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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을 나오면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있는 홍례문을 바로 만날 수 있다. 경복궁이 네개의 궁궐 중 먼저 지어지고 가장 규모가 큰 만큼, 이 곳 홍례문 앞엔 수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있었다.
[홍례문]
홍례문 앞을 보초병들이 지키고 있다.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 듬직해보인다. 이렇게 틈새 없이 보초를 서 고 있으니 입장권 없이 들어가는 건 불가능 해보인다. 그렇다고 보초병들이 관광객들에게 불친절한 건 아니다. 이렇게 필요에 따라 사진도 찍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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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례문을 들어서면 다시 근정문이 보인다. 해외 일본, 중국 등지에서 온 관광객들의 행렬로 사진 찍기가 수훨하지가 않다.
매표소를 들어서면 경복궁 안내책자가 언어별로 배치되어있다. 책자를 펴면 경복궁의 약도와 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겻들여져있다. 이곳 외에 다른 궁에 가도 이런 책자를 만날 수 있다.
근정문은 근정전과 더불어 왕위 즉위식 같은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던 곳으로 왕께서 승하하시여 왕세자께서 왕위로 즉위를 하실때의 경우 이 근정문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시고 근정전의 옥좌에 오르셨다고 한다.
근정문의 날렵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처마의 선과 화려하면서도 기품있는 단청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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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문] |
① 경복궁-근정전
근정문을 들어서면 근정전의 마당이 확 트여져보인다. 마당의 화강암은 햇빛으로 인한 눈부심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거칠게 다듬었다고 한다.
마당, 즉 조정 한가운데 약간 위로 올라온 길은 어도라 하여 왕만 다닐 수 있는 길이라 한다. 왕만이 다닐 수 있다는 어도 위에서 관광 사진을 찍는 지금의 현실을 조선시대엔 상상 조차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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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경복궁 으뜸 전각인 근정전이 보인다. 이곳에서 임금은 신하에게 새해인사를 받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근정전]
[▽ 근정전의 여러 모습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 | |
건물의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기둥에 훌륭한 솜씨로 12지신상을 비롯한 동물들을 조각해 놓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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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바라본 근정전의 모습. |
근정전의 서쪽으로 향하면 수정전과 뒤편에는 경회루가 보인다.
[수정전]
수정전은 세종 때 집현전으로 사용하였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년)에 재건하였다고 한다.
수정전 옆에 관복 의상 설치대 위 쪽에 얼굴을 집어넣어 재미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들어놨다. 유모차 탄 아이가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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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전 옆을 왕이 행차하고 계시다. 물론 연기자지만 이런 행사를 볼 수 있어 즐겁다.
왕의 그늘을 만들어주는 저 물건을 우리말로 하면 해가리개라고 할 수 있는데 좀 더 세분해서 궁중 용어로 말하면 산(繖)과 개(蓋)라고 한다.
산(繖)은 비단이나 천으로 만든 가리개로 ,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했는데 사진에서 보는 물건이 바로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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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행차가 끝나자 이번엔 아이들이 손을 꼭 잡고 선생님을 졸졸 따라간다.
할아버지, 할머니 옛날 옷을 입고 사진기 앞에서 포즈 한번 잡아본다. 참 잘어울리시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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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경복궁-경회루
물 위에 떠 있는 저 누각이 바로 경회루다.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물 위에서 하는 연회가 참 멋드러질 듯 하다.
[경회루]
연못에는 잉어들이 살고있다. 입을 내미는 모습이 마치 나에게 말이라도 건네는 듯 하다.
연못에 놀이배가 떠있다. 조선왕조 실록에서 경회루 연못에 배를 띄웠다는 기록은 14건으로 그 중에서 연산군 때가 9건으로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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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전과 사정전 사이에 난 길이다. 관광객과 한복입은 여인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느끼게 해준다.
사정전으로 들어가는 문, 경복궁은 이런 작은 문을 통해 정전을 만날 수 있다.
