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윤리
1960년대 미국 윤리학계는 조셉 프레츠(Joseph Fletcher)가 '상황윤리'라는 책을 출판하자 상황윤리냐 규범윤리냐는 논쟁이 대두되었다. Walter Mullder는 규범윤리를 강조하여 신학논쟁을 하였다. 이 논쟁은 7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이때까지의 기독교 윤리라는 것이 하나의 주어진 법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 그러나 상대적인 상황가운데서 사랑이라는 법을 꾸준히 변하는 세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지침을 주고 적용하는 것. new 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기존의 태도는 현실세계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기존의 도덕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 때 까지의 기독교 윤리학에 있어 중요한 3가지 접근방식을 소개
-율법주의 legalism : 상황고려 없는 법, 원리지키는 것이 인간의 복리증진보다 중요하다
-무율법주의(율법폐기주의) antinorminalism : 어떤 것이든 절대적 규범을 배제, 일종의 도덕율 폐기
-상황주의 situationalism : 규범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 규범의 절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랑) 규범은 사랑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한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갈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상황윤리의 4가지 전제를 소개, 4가지 실행원리
-실용주의 pragmatism : 어떤 행동이 효과를 거둘 것인가. 먹혀들어갈 것인가. 어던 것이 사랑을 실행시키고 증진시킬 것인가.
-상대주의 relativism : 사랑의 명령만 절대적이고(상수이고) 다른 것들은 변수이다. 사랑의 명령은 불변하는 것이지만 사랑을 증진시키는 방법은 경우에 다라 달라질 수 있다. 다른 것들은 조건적이고 상대적이다.
-실증주의 positivism : 신학적 명제는 이성적으로 유출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증명이 되어야 한다.
-인격주의 personalism : 인간중심주의 사람에게만 내제적 가치가 있지 어떤 사물도 본래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없다. 인간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다른 것이 가치를 만들어낸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제한되어 있고 묶인 존재가 아니라 자유롭고 스스로 선택, 가치결정 실현시키는 존재
상황주의의 입장 6가지
-본래적으로 선한 것은 사랑뿐이다. 본래 스스로 선하다고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치는 사랑이다. 어떤 법칙이든 그것 자체로는 선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사랑과의 관계에서 판단될 수 있다.
-사랑만이 그리스도인의 행도을 결단을 내리고 결정을 내리는 데 유일하고 궁극적인 규범이다.
기독교 윤리는 법제화된 조문이 아니다. 기윤은 사랑을 증진시키기 위한 행동을 뒷받침해주고도와 주는 윤리를 지지. 십계명도 사랑으로 환원시켜 설명할 수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사랑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규범, 지침이 된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율법을 깨뜨릴 수 있다.
율법과 사랑의 충돌시 율법을 깨뜨리는 것도 가능하다. 십계명의 내용까지 때로는 ㄲ뜨릴 수 있다.
<예> 희생적인 간음. 다우마 120p
-사랑과 정의를 동일시한다. 정의라는 것은 계산하고 연구에서 나온 분배된 사랑이다. 정의란 사랑이 제대로 분배된 것을 말한다. 정의실현은 사랑을 많은 이에게 분배하는 것. 다른 말로 사랑의 공리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은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다.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다. 의식적으로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의지와 관계된 것이다.
-사랑이 어떤 수단이라도 정당화한다. 사랑을 증진하는 것이라면.
