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머금은 쑥
<시경詩經> 공부를 하는 와중에 시를 보면, 쉽게 자연과 마주한다. 교실에 앉은 채 머릿속은 훨훨 날아 뽕나무밭에 가 있기도 하고, 산골 바람을 피해 오막살이에 앉아있기도 한다. 먼 길을 떠난 남편을 그리는 아내가 애를 끓이다 희망의 무지개를 만나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305편의 시나 노래가 들어있는 [시경]은 사서삼경 중 하나이다. 황하를 중심으로 한 중원 일대 여러 나라의 노래 가사를 모아놓은 중국 최초 시가의 결정체로 '노래 같은 시, 시 같은 노래'이니 읊으면 마음에 감겨 친숙하다. 21년에 방영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시경에 수록 된 시 중에 [북풍]이 등장했다. 이산이 할아버지 영조로부터 동궁전에 금족령이 내려져 갇혀 지낼 때 후에 의빈이 된 성덕임이 시경을 가져와 그에게 읽어준다. 혜이호아 휴수동행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가리라). 정조 이산이 성덕임과 함께 시를 낭독하는 장면이 아름다웠다.
시경을 지도하는 교수님은 모여 공부하는 날을 '시경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날'이라고 지칭한다.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우리는 교교한 모습의 기운을 담아 모여든다.
지난주에 흥미로운 시를 마주했다.
이슬에 촉촉이 젖은 쑥으로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한다. 화락한 모습으로 노는 면면을 노래한 시 (육소蓼潚)蓼장성할 륙, 潚 맑은대쑥 소)를 마주하며 제각각 다르게 연상했다. 잘 자란 쑥으로 잔치를 하니 나의 머릿속엔 어릴 적 엄마가 외갓집에서 가져온 쑥개떡이 떠올랐다. 쑥은 쑥인데 이슬을 머금고 있는 쑥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이 선생: 영롱한 이슬이 매달린 쑥 색깔은 카키색 같다고 생각돼요.
정 선생: '밀리터리룩'이라고 군복과 군용품을 카기색이라고 하지요
나: 쑥떡이 떠올라서인지 쑥은 카키색보다 진하지 않을까요? 이 선생의 그 말을 랩으로 해서 노랫말을 만들면 좋겠는데요 '카키색 같은 쑥, 쑥 같은 카키색.' 김 선생: 얼마 전에 시골에서 본 영롱한 이슬 젖은 쑥은 색이 진한 모습이 었어요.
문인화를 그리는 이 선생은 카키색에 갇혀서 4가지 배합 색을 말한다.
"한국화 물감으로 노랑, 군청, 수감, 녹청을 섞으면 카키색이 돼요." 다른 선생은 색이 아닌 이슬이 흠뻑 맺힌 모양에 대해 말을 한다. 함초롬하다 / 무젖다 / 흠치르르하다 등 예쁜 말들이 쏟아진다.
글쓰기를 하는 사람에게 솔깃한 단어들을 대하니 '모든 길은 글로 통한다'라는 생각이다. 카키색의 매력을 알고 있는 나도 카키의 늪으로 빠져든다 김동리의 단편 <까치소리>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주인공이 짐을 푸는 순간 '동료에게 선물 받은 카키 빛 장갑'이라고 지칭하니 카키 빛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였지 않을까.
시경의 (육소)에서는 이슬이 내려 짙은 쑥을 '영로농농零露濃農' 이라하고, 이슬이 젖어있는 모습을 '영로니니零露泥泥니'라고 하며,이슬이 많이 매달린 모양을 '영로양양
零露瀼瀼으로 표현했다. 이슬이 깨끗하고 번지르르 윤이 나는 상태를 '이슬이 흠치르르하다'라고 하며, 홈치르르할 양瀼을 쓴다. 한자와 우리말의 오묘함에 빠져든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중국의 시 한 편을 놓고 우리는 시공간을 넘나들었다.
지도교수님은 남양주 수동면에 있는 '지곡서당' 주변의 풍광 사진을 자주 올려주신다. 정자 아래 계곡의 물이 흐르는 그곳에서 공유한 우리의 기억이 봄가을엔 그곳을 넘나든다. 계절별로 먹거리도 갖다 주신다. 이번엔 밤을 따서 가을을 선사하셨다. 마땅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값진 시간이다. '시경 교향악'을 함께 울리는 귀한 시간. ''자~ 양재천을 가든지 일산 호수공원을 가든지 영롱한 이슬을 머금은 쑥을 탐색해 옵시다. 해가 없을 땐 생생하다 해 뜨면 쑥스러운지 맥이 없어진다는 쑥은 오월 단오 때가 채취하기에 적기라고 해도 쑥은 늦가을까지 질기게 무성하다지요." 쑥색만큼이나 진한 우리의 추억이 17년 세월을 홀려보내며 켜켜이
쌓여있다.
성혜영 hipeony@naver.com
지금 같이하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 하늘, 구름, 바람 그리고 카페와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