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 에 대한 영화를 두 편 봐서 그런지, 요즘은 '잭 더 리퍼' 에 잔뜩 관심이 쏠려있다. 19세기 후반 영국 런던의 이스트 엔드를 공포에 몰아넣은 악마적 살인광, '잭 더 리퍼.' 도대체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에게 창녀들만 골라서 그런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과연 있기는 했을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추정하는 것처럼 이 엽기적 사건 역시 사이코의 소행에 불과한 걸까? 미국의 작가 패트리샤 콘웰도 얼마전 그녀의 새 책에서 '잭 더 리퍼' 의 범인을 지목하면서 베스트셀러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정작 잭 더 리퍼~ 사건 발생은 100년도 더 전이니 이제 와서는 그 누구도 진범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조니 뎁과 헤더 그레이험 주연의 영화 '프롬 헬(From Hell)' 에서는 '잭 더 리퍼' 의 무시무시한 면모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비정한 살인마의 악행보다는 빅토리아 시대 뒷골목의 '학대받는 사람들' 의 비참한 생활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흠, 나도 '재미' 에 있어서는 '프롬 헬' 에 실망했지만, 최소한 이 영화는 '잭 더 리퍼' 에 대한 내 호기심에 촉매제 역할은 해 주었다. 특히 프리메이슨을 위시한 음모론과 살인사건 은폐를 한데 엮은 발상은 영화의 스케일 확장에도 한 몫을 했다. 우아한 조니 뎁과(흑, 멋지다~) '반지의 제왕' 의 빌보 배긴스(할아버지 노익장 정말 대단해요~), '해리 포터' 의 해그리드를 한 영화에서 보는 재미도 쏠쏠했고 말이다. (흐흐~)
다른 영화는 가브리엘 앤워 주연의 '더 리퍼(The Ripper)'. (imdb로 검색해 보니 이건 영화라기보단 TV 방영용으로 제작된 듯 하다) 이 영화는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가 '잭 더 리퍼' 라는 가공할 만한(!) 가설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막상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가설의 신빙성을 부정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 설정 자체는 참 매력적이다. 실제로 국가의 고위층, 그것도 '왕자' 와 같은 절대권력자(표현이 참 거북하고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가 이런 사이코틱한 범죄를 저지른다면 어떻게 될까? '만인은 법 앞에 평등' 이란 명제가 표방하듯, 실제로도 법과 정의에 따라 공정한 판결이 내려지고 죄인은 죄값을 치르게 될까? 내 대답은 'NO' 이올시다. 이쯤되면 세상만사에, 어설프지만 의미있는 회의론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을까...?
'잭 더 리퍼' 에 대한 자료를 찾으려고 한참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의외로 국내엔 자료가 적었다. 영미권에서는 관련 도서만 해도 엄청나고, 다큐멘터리와 웹사이트, TV와 영화버전까지 그야말로 관련자료가 빠방하던데, 한국에서는 '잭 더 리퍼' 의 악명이 그다지 높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한국에는 대신에 '살인의 추억- 화성 연쇄 살인사건' 이 있으니까. (찌릿~) 실제로 봉준호 감독도 런던에 들렀을 때 '잭 더 리퍼' 에 대한 활발한 연구 실태에 힌트를 얻어 화성살인사건의 영화화를 떠올렸다고 한다.
나는 이 '잭 더 리퍼' 에게 매력과 애증을 동시에 느끼지만, 아무리 해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이 살인마가 유독 창녀들만 골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창녀들일까? 실제로 그 당시 이스트 엔드의 창녀들은 대부분 가난으로, 오직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춘의 구렁텅이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만약 영화를 비롯한 수많은 추정들처럼, 실제로 '잭 더 리퍼' 가 매독 환자였고 창녀들이 매독균의 진원지라 생각했기에 복수와 단죄의 의미에서 그런 살인을 자행했다면, 그건 사이코도 수퍼최강울트라메가톤급 사이코임에 틀림없다. 흠, 나는 신도 아니고 명철한 판단력도 부족한 데다, 무엇보다도 함부로 인간 목숨의 가치를 저울질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만약 '잭 더 리퍼' 가 그 당시 절대약자들의 위치에 있던 창녀들을 살해하는 대신에, 이른바 '니콜라스 갱' 같이 약자의 피를 빨아먹는 악당들을 골라서 살해했다면... 현대에 와 그의 이미지는 또 어떻게든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그의 철저한 악마성과 카리스마는 매력을 잃겠지만, 그만큼 그는 '아르센 뤼팽' 같은 의적으로 묘사되지 않았을까. 최소한 표면적인 이미지만이라도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살인을 정당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이게 솔직한 심정이다) 만약 '잭 더 리퍼가 전설로 남은 비결은 그의 잔악무도한 악마성에 있다. 뤼팽의 어설픈 정의감보다는 잭 더 리퍼의 철저한 악마성에 난 경외심을 느낀다' 이딴 시긍로 당당히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한번 그 대단한 악마성과 대면할 기회를 주고 싶다. 그 때조차 그 악마성을 동경할 수 있는지... '잭 더 리퍼' 는 익히 알다시피 소설이 아니라 '실화' 란 말이다. 사건 발생 후 한 세기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현대인들은 이 사건을 흥미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실제로 살해당한 사람들은 엄연한 인간들이었다. '잭 더 리퍼' 연구가 어느 정도 흥미위주로 흐르는 분위기라 약간은 불쾌감을 느낀다.
실제로 미국에서 살인범의 대다수는 젊은 백인 남성들이라고 한다. 사회학자들은 이 간단한 통계 수치에서조차 온갖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분석들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단순한 나는 일단 '여자=약자' 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데에 씁쓸하고 서글퍼진다. 자기보다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만큼 파렴치하고 악랄한 것이 또 있을까. 최근 러시아에서도 10~20대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 살인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나중에라도 이 범인(들)이 잡히면 그야말로 기발한 고문방법 콘테스트라도 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잭 더 리퍼' 에 대한 이야기가 엉뚱하게 샜는데, 정말 이 사이코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정말 정의로운 신이 존재하고 사후 세계라는 게 어딘가에 있다면 이 살인마도 종국엔 죄값을 치르겠지만- 나의 무의식은 이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고개를 젓는다. 정의로운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범죄는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숱한 인간들의 목숨과 어엿한 하나의 세계를 마치 실험무대 다루듯 하는 신이, 과연 정의로운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신' 이란 건 내게 프랑켄슈타인 그 이상, 그 이하의 존재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아~ 구구절절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오늘부터 '잭 더 리퍼' 관련 영어 웹사이트라도 탐독해 봐야겠다. '살인' 이나 '공포' 에 이토록 관심이 많은 거 보면 나도 어쩌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게 아닐까... (흑)
첫댓글 드라큘라도 잭 더 리퍼의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중 하나지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말인가요? 그건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네요. 재미있는 정보 감사합니다~
추천이라 생각하고 한 번 뒤져야겠군요.
명탐정 코난 극장판에서 이 내용을 본거 같은데요. 몇번쨰 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홈즈에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