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오늘도 저물어 가니
한수(韓脩 : 1333~1384)
오늘도 또한 저물어 가니
인생 백 년이 참으로 서글프구나
마음은 육체의 심부름 노릇이나 하고
늙으니 병이 함께 따라오네
향불은 다 타서 재만 남고
달이 떠오르니 창이 밝아 오네
품은 생각 많으나 더불어 깨우칠 상대가 없어
애오라지 옛사람의 시에 화답할 뿐이네
夜座次杜工部詩韻(야좌차두공부시운)
此日亦云暮(차일역운모) 百年眞可悲(백년진가비)
心爲形所役(심위형소역) 老與病相隨(노여병상수)
篆冷香殘後(전냉향잔후) 窓明月上時(창명월상시)
有懷無與晤(유회무여오) 聊和古人詩(요화고인시)
[어휘풀이]
-夜座次杜工部詩韻(야좌차두공부시운) : 밤에 앉아 두보의 시체 차운(次韻)하다.
(차운: 남의 지은 시의 운자를 따서 시를 지음). 두공부는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를 뜻함.
-心爲形所役(심위형소역) : 마음이 육체의 부림을 당함. 본심을 지키지 못하고 생활 방편에
매임.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에 ‘旣自以心爲形役(기자이심위형역)’이라는 구절이 있다.
-篆(전) : 전자(篆字). 여기서는 타고 남은 향의 재가 전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것.
-晤(오) : 밝다. 만나다. 깨우쳐 주다.
-聊(료) : 애오라지. 겨우.
[역사 이야기]
한수(韓脩 : 1333~1384)는 고려 시대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호는 유항(柳巷)이다. 일찍부터 문재가 뛰어나 1347년 15세의 나이로 과거에 합격하였다. 1365년 신돈(辛旽)이 집권하자 공민왕에게 신돈이 바른 사람이 아니니 멀리할 것을 아뢰었다가 관직에서 물러나기도 하였다. 시서(詩書)에 뛰어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저서로 시집 『유항집(柳巷集)』이 있다.
출처 : 한기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