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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카페 게시글
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달이 뜨기까지 외 / 임보
동산 추천 0 조회 36 09.12.17 21: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Lunar Eclipse

 

 

달이 뜨기까지 / 임보

 

 

뜸부기가 북을 치고 있었다
제 몸보다 큰 북을 어깨에 메고
느릅나무 언덕 위에 올라앉아
들판을 울리고 있었다

 

흐르는 북소리에 서천 하늘이
수박 속처럼 벌겋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청개구리가
호박넝쿨에 매달려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던
청개구리가 펄쩍 뛰어내리더니
두 손으로 입을 쥐어짜면서
나발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위틈에서 귀를 쫑그리고 있던 귀뚜라미도
방울을 흔들며 뛰쳐나오고

명아주 잎새에 코를 박고 잠자던 여치도
눈을 비비고 일어나 해금을 뜯었다

왕벌들은 머루넝쿨 주위를 빙빙 돌면서
젓대를 불어대고

참새들도 지지배배 달려와서
가죽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혼성합창을 시작했다

달팽이가 뿔을 흔들면서 느릿느릿 걸어나와
불평을 했다
지휘를 해야겠는데 악보가 보이지 않는다고

그러자 누군가
동쪽 하늘 위에 둥근 등을 하나 밀어 올렸다

밝은 보름달이었다.

 

 

The simple message!

 

 

망각에 대한 위로 / 임보

 

나비나 벌은

그들이 좋아하는

한 종류의 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한평생 풍요롭게 잘 산다

 

이 부질없는 욕심이여,

이미 남의 아내 된

지난날의 그 처녀 이름 잊어 먹었다고

너무 안타까워 할 것 없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왕이 누군지 몰라도

아랍을 점령한 미국 대통령이 어느 놈인지 몰라도

내 인생 별 지장 없다

이 세상 잘 굴러만 간다

 

히말라야 계곡의 눈사태 나거나 말거나

고비사막 모래바람 일거나 말거나

그것들 알아도 별것 없고

그것들 몰라도 별것 아니다

 

사람이든 풀이든

일상의 이웃들 만나면 그저 반갑게

서로 미소 나누는 그것이 즐거운 삶!

잊지 않으려고 낑낑대며 무거워할 것 없다.

 

 

Resting on the street

 

그런 세상 / 임보

 

청소부의 월급봉투가 구청장의 것보다 더 두둑하고,

근로자의 승용차가 사장의 것보다 더 고급일 수도 있는 그런 세상.

 

국회의원 입후보자가 없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입후보자 모집 가두 캠페인을 벌이는 그런 세상.

 

아침마다 신문이나 방송의 톱뉴스는

예술인들의 신작 발표 행사로 장식되는 그런 세상.

 

노인이 되어도 서럽지 않은, 아니 노인이 빨리 되고 싶어

머리를 허옇게 탈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어른들이 대접받는 그런 세상.

 

대통령의 연두교서, 법원의 판결문, 국회에서의 질의응답,

모든 법전들이 시로 이루어진 그런 세상.(시를 모르는 자들은 참 괴롭기도 하리)

 

은행원들이 대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보너스를 걸고 선전하는 그런 세상.

 

하루에 2시간 수업, 나머지는 여행으로 학점을 따는 그런 학교만 있는 세상.

 

전철의 선반에 두고 내린 물건이 한 달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는 그런 세상.

 

울타리가 없는 세상.

 

경찰관들은 할 일이 없어 매일 낮잠이나 자고,

교도소는 여행자들을 위한 무료 국영호텔로 개조되어 가고 있는 그런 세상.

 

그리고 참,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세상.

 

 

Destined

 

소요연행(逍遙戀行) / 임보

  

젊은 날 내 수줍고 참 물정 몰라서

이루지 못한 사랑들 이제 다 해 보고 싶네

그것도 세계적으로 화끈히 해 보고 싶네

 

기모노 차림의 다소곳한 일본 여인도 괜찮으리

그녀 다다미방에 드러누워 차도 마시다

샤미탱도 뜯다 하며 며칠 뒹굴어도 삼삼하리

 

핫팬티의 싱그러운 캘리포니아년도 무방하리

무개차로 해변을 달리며 탄탄한 무릎에 기대

홀짝이는 위스키도 황홀하게 화끈거리리

 

눈처럼 흰 백러시아 소녀도 사랑스러우리

배치카에 장작불 지펴 놓고 사슴 고기 구워 가며

겨울 밤 창 밖의 눈, 보드카의 맛도 향그로우리

 

알라스카 에스키모 처녀도 감칠맛 나리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곰 가죽 북 두드리며

함께 백야의 설원을 누비는 멋도 기똥차리

 

눈 큰 아라비아 여인 그와의 밀애(密愛)도 달콤하리

차도르에 덮인 몸 달빛 아래 열어 놓고

사막에 누우면 하늘의 별들도 눈부시리

 

타이티의 가슴 큰 여인 고갱의 여자들도 찾으리

홍옥처럼 윤기 흐른 검붉은 피부

비취 바다 물결에 야자수 그늘도 어지러우리

 

스페인의 열정적인 춤, 스웨덴의 우수 어린 눈

남미의 인디오, 중국의 귀여운 꾸냥들도 놓지지 않으리

허지만 게르만의 몸집 큰 여인들도 사양하진 않으리.

 

 

Untitled

 

이(齒)를 앓으며 / 임보

 

매웁도록 시린 겨울 하늘에 연(鳶)을 보았제?

그 방패연을 하늘토록 끌어올린 질긴 명주실,

그 명주실로 뼛속 마디마디를 쏠아대는 따가움을 알 것제?

 

삼경도 넘은 무더운 여름밤

무당굿 징소리를 들어 보았제?

송곳으로 찌르듯 저승까지 뻗고 뻗어

원귀(寃鬼)들의 희고 흰 혼을 실어 내리는 그 소리,

그 소리가 우리어 내는 시큰하고도 무거운 맛을 알 것제?

 

그 명주실 끝에 그 징소리를 달아

밤새도록 내 수마(睡魔)의 눈꺼풀을 갉아대는

이 각성(覺醒)의 끈덕진 신호는 무엇인가?

수천만 균병(菌兵)의 침략을 알리는

육계(肉界)의 비상경보 싸이렌 소리,

백혈민병(白血民兵)들의 아우성인가 보다.

 

아내가 내민 사리돈 한 알로 귀를 막고

혈병(血兵)들의 절규를 일단 차단한다

까짓것, 지축을 흔드는 장렬한 민병들의 전사쯤이야

고름으로 쌓이거나따나

사리돈 연막(煙幕) 속에서 나는 잠시 태평,

내일 아침 치과(齒科)가 문을 열면

발본색원(拔本塞源)하리라고

치란(治亂)의 중대 결심을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임보 시인

카페    <자연과 시의 이웃들> http://cafe.daum.net/rimpoet

블로그 <시인의 별장> http://blog.daum.net/rim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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