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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6 도의 요소와 선정의 요소에 해당되지 않는 마음 (법문: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
<아비담맛타상가하> 7장 범주의 모음(사뭇짜야 상가하 samuccaya-saṅgaha)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
문단번호 26번
26. Pañcaviññāṇesu jhānaṅgāni, avīriyesu balāni, 5문에서 일어나는 마음에서는 선정의 구성요소가, 정진 없는 마음들에서는 힘들이, ahetukesu maggaṅgāni na labbhanti. 원인없는 마음들에서는 道 구성요소들이 발견되지 않는다. |
'빤짜윈냐네수 자낭가니(Pañcaviññāṇesu jhānaṅgāni)'— 5문에서 일어나는 마음들에 포함된 마음부수는 선정을 얻을 만큼 힘이 없다. 5문에서 일어나는 마음에도 에깍가따(집중)와 웨다나(느낌)은 있습니다. 선정의 요소는 위딱까(겨냥), 위짜라(겨냥한 대상 위에 머물러 있음), 삐띠(희열), 수카(행복), 에깍가따(집중)입니다.
선정 요소에서 위짜라(vicāra)는 사마타 수행의 대상에 거듭해서 마음이 그 위에만 머무는 겁니다. 마음이 다른 감각의 대상으로 가지 않고 계속 그 위에 있는 것입니다. 위빳사나 수행할 때의 위짜라는 마음이 신수심(身受心) 세 가지 대상에 계속 붙어 있는 거죠. 딴 데로 가지 않고. 마음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빨리빨리 자신에게로 돌아와 사띠가 되는 겁니다. 웨다나(vedanā)는 전오식(눈·귀·코·혀·몸에서 일어나는 윈냐나)에도 있습니다. 에깍가따와 웨다나가 5문에서 일어나는 마음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5문에서 일어나는 마음에 있는 에깍가따와 웨다나는 선정의 요소(깊은 집중)가 될 수 없다는 거죠.
5문에서 일어나는 마음 10개에 에깍가따(집중)와 웨다나(느낌)가 들어있는데 여기에 있는 에깍가따(집중)와 웨다나는 선정을 얻을 만큼의 힘이 없다는 거죠.
5문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아닌 다른 데 있는 에깍가따(집중)와 웨다나는 선정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뜻이죠. 선정은 보통 아주 집중해서 번뇌가 들어오지 않게 만드는 것인데, 여기에서의 선정은 그 정도의 선정이 아니라 집중된 거 있죠. 사마타 수행할 때 선정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집중, 포수가 총을 쏠 때, 낚시꾼이 낚시질 할 때 그 낚시 미끼에 집중해 있는 것, 이런 정도의 집중을 말합니다. 그런 것들도 포함되는 겁니다. 그래야지 이게 다 들어가는 거죠.
불선심 12개에 있는 마음들도 그 정도의 집중 요소가 되는 거죠.
사뭇짜야 장에서 문단번호 16번에 보시면 자낭가(jhānaṅga. 선정의 요소) 7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16. Satta jhānaṅgāni – vitakko vicāro pīti ekaggatā somanassaṃ domanassaṃ upekkhā.
색계 선정, 무색계 선정의 선정 요소가 아니라 지금은 밋사까 상가하(missaka-saṅgaha)이므로 선업만이 아니라 불선업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불선업도 집중이 잘 될 때 있죠. 욕심 부리고 성내고 이럴 때도 집중의 요소에 넣는다는 거죠. 5문에서 일어나는 마음 10개는 그 선정의 요소가 될 만큼 힘이 없습니다.
그다음에 아위리예수 발라니(avīriyesu balāni), 위리야와 함께 하지 않는 마음 16개가 있다. (16개는 5문에서 일어나는 마음 10가지, 5문으로 들어온 대상을 낚아채는 마음(삼빠띳차나sampaṭicchana 2가지, 가늠하는 마음(산띠라나santīraṇa) 2가지, 5문의 입구에서 일어나는 마음 1개.)
