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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
내가 로런스에 관한 단행본을 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안 날 정도다. 로런스 연구로 박사논문을 제출한 것이 1972년, 거의 반세기 전이다. 그때부터 한국어 저서를 구상한 것은 물론 아니다. 72년 신학기를 앞두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 한국은 이른바 ‘유신독재’ 시대에 접어들었고, 나는 1974년 초부터 시국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으며 계간 『창작과비평』 작업에도 복귀한 상태였다. 영어 학위논문의 출판은 기회가 주어졌더라도 필요한 수정작업을 감당할 처지가 아니었고 국문 저서를 구상할 겨를도 없었다. 첫 문학평론집을 낸 것이 1978년에 가서였다.
그러나 국내 독자를 위해 로런스에 관한 글을 한두 편씩 써내면서, 특히 1980년에 강단에 복귀한 뒤로, 학위논문 내용을 상당부분 활용하되 새 논의를 약간 추가해서 책을 한 권 만들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떠올랐다. 언제부턴가는 사람들이 물으면 생각은 하고 있노라고 답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그게 80년대 후반이었다고 해도 벌써 30년이 훨씬 넘었다. 그사이 사람들의 질문에도 점점 큰 기대가 안 담기는 빛이 늘어났고, 세월이 더 흐르면서는 약간의 냉소가 서리는 기미마저 더러 보였다.
작업이 지연된 것은 나의 게으름과 내 나름의 ‘공익근무’가 바빴던 탓이 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심경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까닭도 있다. 애초에는 학위논문의 내용을 선별적으로 활용하고 새 글을 좀 보태서 구색을 갖추면 책 한 권이 되리라고 쉽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작업이 계속 늦어짐에 따라 내가 왜 아직도 로런스를 붙들고 있는지를 동시대인들과 나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는 책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추가된 것이다. 영문학 교수로서 전공이 로런스라거나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여전히 즐거움과 정신의 앙양을 느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시대적 현안과 고민이 넘쳐나는 독자를 위해서나 스스로 여러 긴박한 작업에 골몰한 나 자신을 향해서나 어떤 설득력 있는 답을 주는 책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써내기만 한다면 무언가 답이 나오리라는 느낌은 마음 한구석에 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작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였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후학들이었다. 나의 팔순에 맞춰 학위논문을 번역 출간하는 데 동의해달라는 옛 제자들의 요청을 받고, 딱히 팔순에 맞추지 않더라도 나도 저서를 빨리 완성해서 동시 출간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본서와 함께 『D. H. 로런스의 현대문명관: 『무지개』와 『연애하는 여인들』』이 간행됨으로써 그 약속이 늦게나마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후학들과의 약속은 내게 이중의 자극이 되었다. 첫째, 비록 어느 해 어느 날로 못박지는 않았지만 드디어 일종의 ‘마감’이 생겼다. 번역작업이 예정보다 오래 걸리더라도 무작정 늘어질 리는 없는 만큼 나도 마냥 지체할 수만은 없는 필연에 직면한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학위논문이 통째로 번역돼 나올 판에 그 내용의 일부를 적당히 재활용하면서 책 한 권을 만든다는 안이한 발상을 폐기해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내 작업이 지지부진했던 원인 중 하나는 그런 어중간한 저술이 스스로 내키지 않은 까닭이 없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튼 이제 학위논문과는 다른 차원의 새 작업을 해야 했고, 그 도전이 좋은 자극이 되기도 했다. 물론 학위논문의 일부를 원용했던 기왕의 성과를 개고하는 과정에 그런 활용의 흔적을 모두 지울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연마해온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라든가 ‘후천개벽’ 같은 새로운 주제어들을 적극 도입한 새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제목부터가 외국 학계에 전달되기 힘든 저서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한국 독자 상대의 글쓰기를 주업으로 삼겠다는 선택은 내가 오래전에 한 것이었고, 국제 학계의 인정이 특별히 중시되는 영문학 분야일지라도 수십년의 작심 끝에 내놓는 저서가 외국인이 알아주건 말건 초심에 충실할 일이라는 생각만은 확고했다. 실은 1990년대 초엽부터 로런스 국제학술대회에 간헐적으로 참여하면서 나는 국내의 로런스 연구가 비록 양적으로는 빈약하지만 외국 학계에서도 무시 못 할 수준이라는 자신감을 얻었고 실제로 우리 쪽의 기여를 괄목상대하는 외국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이는 한국의 영문학도·로런스학도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의 영문학’이라는 주체적인 연구와 담론을 계발하려는 의지를 지녔기 때문에 이룩된 성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양의 개벽사상가 로런스’에 대한 나의 탐구에서 국제 학계도 취할 바가 있다고 할 때, 당장의 접근이 차단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우선은 이 땅에서 내 할 일을 하는 것이 순서라고 마음먹었다.
