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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백두대간 35구간을 넘었다. 35구간은 진고개에서 구룡령까지이다.
큰 상처와 교훈을 남긴 종주였다. 당초 2박 3일간 두 구간 종주(진고개에서 구룡령,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를 목표로 출발하였는데 간신히 한 구간만을 마치고 쓰라린 상처와 후유증만 안고 돌아와야만 했다. 사고였다. 두로봉에서 길을 잃고 근 4시간 동안 산속을 헤매다가 간신히 두로봉 원 위치로 돌아와 예정에도 없는 신배령 산속에서 밤을 보내야만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새벽 2시 40분 구룡령을 향해 재시도하였으나 역부족. 이미 지쳐버린 몸 상태로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 탈진 상태에서 간신히 구룡령에 도착한 때가 아침 8시 40분. 구룡령에서 1시간 정도를 누워서 몸 상태를 추수렸으나 더 이상은 걸을 수 없을 정도. 다음 구간인 조침령 구간을 포기하고 귀경하기로 결정. 구룡령에서 인제 원통으로 이동하여 원통터미널에서 동서울터미널로 귀경.
큰 교훈을 얻었다. 대간 정맥 종주 산행에서는 절대로 개인이 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길은 이미 나 있다는 것을. 그 길만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혹시 가는 길이 이상하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원위치로 되돌아와서 다시 생각하라는 것을. 잘못 든 길에서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특히 나처럼 홀로 종주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은 철칙이다. 어기면 그걸로 끝장이다. 그런데 가끔 이걸 망각하게 된다.
대간 정맥 종주 산행은 신비 그 자체다. 정말 어렵다. 얼마를 더해야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을는지…….
백두대간 35구간은 진고개에서 구룡령까지이다. 진고개는 강릉시 연곡면 삼산4리 솔내와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 사이에 있는 높은 고개(1,072m)로 백두대간 줄기인 동대산과 노인봉 사이에 있고, 구룡령은 홍천군 명개리와 양양군 갈천리를 잇는 잿등이다. 이 구간에는 동대산 1421봉, 1406봉, 1296봉, 1262봉, 124봉, 1383봉, 두로봉, 1234봉, 1121봉, 신배령, 1210봉, 만월봉, 응복산, 1281봉, 마늘봉, 1261봉, 아미봉, 약수산, 1218봉 등의 높은 산과 잿등 그리고 무수한 무명봉 등이 있다.
이 구간은 한마디로 쉽지 않은 구간이다. 거리는 23.5킬로미터, 표고차가 큰 봉우리가 여러 곳, 대중교통이 없어 들머리와 날머리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다. 특히 처음 초반에 부딪히는 동대산과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넘어야 하는 약수산의 긴 고봉은 괴로운 지점이다. 약수산은 넘어도 넘어도 정상은 나타나지 않고 계속 고만고만한 봉우리만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구간 종주가 끝나가는 지쳐있을 상태에서 올라야 하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드는 것 같다. 또 이 구간 두로봉에서 신배령까지는 연중 통제 구간으로 감시인의 눈도 피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의할 것은 두로봉 정상에서 신배령을 찾아가는 길이다. 두로봉 정상에서 신배령까지는 통제구간이다. 두로봉 정상에서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사방으로 목책이 설치되어 있고 출입금지 안내판과 경고문이 설치되어 있다. 그렇지만 종주자들은 이 목책을 넘어야만 한다. 그런데 목책 너머에는 뚜렷한 길이 하나 보인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면 자칫 우선 잘 보이는 이 길로 가게 된다. 사고의 단초다. 정확한 대간 등로는 이 길의 좌측에 있는 다른 길이다. 두로봉에서는 목책 너머 두 길 중 잘 보이지 않는 좌측 길로 가야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바로 보이는 우측 길로 진행하는 바람에 결국은 대형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경험자치고는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잘 보이는 우측 길로 내려가면 한동안은 길이 잘 나 있어 의심 없이 진행하게 된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길이 희미해진다. 이때가 의심을 가져볼 기회이다. 이를 무시하고 억지 상상으로 길을 만들어서 진행하려는 아집 때문에 불행은 시작된다. 이런 경우 대간 종주 산행에서는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내가 이번에 그랬다. 홀로 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명심할 일이다.