이 16개의 마음에 있는 에깍가따(ekaggatā. 집중)는 사마디 발라(samādhi-bala. 힘 있는 집중)가 아니다. 사마디발라가 안 된다. 위리야가 안 들어가는 마음 열여섯 개 뭐죠? 헤뚜 없는 마음(ahetu-citta) 18개 중에서 의문전향 마음과 아라한의 미소 짓는 마음 두 개의 마음을 제외한 16가지 마음이 위리야 없이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에 있는 에깍가따는 사마디 발라가 될 수 없다. 16개 마음에도 에깍가따 마음부수가 있는데 거기에는 발라(bala. 힘)가 없다, 힘이 없다는 뜻이죠. 밋사까 상가하에서 발라가 9가지 있습니다. 삳다(saddhā. 믿음)도 발라죠. 위리야(vīriya. 노력), 사띠, 사마디(samādhi. 집중), 빤냐(paññā. 지혜), 히리(hiri. 불선업을 부끄러워함), 옫땁빠(ottappa. 불선을 두려워함), 아히리까(ahirika. 불선을 부끄러워하지 않음), 아녿땁빠(anottappa. 불선을 두려워 않음) 이렇게 9가지입니다. 위리야가 없는 16개 마음에 있는 마음부수가 뭐죠? 에깍가따(집중)밖에 없네요. 이 집중하는 마음부수가 힘이 없다는 뜻입니다. 일단 아헤뚜까(ahetuka) 마음은 위빠까 찓따(vipāka-citta. 결과의 마음)이고 자와나(javana)가 아니라서 마음에 힘이 없습니다. 삳다(믿음)와 사띠는 아름다운 마음에만 들어가니 아헤뚜까 마음에 없고, 위리야도 위리야 없는 마음이니 당연히 안 들어가고, 사마디는 에깍가따라는 마음부수이니 들어갑니다. 위리야가 없는 이 16개 마음에서는 집중 마음부수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거죠. 근데 일단 16개 아헤뚜까 찓따에 발라 9개 중에 9개가 다 포함이 되는 것이 아니죠. 9개가 다 16개 마음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왜 들어가지 않는가 하면 아헤뚜까 마음은 결과의 마음으로 많은 마음부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아헤뚜까 찓따는 선한 마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결과의 마음인 거죠.
사띠도 헤뚜(hetu. 원인)가 없는 마음과는 상관이 없죠. 사띠는 마하꾸살라(mahā-kusala), 마하끼리야(mahā-kiriya), 루빠꾸살라(rūpa-kusala), 아루빠꾸살라(arūpa-kusala), 도4개, 과4개 마음에 있죠. 그래서 사띠도 아헤뚜까 찓따랑 상관이 없고, 이제 사마디가 남았죠. 사마디(집중)는 아헤뚜까 찓따랑 상관이 있습니다. 에깍가따라는 마음부수가 마음 89가지에 다 들어가는 마음부수이죠. 그러니까 에깍가따는 해당이 되는데, 이 아위리예수 찟따, 위리야가 없는 마음 16개에 있는 에깍가따라는 사마디는 발라가 되지 않는다는 거죠. 여기에 에깍가따가 들어가지만 이 에깍가따는 사마디라고 부를 정도의 힘이 없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빤냐도 선업과만 함께 하는 마음과 붙으니까 아헤뚜까 찓따랑 상관이 없죠. 마하꾸살라, 마하끼리야, 루빠꾸살라, 아루빠꾸살라 이런 마음과 상관이 있습니다.
아헤뚜께수 막강가니(ahetukesu maggaṅgāni), 아헤뚜까 마음 18개에는 막강가(maggaṅga)가 해당되지 않는다. 막강가는 도의 요소이죠. 문단번호 17번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7. Dvādasa maggaṅgāni –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micchādiṭṭhi micchāsaṅkappo micchāvāyāmo micchāsamādhi.
막강가 12가지, 8개는 선업이고 4개는 불선업입니다. 아헤뚜까 마음에는 삼마딛티, 삼마상깝빠, 삼마와짜, 삼마깜만따, 삼마아지와, 삼마와야마, 삼마사띠, 삼마사마디, 밋차딛티, 밋차상깝빠, 밋차와야마, 밋차사마디 12개의 막가앙가가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 얘기입니다. 막강가 12중에서 8개는 선업이고, 4개는 불선업입니다.
