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즐겨 듣고 노래부르기를 좋아한다. 거기서만 그치면 좋았으련만
창작이라는 분야까지 뛰어들어 습작 형식으로 곡 만들기도 좋아한다.
농사를 시작하기 까지 앞으로 약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있어 그동안
못했던 음악 창작을 다시 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문구점에 들려 오선지와
2B연필, 그리고 칼을 샀다.
꼴에 악보는 반드시 연필로 그려야만 한다는 어줍잖은 예술가적 고집이
있어 곡을 만들때는 항상 2B연필을 사용한다. 연필깍기로 쉽게 깍으면
절대 안되고 칼로 정성스럽게 깍아야 한다.
연필을 깍을때의 느낌은, 비장한 최후를 예감하고 자신의 처자식을 모두
죽인 후 전장으로 나갔던 계백의 마음일수도 있고, 새색시의 옷고름에
차마 손을 못 대고 술을 한잔 마시며 용기를 북돋우는 새신랑의 마음
일수도 있겠다.
허나 연필을 깍을때의 가장 큰 매력과 느낌은 칼날이 한번 지날 때마다
적갈색의 수줍은 속살을 드러내며 진한 향을 뿜는 연필향나무의 내음새.
그리움의 냄새, 초등학교 시절의 몽당연필 같은 학교 운동장의 추억냄새.
지난해, 홍천의 금강선원에 잠시 들렀다가 사무장님과 보이차라는
중국 전통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차는 향으로 먼저 마신다고 했던가?
후각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보이차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사무장님의
인정과 배려를 마음으로 맡으며 차를 마셨다. 합장을 한후 차에 오르기전
사무장님께서 캐모마일이라는 허브차를 내 손에 들려 주신다.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캐모마일 티백을 담구었을때의 강렬한 향. 내 좋지않은 후각을
배려하신 사무장님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진한 연필향을 맡으며 그 때
사무장님의 마음과 캐모마일 향을 떠올려 본다.
지금 창작을 위한 모든 준비는 다 되었다. 피치 파이프로 조율한 기타가
책상 모서리에 기대어져 있고, 적당하게 깍인 2B연필이 오선지 옆구리에
살포시 끼워져 있다. 어설프고 황당한 작곡가의 책상 밑엔 꾸겨지고 찢겨진
오선지가 여러 장 내동댕이쳐져 있다. 그런데... 오선지엔 악보는 없고,
연필향과 추억만이 그려져 있다.
첫댓글 뭔가 하나 나올듯한 느낌인걸요?
정말 좋은 곡 하나 나올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