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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 하던 9월 12일 모임에서~
<파주문학회> 가을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어요.
가는 날은 10월 3째 주 토요일 10월 17일 이고~
회비는 50.000원
떠나는 시간은 꼭두새벽~
시간은 추후 다시 알려 드릴께요.
갈 곳은 충주~
더 좋은 곳 있으면 알려 주세요.
* 날자는 부동입니다.
<해외 여행비 저축한 회원>
해외 여행 하려던 계획은 겨울에 더욱 심해질 신종풀루 때문에 접기로 했어요.
그러나 그냥 말기에는 2년 동안 저축하며 기다렸던 마음이 너무 아쉬워서
국내 여행이라도 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행비 낸 회원들은 꼭 가야 합니다.
저축한 여행비에서 가을 여행비 50,000원을 제하고 나머지는 돌려 드립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여행을 못가는 분은 여행비 50,000원 후원금으로 주실거죠?
가볼 곳 미리 보기 (아래 여행지 중에서 볼 만한 곳을 골라서 갈 거예요.)
충주호
호수주변에는 월악산국립공원과 금수산, 옥순봉, 구담봉 등 단양팔경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어 사철 변하는 모습이 푸른 물과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충주호 수상 관광을 즐기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충추댐을 건설하면서 수몰될 뻔한 문화재들을 망설산 기슭에 옮겨놓은 청풍문화재단지 역시 놓쳐서는 안 될 곳. 한벽루, 청풍석
조여래입상 등의 보물과 민가, 생활 유품이 잘 보존되어 있다. 시간을 더 낼 수 있다면 문화재단지 바로 아래에 있는 청풍나루로
가 유람선을 타도 좋을 듯.
중원 고구려비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발경 당시 비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석비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면에 모두 글을 새겼는데, 그 형태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내용 중 처음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전부대사자(前部大使者)’·‘제위(諸位)’·‘사자(使者)’ 등 고구려 관직 이름과 광개토대왕 비문에서와 같이 ‘고모루성(古牟婁城)’등의 글자가 보이고, ‘모인삼백(募人三百)’·‘신라토내(新羅土內)’ 등 고구려가 신라를 불렀던 말들이 쓰여 있어 고구려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국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라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중원고구려비는 오랜 세월의 풍화로 비문이 심하게 마멸되어 분명하게 확인할 수는 없으나 장수왕 때에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고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서 5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면비(四面碑)로서 전면 23자씩 10행으로 된 230자의 명문(銘文)이 있으며 좌측면에도 155자가 새겨졌는데 뒷면과 우측면은 9행과 6행의 명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판독된 비문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국의 관계를 밝혀 주는 귀중한 금석문(金石文)이다. 처음 입비(立碑) 당시부터 대석(臺石)과 개석(蓋石)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의 모양이 만주(滿洲) 즙안현(輯安縣)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축소된 형상이다.
중원 미륵사지
옛기록에 전하는 계림령과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죽향으로 펼쳐진 사지이다. 여기에 일찍이 석굴사원이 경영되었으나 오래 전에 소실되어 현재는 석조물만 남아 있다.
미륵리사지는 사적 제317호로 1987년 7월 10일 지정되었다. 이 미륵리사지 내에는 보물 95호인 5층 석탑과 96호인 석불입상이 있고 지방 유형문화재 19호인 석등과 33호인 3층석탑이 있다.
이곳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며 석불이 있는 석굴의 방형의 주실은 가로 9.8m, 세로 10.75m의 넓이이며 높이 6m의 석축을 큰 무사석으로 쌓아 올렸고 그 가운데 불상을 봉안하였다. 석축 위에는 지금은 없어진 목조 건물이 있었으며 전당은 목조로 된 반축조석굴이다.
모든 조영계획은 석굴암을 모방하였고 규모가 웅장한 반면에 퇴화과정이 역력한 석굴이라 하겠다. 본 사지는 1977년과 79년 두차례에 걸쳐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이 이루어져 그 윤곽이 다소 드러나게 되었다.
1982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도 발굴한 바 있으나 확실한 년대는 알 수 없고 발굴 당시 미륵대원이라고 쓰인 기와가 발견되어 삼국유사에 미륵대원 등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일연 스님이 살았던 그 이전에 지어진 사찰이라는 것이 확실히 고증되므로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관련 유물과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찰은 고려초기인 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후기인 고종때 몽고병의 침입으로 소실된 듯하며 사찰 이름은 미륵대원 이었다.
탄금대는 원래 대문산이라고 불리워 오던 작은 산으로 그 밑에는 남한강과 면서도 기암절벽에 송림이 우거져서 경치가 좋은곳이다.
