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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미술관을 구경하고는 마쓰에(松江)시와 요나고(米子)시 사이에 있는 야스기(安來)에 있는 청수사(淸水寺)를 보러 갔다.
청수사로 가는 길에 들판을 지나는데 흰 눈을 이고 있는 다이센 산이 보이는데 가이드 말로는 날이 그리 맑지 않기 때문에 잘 볼 수 없다고 하며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 두라고 한다.
산인지방의 후지산이라고 불리는 다이센 산...우리나라에서 등산도 많이 가는데 눈이 녹아야 입산이 가능하다고...
절이야 우리나라에도 크고 오래된 절이 많지만 일정상 관광코스에 들어있기 때문에 들르게 된다.
요나고 지방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곳으로 이곳을 오는 사람들은 일본의 가볼만한 곳은 거의 다 가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특별히 볼거리를 찾기 보다는 쉬는 개념으로 오기 때문에 특별한 관광거리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사가 진행하는 이곳 패키지상품은 여행코스를 비롯해서 숙박시설 음식점까지 거의 같은데 그 의미는 관광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광지로서 별로라는 의미가 아니고 나름대로 한 번쯤은 와서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쉬어 갈 만한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다이센 산이 있어서 산을 좋아 하는 사람들은 등산을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다.
청수사는 교토에 있는 청수사가 더 유명하기 때문에 이곳의 청수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절도 지어진지가 1400여년이나 되는 오래된 절이라고 한다.
일본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552년으로 백제의 성왕 때 노리사치계를 통해서 전해 졌었는데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이니 불교가 전해지고 나서 오래지 않아서 지어진 절인 셈이다.
이 절은 이 지방에서 액(厄)막이 절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 절에는 있는 액을 막아주는 관음보살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절 이름이 청수사라고 불리어지게 된 것은 옛날에 교토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온 공주가 교토를 너무 그리워하여 그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서 교토에 있는 절과 같은 기요미즈테라(淸水寺)이름의 절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절은 청수산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지어져 있는데 그리 가파르지는 않지만 다리가 아픈 사람이나 나이가 든 사람들은 올라가기가 힘이 들게 되어 있어서 입구에서부터 대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올라가는 길에 하늘을 가릴 듯한 삼나무와 편백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가족의 액을 막아 달라고 관음보살에게 비는 깃발이 입구부터 절 올라가는 곳까지 늘어서 있다.
끝까지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게 되어 있어서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길이 아니지만 습기가 많은 여름에는 올라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올라가라고 비치해 두었다.
올라가는 길에 숙소 같은 곳과 음식점 같은 건물들이 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의 템플스테이 같은 곳인 것 같다.
그리고 식당은 사찰음식을 파는 것 같다.
한참을 올라가면 이 절에서 유명한 천년이 넘은 삼나무와 목조로 된 삼층탑이라고 하는데 삼나무는 눈으로 보기에도 아주 오래되어 보인다.
삼층목탑은 겉으로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규모도 상상보다 크다. 이 목탑은 목수가 3대에 걸쳐서 지었다고 한다.
삼층목탑은 청수사 제일 높은 곳에 있어서 이곳에서는 청수사 전경과 야스기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이런 계단이 끝까지 이어져 있다.
청수사 안내도
길가에 액막이 깃발이 늘어서 있다.
편백나무들
11면 관세음보살은 얼굴이 열한개이기 때문에 11면 관세음보살이다.(석굴암에는 머리에 열개의 머리가 새겨져 있다)
액막이를 해야 하는 나이를 표시한 액년표라는 것도 있고...
3층 목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그 위에 1천년이 된 삼나무가 보인다.
물을 먹는 곳이 아니고 손을 닦는 곳으로 참배를 하거나 소원을 빌려면 손을 씻고 올라가야 한다고
나이가 들어서 다리가 아픈 사람은 올라가기 힘들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제 막 봄이 시작되는 때라서 산수유와 매화정도만 피어 있고 벚꽃은 피어 있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우리 말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액막이를 하는 관음보살상이 아무 절에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음(山陰)지방에서 이 절로 액막이를 많이 하러 온다고 하는데 액막이를 하러 오는 날이 따로 있는가 보다.