이러한 결심은 한국과 한반도 역사에 대한 나의 긍지와 무관하지 않다. 그 최신·최대의 근거는 2016년 이래의 ‘촛불혁명’이지만, 촛불혁명 자체가 1987년의 6월항쟁 이래, 거슬러올라가면 4·19와 5·18 이래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온갖 곡절을 거치면서도 꾸준히 진전해온 결과이며, 더 멀리는 3·1운동과 동학 이래의 후천개벽운동을 잇는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사가 단순히 정치적 민주화나 경제발전만이 아니라 정신 및 문화의 차원에서도 세계의 주목을 점점 더 받게 될 역사임은 촛불혁명 이후 한층 두드러진 각종 한류 열풍이라든가 최근 코로나19 감염증 사태의 대응에서도 실감된 바 있다.
후천개벽(또는 ‘다시개벽’)은 19세기 중엽 한반도에서 기원한 사상이자 운동이다. 지금도 학계에서는 그 논의가 동학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에서는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의 사상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독자에 따라서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너무 많이 인용한다고 느끼는 분도 있을 테고 나와 원불교의 관계가 궁금한 분도 있을 것이다. 원불교와의 개인적 관계는 설명하자면 길지만, 본서의 논의가 어디까지나 국외자의 독립적 관점에서 이루어졌고 특정 종교의 호교(護敎) 내지 호법 행위와 무관함을 미리 밝히고 싶다.
원불교 교리에 대한 나의 이해는 미국의 불교학자를 포함한 교단 안팎의 교서 영역팀에 참여하면서 한층 진전했는데(1997년부터 2015년까지 간헐적으로 작업을 이어가서 『정전』과 『대종경』 『정산종사법어』를 잇달아 번역했다), 소태산 사상을 분단체제 극복운동에 참고하고 활용하려는 노력은 그전에 시작하여 그후로도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동학의 다시개벽론이 한반도 고유의 사상적·역사적 돌파를 이룬 대사건임은 분명하지만 그 흐름이 소태산에 이르러 세계종교인 불교와 융합하고 근대의 과학문명, 그리스도교문명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에 도달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본서에 불교와 원불교 개념들이 자주 나오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의 개교표어가 근대의 이중과제를 집약적으로 표현한다는 해석을 제시한 것은 그런 인식의 반영이다.
한국어로 집필함으로써 국제 학계에서는 안 써낸 것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리는 책이 국내 독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한다면 저자로서는 못내 섭섭한 일이 될 터이다. 영국의 작가를 다룬데다 비록 평론의 성격을 띠도록 썼으나 연구서의 성격을 겸할 수밖에 없는 책이 높은 대중성을 얻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 허욕이지만 그래도 일반독자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논의내용에서도 그 점에 항상 유의했는데, ‘책머리에’와 바로 이어지는 서장을 빼고는 장마다 ‘글머리에’를 써서 집필경위와 그때그때의 맥락, 나의 개인적 소회 따위를 밝힌 것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서장 이후의 본론은 1, 2부로 나누었다. 제1부 다섯 꼭지는 내가 학위논문을 쓸 때부터 집중해온 『무지개』와 『연애하는 여인들』에 관한 글과 『쓴트모어』와 『날개 돋친 뱀』 등 소설을 다룬 글들이며, 제2부는 대부분 로런스의 산문을 주제로 삼은 다소 이론적인 논의인데, 마지막에 시에 관한 글 한 편을 추가해 총 여섯 장으로 구성했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로런스가 워낙 사상적 편력의 폭이 넓고 예리한 통찰이 풍부한 저자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정면으로 다루기 힘든 사상가들을 로런스를 끌어대어 논할 수 있었던 것이 본서의 자랑이기도 하다.
외국 글에서 인용한 표현에 괄호 속에 원어를 넣어준 것이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독자에게는 오히려 번거로울 수도 있으나, 본서의 다수 독자에게는 이해를 도우리라는 기대 때문이었고, 원문이 길어질 경우는 ‘인용 원문’으로 돌렸다. ‘참고문헌’—더 엄밀히 말하면 언급된 논저들의 목록, 곧 통상적인 Bibliography라기보다 List of Works Cited—으로는 각주에 언급된 글들까지 모두 수록했는데, 이는 저자의 문헌 섭렵의 부족을 호도하려는 뜻이기보다 본서의 논의가 한국의 영문학 연구서로서는 드물게 많은 국내의 논자·연구자들과 주고받은 가운데 진행된 담론임을 부각시키려는 것이었다.
로런스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독자에게 더 친절해지는 길은 그의 생애를 개관하고 출발하는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본서의 성격상 적당치 않지 싶고, 로런스 소설집 『패니와 애니』(창비세계문학 12, 백낙청·황정아 옮김)의 ‘연보’를 권말에 수록하는 것으로 대신했다.(원하는 독자는 연보부터 일별하고 본문 읽기로 들어갈 수도 있다.) 다만 로런스의 삶에서 본서의 독자가 특히 유념할 만한 사항 두어가지를 언급해둔다.