5월 19일 금요일 저녁 동서울터미널에서 강릉으로 이동하여, 강릉 동아사우나에서 1박하고 토요일 아침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진부행 첫차로 진부터미널까지 이동. 진부에서 택시로 진고개까지 이동하여 아침 7시 17분부터 종주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고가는 교통편은 산행기록 맨 뒤에, 또 산행기록 중간 중간에 자세하게 부기하였음을 알려드리며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후기를 올린다.
백두대간 제 35구간(2017. 5. 20(토), 맑음)
진고개에서(07:09)
2박 3일간 두 구간 종주를 목표로 집을 나선다. 5월 19일(금) 동서울터미널에서 20:05분 강릉행 버스에 승차.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전에 이용한 적이 있는 동아사우나로 직행. 동아사우나에서 1박 후 강릉터미널에서 진부행 첫차에 승차. 진부에서 진고개까지는 버스가 없어 택시로 이동(24000원). 진고개에는 07:09분에 도착. 진고개는 강릉시 연곡면과 평창군 도암면을 잇는 높은 고개(1,072미터)다.
진고개는 지금 노인봉과 동대산을 잇는 생태통로 건설에 한창이다. 진고개 2차선 포장도로에는 가끔씩 소금강쪽에서 평창으로 넘어오는 차량이 보이곤 한다. 오대산국립공원을 알리는 대형 입간판과 평창군과 강릉시를 알리는 행정 안내판도 눈에 띈다. 진고개정상휴게소 앞 넓은 주차장은 오늘따라 썰렁하게 보인다. 토요일임에도 주차된 차량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날씨는 쾌청. 오늘도 무더위가 예상된다. 이곳에서 들머리는 도로 건너편 등산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진고개 아침 풍경을 간단하게 촬영한 후 서둘러 동대산을 향하여 들머리를 향한다(07:17). 초입은 통나무 계단으로 오르게 된다.
통나무 계단을 통과하면 좌측에는 바로 밭이 있다. 밭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면 이내 산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등산객 수를 세는 계수대를 통과한다. 이어서 산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사현장을 만나게 된다. 주변에 공사 자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아마도 생태통로 건설의 일환인 것 같다. 본격적인 숲길 오름이 시작된다. 완만한 능선은 이내 돌계단으로 바뀐다. 주변에는 키 작은 산죽들과 단풍나무가 대세다.
돌계단이 끝나면서 완만한 능선 오르막은 흙길로 바뀐다.
흙길도 잠시. 오르막이 가팔라지면서 다시 돌길에 이어 돌계단이 이어진다. 주변에 쪽동백이 많이 보인다. 등로엔 멧돼지들이 파헤친 흔적이 자주 나온다. 돌계단과 목재 계단이 반복되더니 어느 순간 계단 옆에 로프까지 나오기 시작한다. 초반부터 땀을 쏟는다. 잠시 후에는 갈림길에 이른다(08:34). 동피골야영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구곡동 갈림길이다. 이정표가 있다. 좌측으로 동피골 야영장 2.6, 우측으로 동대산이 100미터라고 알린다. 동대산 정상에 거의 다 온 것이다. 정상을 향하여 우측으로 오른다. 잠시 후에 정상에 도착한다(08:40).
동대산 정상에서(08:40)
동대산은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과 평창군 진부면·도암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1,434미터. 태백산맥의 내륙·중앙·해안 세 줄기 가운데 해안산맥에 속해 있으며, 주위에는 노인봉·서대산·호령봉·두로봉 등이 솟아 있다. 오대산국립공원 권역에 포함되어 관광지로 보호·관리되고 있으며, 서쪽으로 월정사, 동쪽으로 소금강과 인접해 있다. 또 백두대간 35구간에서 처음 맞게되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정상에는 해발 1433미터를 알리는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헬기장이 있다. 이곳까지 올라오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거리는 1.7킬로밖에 되지 않지만 표고차가(474미터)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올라오는 동안 이정표는 자주 보였다. 앞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그러리라는 희망 어린 예측을 해본다. 바로 내려간다.
