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우리 부부가 함께 걷기로 한 순례길의 목적지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벌어진 입양아 살인 사건을 다룬 '아순타 케이스'를 넷플릭스에서 흥미롭게 봤다. 순례길에 걷기로 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비롯, 부부가 연박하기로 한 팜플로냐, 엘 카미노 순례길에 들르지는 않지만 항구 도시 비고 등이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나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들 도시의 풍광이 소개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하지만 걸어야 할 도시들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하지만 우리가 35일 남짓에 820km를 걸어 당도해야 하는 성스러운 도시에서 불과 11년 전에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2000년 중국 후난성 용저우에서 태어난 비극의 주인공 아순타 용 팡 바스테라 포르토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9개월이 됐을 때 중국을 여행하던 양부모 알폰소 바스테라 캄포로와 마리아 델 로사리오 포르토 오르테가에게 입양됐다. (시리즈는 양부모가 원해 일곱 살 때 입양한 것으로 나오는데 왜 이렇게 각색했는지 궁금하다) 갈리시아 지방에서 입양된 첫 중국 아이로 기록된다.
아순타를 입양한 지 12년이 흐른 2013년 양부모는 별거에 들어간다. 아순타는 알폰소와 로사리오의 집을 오가며 생활한다. 그 해 9월 21일 토요일 오후 10시 17분 양부모는 아순타의 실종을 신고한다.
6부작 시리즈는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순타가 왜 사라졌는지 추적한다. 1화 9월 21일, 2화 9월 24일, 3화 9월 26일, 4화 9월 28일, 5화 24시간, 6화 재판이다. 이따금 과거 장면이 플래시백되긴 하지만 철저히 시간의 흐름을 좇아 답답할 것 같고, 실제로 그런 부분도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 보면 왜 양부모가 어렵게 택한 양녀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걸까, 실제로 둘이 공모한 것일까 궁금증에 다음 얘기를 찾게 만든다. 로사리오를 연기한 칸델라 페냐의 연기력이 소름끼칠 정도다.
먼저 의심을 산 것은 변호사 출신답지 않게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정신줄을 놓은 듯한 양어머니 로사리오다. 다음날 새벽 1시쯤 양부모의 별장 몬토우토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아순타의 주검이 발견된다.
수사당국은 부검을 통해 아순타가 3개월에 걸쳐 로제라팜이란 중독성 강한 약품에 중독됐던 사실을 알아낸다. 로사리오가 장기적으로 복용했던 약을 딸에게도 먹였다. 알고 보니 로사리오는 남편과의 결혼에 만족하지 못해 유부남과 바람을 피웠고, 알폰소는 아시아 소녀 포르노에 탐닉하고 있었다. 음악에 재능을 보였고, 공부도 곧잘 했던 아순타는 부부가 재결합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고 판단했고, 부부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다고 느껴 더 성장하기 전에 살해하려고 마음 먹었다고 수사당국은 결론을 내린다.
아순타 사건은 굳이 외국 아이를 가슴으로 낳은(입양한) 양부모가 12년 만에 끔찍하게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점에서 당시 스페인 사회에 커다란 공분을 일으켰다. 인면수심의 양부모가 수사나 재판을 받으려 이동할 때면 계란 세례를 받곤 했다. 이런 여론의 질주는 사건의 진상을 왜곡하는 데 나름 일조한다. 양부모가 공모해 살해했음을 증명하는 데 상당한 하자가 있는 증거들이 그냥 넘어간다. 물론 양부모의 무고함을 입증하는 증거들도 의식적으로 배척된다.
이 과정에 로사리오는 정신적으로 크게 붕괴된다. 다만 로사리오는 양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여론은 다른 이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잔인한 나르시스트란 프레임으로 단죄한다. 그리고 알폰소는 어떻게든 로사리오의 무죄를 증명하려다 전 부인과 살인을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지만 끝까지 전 부인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시리즈가 돋보인 것은 경찰 수사관, 우리 검사의 역할에 해당하는 치안판사, 양부모의 지인들과 이웃, 기자들, 산티아고 시민들 등 다양한 군상을 적절히 배치하면서도 극적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와 스페인 사법체계가 달라 혼동스러운 점은 있으나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여튼 재판이 2년 뒤 열려, 두 사람은 치열한 변호인단의 변론에도 각각 징역 18년형을 언도받았다. 로사리오는 여러 차례 시도 끝에 2020년 옥중에서 극단을 선택하고 만다. 변호사에게 간곡하게 당부해 신문에 매년 딸의 생일에 영원한 사랑한다는 부고를 싣게 했던 그녀였다. 알폰소는 아내의 소식을 듣고도 2031년 형기를 마칠 때까지 복역해 자신의 무고를 증명하겠다고 벼른단다.
시리즈를 다 보고 난 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400회를 봤는데 다둥이 가족의 여덟 살 아이 살해 사건을 다뤘다. 장애아들의 복지카드를 카드깡해 생활비로 쓰는 등 아이들을 착취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못된 부모 얘기였다. 갈수록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은 일인 듯 벌어지고 있다는 무서운 생각까지 든다.
아순타 사건의 양부모에 대한 판결은 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에서도 확정됐다. 6회 시리즈를 모두 본 뒤에도 여전히 사건의 진실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2031년 알폰소가 출소하면 뭔가 다른 진실의 편린이 드러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여튼 생각할 대목이 많은 시리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