첫째, 로런스는 알려진 대로 탄광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광산촌에서 자랐다. 당시 로런스의 아버지와 같은 영국의 광부들은 대개 적빈과는 거리가 있는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으나 전통적 계급질서가 여전히 확고한 시대였다. 따라서 등단할 때부터 로런스에게는 ‘탄광부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한편, 그가 전형적인 광부 가정 출신인 것은 아니었다. 자전적 요소가 많이 포함된 초기 소설 『아들과 연인』에 그려져 있듯이 어머니는 소중산층 출신으로 일종의 ‘강혼’(降婚, 영어로는 프랑스어 표현을 그대로 써서 mésalliance라고 함)을 했으며, 아들이 중산층 신사로 신분상승을 하기를 갈망하고 독려했다. 결과적으로 로런스는 어머니의 열망을 기대 이상으로 달성하고 ‘출세’한 셈이다. 노동운동에 가담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로런스는 자기가 진입에 성공한 부르주아계급보다 일상생활에서는 떠나온 노동계급과의 유대감이 자신에게 항상 더 생생함을 고백하곤 했다. 이것이 빈말인지 아닌지는 물론 그의 작품과 사상을 통해 검증할 문제다.
둘째로, 역시 알려진 사실인데, 로런스는 아내가 될 프리다와 애정의 도피를 벌여 독일과 이딸리아로 건너간 이후로 생애의 많은 시간을 여러 외국을 다니면서 보냈다. 그 배경에는 광부의 아들이 독일 귀족이자 은사의 부인을 이혼시켜서 결혼했다는 사회적 낙인 비슷한 것—유명한 작가가 되면서 어느정도 지워지기는 했지만—이 불편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더 직접적으로는 그의 건강이 영국의 기후와 풍토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점과, 일생 내내 가난해서 글쓰기로 영국이나 미국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환율이 유리하고 생활비가 싼 고장을 찾아다닐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로런스 국제학술대회는 대개 로런스가 살았던 곳에서 열리는데, 가보면 거의가 공기 맑고 풍광 좋은 고장들이다. 그가 건강에 이로운 장소를 찾아다녔기도 하거니와, 이딸리아나 호주 같은 데서도 도시에 살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로런스가 살아가기에 편한 장소만 찾아서 외국을 다닌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새로운 삶의 실마리를 탐구하는 일이 언제나 먼저였고, 그러한 탐구는 본서의 중요한 관심사에 속한다.
셋째로, 그런 다양한 탐구의 도정에도 동아시아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 등 여러 오래된 사회들이 인류가 거의 잊어버린 더 먼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려 노력해왔을 것이라는 포괄적인 언급을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기는 하지만 로런스 자신이 동아시아문명에 대한 별다른 인식이나 관심을 보인 바는 없다.(『연애하는 여인들』에 일본의 그림들이 살짝 나오고 버킨이 일본인 지인으로부터 유도를 좀 배웠다는 토막 언급이 있는 정도다.) 이는 동아시아의 연구자가 아니라면 특별히 주목할 점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로런스와 한반도 후천개벽사상의 만남 가능성을 탐색하는 입장에서는 음미해볼 만한 사실이다. 로런스 개인이 그러했음에도 후천개벽 사상가다운 면모를 보였다면 이는 로런스가 그만큼 특별한 작가요 사상가였다는 방증일 것이며, 한반도의 후천개벽사상이 로런스 같은 서양의 훌륭한 작가와 만날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면 이는 한국인으로서 자랑이요 막중한 생각거리를 떠안은 꼴이 되겠기 때문이다.
이 책을 준비하는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받은 도움과 일깨움을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 집필 도중에도 유난히 많은 분들로부터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는데, 그 이야기 전에 권말에 실린 ‘추천의 말’에 관해 먼저 약간의 해명과 감사를 해야겠다. 이는 원래 계획에 없던 일로서, ‘책머리에’를 포함한 모든 원고가 조판을 마친 뒤에 편집진에서 뒤표지에 몇분의 추천사를 받겠다고 했다. 문제는 책이 분량도 많고 내용도 특이하여 완독은 않더라도 어느정도 성격을 파악하고 써주는 수고를 마다않으실 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조심스레 부탁드린 분들이 한결같이 책을 성의있게 읽고 평해주셨으며, 길게 쓰신 분들은 적당히 발췌해서 홍보용으로 사용하라고 위임하셨다. 추천사의 전문은 책의 일부로 수록하면 좋겠다는 편집진의 의견에 결국 나도 동의했는데, 그러다보니 길고 짧은 발문이 다섯개씩이나 달린 저서를 내는 계면쩍은 호강을 하게 되었다. 김종철·최원식·정지창·김동수·김성호 동학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각주]
학위논문 번역작업을 발의한 후학들이 집필 착수의 계기를 마련해주었음을 이미 밝혔지만, 작업을 시작한 뒤로 강미숙·김영희·박여선·설준규·염종선·한기욱·황정아 등 여러 사람이 초고의 전부 또는 상당부분을 읽고 소중한 논평을 해주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 논의가 포함된 제10장에 대해서는 임형택 교수와 백영서 교수로부터 추가로 고마운 논평과 격려를 받았으며, 유두선·한기욱·김명환·유희석·강미숙·백영경 교수와 김경식 박사는 요긴한 자료를 찾아주었다. 동학들의 사전점검 덕분에 교정지가 처음부터 비교적 깔끔하게 나온 편이지만 정편집실의 김정혜 실장과 창비 인문출판부 강영규 부장 등의 세심한 교정을 거치면서 더 많은 바로잡음과 개선이 이루어졌다. 두루 감사드린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도 본서가 여러모로 미흡한 것이 오로지 나의 책임임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내용도 미흡한데다 상업성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품기 어려운 책의 출간에 선뜻 동의해준 창비사와 강일우 대표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한 막바지 준비를 서두르던 무렵 나는 아내를 잃었다. 아내와 사는 동안 나는 무언가 뒤가 든든하여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변한 여생을 살면서 과거를 돌이켜보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리고 내가 한 많은 일이, 아내의 특별한 도움이나 관심이 없던 작업의 경우에조차 옆에 함께 있어준 그의 기운을 받아 수행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사이에 유명의 어긋남이 생긴 이후, 어떻게 하면 그 기운을 계속 받아 일하고 살아갈지가 나의 절실한 공부거리가 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공부의 한가지 결실이기도 하다. 아내의 영전에 책을 바친다.