완만한 능선 내리막이다. 등로 주변에는 오래된 참나무 고목들이 많다. 원시림이라는 착각을 하게 할 정도다. 등로도 멧돼지들이 이곳저곳을 파헤쳐 놓아 어지러울 정도다. 안부에 이르고, 오르니 이번에는 1421봉에 이른다(08:54). 이곳에도 헬기장이 있다. 이곳 이정표는 두로봉이 6.1킬로미터임을 알린디. 내려간다. 오래된 고목들이 계속 나온다. 두로봉을 알리는 이정표와 119구조대 위치목도 계속 나온다. 이번에는 1406봉에 이른다(09:05). 정상에는 잡목이 있고, 이곳에도 119구조대 위치목이 설치되어 있다. 내려간다.
바위가 나온다. 바위를 지나 안부에서 오르니 무명봉에 이른다(09:33).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바위와 고목이 계속 나오고 약간의 공터가 있는 곳에 이른다. 다시 무명봉에 도착한다(09:48). 이곳 이정표는 이제 두로봉이 4.5킬로미터 남았음을 알린다. 동대산에서 2.2킬로미터를 걸어온 셈이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주변은 잡목 뿐. 날씨가 무척 덥다. 다시 안부에서 올라 이번에는 1296봉에 이른다(09:59). 1296봉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바로 내려간다. 완만한 능선이 또 이어진다. 돌길이 이어지더니 잠시 후에 차돌백이 표지판이 있는 곳에 이른다(10:10). 이곳에서 100여미터를 더 지행하니 실제로 차돌이 나온다.
차돌백이에서(10:10)
신기하게도 하얗고 거대한 바위가 네 개나 운집해 있고 주변에 작은 바위도 여럿 있다. 이 하얀 바위가 석영이라는 설명문이 그 옆에 세워져 있다. 설명문에는 ‘차돌백이는 동대산과 두로봉 사이 능선부에 발달한 석영암맥으로, 희고 두터운 차돌(석영)이 박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차돌백이 석영암맥은 중생대 쥐라기에 마그마가 기반암을 관입하여 형성되었고 이후 지표면과 기반암이 지속적으로 풍화를 받아 제거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이유는 차돌백이를 이루는 석영이라는 광물은 조직이 치밀하여 주변의 암석보다 풍화작용에 대한 저항도가 크기 때문이다.’ 라고 적혀있다.
차돌백이에 있는 이정표는 두로봉이 4.0킬로미터 남았음을 알린다. 내려간다.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리게 된다. 한참을 가다가 우연히 좌측을 둘러보다가 이상한 시설을 발견하게 된다. 확인 결과 조난자 대피시설이다. 시설은 한사람 정도 겨우 들어가서 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하였고, 그 안에는 동계 피복이 있다. 상당한 배려다. 한편으로는 이 지역이 조난당할 수도 있는 그런 지역이란 걸 직감하게 된다.
완만한 능선 오르막이 계속되다가 1262봉에 이른다(10:40).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고 좀 더 진행하면 이정표도 보인다(두로봉 3.0, 동대산 3.7).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다시 출발이다(11:09). 완만한 능선 내리막이 계속된다. 8분여만에 1234봉을 지나(11:17) 한참을 내려가니 안부에 이른다. 신선목이에 도착한 것이다(11:26). 이곳에는 상당한 공터가 있고 탐방로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또 좌우측으로 이어지는 길 흔적도 보인다. 좌측은 평창군 신선골, 우측은 강릉시 연곡면으로 이어질 것 같다는 예측을 해본다. 안부에서 직진으로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날이 무척 덥다. 로프가 나오고 돌길이 이어진다. 두로봉이 1.2킬로미터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지금까지 진행하면서 소나무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거의가 단풍나무나 참나무 등 잡목이다.
오르막이 힘들어 자주 쉬게 된다. 이번에는 두로봉 0.8킬로미터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 내려가다가 오르니 1383봉에 이른다(12:35).
1383봉에도 헬기장이 있다. 바로 내려간다. 완만한 길로 내려가다가 바로 오른다. 잠시 후에 갈림길에 이른다. 갈림길에서는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10여분을 올라가니 두로봉 정상에 이른다(13:01).