아헤뚜까 마음에 지혜가 없죠. 헤뚜(hetu. 원인)는 로바(lobha. 탐욕), 도사(dosa. 성냄), 모하(moha. 어리석음), 아로바(alobha. 탐욕 없음), 아도사(adosa. 성냄 없음), 아모하(amoha. 어리석음 없음)이죠. 근데 아헤뚜까 마음에는 헤뚜 6가지가 전혀 없으니까 일단 삼마딛티도 안 되고 밋차딛티도 안 되는 거죠. 바른 견해와도 상관없고 잘못된 견해와도 상관없다. 이렇게 되죠. 그래서 막강가가 아니고 그다음에 삼마상깝빠(위딱까)가 해당되지 않죠. 그리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이것이 상관이 없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는 위라띠(virati. 절제) 3개에 들어가죠. 위라띠 3개는 분명한 선업이니 이 역시 결과의 마음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5계는 지키고 사십니까? 술은 안 마십니까? 5계는 지켜야 됩니다. 5계를 지켜야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안 지키면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 위라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는 분명한 선업에 속하죠. 아헤뚜까 찓따와 상관이 없죠.
그다음에 삼마사띠도 아헤뚜까 마음이랑 상관이 없습니다. 사띠는 선업에 들어가는 마음부수죠. 모든 선업(59개)에 다 들어가는 마음부수가 사띠입니다.
그다음에 삼마사마디, 바른 집중, 아까 좀 전에 위리야가 없는 마음에 들어가는 에깍가따는 힘이 없다고 했죠. 그게 발라를 이룰 수 없다. 그래서 막강가(도의 요소)로도 적당하지 않습니다.
나머지 삿된 견해, 삿된 겨냥 그리고 삿된 노력, 삿된 집중도 마찬가지로 아헤뚜까랑은 상관이 없습니다. 아헤뚜까 마음이라는 것이 결과의 마음(과보심)이죠. 결과의 마음은 업을 일으키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힘이 없는 마음입니다. 힘이 없는 그냥 그림자 같은 마음입니다. 그림자에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힘도 붙지 않고 길을 낼 수도 없는 거죠. 길을 낸다는 건 힘이 있어야지 되죠. 물건을 들어 올리는데 무거운 것을 끌고 갈 수도 있죠. 질질 끌고 갈 수 있습니다. 같은 힘으로 계속 끌고 갈 수 있을 텐데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힘이 더 있어야 되죠. 더 힘이 있어야지 들어 올릴 수 있으니까 한 단계 올리기 위해서는 힘을 훨씬 더 내야 됩니다. 그러니까 위리야를 계속 같은 정도로 유지하는 것은 쉬운데 이보다 더 속도를 올리려면 몇 배의 힘을 더 내야 됩니다.
위빳사나 할 때는 그렇게 몇 배의 힘을 더 내야 됩니다. 계속 힘을 더 올려야 위빳사나 지혜가 올라갑니다. 같은 힘으로 계속하고 있으면 지혜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위빳사나 수행자는 매일매일 같은 정도로 수행을 해서는 절대 올라가지 않습니다. 다른 일들은 매일매일 하면 매일매일 힘이 붙습니다. 아세와나 빳짜요(āsevanā-paccayo. 반복 조건)에 의해서 계속 반복하면 반복하는 것에 가속도가 붙죠. 그러나 위빳사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똑같이 해가지고는 100날 해도 100날 그 자리입니다.
다시 교재로 돌아오면, 빤냐라는 마음부수는 원래 아헤뚜까랑 상관이 없습니다. 빤냐는 분명한 선업으로 아헤뚜까 마음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문단번호 27번입니다.
27. Tathā vicikicchācitte ekaggatā
그 외에 의심과 함께한 마음에서 집중(에깍가따)는
maggindriyabalabhāvaṃ na gacchati.