2020년 6월
백낙청 두 손 모음
—각주
*‘책머리에’에 이 대목을 추가하고 표지 디자인마저 끝나 제작과정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던 중 김종철 선생의 작고라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이 된 글에 거듭 감사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https://naver.me/xq37v8uY
비전을 가진 이들의 만남: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와 『 D. H. 로런스의 현대문명관』을 읽고
(『창작과비평』 2020년 가을호)
박여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영문학. 역서 『바다와 사르디니아』 등이 있음.
한국에서 왜 영문학을 공부하는가. 공부길로 들어서면서 필자와 동학들은 이 질문으로 몸살을 앓았다. 문학은 그림자가 아니냐, 문학이 삶과 현실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느냐, 게다가 우리 문학도 아니고 남의 나라 문학을 우리가 왜 붙들고 있어야 하느냐…… 명절에도 공부한다고 난방도 안 되는 추운 연구실에 모여 도시락을 까먹으며 이런 질문을 했고, 도저히 안 써지는 글이 장소를 바꾸면 써질까 하여 장맛비가 쏟아지는데도 무거운 책 다발을 들고 이리저리 헤맬 때에도 이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렇게 시달리다 결국 필자의 동지이자 절친 세명은 각자 상담심리로, 법으로, 연극무대로 삶과 현실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길을 찾아 떠났다. 이 문제를 손에 들고 홀로 남은 필자에게 등대처럼 하나의 가능한 방향을 제시해준 것이 D. H. 로런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에 대한 백낙청(白樂晴)의 글들이었다. 학자·비평가·사회운동가로서 그는 문학을 통해 삶에 실천적 개입이 가능하며 어떤 면에서는 문학에서야말로 발본적 개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본인의 삶과 글과 운동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런스를 오랜 시간 화두로 삼아 백낙청이 실천해온 사유의 모험의 결실이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창비 2020, 이하 『개벽사상가』)라는 책으로 나왔다. 이 책과 함께 그가 1972년에 완성한 박사논문도 우리말로 빛을 보게 되었다. 박사논문의 번역인 『 D. H. 로런스의 현대문명관: 『무지개』와 『연애하는 여인들』』(이하 『현대문명관』)의 ‘저자의 말’에서 백낙청은 이미 박사논문을 쓰기 전부터 “한국에서 한국 독자들을 위해 발언하는 일을 내 삶의 중심에 두기로 결심했었다”(6면)라고 말한다. 외국 작가를 화두로 삼은 그가 한국의 독자를 위해 발언하겠다는 말은 일견 모순으로 들릴지 모르나 이번에 출간된 두권의 책을 보면 그것이 어떤 뜻이었는지 독자들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책들에서 백낙청은 로런스의 문명비판과 그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단순한 정치적 시각을 넘어서는) 제 3세계적 시각에서 다시 쓰고 있는데, 누군가를 빌려 말하자면 ‘로런스가 백낙청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만큼이나 백낙청도 로런스를 통해 진정으로 그다운 제 3세계의 평론가로 태어나는’(김성호 「백낙청과 로런스」, 설준규·김명환 엮음 『지구화시대의 영문학』, 창비 2004, 461~ 65면) 과정의 기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백낙청의 이러한 로런스 “재구성”(463면)은 로런스에 대한 서구 비평의 한계를 노출함은 물론 그들의 세계관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로런스의 중대한 면모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세계적이다. 이런 식으로 백낙청은 영문학을 통해 삶과 현실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길을 닦아왔고 그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개벽사상가』에서 독자들은 로런스와 백낙청이 서로 다르면서도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졌다는 것, 시대와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은 만큼이나 오해도 받았고 그 오해의 근원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품었던 비전에의 충실함과 그 비전을 현실에 벼리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노력의 과정에서 현실에 뿌리를 두었으나 또한 현실을 넘어서는 어떤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왜 개벽인가: 물질개벽과 정신개벽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로봇 시대가 온다는데, 여태껏 인류가 알았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 온다는데 백낙청이 관심 두는바, ‘근대에 적응하면서 극복’한 새로운 세상이라니, 개벽이라니 이 무슨 20세기도 아닌 19세기의 철 지난 소리인가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현재는 코로나19의 전세계적 창궐로 전인미답의 사회실험과 새로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비대면 업무가 늘면서 일자리 개념이 바뀌고 더불어 일의 정의도 변화하고 있으며 예상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다른 한편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이 여전히 자연의 일부라는 것,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한 문명사회의 번영이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는 것도 배우고 있다. 