두로봉 정상에서(13:01)
정상에는 이정표(좌측으로 비로봉이 5.8)와 탐방로 안내도 그리고 출입금지판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부터 신배령까지는 출입금지구역이라는 것이다. 다행이도 지키는 사람은 없다. 출금 로프를 넘어 내려가니 헬기장과 두로봉 정상석이 있는 곳에 이른다. 이곳에도 사방이 출입금지 안내문으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 목책도 설치되어 있다. 목책을 넘는다. 급경사 내리막에 돌길이 이어진다.
* 이곳 두로봉에서 큰 실수를 하게 된다. 두로봉에서는 진행방향으로 두 개의 길이 있다. 좌, 우측 길이다. 목책을 넘어서면 바로 이어지는 우측 길과 좌측으로 좀 이동하여야 보이는 좌측 길이다. 정확한 대간 등로는 좌측 길이다. 그런데 무심히 목책을 넘다가 바로 나오는 우측 길로 내려간 것이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았으나, 그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길을 찾아보려다가 약 네 시간 정도를 헤매다가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두로봉 정상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몸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었으나 오늘 구룡령까지 가서 내일 조침령까지 가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일단 좌측의 제대로 된 길을 찾아 구룡령을 향해 내려간다.
두로봉에 복귀한 때가 17:52분. 두로봉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찾아 신배령으로 향한다. 좌측 길로 내려서면 A-1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이 표지판을 발견하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신배령까지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이 걷기 좋은 길. 탈진한 사람조차도 걸을 수 있는 그런 길이다. 앞뒤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향한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러는 사이에 신배령에 도착한다(19;26). 이곳에도 출입금지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부터 좀 전에 지나온 두로봉까지를 출입금지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한참을 고민한다. 더 갈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비박을 할 것인지를. 더 이상 걸을 힘도 없지만 배가 고프고 졸려서 움직일 수가 없다. 일단 잠부터 자야할 것 같다. 잠을 자고 체력을 회복한 후에 다시 새벽에 출발하기로 한다. 배가 고프지만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 입에 넣는 것은 모두 토할 정도다. 텐트를 치고 핸드폰 알람을 밤 12시에 맞춰놓고 바로 잠속으로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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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21(일) 02:40
핸드폰 알람에 맞춰 눈을 뜨니 정확하게 밤 열두시. 그새 날짜가 바뀌었다. 주변은 달빛 한 틈 보이지 않는 깜깜한 칠흑. 이렇게 깜깜한 걸 보니 음력 날짜도 보름하고는 멀리 떨어진 모양이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지만 무게는 천근만근이다. 뱃속부터 채운다. 먹을 것은 오이가 전부다. 다른 것은 넘어가지도 않는다.
뱃속을 대충 채우고 텐트를 철거하니 새벽 두시가 넘는다. 개념도를 꺼내 갈 길을 점검하고 장비를 챙기니 2시 40분. 출발하기로 한다. 생전 처음 보는 산길. 그것도 인적이라곤 상상할 수도 없는 구룡령 줄기의 깊은 산속. 오로지 헤드 랜턴 하나에 의지해서 한 발짝 한 발짝 나가야 한다. 머릿속은 가급적이면 빨리 구룡령에 도착해야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다시 오늘 조침령까지는 꼭 가야한다는 생각뿐이다.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그런데 언제 나의 움직임을 발견했는지 멧돼지들이 울부짖기 시작한다. 앞쪽 정상쯤에서다.
헤드랜턴에 비치는 등로는 그런대로 갈만하다. 다행인 것은 이곳 능선이 백두대간 종주자들 외에는 오가는 이가 없기 때문에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다. 헷갈릴만한 갈림길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무리 깜깜한 밤중이라도 랜턴만 있으면 길을 잃지는 않을 것 같다.
시커먼 물체가 랜턴에 잡힌다. 이정표다(03:10). 만월봉이 1.3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린다. 이정표 아래에는 고사목이 쓰러져 있다. 우측으로는 동해바다 위에 조각달이 떠있고 고깃배들의 불빛이 보인다. 불빛을 보니 반갑고 마음이 든든해진다. 바람도 솔솔 불어준다. 불빛, 바람. 이 순간엔 정말 고마운 존재들이다.
