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미술관
郷園 韓允淑 書展
(향원 한윤숙 서전)
명제 : 문영선생 시
流域에서 (유역에서)
서체 : 판본체
크기 : 50×30cm
본문
왜 그런지
가로등 불빛이
따스해 보인다
잎 떨어진 나무에
바람이 찬데
지나온 험난한 길과
골짜기의 시냇물이
요지경처럼 얼비친다
꽃 한 송이 만나고 싶다
명제 : 김기산님의 친구
서체 : 흘림
크기 : 35 × 45cm
본문
선의와 호감의 타인
나의 공감 속에
그가 그의 염려 속에 내가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
넘어지지 않게
손을 잡아주고
이해가 복잡하지 않고
불변의 존재가 되는
언제나 서로를 우선하는 사이 그늘도 환희도 함께
하는 믿음 사이에서만
가능한 행복의 조건
명제 : 用拙(용졸)
서체 : 전서
크기 : 70x135cm
東皐 崔岦 <用拙齋記>
동고 최립<용졸재기>중에서
본문
用拙
독음
용졸
해설
꾸민데 없이 수수하며
앞으로 나서지 않고
더 조심하는 겸손한 모습
人之不齊. 氣與理未必諧也.
氣故也. 有餘有不足.
理故也. 有不中而反之中.
若夫巧拙之用則在人焉.
然巧拙非如剛柔强弱竝而名.
巧起於繕飾作弄.
畢竟是人僞.
而拙雖若起於不足.
却自不離天機耳.(後略)
해설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같지 않은 이유는
그들 속에 내재한
기(氣)와 이(理)가
서로 꼭 합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라는 것은
원래 사람이 태어날 때
넉넉하게 받을 수도 있고
부족하게 받을
수도 있는 반면에,
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중 (中)의 상태가
못 되었던 것이라도
중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가령 교(巧)와
졸(拙)을 쓰는 것으로 말하면, 선천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후천적인 행위 여하에 달
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졸이라고 혼히 병칭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강유나 강약과 같은 상대적인 개념을 지닌
명칭은 아니다.
교라는 것은
보기 좋게 합리화하여 꾸미면서
장난을 치려고 하는 데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필경에는
사람의 거짓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졸이라는 것은
뭔가 모자란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늘의 작용[天機]에서
전혀 이탈되지 않는
순진한 행동이라고 할 것이다.
(뒤는 생략)
명제 : 耳溪 洪良浩 喜雨
(이계 홍양호 희우(단비))
서체 : 예서
크기 : 80 × 35cm
본문
三農須及時
一雨更如期
山秫根方着
水田耕可爲
鳥言多瑣細
花意太淋漓
刺史今無事
登樓好賦詩
해설
삼농은 모름지기
때에 맞춰야 하거니와
한바탕 빗줄기가
또 약속이나 한 듯 내리네
산밭의 차조는
이제 뿌리를 내리고
논에서는
논갈이할 수 있겠네
지저귀는 작은 새들
많기도 하고
터지려는 꽃망울이
참으로 흐드러지네
관찰사가
지금은 신경 쓸 일 없으니
누대에 올라서
시 짓기 좋을시고
명제 : 春夏秋冬(춘하추동)
存齋 魏伯珪 <歲月>
서체 : 행서
크기 : 36×45cm
본문
春風花滿庭
夏雨魚吹澨
秋杵早稻香
冬枕新酒沸
해설
봄바람 불 때는
정원에 꽃이 만발하고
여름비엔
물가에서 물고기 뻐끔대고
가을 절구에선
올벼 향기 풍기고
겨울 베개 맡에선
새 술이 익어가네
명제 : 聽讀書 秋史 金正喜(청독서 추사 김정희)
서체 : 해서(楷書)
크기 : 45 × 35cm
본문
一院秋苔不掃除
風前紅葉漸飄疎
虛堂盡日無人過
老樹低頭聽讀書
해설
온집안 가을 이끼는
쓸지 않아 그대론데
단풍잎은 바람에 날려
점점 성글어가네
온종일 인적도 없는
조용한 집에는
고목만이 고개 숙여
책읽는 소리 듣고 있네
명제 : 閒居即事
(한거즉사 : 한가롭게 지내며)
靑莊館 李德懋
(청장관 이덕무)
서체 : 초서
크기 : 18×192cm×2
본문
山靜心常靜
境幽事亦幽
林木寒風灑
蕭瑟葉吟秋
해설
산이 고요하니
마음 항상 고요하고
지경이 그윽하니
일도 그윽해
찬바람
나무숲을 흩뿌려 가니
잎사귀
우수수 가을을 읊네.
작품은
대칭 중심 맞추기
작은 작품은
중심에서 약간 위로
게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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