좌측에 보이는 것이 천추전이고 우측에 사정전이 보인다. 그 옆으론 만춘전이 보인다. 사정전에서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일상의 정사를 돌보았다고 한다.
[천추천(좌)과 사정전(우)]
사정전 우측에 있는 만춘천이다. 천추전과 같이 온돌방을 갖추어 사계절 이용이 가능한 보조 편전이다.
[만춘전]
③-2 경복궁-강녕전
사정전에서 문 하나를 더 들어가면 강녕전이 나온다. 강녕전 내부의 모습이다.
강녕전은 왕의 일상생활을 하는 침전으로 오복가운데 세 번째인 강녕의 이름을 담아 붙여졌다. 왕의 식사하는 모습이 사진 속에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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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녕전 내부] |
강녕전 외부 모습. 경복궁은 조선시대의 상징으로 그 웅장함과 거대함을 담고 있어 관광객들의 끊임 없는 사랑을 받아오고있다.
[강녕전]
③-3 경복궁-교태전
문 하나만 더 들어가면 경복궁의 중심축에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는 건물들 가운데 마지막인 교태전이 보인다. 이 문이름이 교합이다. 남녀가 서로 만나 생산을 잘 하라는 뜻이 있다. 교태전 가장 은밀하고 중심부에 있는 이 곳이 중전이다.
그 옆으로 들어가는 문에선 아저씨가 아줌마의 모습을 멋지게 사진기에 담는다. 과거엔 정사의 장소가 지금 현대인에겐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장소로 그 기능이 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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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태전 외경 모습이다. 이곳은 왕비의 침전으로 궁궐 안에 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강녕전과 더불어 이 건물에도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
교태전 내부의 모습. 왕비의 침전으로서 다소 작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왕비로서의 위엄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
교태전 뒤에는 왕비를 위한 인공정원인 아미산이 있다. 아미산에는 굴뚝이 있는데 그 굴뚝을 아미산 굴뚝이라고 한다.
사진에서 보이는 굴뚝이 바로 아미산 굴뚝이다.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현재 4개의 굴뚝이 서 있는데 6각형으로 된 굴뚝 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각 무늬는 벽돌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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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사진이 자경전이다. 자경전은 의젓하고 당당하면서도 소박함과 아담함도 함께 지닌 품위가 느껴진다.
[자경전]
자경전 뒤편의 십장생굴뚝. 십장생은 도교의 신선사상에서 비롯되어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십장생굴뚝에는 해, 산, 물, 구름, 돌, 소나무, 거북, 사슴, 불로초, 학 등 십장생이 굴뚝에 수놓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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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굴뚝] |
⑤ 국립민속박물관
자경전에서 좀 걸으면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9년「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9.12.31(목)까지 무료관람을 실시하고 있다. 경복궁 관람이 끝나고 이곳으로 오게 되면 좋은 코스가 될 듯하다.
[국립민속박물관]
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1960-1970년대 정취를 흠뻑 느낄수 있는 추억의 거리가 박물관 앞에 전시되어져있다.
머나먼 길도, 홀로하는 외로운 길도 아닌 과거로 가는 짧은 순간의 길을 친구와 함께 할 수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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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거리] |
민속 박물관의 추억의 거리에는 이젠 아늑한 추억으로만 기억되는 다양한 과거의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다.
[▽ 추억의거리의 다양한 과거 속 모습들]
은하사진관. | |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전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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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한약방. |
과거, 6,70년대의 거리. |
여러가지 상형문자들이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며 지나는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예전 서당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이곳은 좀 어두워서 무서운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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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박물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에게 박물관이 어렵기만 한 곳은 아닌 듯 하다.
민속 악기를 직접 연주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는 이곳에 와서 한번 연주를 해봐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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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박물관] |
이곳이 박물관 입구이다. 이곳을 통하여 들어갈 수도 있고, 경복궁 입구를 통해서도 들어갈 수 도 있다. 두 곳이 붙어있어서 당일 코스로 경복궁과 함께 한다면 참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갈 수 있을 듯 하다.
경복궁 관리소 02) 3700-39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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