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처음부터 확 끌어당기는 재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6회까지는 보는 둥 마는 둥 했었다. 연애란 걸 처음 경험해보는 순진한 4차원 소녀와 연애를 물리도록 한 선수 아저씨의 연애담에서는 별다르게 새로운 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그 배경이 백화점이라니. 첫인상은 그 옛날 색소폰을 불던(사실은 어설프게 부는 척만 하던) 누구누구가 출연했던 드라마의 서투른 복제품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7회부터, 정확히는 강태주가 은수 때문에 서서히 돌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지금까지...점차로 더욱 흥미로워지고 있다. 짐짓 쿨한 척, 그동안 여타 드라마들에서 선보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살짝 비트는 척, 어딘지 모르게 한발짝 떨어져 폼을 재던 극본이 느닷없이 급물살을 타며 덧쓰고 있던 가면을 내던지자, 비로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들려온다. "연애? 사랑? 나도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그렇다, "케세라 세라" 인 거다.
네 명의 주인공은 지금 저마다 다른 드라마를 쓰고 있다. 어제 방송분(8회)을 보고 비로소 확실히 느꼈는데, <케세라 세라>에는 <발리에서 생긴 일>과 <위험한 관계, 혹은 발몽>이 묘하게 얽혀 있다. 등장인물의 시점에 따라서 발리가 되기도 하고 발몽이 되기도 한다.
연애의 달인, 강태주는 전설적인 바람둥이 발몽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 중이다. 순수하고 순결한 여인을 상대로 역시나 연애엔 고단수인 상류층 부인과 내기를 한다는 설정을 따르고 있지는 않지만 그동안 우습게 보던 사랑에 발목을 잡히게 된다는 대목은 거의 비슷하다. 쉽게 변질해버리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믿었던 탓에 가벼운 연애놀음만 즐겨오던 바람둥이 선수가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여자의 사랑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리더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시인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덫에 더 깊히 걸려들 뿐이다. 사랑이라는 순간의 얄팍한 감정에는 휘둘리는 일이 없을 거라고 자신하던 남자는 그동안 오만했던 것 만큼이나 더 심하게 자기 통제력을 잃는다. 연애에 도사라는 놈들일 수록 진정한 사랑의 감정에는 취약한 법이다. 오는 여자 안 가리고, 가는 여자 안 막는다 했던 남자일수록 일단 소유욕이 발동하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가 없다. 자기 쪽에서 먼저 지독히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여자가 지금까지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차혜린은 발몽과 내기를 했던 상류층 부인(메르뙤이유)인 동시에 두 남자를 다 놓쳤던 <발리>의 최영주이기도 하다. 자기를 배신(?)하고 떠난 남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발몽과 계약을 하는 메르뙤이유 부인과 비슷하게 혜린은 태주와 가짜 연애를 계약한다. 물론 계약의 세부적 내용은 차이가 있으나, 결국에 메르뙤이유 부인처럼 발몽에게 연심을 품게된다는 점까지도 거의 흡사하게 이어진다. 발몽이 정작 계약의 선물이었던 메르뙤이유 부인과의 하룻밤(차혜린의 경우엔 "돈"과 "지위"이라는 떡밥)에는 관심도 없고, 한참 모자라고 멍청이 같은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부인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힌다는 스토리도 어째 유사해 보인다. 혜린이 쪽이 후작부인보다 훨씬 때가 덜 묻은 터라, 강태주에 대한 마음이 좀더 진실하다는 점이 다르다면 달라 보인다.
발리의 최영주와의 일치하는 점은 좀더 노골적이다. 똑똑하지만 집안이 별볼일 없는 남자와 연애를 하는 부잣집 외동딸. 부모님의 반대로 그 남자와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남자(강태주/정재민)와 (보란듯이) 연애(결혼)를 하는데, 이게 웬 일. 자기만을 바라볼 거라고 생각했던 똑똑한 옛 애인(신준혁/강인욱)은 어느새 다른 여자(한은수/이수정)를 사랑하고 있다지 뭔가. 게다가 계약연애(발리에서는 조건 결혼)의 대상이었던 남자가 슬슬 좋아지려는 판에 그 남자 역시 모자라 뵈는 여자애가 미치도록 좋다고 목을 맨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부잣집 외동딸. 돈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도저히 이 상처받은 자존심은 치유가 되질 않는다.
한은수의 경우는 <발리>의 수정이나 <발몽>의 뚜르벳 부인과는 약간 다르다. 이수정처럼 가정 형편이 어려운(짐스런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아가씨이기는 한데, 수정이보다는 돈에 대해 덜 절박한 편이다. 수정이처럼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결국에는 다 받는 스타일도 아니다. 자존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적당히 굽힐 줄도 알고, 무엇보다 마음에 담아두지 못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다. <발몽>의 뚜르벳 부인처럼 연애에 면역이 없어 쉽게 넘어가는 순진녀이기는 한데, 뚜르벳 부인처럼 지고지순한 타입은 못 된다. 수정이처럼 두 남자를 동시에 마음에 담아두고 있기는 하지만, 수정처럼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태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 더 크게 남아 있다는 것을 은수는 잘 알고 있다. 자기 기만은 은수의 성격 상 어울리지 않으므로 태주의 본심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자신의 감정도 그대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수정의 인물 배경과 뚜르벳 부인의 마음을 "솔직하고 당돌함"이라는 양념으로 버무린 캐릭터가 은수다.