교육 면에서도 이제 우리가 무엇을 왜 배워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되고 있다. 우리가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이 모든 위기이자 기회는 저자 백낙청의 오랜 화두였던 물질개벽 및 이에 상응하는 정신개벽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저자에게 물질이 개벽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물질이 발달하거나 그에 따라 정신문명이 부족해진다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정확한 맥락을 알아보기 위해 저자의 다른 책에서 도움을 받자면, 가령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모시는사람들 2016, 이하 『후천개벽』)에서 백낙청은 현 문명을 물질의 발달이 극에 달하여 ‘물질이 열리고 깨지면서 더불어 정신도 깨지는 시대’라고 진단한다. 예전에는 구도의 한 방편이었던 과학도 이제는 ‘물질의 운동이나 운용을 따지는 작업으로 전락’하여 진리와 도의 길에서 멀어지고,(「물질개벽 시대의 공부길」 42~43면) 서양발 최첨단 이론들도 진리를 해체하고 무너뜨리는 데 몰두한 나머지 이제는 “진리의 이름으로도 우리가 물질문명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없게 된 시대”(44면)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렇듯 “물질개벽이 극치에 달”하여 “정신적인 가치들마저도 물질개벽의 대상이 돼서 그야말로 깨져버리는 시대이기 때문에, 종래의 정신적인 가르침 가지고는 이 현실에 대응을 할 수 없는 것”(47면)은 자명하다. 따라서 백낙청은 정신도 그냥 발달하는 정도가 아니라 개벽될 필요가 있고, 이때의 정신개벽은 “‘유무 초월’의 경지에 이르는 능력이며 거기서 나오는 위력”(「대전환을 위한 성찰 두 가지」 292면)이어야 한다고 본다.
백낙청은 자신의 공부 분야인 문학에서 이런 정신개벽의 단초들을 길어 올린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경지가 도(道)이고 도에서 나오는 힘이 덕(德)이라 할 때 바로 이 도덕의 영역에 있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학이기 때문이다.(「원불교 개교 100주년 기념 특별대담」 300 ~301면) 여기서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바는 이러한 경지가 형이상학에서의 초월적인 경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벽사상가』를 보면, 서양철학을 지배해온 본질과 실존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로런스의 ‘ being’(~임/있음) 개념과, 서양의 기존 형이상학으로는 수용이 불가해 보이는 로런스의 진리관(‘음양의 조화와 남녀의 합일에서 진리가 발생한다’) 등은 저자가 보기에는 서구 작가가 사유의 모험을 통해 “도달 가능했던 데까지 거의 도달”(155면)한 것으로서 잠재적으로 동양의 도와 회통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기에 로런스를 서양의 개벽사상가라 부를 만한 것이다. 이러한 진리·경지의 성취는 장편소설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또한 로런스와 백낙청이 공유하는 바이며, 이때의 장편소설은 그냥 장편소설이 아니라 ‘리얼리즘적’ 장편소설을 의미한다는 것이 백낙청의 주장이다.
왜 리얼리즘인가
대체 백낙청은 왜 맨날 리얼리즘 타령이냐고 불만인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 그에게 리얼리즘은 단지 한때 중요했으나 이제는 시효를 다한 사조 같은 것이 아니다. 리얼리즘은 예술이든 학문 활동이든 결코 현실적 실천과 유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신념에 긴밀히 연결된 방법론이다. 또한 작품에서 이룩된 진리를 반가이 받들 줄 아는 대중과 함께하려는 방법론이거니와 나아가 “예술을 어떤 형이상학에 종속”시키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개벽사상가』 46면) 즉 리얼리즘에 기반한 장편소설은 여타의 환원적 표현으로는 가닿을 수 없는 ‘삶’에 근거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 어떤 식으로든 들통이 나게 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리얼리즘은 협의의 사실주의를 모든 면에서 넘어서는 것이다. 그 때문에 로런스를 통해 백낙청이 재구성하는 리얼리즘은 현실의 반영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 않으며 “단순히 자연주의적 재현을 넘어 삶의 심층에까지 도달하는 최고의 성취”(40면)를 추구하고, 이런 태도야말로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의 성격을 올바로 파악하려는 시도라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는 객관성에 대한 새로운 사유가 요구되는바, 백낙청은 오래전부터 거리를 두고 대상을 파악한다는 의미에서의 객관성이 아닌, “일을 하면서 또는 현장에서 운동을 하면서 구현되는, 참여와 객관성을 결합하기 위한 용어로서 ‘지공무사’(至公無私)”(「나의 문학비평과 불교, 로런스, 원불교」, 『후천개벽』 200면)와 각 단계별 실천인 실사구시를 주장해왔다.