道의 요소와 지배력(인드리야)과 힘(발라)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따타(Tathā), 그 외에, 위찌낏차 찓떼(vicikicchācitte), 8정도에 대한 의심과 함께한 마음에서, 에깍가따, 집중은, 막긴드리야발라바왕(magg-indriya-bala-bhāvaṃ), 도(道)의 구성요소와 통제력[根]과 힘(발라)의 수준에, 나 갓차띠(na gacchati), 이르지 못한다.
그 외에, 위빳사나에 대한 의심과 함께한 마음에서, 에깍가따, 집중은, 막긴드리야발라바왕, 道의 요소와 통제력과 힘(발라)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의심은 8정도에 대한 의심입니다. 의심이 엄청 큰 번뇌인가 봅니다. 불선심이 딱 12개 있는데 그중에 팔정도에 대한 의심이 하나 자리를 차지하는 거 보면 엄청 큰 번뇌인가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팔정도가 뭔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데, 윤회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도 없는데, 수행할 때 들어가는 의심이 번뇌 중에 12분의 1인 거죠.
이 의심과 함께하는 마음 안에는 에깍가따(집중)라는 마음부수가 있습니다. 이 집중이라는 마음부수는 도의 요소(삼마사마디) 그리고 인드리야(사마디 인드리야), 발라(사마디 발라) 이것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집중이 있는데 이것은 도의 요소는 다른 11개 안에 있는 집중만큼의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드리야는 뭡니까?
문단 번호 18번
18. Bāvīsatindriyāni – cakkhundriyaṃ sotindriyaṃ ghānindriyaṃ jivhindriyaṃ kāyindriyaṃ itthindriyaṃ purisindriyaṃ jīvitindriyaṃ manindriyaṃ sukhindriyaṃ dukkhindriyaṃ somanassindriyaṃ domanassindriyaṃ upekkhindriyaṃ saddhindriyaṃ vīriyindriyaṃ satindriyaṃ samādhindriyaṃ paññindriyaṃ anaññātaññassāmītindriyaṃ aññindriyaṃ aññātāvindriyaṃ.
사마딘드리양(saddhindriyaṃ), 사마디라는 지배력이죠. 인드리야는 지배력입니다. 지배력인데 사마디가 아주 강한 상태인 거죠. 선정에 드는 등 아주 집중해 있는 상태, 꼭 선정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발라 9가지, 문단 번호 18번
19. Nava balāni – saddhābalaṃ vīriyabalaṃ satibalaṃ samādhibalaṃ paññābalaṃ hiribalaṃ ottappabalaṃ ahirikabalaṃ anottappabalaṃ.
발라(힘) 9가지 이게 되지 않는다는 거죠. 발라 중에 사마디발라가 있지 않습니까? 사마디발라, 사마디막강가, 사마디 인드리야, 이런 것들이 되지 못한다는 거죠.
의심 안에 있는 집중이라는 마음부수는 힘이 없다는 거죠. 의심 자체가 계속 결정 내리지 못하고 계속 흔들리는 거니까. 계속 이럴까 저럴까, 이게 아닌 것 같은데 뭐 이런 이 마음인 거죠. 그런 마음이니까 힘이 없죠. 집중은 집중인데 힘이 없는 집중. 집중은 힘이 있어야 무겁게, 바위가 누르듯이 꿈쩍도 않는, 꿈쩍하지 않는 힘이죠. 사마디라는 것은 무게입니다. 무게. 마음의 무게. 마음이 어딘가에 집중하면 꿈쩍하지도 않는 것. 이게 사마디인데, 의심에 있는 사마디에는 힘이라고는 없다는 겁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고 내일 이어서 하겠습니다. 회향하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공덕이 우리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를.
이러한 우리의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사-두 사-두 사-두
편집자: 담마삐야
* 2023-06-26 인터넷 (https://us05web.zoom.us/j/4694074327?pwd=b2pNRUk4VzExbWFMSitFa1Jkc0wyUT09)으로 하신 법문을 필사하였습니다. 필사 후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께 보여드리고 요약, 수정,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dhammadipakorea/391
일부용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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