그런데 아직까지 감이 오지 않는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신준혁이다. 신준혁은 강인욱이 아니고, 그렇다고 세실이 사랑에 빠진 소심한 청년 당스니도 아니다. 신준혁의 본심이야말로 <케세라 세라>의 미스테리다. 은수를 좋아하는 과정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간 것도 아니고, 준혁의 아버지와 관련해 차회장과 준혁이의 뒷얘기도 아직 다 밝혀진 것이 아니어서 준혁은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 될대로 되라, 하고 본심을 내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혼자서만 깊은 속내를 전부 내보이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쿨한 척 하는 젊은이들의 쿨하지 않은 사랑이야기라고 했나? 상처받지 않는 척, 뒤끝 없이 정리할 수 있는 척, 괜찮은 척, 쉽게 잊을 수 있는 척해도 남녀 간의 사랑이란 결국 이렇게 질척거리고 지저분한 감정들 속에서 원초적으로 나뒹굴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걸 <케세라 세라>는 서서히 보여주고 있다. 가면을 벗어던진 주인공들이 유치한 감정다툼을 때론 치열하게 때론 지리멸렬하게 벌려나갈 때, 그리고 그 안에서 될대로 되라고 자신을 완전히 내던지는 연애방식을 발견할 때, 어쩌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리저리 재고 따지고 계산하는 연애 방정식보다야, 훨씬 인간적일 테니 말이다.
+ 신상무가 호텔에서 체크인 할 때 내심 긴장해서 보고 있다가 두 개를 받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하는 강태주가, 꽤 웃겼다.
+ 강간미수(?) 장면은 두고두고 말들이 많을 것 같은데, 지나치게 자극적이긴 했어도, 참고 참다가 기어코 자기 통제를 잃어버린 태주를 표현하기에는 그만한 게 없어 보이기도 한다. 태주가 덮치는 장면보다 실은 그 장면을 목격한 혜린이가 태주가 아니라 은수를 패는 것이 더 인상적이었다. 자기를 버리고 간 태주에 대한 원망보다는 그 순간, 두 남자를 모두다 빼앗아 간 계집애에게 더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해 뵌다. 조금이라도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면, 중심을 잡지 못하는 태주를 때려야 맞겠지만 그 눈 돌아가는 순간에 그런 여유가 어디 있었을까.
+ 한은수를 절정의 내숭녀로 보는 시각도 있을 법하다. 즉, 차혜린이 강태주를 이용하여 신준혁이의 질투심을 유발하려 했듯이 은수는 준혁을 이용하여 태주의 질투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재치 있고 똑똑한(기획서 써내는 것을 보라) 아가씨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러면 이야기가 너무 우스워지는 거다. 나름 잘 나가는 남자 둘이 여자 둘에게 농락당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데, 느닷없는 <델마와 루이스>가 아닌 다음에야, 은수를 주도면밀한 내숭녀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예전에 궁이랑 진진조때문에 자주 가던 블로그 졸리님의 잉크하트에서 퍼왔어요.
정말 글도 잘 쓰시고 공감도 많이 가는 듯 해요.
그래도 이런 드라마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어요.
더 빠져들 사람들은 더 빠져들게 되고, 못 볼 사람은 더 이상 못 볼...
적어도 제겐 더 빠져들게 만든 드라마네요.
우리 은수, 태주, 준혁, 혜린이... 얼능 보구싶어요.
첫댓글 상무님이랑 은수 캐릭터가 무서운 캐릭터고, 혜린이랑 태주가 바보같고 불쌍해 보인다긔... 첫인상과는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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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22222222 ㅠㅠ
재밌다긔_☆ 인제 딱 두회봤는데 흥미진진 ㅋㅋㅋㅋ
신준혁 진짜 무서움. 친구한테 케세라세라 줄거리를 설명하는데 신준혁에 대해선 뭐라고 말할게 없는거;; 혜린이 너무 불쌍하고..
난 이번회가 제일 좋았어/////////ㅁ//////////////은수야.. 사랑해.....꺙가ㅣ망널;ㅣㅏ머;니야러ㅣ마넝;ㅣ라ㅓ미나어리ㅏㅁㄴㅇㄹ
정말정말 완소드라마♡
음, 몇번 보다 말다 보다 말다 하고 있는 드라마인데, 한번 챙겨 봐야 겠어요^^~ 덕분에 그 간의 줄거리 알고 갑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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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2222 진짜 염통이 쫄깃하다는 느낌을 제대로 받았어요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