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하는 이들에게는 누구나 갖는 고통이지만 자신의 시가 인정이 안 될 때,
즉 뽑히지 않을 때 겪는 마음의 고통은 쓰라리겠지요.
서지월 시인은 중학교 2학년때부터 시인이 되고자 꿈꾸며
15년간의 문학에 흠뻑 젖어 26세때부터 30세때까지
문예지에 본격적으로 작품을 투고했는데 거의 4년간 뽑히지 않았습니다.
계속 낙선의 고배를 마시다가 30세가 되던 해
경북 의성 다인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당시 정이랑시인이 다인중학교 3학년이었음)
제2회 '전국교원학예술상' 공모에 시 <꽃잎이여>가 뽑혀 문예부문 전체 대상에 당선 되어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상금도 30만원을 받았습니다.
당시 심사위원은 박재삼시인 등 9명이었으며,
1985년 10월 28일(월) 시상식이 있었는데 서울 가서 상을 받고 처음 뵈온
박재삼 선생님과 기념촬영 하고 대구로 내려 왔는데.
그날밤 KBS-TV 9시 '뉴스센타'와 MBC-TV 9시 '뉴스데스크'에서 일제히 수상장면을
방영했는가 하면,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정란>에까지 보도 되어
세상에 서지월시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어 등단관문의 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공모전의 당선이지 정식 등단 관문은 아니었습니다.
한 달 반쯤 지난 후에 고 박목월시인이 창간한 월간 시전문지 <심상> 신인상에
시 '겨울 신호등' 외 3편이 당선 되었으며,
이듬해인 1986년 6월에는 월간 아동문학 전문지인 <아동문예> 신인 문문학상에
동시 '바람에 귀 대이면' 외 4편이 당선,
8월에는 월간 종합문예지인 <한국문학> 신인작품상에 시 '조선의 눈발'로 다시
시가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한국시단에 데뷔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청산이라 생각하고 10년간의 습작기간과 다시 10여년간 써놓은 작품을
총정리 선별해 童詩 두 군데 詩 세 군데 합해서 다섯 군데 투고를 했는데
계몽사 '어린이문학상' 에서만 최종심에서 떨어지고
네 군데 당선의 영예를 안게 된 것입니다.
이후, 친지나 부모형제들로부터 그동안 '밥 빌어 쳐먹을 짓을 한다'는
무수한 비난을 면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이 시가 널리 알려지자 서정과 사유가 적절히 잘 배합 된 수작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는가 하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임영조시인이 아모레 <향장> 여성문예작품 공모를 주관하고 있었는데,
거기 시가 당선된 대구 효성여대 국문과 출신 강남옥 시인이 서을 가서 임영조시인을 뵈니
임영조시인께서 시 '꽃잎이여'를 어디서 보고는
"60세 정도 된 시인이 쓴 줄로 알았더니 새파란 청년이 썼구만 ! "했다 한다.
1986년 1월에는 MBC-FM <이종환의 디스크 쇼>에 방송 되어
전국에 메아리치기까지 했던 詩입니다...시인의 회고기에서
**낭송시는 KBS FM <아침의 시> 프로에 방송된 것임. **MBC-FM <이종환의 디스크쇼>에서
이종환님의 음성으로 방송한 서지월 시'꽃잎이여' 추후공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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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좋은 시, 명작입니다...!!!..추천게재-음악정원. 좋은글.한류문단.시사랑사람들
제가 시방부터 밥 탤탤 굶고 10년을 습작해도 못 딸아갈 명시!!
詩는 이래야... 詩의 모습을 보여준 詩입니다
명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