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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란 이름은 바람둥이의 대명사이다.
또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 이라는 동의어로 남아있다.
그만큼 요란한 여성 편력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둥이로만 치부한다면 카사노바는 너무 억울해할지 모른다.
<10대에 박사가 된 천재>
카사노바는 10대에 이미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는
물론 프랑스어와 라틴어에도 능통했다.
또 화학, 철학, 문학에 조예가 깊은 학자였고 도박과 마술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유혹하는 일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업적을 낸 적이 없었다.
카사노바는 머리가 뛰어났다. 파두아대학에 입학해 이미 17세 때
로마법과 교회법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땄다. 일종의 성직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그는 여성 신도들을
유혹하는데 더 신경을 썼다.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되어 교회에서 쫓겨났다.
이때부터 카사노바의 방랑벽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며 살았다.
따라서 안정적인 직장이 있을 리 없었고 당연히 고정적인 수입도 없었다.
그런데도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거나
도박으로 생긴 수입 때문이다.
그러다 의술을 공부한 카사노바는 베네치아 귀족이자 상원의원이었던
마테오 조반니 브라가딘의 병을 고쳐주게 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카사노바는 그의 양자가 된다.
귀족의 양자가 된 카사노바는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그의 일상은 여행이었고, 여행 중 만난 거의 모든 여인을 그의 침실로 끌어들였다.
카사노바의 여인이 100명이 넘는 것은 과장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100 여명을 훨씬 뛰어넘는 숫자였다
(실제로 그의 자서전에는 122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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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으로 인해 영웅으로>
카사노바의 계획대로 일이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755년 30세가 되던 해 카사노바는 금지된 이단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라는 죄명으로 종교재판관에 의해 체포되었다.
여자를 유혹하는 그의 기술이 악마의 속삭임이는 뜻이었다.
이 재판에서 카사노바는 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피온비 감옥에 수감됐다.
지상 최대의 바람둥이가 일생의 황금기를 감옥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감옥에 갇힌 그는 이대로 섹스를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탈옥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의 이 결심은 성공한다.
카사노바는 누구도 탈옥할 수 없다는 혹독한 피온비 감옥에서
1년 6개월 만에 탈출한 것이다.
피온비 감옥의 탈출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바람둥이 영웅 카사노바.
그는 부활한 것이다.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나 역시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곳을 떠나노라"
카사노바가 탈출하면서 교도소장에게 남긴 편지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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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감각의 소유자>
"당장 그 자리에서 섹스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돈주앙과는 달리
카사노바는 진짜 프로였다. 섹스 그 자체가 그에게 쾌감을 준 것은
물론이었지만 동시에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즐겼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만족감을 즐겼다. 미식가였던 카사노바는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활동시키면서 여성들을 사랑했다"
로버트 B.그린브래트 박사는 카사노바의 여성 편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카사노바가 상대했던 여성들은 상류 사회의 귀부인도 많았지만
평범한 여성들도 많았다. 평범한 여성이나 그늘진 여성들은 매우 쉽게
유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성들과 관계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외모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여성들을 상대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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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의 자서전>
카사노바도 60세를 넘기고부터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여성을 만족시킬 능력도 많이 떨어졌고 스스로도 여성들에 대한 매력을 잃어갔다.
기껏해야 유럽의 각 나라를 돌면서 옛날에 사귀었던 여성들을
수소문해서 다시 한 번씩 사랑을 나누는 것이 고작이었다.
말년에 보헤미아에서 도서 담당 직원으로 있던 13년 동안은
거의 여자관계가 없었다. 이제는 먹는 일과 독서에 열중했을 뿐이었다.
이즈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여자란 한 권의 책과 같다. 내용이야 어떻든 첫 페이지부터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읽기 시작해야 한다"
카사노바가 역사에 남을 바람둥이였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가 남긴 자서전 때문이다.
1789년 64세가 된 카사노바는 생애를 통해 자신이 만났던 여인들에 대해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그리하여 완성된 이 기록은 무려 4,545페이지,
12권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었다.
여기에는 그의 평생 동안의 여성 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의 저서 ['<나의 인생 이야기(Histoire de ma vie)> 의 서문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내가 행한 모든 일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자유인으로서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자서전에는 카사노바가 관계를 맺었던 122명 이상의 여성과 횟수
등에 대한 기록도 있다.
하루 최다 횟수 12회, 최단 성교 시간 15분, 최장 성교 시간 7시간,
한 여성에 대한 최다 오르가즘 14회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그의 자서전에는 여성편력과 함께 당시 유럽 각국의 문물과
역사적 사실도 포함되어 있어 사료적인 가치도 평가받고 있다.
카사노바의 여성편력을 보면 일생을 엄청 행복하게 살았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들과 빚 때문에 여러 번
감옥에 가거나 추방을 당하는 등, 순조롭지 못한 인생이었다.
결국 카사노바는 당대에 여성편력의 대명사로 불리울 만큼의 유명세를
치렀으나, 그 실상을 들여다 보면 그많은 여자와의 연애가 그때 그때의
기쁨을 주긴 하였으나 그의 전체 인생을 돌아보면 어쩌면
진정한 인생의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고 탐닉에만 빠져 살았던
한 가련한 남자로 밖에 평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릇 달콤하고 황홀했던 순간들은 결국 한 때의 기억으로만 남았을 뿐,
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거나 그의 삶에 그 어떤 도움이나 깨달음을
안겨주진 못했다는 점에서 씁쓸함만 남는다. 끝.
(2024년12월5일 훈)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