지공무사와 실사구시는 비평을 삶 속에서의 실천에 자리매김하는 원칙이자 방법론으로서, 과학적이면서도 상식적이고 대중적이며 무엇보다 삶에 뿌리를 둔 것이다. 리얼리즘과 지공무사, 실사구시에 근거한 실제비평의 예와 그것이 성취한 바를 우리는 『개벽사상가』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가령 로런스 소설 『무지개』(The Rainbow, 1915)의 인물 어슐라에 대한 분석에서 현대 역사에 특정한 불건강 증상으로서의 현대인의 ‘허위의식’을 발견하고 그 현대사적 전형성을 논한 것이나, 『연애하는 여인들』(Women in Love, 1920)의 제럴드에게서 기술시대 인간의 한 전형적 운명을 읽어내면서 그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현대 기술 역사의 긴박하고 거대한 드라마를 뽑아낸 것, 그리고 물질개벽의 극한에 다다른 예술과 정신문화의 경박하고 퇴폐적이며 불모한 양상을 아이러니하게도 자극적이고 흥미롭고 박진감 넘치게 잡아내어 흡인력이 대단한 3장(「『연애하는 여인들』의 전형성 재론」)과 4장(「『쓴트모어』의 사유모험과 소설적 성취」), 나아가 포스트모던 예술과 가상현실에 대한 로런스의 선견적 예지까지를 짚어내어 상세히 논한 점 등이 그렇다.
백낙청은 로런스의 예언적 선견지명이 가능했던 것도 그가 미래를 내다보는 비상한 능력이 있어서라기보다 작품에서 현재를 충실히 읽어내고 그 본성을 밝히다보니 자연스레 미래도 포착된 것이라 보는데, 이는 저자 자신에게도 돌려줄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저자 역시 비평을 통해 현재를 충실히 읽어내고 그 본성을 밝히다보니 자연스레 그만의 선견적・예언적 비전을 성취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두 사람에게 ‘리얼리즘’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사유의 모험가, 실천적 비평가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백낙청은 『개벽사상가』에서 “생각의 모험”(또는 “사유모험”, 24, 33면 등 다수)을 실행한다. ‘생각의 모험’(thought-adventure)이라는 말은 저자가 책 전체를 통틀어 자주 인용하는 로런스의 산문 「책」(Books)에도 명시된바, 로런스에게 책이란 머리 굴리는 재미나 찾는 유아적 정신의 장난감이 아니라 새로운 ‘느낌’(feeling)을 의식의 차원으로 불러와 발화하는 ‘사유의 모험’의 장이다. 소설가로서 로런스가 생산했던 모든 작품과 산문이 그가 품었던 비전을 실험하는 사유의 모험이었듯 백낙청에게도 그가 생산하는 모든 책과 글들은 그 자체로 사유의 모험의 실천이다. 『개벽사상가』에서 현저히 드러나듯 저자는 로런스를 “베이스캠프”(346, 393면)로 삼아 모더니즘뿐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탈구조주의, 해체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 등과의 대면을 통한 끊임없는 자기점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구의 대표적 철학자들은 물론 영미의 걸출한 로런스 학자들과의 수준 높은 대화도 많은 배움을 전달하거니와, 철학・사회학・문학・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국내 연구자들의 사유와의 대조 점검도 부단하다. 그러한 다방면의 대면들이 펼치는 향연이 다시 사방으로 흥미로운 읽을거리들과 중요한 생각거리들에 확장 연결된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자 즐거움 중 하나다.