지금부터 1400여년전(AD 536년경) 신라 진흥왕 때에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주하던 곳이라고 해서 탄금대라고 불리워졌다. 우륵선생은 가야국 가슬왕 당시의 사람으로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하니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거주케 하며 신라청년 중에서 법지, 계고, 만덕에게는 춤을 수습시켜 우륵을 보호케 하였으며 우륵선생은 항상 산상대석에 앉아 가야금을 탄주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순변사 신립장군이 휘하장병 8천여명을 거느리고 배수진을 치고 왜장 소서행장을 맞아 격전끝에 전운이 불리하여 참패하게 되자 장강백파에 투신 순국한 전적지로 유명하며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에 100척이나 되는 절벽 열두대라는 곳이 있는데 신립장군이 전시에 열두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하여 열두대라고 한다.
탄금대에는 현재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감자꽃노래비, 탄금정, 탄금대기비, 악성우륵선생추모비, 신립장군순절비, 조웅장군기적비, 궁도장, 대흥사 등이 있고 조각공원과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창룡사
창룡사는 남산(금봉산) 중턱 기슭에 위치한 절로서 신라 문무왕때(661~681)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지면 조선시대까지 두 차례 걸쳐 중건되었다고 하며 1988년에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이 절의 앞마당에는 푸르스름한 빛이 나는 청석으로 만든 탑이 있는데 탑신은 없이 옥개석만 현재 9층으로 올려진 모습이다. 아래에서 2층까지의 옥개석 윗면에는 복판의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옥개받침은 모두 4단으로 되어있다. 옥개석 가운데에는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는 찰주구멍으로 보인다. 지금 현재 이 탑의 기단부는 청석 대신 화강암의 탑재로 받쳐지고 있으며 상륜부에는 복발을 표현하기 위해 둥그런 돌 하나를 얹어 놓았다.
단호사
어느 위치에 어느 규모의 어떤 사찰을 찾아 가더라도 그 사찰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 충주에 있는 철불좌상. 아마 고려ㆍ조선을 통틀어 철불의 수를 손가락으로 꼽으라면 꼽을 정도지만 유난히 그 철불들이 많은 지방이 바로 충주다.
삼국시대부터 철의 주산지이며, 중부내륙 교통의 중심지, 그리고 지방호적의 고향이던 충주에는 유난히 생김새가 특이한 지방색이 강한 매력적인 철불이 많이 조성되었다. 단호사는 바로 충주 철불의 대표작인 단호사철불이 봉안되어 있는 매력적인 곳으로 누구나 한번쯤 들리는 중요한 답사지이다.
단호사를 찾아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수안보로 가는 충주 우회도로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로변에 있는 절.... 울창한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용처럼 굼실되는 소나무가 지나가는 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곳에 가면 철불이 있는지, 사전지식이 없더라도 충주호를 구경하기 위해 지나는 길에 아름드리 나무와 소나무로 인해 잠시 들리는 곳, 그곳이 바로 단호사이다.
소나무가 땅바닥에 굼실대는 용처럼 서 있고, 절을 뒤덮을 듯 우거진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절의 옛스러움을 더해준다. 철불은 바로 이곳 경내 대웅전에 자리하고 있다. 살이 두둑한 얼굴에 길고 눈꼬리가 올라간 눈을 거의 감은 듯 내리뜬 모습은"야 오든지 가든지…"하는 듯 성이 난 표정이다. 시간을 두고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얼굴이 바로 현세를 사는 우리들의 지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삼국시대 중앙이라는 관료체제에 지배 당하며 복종을 강요 받던 그이들이 만든 불상... 그 얼굴에는 당시 그이들의 고난과 역경이 스며들어 녹아 있는 것이 아닐까?
봉학사
봉학사(鳳鶴寺)는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산73번지 장미산(薔薇山)자락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이다.(봉학사는 충주시 가금면 장미산의 북쪽 자락에 있는 절로, 충주의 중원문화권으로 들어오는 우회도로인 장천리 초입에서 2㎞정도 산길을 짚어 오르면 만날수 있다. 목계교 못미쳐 남한강을 끼고 중원의 초입에 자리한 이 사찰은 봄이면 도화가 만발하는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게딱지처럼 낮은 지붕을 머리에 인 허름한 민가들이 삼삼오오 이웃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여느 시골의 사찰이 그렇듯 시골마을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정겨운 모습이다. 돌담과 그 너머로 보이는 양철지붕, 그리고 군데군데 쓰러져 가는 마굿간의 모습 등 도심에서 보지 못하는 전원의 풍경들이 이곳 시골절에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봉학사로 오르는 길은 무언가 다른 매력과 신비감이 감돈다. 야트막한 언덕같은 산이지만 군데 군데 보이는 장미산성의 돌무더기와 울창한 수림은 마치 내가 그 옛날 전설속의 장군 장미과 보련이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장군의 기상을 타고난 자매. 하지만 둘 중 한 아이만이 장군으로서 살아 갈수 있었기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건너야 했다. 보련산과 장미산에서 쌓아 올린 성이 마무리 될때쯤. 누구보다 고통을 느끼며 자매를 독려하던 어머니의 마음에는 아들의 모습이 떠 올랐다. 딸대신 아들의 손을 들어준 것은 먼 옛날 남존귀비의 사상이 전설속에 습합된것이 아닐까. 어머니의 계략으로 장군이 된 장미... 하지만 떨어지는 보련의 별을 하염없는 눈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으랴... 이 모든 전설속의 이야기들이 봉학사를 오르는 길 곳곳에 남아 있다. 한길 한길 굽어 오르는 시골길에서 만날 수 있는 자그마한 돌무더기와 석축... 아담한 시골절 봉학사로 가는 길은 다시 한번 묻혀져 가는 전설 속 이야기를 되씹는 답사의 길이 된다.
