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고요가 광목천을 감싸고 있다
희뿌연 휘장에 둘러싸인 형상은
아직 잠을 깨기 전이어서
누구도 섣불리 손댈 수가 없다
눈을 부릅뜨고 있거나
찡그린 미간이거나, 목에 얹힌 얼굴이
두렵기만 하다 깊고 어두운 창고 같고
박물관 지하의 수장고 같은데, 새벽은
오후 2시의 제막식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저의 숨결은커녕 죽음조차 느낄 수 없는
데스마스크, 얼굴 표정 하나로
일생을 요약하고 있다
안면 근육의 무수한 균열을 입에 문 채
이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정말 그러하다는 듯이
-『경향신문/詩想과 세상』2022.04.04. -
한 사진 전시회에 갔다가 얼굴을 클로즈업한 흑백 사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깊은 주름과 눈동자는 그가 겪은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표정 하나로/ 일생을 요약하고 있”었는데, 왠지 내가 사진 속에 있고 사진 속의 얼굴이 내 자리에 서 있는 듯했다. 침묵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마음 한 귀퉁이에서 슬그머니 연민이 일었다. 나 자신이 불쌍해졌다. 순간 그 앞에 서 있는 것이 불편했고, 외면하고 싶어졌다. 외면하고 싶은 죽음도 있다.
사람의 머리부터 가슴까지의 모습을 나타낸 흉상은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함이다. 사후에 이뤄지는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지극히 주관적이다. 제막식은 오후 2시, 청동 흉상은 광목천에 감싸여 있다. “어두운 창고”나 “박물관 지하의 수장고”에 있어야 할 유물 같은 흉상이 “이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니, 두려운 일이다. 울림이 없다면 흉상(胸像)은 흉상(凶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