소지었다.
"이제...어른이네..."
.
.
.
연휴가 끝나고
반창고를 잔뜩 붙이고 날렵한 새구두를 다시 꺼내신었을때...
나는 한결 편해진 구두를 느꼈다.
날렵하고 광택나던 그 구두코에는 내가 팽개치듯 포기하며 넣어두었을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주름이 잡혀 있었고
따각따각 소리를 내던 굽도 조금 더 닳아 있었다.
어린 내가 나만의 고뇌로 그에게 소원했던 동안
나를 대신하여 내 신발을 신어준 나의 다정다감한 매부 은상이 형에게
북받치는 사랑과 존경의 감정을 느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