신흥사
신흥사(新興寺)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산 3번지 장병산(長屛山)자락에 자리한 법화종 사찰이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사찰을 찾아 가는 길은 항상 다양한 볼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자그마한 시골장터, 그리고 시끌벅적한 아줌마들의 수다, 한잔 은근히 걸쳐 비틀거리는 동네 아저씨... 이는 시골에서만 느낄수 있고 볼 수 있는 재미난 풍경으로 한껏 웃음을 자아낸다. 또 동네를 지나 사찰을 찾아 들어가는 한적한 도로에는 한껏 풍년의 모습을 담은 샛노란 황금들녁이 펼쳐진다.
한집 두집 양철로 지은 지붕들과 쓰러져 가는 흙담들이 전원의 풍경. 어디서나 볼수 있는 시골의 풍경이지만, 신흥사를 찾아 가는 길에는 더 없이 많은 탐스런 복숭아들이 후각을 자극한다. 더 넓은 황금들녁과 파아란 하늘, 그리고 들녘 한가운데 뭉게뭉게 자신의 존재를 가시하듯 서 있는 탐스런 분홍빛의 복숭과실들은 마치 극락의 도원(桃園)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코로 맡을 수 있는 풍부한 곳 시골. 그 시골 남산 중턱에 있는 자그마한 절을 찾아가는 길은 수도자나 탐방객들의 마음을 한층 더 살찌우게 하는 풍경들로 가득 차 있다.
신흥사... 그 절 이름에서 새로이 부흥한 절이라는 뜻을 알 수 있다. 옛 엄정면에는 신흥사 아래 고려시대 대찰이 있었다고 한다. 팔각원당형 부도. 고려청자. 금동 종 등 다양한 유물들의 발견은 이곳에 있었던 대찰의 존재를 가늠케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그 터는 묻혀 버렸고 그 터의 안산에 100여년전 새로이 창건된 사찰이 있다. 딴딴한 암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장병산의 벼랑 끝에 자리한 자그마한 사찰. 그렇지만 옛부터 엄정면의 득남과 기복의 도량으로서 알려진 도량. 깊은 계곡 틈새는 나한의 기도처로, 또 용신의 거주처로서 적합한곳이다. 엄정면의 더 넓은 들녁과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신흥사에서 나한의 모습을 찾아 가보자. 또 그곳에서 득남과 기복을 위한 우리들의 소망을 기도해 보자. 누구나 원하는 우리들의 소망들을...
정심사
충주의 절경 수주팔봉에 자리한 삼초대 정심사(靜深寺)....
절이름에서 빼어난 경치와 역사적인 흔적이 스며 있는 곳임을 짐작 할 수 있다. 충에서 빼어난 절경을 가진 곳으로는 달천강이 흐르는 수부팔봉을 손꼽는다. 현재는 신도로가 개통되면서 드라이브를 즐기는 아베크족들의 전용 도로가 되었지만, 옛부터 계립령과 조령을 넘나드는 교통의 요지로서, 또 험악한 산세로 인해 왜적의 침입을 막는 산성으로서 충주의 지리적 보고 중의 하나로 알져진 곳이다.
특히 이곳 정심사는 달천강이 시작되는, 그리고 옛 도로인 3번국도의 초입에 있는 고찰로 삼초대로 이름난 절이다.
삼초대는 충주와 문경 등 중부내륙의 빼어난 경치가 시작되는 달천강 초입에 있는 높은 언덕으로, 조선의 명장 임경업 장군이 태어나 수련하던 곳이기도 하며, 천년의 세월동안 뛰어난 비경을 간직한 고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심사라는 이름보다 삼초대로 알려진 절...
하지만 조선의 명장 삼초대가 있기 이전 비경을 간직하며 꾸준히 법맥을 이어온 정심사가 있었기에 임경업 장군이 이곳에서 수련할 수 있지 않았을까....