내 나이 64세. 이 순간을 꼭 기억하고 싶다. 기록해야겠다. 어쩌다가 이런 새벽에 이런 깊은 산중을 헤매야만 하게 되었는지? 뭣 때문에 이런 짓을 해야만 하는지를.
계단이 시작된다. 계단이 나온다는 것은 오르막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정상이 가까워 온다는 것이다.
한동안 조용하던 멧돼지들이 다시 울부짖기 시작한다. 대장 멧돼지가 일행들에게 무슨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다. 전투태세를 갖추라는 것인지, 대피태세를 갖추라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나는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제발 좀 잠자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자꾸 불안한 것은 등로가 계속 멧돼지가 울부짖는 쪽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암튼 조심조심 살피면서 한걸음씩 나아가야 할 판이다.
만월봉 정상에서(03:57)
이런 저런 상념 속에서도 걸음은 진행되고 어느덧 만월봉에 도착한다(03:57). 만월봉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백두대간등산로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통나무를 둘로 쪼개서 만든 벤치도 두 개가 놓여 있다. 내려간다. 바로 이정표가 나온다. 좌측은 통마름, 우측으로는 응복산이 1.5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린다.
잠시 후에 등로는 우측으로 내려가게 되고 이후부터는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리게 된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측의 동해바다 위에 떠 있던 조각달이 어느새 내 등 뒤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실은 놀랄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달도 기울고 내 위치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는 것을 착각한 것이다. 달에게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는 내 생각…….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긴 오르막이 시작된다. 응복산을 향한 가파른 오르막이다. 목재계단이 나오더니 로프마저 나온다. 가파름도 절정에 이르고 잠시 후에는 응복산 정상에 이른다(04:51). 이곳 정상에도 삼각점이 있고 구리 동판으로 된 정상표지판이 이정표와 함께 설치되어 있다(구룡령 6.71).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다. 안개에 묻혀 있지만 밤새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능선의 식구들이 하나둘씩 제 모습을 드러낸다. 조각달도 서쪽을 찾아 달리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이젠 헤드 랜턴을 꺼도 될 것 같지만 아직까지는 짐승들을 향한 경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 착용하기로 한다. 바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진다.
내려가는 길은 돌길이다. 내려가면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만난다. 어제 오늘 통틀어 처음 보는 사람 모습이다. 새벽에 구룡령에서 출발한 산악회 소속 단체 종주자들이다. 이들에게 구룡령에 장사하는 분들이 있느냐고 물으니 자기들이 출발할 때는 없었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이들도 새벽에 출발했으니. 내가 구룡령에 도착할 때쯤이면 장사하는 분들이 와 있기를 바랄뿐이다. 그래야만 탈진 상태인 이 몸을 회복시틸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원래 계획대로 오늘 조침령까지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차마 못했다. ‘물 좀 여유 있느냐?’였다.
안부에 이르고, 안부에서 오르니 다시 봉우리 정상이다. 1281봉 정상이다(05:10). 1281봉에서 완만한 내리막으로 한참을 내려가니 다시 안부에 이르는데, 이곳에도 이정표가 있다(구룡령 5.12, 약수산 3.7). 잠시 쉴 수 있는 목재 의자도 있다. 직진으로 오른다. 완만한 오르막 끝에 마늘봉에 이른다(05:47). 이곳 이정표는 이젠 구룡령이 4.7킬로미터 남았음을 알린다. 바로 내려간다.
잠시 후에 안부에 이르고 이곳에서부터 또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한참동안 오른 끝에 1261봉에 이르고, 정상에는 로프가 설치된 자그마한 바위가 있다. 이정표도 있다(구룡령 3.98, 약수산 2.6, 응복산 2.73, 진고개 18.02). 이곳 정상에서는 앞으로 구룡령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내려간다. 바윗길이다.
내려가는 길은 완만한 능선이지만 이젠 힘이 없어 발걸음 떼기가 어려울 정도다. 무얼 먹을 수는 없지만 뭔가를 먹어야만 할 것 같다. 물이 좀 남긴 했지만 구룡령까지 가야할 길이 창창하기에 맘대로 소비할 수도 없다. 다시 안부에 이르고, 안부에서 오르니 이번에는 아미봉에 도착한다(06:47). 아미봉(1280봉)에도 이정표가 있다(구룡령 3.32). 이정표만 확인하고 바로 내려간다.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진다.
