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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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홍연보(洪延甫) 시조 홍연보(洪延甫)가 고려조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음을 알 수 있을 뿐 문헌이 없어 세계나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 없다. 다만 후손들이 회인(懷仁)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 남양홍씨(당홍)와 합보(合譜)하였다고 한다. |
▣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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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평공(威平公) 홍윤성(洪允成, 원래 이름은 洪禹成)이 1450년(조선 문종 원년) 문과에 급제, 영상(領相)을 지냈으며, 나라에 공이 있어 인산부원군(仁山府院君)을 지냈다. |
▣ 과거급제자(조선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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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성(洪禹成, 1425 乙巳生) : 문과(文科) 문종0년(1450) 식년시 병과(丙科) 홍정(洪汀, 1559 己未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홍대일(洪大日,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 모두 3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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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 연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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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 회인(懷仁)은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 일원의 옛 지명으로 신라 시대에 미곡현(未谷縣)이라 부르다가, 742년(신라 경덕왕 1)에 매곡현(昧谷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연산군(燕山郡: 文義)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회인현으로 개칭했다가, 1018년(현종 9)에 청주(淸州)에 병합되었다. 뒤에 회덕현(懷德縣) 감무가 겸하여 다스렸다가 1383년(우왕 9)에 감무가 설치되어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회인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회인군이 되었다가, 1896년 충청북도 회인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회인군(懷仁郡)이 폐지되고 회북면과 회남면으로 축소 개편되어 보은군에 흡수되었다. |
▣ 인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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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회인홍씨는 1985년에는 총 4가구 13명, 2000년에는 총 13가구 3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