일본에 가면 신사나 절을 들러보게 되는데 가서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일본의 종교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거나 교육을 하는 역할보다는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액막이나 해주는 기복(祈福)의 장소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3츨목탑..3중탑이라고
천년이 되었다는 삼나무들
아직 벚꽃은 피지 않았지만 홍매화는 피었다.
템플스테이 하는 곳이 아니고 숙박영업을 하는 곳?
청수사 입구에 있는 찻집
청수사의 벚꽃과 단품(인터넷에서)
일본에는 기독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는 거의 없고 신도와 불교가 성한 나라로 신사(神社)와 사찰이 많은데 사찰은 우리나라와 같이 불교의 석가를 모시는 곳이지만 신사는 일본고유의 종교인 신도(神道)를 모시는 사당으로 사찰이나 신사에 가서 별의 별 소원을 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오래 사는 것으로 문제가 되다가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되고 당사자들도 오래 사는 것이 두렵고 하여 노인들이 잠을 자다가 아무도 모르게 덜컥 죽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러 다니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그래서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영험이 좋은 절을 찾아가서 빌고 온다고 하는데 유명한 곳이
나가노현 사쿠시에 있는 나리타산 야쿠시지(藥師寺680)라는 절 입구에 있는 ‘핀코로 지장보살’ 석상이란다.
이 석상은 지역 상점가 진흥 조합이 2003년 상가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세웠다는데 상점가진흥조합에 의하면 처음에는 연간 2만 명에 불과했던 참배객이 최근 수년간 연간 5만 명 규모로 늘어났다. 도쿄 주변 여행사들이 이곳을 들르는 관광 상품을 만들면서 많을 때에는10개사의 관광버스가 한꺼번에 몰릴 정도라고 한다.
지장보살 이름이 ‘핀코로’가 된 것에는 건강해서 원기가 넘치는 모양을 가리키는 일본어인 ‘핀핀’과 별안간 죽는다는 뜻의 ‘코로리’가 합쳐진 단어로 ‘건강하게 장수하다가 숨질 때는 별안간 죽는다’는 의미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아픈 뒤에 죽는다는 뜻을 담은 ‘9988234’와 비슷한 내용인 셈이다.
덜컥절로 유명한 약사사
그 절에 있는 핀코로 지장보살...물을 끼엊으면서 소원을 비는가?
그리고 이런 절이 또 하나 있는데 나라현에 있는 기치덴지(吉田寺)도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면 ‘덜컥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절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 절의 야마나카 신에쓰(山中眞悅.56) 주지는 많을 때에는 한꺼번에 100명이 넘는 단체 관광객이 본당에 올라가 기도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는 사찰과 신사 말고도 수만의 신(神)을 모시고 있는데 그것이 큰나무와 바위가 아니라 사람이 신던 신발이나 쓰던 가위 등도 모셔놓고 빈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청수사를 구경하고는 '과자의 성 고토부키 성(お菓子の壽城)으로 갔는데 이 성은 요나 고성(古城)을 모델로 삼아 지었다고 하는데 멀리서 보면 성처럼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과자를 직접 만들어서 파는 곳으로 과자대회에서 수상도 하는 등 일본에서는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들어가면 다이센산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를 마시도록 되어 있고 과자를 종류별로 코너를 돌면서 시식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판매하는 과자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도록 공장을 넓은 유리를 통해서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이곳은 시골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선물 같은 것을 살만한 곳이 없다고 하여 일행들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과자들을 산다.
과자의 성의 외관
입구에는 약수를 먹는 곳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시음도 하고
코너마다 시식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다시마로 만든 반찬 같은데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매장에서 보이는 과자공장
그리고 숙소는 다이센 산 속에 있기 때문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이 근처에서 저녁에 먹을 간식거리를 사라고 하여 마트에서 맥주를 사는데 식료품 코너에는 먹음직해 보이는 회초밥이 6천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패키지가 아니고 자유 여행 같으면 도시락 하나만 사서 먹어도 충분할 정도이다.
쇼핑몰로 백화점 정도로 크다.