이번에 출간된 두 책을 한번에 읽고자 하는 독자라면 개인적으로는 『개벽사상가』를 먼저 읽고 그다음에 『현대문명관』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전자가 더 깊고 더 넓은 맥락에서 총체적으로 로런스의 사유의 모험을 대면한다면, 후자는 그 씨앗 같은 것인데, 총체적인 그림 속에서 씨앗이 배태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이해도 수월하고 재미가 더 날 것이다. 로런스 장편소설에 대한 세밀한 작품론을 담고 있는 『현대문명관』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무엇보다 비평가 백낙청의 기본 태도라 할 수 있다. 그의 비평행위의 모든 차원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태도는 한마디로 문제에 대한 철저한 대면과 점검을 통해 정직하게 자기를 걸고 비평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가령 그는 작품에 제시된 대안 내지는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도 집요하고 물러섬이 없는데 그 대안과 인물이 처한 실제적·본질적 역사의 모든 복합성을 혜안과 사심 없는 공감으로 통찰할지언정 제시된 대안이나 그에 따른 인물의 어떤 선택에 대해서는 또한 엄정한 판단을 내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비평가로서 자신의 신념과 지성과 삶을 모두 걸고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평을 지적 행동으로만 대하는 것을 넘어서는 실천적 태도이기도 하지만 평자 자신에게는 대단히 수고롭고 용기를 많이 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백낙청의 비평에서 또한 인상적인 것은 그가 질문을 하는 방식이다. 일찍이 하이데거도 말한 바 있고 저자도 책에서 인용하고 있지만 우리가 어떤 문제적 현실을 마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먼저 문제를 문제로서 ‘알아먹는’ 것이다. 즉 어떤 질문을 어떻게 제기하는가가 아주 중요한데 이는 잘못된 질문과 방식으로 건전한 사유를 오도하는 정신적 문화가 특정한 방식으로 심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태도이다. 비평가 백낙청은 문제를 문제로 설정하는 많은 과정에서, 그의 표현을 빌리면, “무의미한 질문의 무의미성”(『개벽사상가』 334면)을 날카롭게 폭로하고 쿨하게 쳐낸다. 이는 로런스 또한 자주 보여주는 태도로서 두 사람의 이런 태도가 겹쳐질 때 독자로서 시원하고 명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남성론
『개벽사상가』에서 특기할 만한 새로운 논의는 바로 남성론이 아닐까 싶다. 일찍이 저자는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성차별과 폭력의 문제가 분단과 얼마나 깊이 관련된 것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옛날 가부장제와 근대의 성차별주의” 간의 근본적 차이도 분별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분단체제의 작용이 없는 여타 남성주의적 근대사회와” 우리는 어떻게 다른지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원불교 개교 100주년 기념 특별대담」 324면) 이는 분단이라는 더 큰 문제로 여성문제를 덮으려는 ‘수작’이 아니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큰일을 이룬다는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원칙에 입각한 그의 지론에 근거한 말이다. ‘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운동의 향방 혹은 운명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구 페미니즘이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면서 다른 지역에 적용될 때 보인 한계는 이미 명백하므로 한반도의 특수한 역사적·사회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여성론에 대한 고민은 한반도를 살아가는 여성과 남성 모두의 의무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저자는 『개벽사상가』에서 ‘남성론’을 제안하는 것이다. “오늘날 성차별을 비판하면서 남자들 스스로 기존의 남성문화를 반성하고 남자들의 부당한 행태를 분석하는 ‘착한’ 남성론은 적지 않으나, 남녀가 함께 성차별을 극복하고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든다고 할 때 어떤 남성상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384면)도 역시 필요하다는 것인데, “나 자신도 그 점에서는 부족했”(385면)다고 말하는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남성론의 정립과 실천은 일차적으로 남성의 몫이다. 이는 여성의 입장에서도 좋은 생각거리가 된다. 즉 초점을 여성이 원하지 않는 남성상에서 여성과 함께할 남성상으로 옮겨보는 것이다. 자신이 여성의 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고 주체적인 존재로 거듭나길 원하는 만큼이나 남성의 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고 주체적인 존재를 배우자, 동료, 친구, 스승, 제자, 상사, 후배로 원하지 않겠는가.
사실 현대 여성으로서 로런스의 남녀관계론을 대면하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데, 필자의 경우 이 문제와 씨름하느라 박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거의 일년 동안 단 한줄의 글도 쓰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백낙청이 제시하듯 우리가 로런스의 생각에서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린다고 할 때 남자들 간의 창조적 활동을 강조한 그에게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하나의 통찰이 있다면, 남성은 자신에게서 일어난 창조적 충동에 겸허히 스스로를 맡기고 개인적 혹은 집단적 삶의 길을 내는 창조적 활동에 제대로 복무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가 이러한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회에서 성의 왜곡이 일어나며, 자신의 창조적 핵심으로부터 소외되고 왜소해진 남자는 여자들의 비판에 그저 반동적이고(혹은 폭력적이고) 방어적으로만 반응하게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진단일 것이다. 한마디로 저자의 남성론은 여성들의 투쟁에 무조건 반발하거나 반대로 무조건 공감하고 거들고 혹은 대신 싸워주는 형태를 넘어 더 나은 남성이 되기 위한 남성들 자신의 싸움을 하라는 발본적 차원에서의 주문인데, 남자들이 제대로 자신의 싸움을 할 때 여성도 싸움다운 싸움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가 제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성차별에 근거한 모든 현대사회의 병폐가 성평등이 실현되면 사라질 것인가 하는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봄직하다는 것이다. 만약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실사구시의 원리에 따라 도달한 결론이라기보다 이데올로기적 신조이기 쉽다”(390면)는 것이다. 이 질문은 상상력을 발휘해, 임박한 미래시대와 연결 지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이제 단순히 체외수정을 넘어 머지않은 미래에 체외출산도 내다보는 오늘의 현실에서, 가령 여성이 임신과 출산으로부터 해방되면 정말로 남성과 평등해질 것인가, 그럴 때 평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 미래가 도래했을 때 인간이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렇게 태어난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것은 여성과 남성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하는 물음들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도 못 챙기는 오늘의 현실에서 평등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나 눈앞의 싸움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저자도 제시하듯이 당장 오늘의 차별을 극복하는 투쟁을 하는 가운데 이러한 투쟁을 통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늘 고개를 들어 그 지평선을 바라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오늘의 투쟁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다는 말이다. 로런스의 표현처럼 “신성한 평등과 씨름하고 있는 사이에”(『개벽사상가』 123면, 『현대문명관』 246면) 지금과는 또다른 차원의 평등의 문제에 봉착한 시대가 도둑처럼 도래해버렸을 때, 남성과 여성 모두가 과거의 문제에 얽매이게 될 가능성이 없으리란 법도 없는 것이다.