아미봉 정상에서(06:47)
잠시 후에 다시 안부에 이르는데 순간 깜짝 놀란다. 안부에는 나뭇가지로 길을 막아놓았고 그 뒤에는 건장한 사람이 제복 비슷한 옷을 입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당황해서 놀라니(이분이 국립공원 감시인인줄로 알았음) 그 분이 다가와 나를 안심시킨다. 자기는 양양에서 온 약초꾼이라면서, 대체 이 시각에 어디에서 오느냐고 묻는다. 20년 이상 이곳에서 약초를 캐고 있지만 이 시각에 진고개쪽에서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탈진상태인 내 몰골을 보더니 자기 망태에서 약초를 꺼내 내게 주는 것이 아닌가. 곧 회복될 것이라면서.
이분의 설명을 듣고서 희망과 절망적인 것 두 가지를 다 알게 되었다. 희망적인 것은 구룡령에는 장사꾼들이 없어도 약수터가 있으니 식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지금 이 몸 상태로는 오늘 조침령까지는 절대로 갈 수 없으니 포기하고 구룡령에서 귀경하라는 것이다.
약초꾼과 헤어져 약수산을 향해 오르막을 오른다.
초입부터 긴 오르막이 시작된다. 한참을 오른 끝에 능선에 이른다. 능선에 올라서니 구룡령을 향해 이어지는 능선들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약수산 정상까지는 앞으로도 넘어야 할 봉우리들이 여럿 놓여 있다. 저 봉우리들을 모두 넘어야 한다…….
나올 듯 말 듯한 약수산 정상은 힘겹게 여러 개의 봉우리들을 넘게 한 뒤에야 겨우 제 모습을 드러낸다(07:52). 정상에는 삼각점과 구리 동판으로 된 정상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시원스럽다. 뒤쪽으로는 좀 전에 지나온 응복산이 바라보이고, 앞쪽으로는 희미하지만 점봉산까지 볼 수가 있다. 바로 내려간다.
20분 이상을 내려가다가 오르니 헬기장이 있는 무명봉에 이른다(08:17). 바로 내려간다. 이번에는 쉼터가 나온다(08:22). 이곳 쉼터에도 이정표가 있다(구룡령 0.6). 쉼터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걷기 힘든 가파른 계단길이다. 한참을 내려가니 구룡령이 0.3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리는 이정표가 나오고 표지기가 뭉치로 매달려 있는 곳에 이른다. 이곳에서도 한참을 내려가니 홍천 산림홍보전시관인 신식 건물이 나타나고 건물 좌측으로 진행하니 큼지막한 구룡령 표석이 나타난다. 드디어 구룡령에 다 온 것이다(08:40).
구룡령에서(08:40)
구룡령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양양군 서면 갈천리를 잇는 고갯길이다. 해발 고도는 1,013미터로 왕복 2차로로 포장된 56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지명에 대해서는 여러 유래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고개를 넘던 9마리의 용(龍)이 쉬어간 길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아흔아홉 구비로 되어 있어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구룡령은 의외다.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딴 판이다. 2차선 포장도로에는 차량이 주차되어 있고 약초와 음료를 파는 분들의 간이 매대까지 설치되어 있다. 인적 없는 한적한,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새와 산속을 헤집는 동물들만 있는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우선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장사하시는 분에게 음식을 주문하고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장사하시는 분이 놀라서 자초지종을 듣고서 내 손을 잡더니 지압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씩 회복되는 것 같다.
구룡령 정상에는 홍천 산림홍보전시간이 산기슭에 있고 정상에는 대형 구룡령 표석이 세워져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도 양양과 홍천을 오가는 버스가 하루에 1회 운행되었는데 이젠 그마저 완전히 없어졌다. 대중교통이 전혀 없는 것이다.