먹음직 스러운 초밥으로 위의 것은 6천원 정도이고 아래는 만원이 조금 넘는다.
저녁 식사는 과자의 성 맞은편에 있는 일본식 고기 뷔페 야키니쿠 타베호타이라고 패키지에서는 특식이라고 선전을 하였는데 특식까지는 아닌 것 같다.
저녁 식사 후 산인(山陰)지방의 후지산이라고 불리운다는 다이센 산에 있는 호텔로 향하는데 3월 하순인데도 산허리까지 눈이 하얗게 덥혀 있어서 후지산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번 요나고 여행에서 눈이 덮인 이 산을 보는 것이 가장 좋았던 기억이 되었다.
저녁식사하는 야키니쿠 부페집 패키지로 오는 사람들은 거의 들르는 곳이다.
종류는 많은데 별로 구워먹을 만한 고기들이 없다.
숙소에서 보는 야스기 야경 반대편에서는 다이센 산이 바로 코 앞에 보인다.
숙소에서 보이는 다이센산
또 하루를 자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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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관심있는 사람만....
일본은 일본고유의 종교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데 매년마다 신사참배로 한일간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신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신사는 일본의 고유종교인 신도의 아마테라스 일본신을 모신 곳이다.
아래는 기독교인이면서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씨의 '세계의 종교'라는 책에서 빌려온 '신도'부분이다.
일본의 '야쿠자'의 뿌리가 일본의 신도이니 관심이 있는 분은 읽어보시기 바란다.
신도(神道)
신도는 일본인이 받들던 전통 신앙이다. 근대 일본 군국주의에서 초강성 민족주의 이념의 근간이 된 것도 바로 신도이다. 현재 일본에서 신도 신자라고 공식 선언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3-4%에 불과하지만, 신도는 일본인의 정체성과 정신을 꼴 지우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아직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어느 면에서 신도를 이해해야 일본이 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일본 정신의 뿌리가 되는 종교이다.
신도란 ‘신의 길’이란 뜻으로, 일본어로는 ‘가미(神)노 미치(길)’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신도에는 신이 많다. 뭔가 예사롭지 않아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가미’로 받아들였다. 하늘도, 바다도, 바람도, 산천초목도, 역사 인물도 모두 가미가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에는 800만의 가미가 있다고 한다. 신도는 이런 면에서 기본적으로 정령 숭배(animism)에 기원을 둔 종교라 할 수 있다.
신도의 유래
건국 신화
모든 가미가 한결같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많은 가미 중에 중요한 가미의 이야기는 신도의 건국 신화에 잘 드러나 있다.
712년에 편찬되기 시작한 『고지키(古事記)』와 720년에 쓰인 『니혼쇼키(日本書紀)』의 건국 신화를 종합해 보면, 부부이면서 남매이기도 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가미가 있었는데, 이들이 일본열도를 만들었다.
창으로 걸쭉한 진흙 물을 찍어 올리자 창 끝에서 그 물이 뚝뚝 떨어지고, 이것들이 굳어져 일본의 여러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또 다른 가미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이자나기의 왼쪽 누에서 나온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天照)’가 제일 중요한 가미였다. 이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는 너무도 중요한 가미이므로 ‘아마테라스오미가미(天照大御神)’라 한다.
그는 손자를 보내 세상을 다스리게 하고, 그 손자의 증손자가 최초의 일본 천황이 되었는데, 그가 신무(神武)천황이다. 전통적으로 기원전 660년에 왕위에 올랐다고 본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아무튼 이때부터 천황의 가계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오늘의 일본 천황까지 이른다고 한다. 따라서 천황은 아마테라스 신의 자손이고, 살아 있는 가미인 셈이다. 이렇게 신이 다스리는 나라는 세상 다른 모든 나라보다 우수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양부(兩部) 신도
‘신도’라는 이름은 6세기에 생겼다. 불교, 도교, 유교가 들어오면서 토속 종교를 차별하기 위한 이름으로 채택되었다. 6세기 중순 한국에서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교와 신도가 혼합되기 시작했다. 이런 혼합적 경향으로 나타난 것을 ‘양부 신도(兩部 神道)’라 한다.
