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맛집
정통 파스타에 와인 한 잔, 디저트로 타로점 어때요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14호(2021. 01.15)
정예슬 타로와인바 서랍 대표
타로와인바 ‘서랍’의 어둠은 포근했다. 테이블마다 놓인 스탠드 불빛이 그 끝을 뭉뚱그려 빛과 어둠의 경계가 모호했고, 코르크 마개가 열리는 경쾌한 소리에 이어 달콤 쌉싸름한 와인 향까지 스며들었던 것. 이런 분위기라면 어떤 점괘가 나오든 틀릴 수가 없을 것 같을 때, 정예슬(서울대 동양화10-16) 서랍 대표가 살바도르 달리의 타로 카드를 들고 맞은편에 앉았다. 괜스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지난해 12월 21일, 1년 중 가장 밤이 긴 날이었다.
“저희 가게는 2018년 겨울 문을 열어 최근 두 돌을 맞았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정말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타로점을 보려면 아무래도 개인적인 얘기를 많이 들을 수밖에 없거든요. 단순히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거칠게나마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조망하게 돼요. 프러포즈 이벤트를 위해 서랍을 통째로 빌렸던 커플이 기억에 남습니다. 1년 전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귀었대요. 신기하고 재밌죠.”
2017년, 우연히 본 타로점에서 큰 위안을 받았다는 정예슬 동문. 친구한테서 타로 카드를 선물 받은 김에 내처 독학을 시작했고, 빠르게 실전에 돌입했다. 대학원 재학 중 선보인 오픈 스튜디오에서 관람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타로 카드를 들고 나왔던 것. 운명이란 이름은 두말할 나위 없이 호기심을 자극하게 마련이어서, 정 동문의 부스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성황을 이뤘다. ‘용하다’, ‘맞는 것 같다’, ‘어떻게 알았냐’ 등 호평이 쏟아지자 자신감이 붙었다.
“취미 삼아 공부한 타로가 생업의 일부가 됐어요. 처음부터 레스토랑을 운영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이곳은 서울대 친구들 넷이서 소자본 창업을 준비하던 공간이었어요. 사무실 겸 쇼룸으로 쓰려고 했는데, 창립 멤버들이 각자 새로운 진로를 찾아 흩어지면서 지금의 서랍이 됐죠. 일부 공간은 작업실로 만들어 미대 동문들과 같이 쓰고 있고요. 개업하고 더 많은 선배, 후배들과 친해졌습니다. 학교 다닐 땐 얼굴만 알고 지냈는데 한번 놀러 오라는 말을 흘려 듣지 않고 꼭 찾아주셨어요. 든든한 버팀목이죠.”
졸업 후에도 서울대 울타리 안에 있는 만큼 정 동문은 동창회 활동에 관심이 많다. 미대동창회 간사들의 회식 장소로 서랍을 제공했고, 2019년 열린 ‘서울 미술나눔 자선 경매전’에서 일손을 거들었다. 자선 경매전에서 본회 ‘서울대 와인’ 몬테스 알파 블랙라벨을 맛보곤 그 자리에서 서랍의 와인 리스트에 올렸다고. 주량은 소주 반병에 불과하지만 100여 개의 와인을 직접 시음한 후 30여 가지를 추려 선보인다. 수시로 와인 리스트를 재정비하는 건 물론이다.
“타로도 와인도 좋지만, 한번 온 손님을 단골로 만들기 위해선 음식 맛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요리 실력이 출중한 고민정(서울대 동양화10-14) 동문의 도움이 컸죠. 개업 전 매달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왔고, 손님상에 올려 반응을 살피며 초기 메뉴를 구성했어요. 서랍의 시그니처 메뉴 ‘양송이 퐁퐁퐁’이 그 중 하나입니다. 올리브오일에 고기소를 꽉 채운 양송이를 올린, 스페인식 냄비 요리예요. 또 다른 대표메뉴 ‘바질페스토 파스타’는 이탈리아 요리학교 ‘알마(Alma)’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제 사촌동생이 개발했습니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실력인데, 저처럼 자유롭고 즉흥적인 걸 좋아해서 2020년 10월부터 같이 일하고 있어요.”
가게 이름을 딴 ‘서랍 속 까르보나라’도 빠지면 섭섭하다. 부담 없는 가격에 고소한 풍미를 낸 정통 파스타를 맛볼 수 있다. ‘트러플 머쉬룸 파워’, ‘치즈범벅 시금치 에그팟’, ‘보들보들 감자 그라탕’ 등 식사 겸 안주 메뉴와 와인에 곁들여 먹는 치즈 모둠 및 디저트 류도 준비돼 있다. 제철 재료와 크리스마스 등 이벤트 시즌에 따라 꾸준히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서랍은 코로나19로 인해 밤 9시까지만 영업이 허용되면서 완전 예약제를 시행하고 있다. 저녁에 하루 4팀까지만 받는 대신 1인 손님을 대상으로 평일 낮 시간 영업을 신설했다. 배달 음식에 지친 동네 주민들이 찾아와 한가로이 콧바람을 쐬고 간다고. ‘숨어서 열린’이란 인스타그램 계정의 수식어에 걸맞게 가게 바깥으론 일체의 홍보물을 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관악아트위크에 예술공간으로 선정됐다. 동양화 동문 그룹 ‘오색빛닮’의 원데이클래스와 동문 출신 연극단 ‘극단적극단’의 낭독극 ‘짠’이 서랍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 서랍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여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음식이나 와인 또는 사람이나 분위기도 될 수 있죠.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은 공간이 되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은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도 있고, 시시각각 변하는 것도 있죠. 이 모든 것이 공존하는 순간, 속에서 동문 여러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총 15석 규모로 서울대입구역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다. 예약 필수. 주차 불가. 월요일·화요일 휴무. 나경태 기자
※ 서울 관악구 청룡1길 19 301호 / 070-406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