현재 고려 때 창건된 월은사로, 또는 조선시대 달암사, 그리고 호암사 등 여러 사명이 전해지지만 확실한 문헌이나 유래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임경업장군의 수련장소로서 충주의 절경을 간직한 천년의 고찰로서, 충주 고찰의 풍경을 대변하는 곳이다.
삼초대와 달천강의 비경 수주팔봉이 보이는 산신각에 올라 옛 조선의 문인 정지상이 읊은 옛 시를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천인암두천고사(千?巖頭千古寺)
전임강수후의산(前臨江水後依山)
상마성두옥삼각(上磨星斗屋三角)
반출허공루일간(半出虛空樓一間)
천 길이나 높은 바위에 천 년 넘은 옛 절이 있으니,
앞에는 강물에 임하였고 뒤로는 산에 의지하였도다.
집의 세모 난 지붕은 높아서 북두칠성에 부딪칠 것 같으며,
누의 한 켠은 반쯤 허공에 솟아 있구나.
충주 술 박물관
리쿼리움은 여러분들을 만나기 위해 20여년간 준비해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리쿼리움을 통해 술이 지향하는 아름다운 세계로 즐거운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리쿼리움은 리쿼(Liquor;술)와 리움(Rium;전시관)의 합성어로써 술 박물관이라는 뜻입니다.
세계의 유명한 술 생산국가에는 여러 종류의 술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술의 역사와 문화를 통합적으로 전시한 곳은 리쿼리움이 유일한 곳입니다.
술문화 종합박물관'리쿼리움(Liquorium)'은 지하와 1층엔 와인관, 맥주관, 동양주관, 증류주관 등 주종별 전시관이 있고, 2층은 세계 각국의 음주문화와 정책, 술과 건강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리쿼리움에서 세계 술 문화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탄금대 주변 호수의 경관을 굽어보며 관람객들이 직접 칵테일을 만들어 보거나 테이블 매너를 실습 할 수 있는 음주문화 체험관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리쿼리움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첫댓글 안 가면 후회하겠군요 ^^*
이런이런 세상에나!! 17일라니요.우째 이런 슬픈일이~~ 저는 그 날 듣기로10일 이라고 한 것 같은데 아니었나요? 그래서 당연히 여행은 간다고 말했고 그 날로 휴무도 잡아놓은 상태인데요. 근무 안하면 안되는 날이고...생각하고 생각해도 못가는군요 저는.저 아름다운 곳을 아름다운 님들과 못가다니요. 흑흑~.후원금이야 내겠습니다.
청솔 미안해요. 10일에는 못 간다는 회원이 두사람 있어서 정빈이 17일에는 안된다는 걸 사정해서 양보를 받아서 날자를 바꿨어요. 청솔은 아무 토요일이나 되는 줄 알았어요.
날자 때문에 여행 또 못가게 되겠군요. 아무래도 없던 걸로 해야 할까봐요. 10일에 가면 못겠다는 사람 몇 명 17일에 가면 못가겠다는 사람 또 몇 명 일요일에 가야만 가겠다는 사람 일요일에는 교회 때문에 안된다는 사람들 내가 미쳤나봐요. 여행 때문에 그렇게 마음 고생해 놓고 또 여행 갈 계획을 세우다니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고생고생 해가며 여행지 찾느라고 몇 시간을 허비해서 올려 놓다니. 바쁘신 분들 모시고 여행 갈라니 새털같이 많은 날 중에 단 하루를 서로 못 맞추네요. 월요일에 여행비 몽땅 보내 드릴께요.
회장님 화나셨구나. 회원들 다 이해하시고 죄송~~그러지 말고 계획하신대로 17일에 다녀오세요. 안가면 안되죠. 어렵게 떠나서 더 알차고 값진 여행이 될거예요.
올가을엔 가을여행을 떠날거야~~~~했더니 정말 떠나게 되는군요...후회하지 말아야지~~~~
사진만 보아도 가슴설레는 여행지가 아닌지요. 그런데 예강님을 또 화나게 해드렸군요. 일년넘게 회비 걷느라 애쓰신 걸 생각하면 국내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 이번엔 꼭 가셔야 해요. 예강님이 안가시겠다고 자꾸 그러시면 정말로 예강님을 떼어놓고 우리끼리 갈 수도 있어요....ㅎㅎㅎㅎ
여행때문에 산전수전공중전 다겪으시는 예강님 ! 힘내세요... 이번 가을 여행 기대 됩니다.
이 좋은 계절 떠나고 싶은맘 굴뚝 같지만,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시간 있는분들 잘 다녀 오세요.
여행을 제일 좋아하는 저.이번에는 같이 못 할것 같네요~~~아쉽습니다...선약이 있습니다..
좋은 여행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