진정한 동서의 만남이란
죽음에 대한 발본적 사유 없이 새로운 삶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개벽사상가』에서 죽음의 주제가 마지막 장(제11장 「죽음의 배」: 동서의 만남을 향하여」)으로 배열된 것은 아주 적절해 보인다. 새로운 느낌에 기초한 새로운 삶, 그러한 삶들로 가득한 새 세상을 향한 탐험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로런스의 시 「죽음의 배」( The Ship of Death)에 불교의 환생이라는 주제가 엄연히 존재함을 인정하고 정면돌파를 선택한다. 그가 제시하는 다양한 평자들의 논의는 죽음에 대한 동서양의 서로 다른 상상력을 실감케 하는데, 저자는 환생이라는 주제를 발견하고도 얼버무리는 평자들에게 도전하면서 시의 진정으로 깊은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라도 먼저 시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축자적”(487면)으로 혹은 사실주의적으로 탐색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읽기를 통해 저자는 결론적으로 서구적 사유의 틀에서 벗어난 ‘구원’과 ‘불멸성’에 대한, 그 틀 안에서는 미처 상상치 못했던 경지를 탐색한다. 다른 한편으론 이렇게 로런스와 불교적 사유를 대면시킴으로써 “단 한번 있는 지금 이곳에서의 개별적 삶의 존귀함을 로런스처럼 강조하지” 못한다면 이는 전통불교에서 “로런스와 만나면서 도리어 배워야 할” 것이라는 뼈 있는 논평(515면)도 잊지 않는다.
이렇듯 『개벽사상가』의 곳곳에서 우리는 로런스가 열어젖히고 작품을 통해 구체화했던 비전들이 백낙청의 비전 안에서 정치, 종교, 문화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동양적 사유들과 만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서의 비전은 새로운 맥락에 놓이면서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백낙청에게 있어 “진정한 동서의 만남이란” “단순한 지식의 전파나 ‘영향관계’의 교환을 넘어서는” “참된 사유의 모험을 진행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수렴현상”이어야 하고 “이런 수준의 상응관계에 대한 탐색은 당연히 쌍방향의 탐구가 되어야” 한다.(521면) 『개벽사상가』는 그러한 쌍방향 탐구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필자가 영국에서 공부할 당시 같은 학교에서 다산 정약용에 관해 박사논문을 쓰던 아일랜드인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외롭고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논문 만들기 과정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고 특히 각자 텍스트를 읽으면서 확신이 들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힘닿는 한 상부상조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늦가을 이른 새벽에 그에게서 느닷없이 문자가 왔다. 다산의 시를 읽고 마음이 일렁여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같은 시각에 필자는 전공 작가인 로런스와 밤늦도록 씨름하고 있었다. 다산은, 로런스는, 생전에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먼 미래에 자신들이 생전에 알지도 못했고 가보지도 않았던 나라의 이름 모를 다른 인종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글을 읽으며 자신들 시대에 감행했던 사유의 모험을 미래시대에 연결하고 있으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로런스가 모험을 끝낸 지점에서 훗날 동아시아의 한 학자가 다시 시작하여 그가 처한 분단 한반도의 현실은 물론 세계사적 의미로까지 그 비전을 확대하고 후천개벽이라는 미래적 비전으로까지 연결시키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만약 한반도에 통일시대가 열리고 한류가 단순히 문화적 유행의 차원을 넘어 더욱 성숙하고 발전해 새로운 세상의 정신적 견인차가 되는 날이 온다면, 어떤 나라의 이름 모를 젊은이들이 이제 백낙청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일렁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상상해본다. 백낙청의 글은 그런 지속 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창조의 부름에 응답하고, 이를 미래적 운명으로서 겸허히 수용하며, 그러한 운명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현실적 난관들을 돌파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모험적이고 창조적인 탐구를 행한다. 저자가 이 책들에서 발화한 새로운 세상의 비전과 그 실현의 실마리들을 집어 들어 자신의 현실에 접속하고 연결할 장본인들은 장차 새 시대를 열어갈 미래세대일 것이니 그런 의미에서 백낙청의 진정한 독자는 오늘 여기보다 도래할 미래에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정신개벽으로의 이행기에 있기에. 그 실패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개벽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도래할 미래이기에. 그때까지는 백낙청의 비전이 시효를 다한 것이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