오늘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가기로 한 원래의 계획을 포기한다. 이런 몸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해서다. 이젠 귀경길을 고민해야 한다. 홍천이나 양양으로 나가야 버스를 탈 수가 있는데 이곳에는 버스가 없다. 그런데 희망적인 것은 이곳에 주차된 차량이 있다는 것이고, 일꾼들이 분주히 짐을 싣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바로 어제 이곳에서 인제군 주관으로 3200명이라는 대규모 선수들이 참가한 자전거 대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그때 설치한 간이 화장실이나 쓰레기들을 인제군 청소과 직원들이 치우고 있는 것이다.
책임자를 만나 사정을 말하니 흔쾌히 수락한다. 자기들이 작업을 마치려면 시간이 좀 걸리고 또 이 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내려가면서 쓰레기를 수거해야 하는데, 그래도 좋다면 인제까지 태워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인제고 홍천이고 양양이고를 따질 게재가 아니다. 어디든 버스를 탈수 있는 곳까지 데려다만 준다면 오케이다.
작업하는 직원 모두에게 시원한 캔커피를 대접하고 나도 그들의 작업을 거들어준다. 작업이 끝나자 청소차를 타고 인제군 산속 도로를 일주한다. 생각지도 못한 오지중의 오지라던 강원도 인제 산속을 일주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쓰레기 수거가 모두 마쳐지자 책임자는 나를 원통터미널까지 데려다 준다. 이들과 감사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마음으로 원통 터미널 매표소로 향한다. - 끝 -
* 원통 터미널 옆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동서울행 버스로 귀경
(교통편)
* 갈 때
1. 서울에서 진고개까지
ㅇ 동서울터미널에서 강릉까지 시외버스 이용(06:32~23:05까지 자주 있음)
ㅇ 강릉에서 진부까지 시외버스 이용(자주 있음)
ㅇ 진부에서 진고개까지 : 버스 없음. 진부 택시(010-5373-7617) 이용(24000원).
* 진부에는 찜질방이 없어서 숙박이 애매. 동서울터미널에서 강릉까지 가서 강릉 찜질방에서 밤을 보내고 첫차로 진부까지 이동하면 구룡령까지 진행하는데 지장 없음.
* 올 때
1. 구룡령에서 홍천까지
ㅇ 구룡령에서 명개리까지 : 버스 없음. 마을 이장을 통해 승용차 부탁(30000원 정도. 명개리 이장 010-8795-9626)
ㅇ 명개리에서 홍천 내면까지 : 군내버스 이용(내면->명개리 06:40, 09:00, 13:00, 18:25)
ㅇ 내면에서 홍천까지 : 버스 이용(8회 있음. 내면 -> 홍천 07:20, 08:30, 09:30, 12:00, 14:30, 16:20, 17:00, 18:00).
2. 홍천터미널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ㅇ 동서울행 버스 이용(07:10분부터~ 20:40까지 자주 있음).
(관련 사진)
진고개에는 생태통로가 공사중에 있고, 정상휴게소 그리고 35구간을 오르는 계단 오르막이 있다.
이 계단으로 오르면 된다.
이런 계단을 또 지나고...
이 이정표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100여미터 올라가면 동대산 정상이다.
동대산 정상에는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다.
차돌백이에 이르면 이런 하얀 바위가 운집해 있다.
차돌백이를 지나면 좌측에 이런 시설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조난자들을 위한 비상 시설인 것 같다. 방한복, 약품 등이 있다. 고마울시고.....
두로봉 정상에는 정상석과 출입금지를 알리는 경고판, 목책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상당한 주의가 필요. 사진에 보이는 훤한 길로 나가면 절대 안된다. 그 좌측에 다른 길이 있다. 그 길로 내려가야 한다. 가다보면 A-1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그걸 확인하고 내려가면 된다.
신배령에 도착. 어두워졌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오늘은 이곳에서 비상 비박.
밤 열두시에 기상. 다시 출발준비를 한다. 너무 깜깜.
어둠 속에서도 이정표를 발견한다.
만월봉에 도착했다.
응복산에 도착
셀카
삼각점도 발견했다.
어느새 날이 밝고 마늘봉에 도착
지나온 길을 둘러본다.
약수산에 도착.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약수산에도 삼각점이.
표지기들 전시장 속에 내 표지기도 매단다. 1대간 9정맥 Joing54.....
우측에 산림홍보전시관 건물이 나오고...
이 길을 통과하면 구룡령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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