-모든 결정은 상황적으로 내려져야 한다.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상황의 인식을 통한 윤리적 결단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은 같은 지라고 How 의 문제는 다른다. 사랑의 규범은 같으나 적용은 다르게 될 수 있다. particularity
이상 6항목을 각 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
-장점(기여도) : 이웃 사랑을 하나의 덕목이 아니라 도덕, 윤리의 기초로서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모든 행동의 동기는 사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메마른 율법주의 일반적인 의무를 강조하는 법의 정신과는 다른 기여도. 상황윤리는 윤리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상황을 중시하는 면, 즉 원리 일변도에서 탈피하고 그 행동이 요구되는 상황의 인식 차원에서 나와야 함을 강조, 급진적으로 변하는 사회에서 적응력을 높임. 사실 중심적이고 사례중심적인 일종의 신결의론으로서 결단을 함에 있어 구체적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줌. 목회상담자에게 있어서 윤리적인 지침을 줄 수 있는 좋은 모범이 될 수 있다. 목회상담학자 Seward Hiltner는 상황윤리를 윤리학의 방법론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개신교의 신결의론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판(약점) :
--신학적 비판 :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정작 사랑의 적절한 의미를 제공해 주고 있지 않다. 사랑의 법이 가장 절대적 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애매모호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 성경은 사랑이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준다. 이웃사랑의 명령을 할 때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고 사랑을 계명으로 이야기 하고 다른 덕목(계명)들과 나란히 두고 있다. 딤전6:11 롬13:9-10 요14:15 요15:10 사랑이 내용이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계명이 반죽이면 사랑은 누룩이다. 사랑은 나침반이고 계명은 지도이다.(다우마) 사랑은 계명의 완성이다. 계명없이 사랑이 존재한다. 계명을 폐지하고 사랑으로만 대체한다는 말이 아니다.
---플레쳐의 상황윤리는 결국 공리주의(결과주의) 라고 말할 수 있다. 행의의 결과로 나타난 소득이 곧 선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사랑. 다수 때문에 소수가 짓밟힐 수 있고 이를 정당화시킬 수 있다. 어떤 딜레마를 만나게 될 때 바로 이 효용의 원리principle of utility를 적용해서 만나게 된다. 어떤 행동을 취할 때 이 행동이 절대 다수의 행복과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불확실할 때가 있을 수 있다. 지나치게 상황론자들이 인간 본성에 대해서 낙관적이다. 인간이 만약 타락하지 않았다면 바른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했고 유한하고 제한된 지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바른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다. 1965년 타임즈에 이 글이 나온다. 이 책을 bookreview 하면서 인간은 매 결정의 순간 자기가 속한 문화에 관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고 도 한펀으로 이웃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결단에 들어간다고 상황윤리자들이 말하지만 과연 이것이 보통인간들에게 있어서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할 수 없다. 성경은 인간의 죄악성과 유한성에서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가?
장담할 수 없다. 설사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죄악된 인간들이 순수한 동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11/7(상황윤리에 관한 마무리)
상황윤리자들이 생각하는 상황의 개념이 극히 제한되어져 있다. 어떤 상황을 고립된 순간으로 이해하는 극단적 요서 보임. 그러나 모든 상황이 독특한 것은 아니다. 상황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일반화된 규범이 적용되는 것도 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상황이란 비슷한 범주로 묶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에 맞는 규범과 규칙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상황윤리에서는 이것을 배제한다. 오직 사랑의 규범으로 순간 상황을 판단한다. 순간의 영감에 따라서 판단해야 한다고 함. 지극히 제한되고 극단적이다.
<<결론>>기독교윤리는 상황윤리처럼 상황을 중시하지만, 또 중시해야하지만 상황윤리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들은 상황과 사랑의 규범을 강조하지만은 동시에 이 사랑을 실현시킬 수 있는 원리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사랑의 실천을 위한 또 사랑의 행위를 위한 방향을 제시해 주는 그러한 원리가 필요함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이 원리라는 것이 사랑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구체성을 제공해 주고 사랑이 취해야할 방향을 안내하고 사랑의 내용을 제공해 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고전13장). 원리는 결코 사랑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다. 원리라는 것이 기독교 사랑의 구체성을 더해 주는 것이다.
act-agapism : 상황윤리자들
principle-agapism : 사랑을 구체화 해주는 원리(기독교윤리)
사랑이 계명의 가장 중요한 원리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계명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규범주의 무규범주의 모두 조심해야 한다. 기독교윤리는 사랑의 규범을 강조하지만 원리없는 사랑을 반대한다. 그리고 상황윤리가 강조하는 순간의 영감보다는 성령의 영감을 강조한다. 원리와 사랑과 율법은 도움은 율법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성령은 말씀으로 안내하고 생각나게 하고 진리로 인도하다. 결국 기여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윤리를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