신도 측으로서는 불교의 여러 부처나 보살이 가미(神)의 현현이고, 또 불교 측으로서는 신도의 여러 가미가 불교의 부처나 보살의 현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는 태양을 대표하는 부처 비로자나라고 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두 종교의 경계가 흐려지다가 몇 세기가 지난 후 신도는 하나의 독립된 종교가 아니라 불교의 일부가 되다시피 했다.
무사도
그러다가 17세기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불교와 그리스도교 등 외국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도를 부흥시키려는 노력이 일기 시작했다.
신도의 부흥과 함께 무사 계급의 행동 강령으로 유교 윤리를 받아 들였다. 이때 신도와 유교의 윤리 덕목이 습합하여 일본 무사 계급 사무라이를 위한 ‘무사도(武士道)’가 생겨났다.
토쿠가와 시대에 주자학파였던 야마가 소코(1622-1685)에 의해 체계화가 되었다. 무사도의 덕목은 충성, 생사를 넘어서는 용기, 명예, 공손, 정의감 등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두르러진 것이 충성과 명예라 할 수 있다. 사무라이는 영주에 대해 절대적으로 충성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명예를 생명보다 더 중요시하였다.
사무라이는 긴칼과 짧은 칼을 가지고 다니는데, 긴칼은 물론 적과 싸울 때 쓰고, 짧은 칼은 불명예스럽게 사느니 명예롭게 생명을 끊기 위한 할복자살용이었다. 이렇게 배를 가르는 것을 셉부쿠(切腹)‘라 하는데, 서양에서는 ‘하라키리’라는 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사무라이 사이에서 선 불교가 유행했다는 것이다. 선 불교의 정신 집중, 무아의 근거한 생사의 초월, 자기 훈련, 순발력 있는 무의식적인 행동 등이 무사의 삶과 부합하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아직도 이런 무사도 윤리가 눈에 띈다. 재벌이나 회사가 거의 봉건 영주의 성처럼 운영되는 것이 그 예이다. 아직도 많은 회사원은 사무라이처럼 보스에게 절대 충성을 바친다. 지금은 많이 달라 졌지만 많은 회사원이 회사의 번영이 개인의 이익에 우선한다고 생각하고 과로하다가 ‘과로사’로 쓰러지기까지 한다.
조직 폭력 단체인 야쿠자는 이런 무사도 윤리 체계를 유지하는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신도의 종류
신사 신도-
신도는 크게 신사(神社) 신도, 교파(敎派)신도, 민속(民俗)신도로 나눌 수 있다.
신사 신도란 국가가 직접 주관하던 형태의 신도를 말한다. 영어로는 ‘State Shinto'라고 한다.
도쿠가와 막부가 끝나고 1868년 메이지 시대에 들어오면서 일본 정부는 국민을 결속시키는 통치 이념 내지 정신적 기반으로 신도를 채택하고 이를 국민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새로 제정한 헌법에 신도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따라 일본 천황이 신성불가침의 가미(神)임을 명시했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유신 초기에 불교와 그리스도교 등을 금지하고 오로지 신도만 받아들이게 하려 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정책을 바꾸어 신도를 국가 의례나 국민 도덕으로 받들게 했다.
이세(伊勢)에 있는 최고 신사에는 아마테라스 신을 모시고, 전국 각 지방 신사에는 지방 신이나 영웅이나 특별 사건과 관련된 신을 받들고, 황국신민은 누구나 국가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신사에 가서 참배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1980년 교육칙어를 제정하고 신도의 기본 가르침을 교육의 기본으로 삼았다. 학생들도 정기적으로 신사에 가서 참배를 했다. 신사 참배를 할 때는 누구나 ‘자신에게는 죽고 국가와 하나가 됨’을 다짐하게 했다.
이렇게 정치 이념으로서의 신도 신앙으로 무장한 많은 사람은 국가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2차 대전 말기 일본으로 접근하는 연합군 전함을 침몰시키기 위해 비행기를 탄 채 연합군 전함과 충돌하는 가마카제(신풍) 자살 특공대를 모집할 때 많은 지원자가 차례를 기다릴 정도였다는 사실도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 한국에도 군 단위로 신사를 지어 놓고 한국인 모두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그리스도교도 중에는 이를 거절하다가 박해를 받는 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천황을 살아 있는 가미로 존경하는 표시로서 천황이 있는 궁전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여 절하는 동방요배를 강요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한국 젊은이도 전쟁을 위해 강제 징집되고 처녀들은 정신대로 끌려가 성노리개가 되었는데, 이 모두가 살아 있는 가미 천황과 그의 나라에 대한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것이다.
1945년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고, 연합군의 요구로 작성된 「신도지령」에 따라 천황이 살아 있는 가미라는 주장이 공식적으로 폐기되었고, 신도 신화가 교육의 기초가 되는 일도 금지되었다. 국가와 신도와의 유착관계가 끝나고, 그와 함께 국가 종교로서의 신사 신도도 끝장이 났다.
교파 신도 -
교파 신도란 일본에 내려오던 재래 종교 전통을 기반으로 19세기 말부터 생겨난 13개 신도 계열 종파로서 메이지 정부의 공인을 받은13개 교단을 말한다. 영어로는 ‘Sectarian Shinto'리고 한다.
서민 계층에서 민간 신앙 형태로 유행하던 것이 특정한 교조를 중심으로 교파로 조직된 것이다. 산악 신앙에 기초하여 후지산을 가미로 숭배하는 파라든지, 개인적으로 단식, 호흡 조절, 냉수욕, 주문 등을 통한 심신의 단련을 목적으로 하는 파라든지 무속 신앙에 기초하여 병 고침을 강조하는 파 등이 있다.
특히 나카야마 미키(1798-1887)가 세운 종파로서 치병을 강조하는 천리교(天理敎)가 유명하고 한국에도 들어왔다.
민속 신도 -
교단 족직이나 교리 체계도 없이 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받들어지는 민간 신앙이다.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가정에 가미다나(新柵)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신도이기 때문에 ‘Dmestic Shinto'라고 한다. 가미다나는 조상의 신위나 조그만 신상이나 기타 종교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상징물을 모시는 조그만 제단이다.
가정의 은인이 남기고 간 신발을 귀히 여기면 그것도 모시고 그 신발의 주인을 생각하기도 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어떤 힘이 집안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도 한다.
예배 형식은 간단하다. 매일 정결례(淨潔禮)의 일종으로 먼저 손을 깨끗이 씻고, 제단에 꽃이나 향이나 음식을 갖다 놓고, 영혼과의 교신을 위한 상징으로 손뼉을 치고, 합장한 다음 간단한 소원을 아뢴다. 집안에 졸업식이나 결혼 같은 경사나 기념할 일이 있으면 더 많은 것을 갖다 놓고 가미에게 사연을 아뢴다.
그러나 장례식의 경우 가미다나와는 관계없이 불교 스님이 맡아서 하도록 부탁한다. 보통 신도는 삶을 위한 것이고 불교는 죽음을 위한 것이라고 믿으므로 죽은 사람을 위해서는 불단(佛壇)을 새로 설치하기도 한다.
신도의 오늘
2차 대전 후 신사 신도가 사라진 다음 일본은 일종의 종교적 공백 상태에 빠지고 이런 상태에서 이른바 ‘신흥 종교’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이런 신흥 종교 중에는 민간 신앙으로서 신도가 가진 요소를 혼합한 종교가 많다. 일본 사회가 산업화되고 교육 수준이 놓아지면서 신도 같은 종교는 없어질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일본인 상당수는 평소에는 종교와 무관한 것처럼 살다가 곤란한 일을 당하면 가미를 찾기도 하고 중요한 일을 결정하거나 처리할 때 가미에게 빌곤 한다.
예를 들면 고속도로를 내기 위해 산허리를 잘라야 할 때 가미에게 제사를 지낸다. 물론 직접적인 효험이 있을 거라 믿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 사람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태도인 것이 사실이다. 거의 모든 일본 자동차나 전차에 붙은 부적이나 산사 나무에 하얗게 걸린 부적 종이는 일본인의 신도적 심성을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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