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몬티>
일이 있어야 돈도 벌고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에서 실직은 사회적 거세에 가깝다. 무엇을 잘못하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닌데 경제 불안으로 일자리에서 떠밀려난 뒤,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남은 건 타고난 몸뿐일 때 "풀몬티"는 급기야 "옷을 벗는"지경에 이른 여섯명의 남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용으로 볼 때 남자들의 스트립쇼라는 소재 때문에 선정적이라고 미리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 카메라가 주목하는 것은 옷을 벗는다는 사실자체가 아니라 옷을 벗게 된 사연이다. 즉 이 영화는 하고자 하는 얘기를 자극적인 소재에 파묻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진않다.
뚱뚱하건 말랐건, 늙었건 젊었건, 동성애자건 아니건 간에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한 마력. 어설프고 어정쩡한 동작으로 실수를 연발하는 쇼 연습장면이나 공장에서 리어설을 가지다 경찰에 풍기문란죄로 잡혀가는 등의 작은 에피소드들을 보며 우리는 웃는 가운데도 가슴 한구석에 찡한 여운이 남는 건 이 영화 같은 이야기가 매우 사실적이라는 이유 때문인 것 같다. 90년대말 IMF한파를 겪었던 우리의 이야기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그런 리얼리티가 아닐까??
솔직하고 노골적인 작가의 시선은 주인공이 타개해야 하는 현실 설정에 의해 일차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드러난 현실적 대립은 살아나갈 방법은 찾아야 하고 또 한편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지키고 싶은 실직자들의 문제이다. 양육비를 구해야하고 실추한 가장의 권위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주인공 가즈. 그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돈을 버는 것만이 이 체제와 싸워서 이기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자신들을 실직자라고 가차없이 무시하고 모멸한 이 자본주의에 대해 그들은 옷을 벗음으로서 사회에 비웃음을 던진다. 관객을 향해 다 벗어버린다는 것이나 자신들을 비난하기 위해 굳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이나 둘 다 모순 투성이다. 이 모순 투성이인 세계, 과연 이 세계는 어떤세계이며 누구를 위한 질서이며 누구에 의해 그 질서는 재발견 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영화에서 스트립쇼 역시 주인공이 선택한 직업이 아닌 일회성에 불과한 그저 쇼일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현실을 마음껏 비웃어 주고 다시 현실과 맞서 싸울 용기를 얻는 재충전의 시간.
나는 여기서 안타까움을 먼저 느끼게 된다. 한국의 남성들 아니 우리의 아버지들은 옷을 벗어던진다는 발칙한(?)발상을 할 만큼의 여유조차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인가?? 한국의 아버지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가정도 잃었으며 가족간의 신뢰도 잃고 또 자신감과 자기정체성 마저 잃어버렸다. 실업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거리로 내몰린 실직자들. 우리의 아버지들의 모슴도 어쩌면 그렇게 영화 속 주인공들과 닮아있는 것은 아닐까?? 실직을 했음에도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는 제랄드. 그를 보고 우리는 그 누구도 꾸짓을 수 없다. 우리의 가장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배워왔으며 양육비가 있어야만 양육을 조건을 갖추었음을 배워왔기 에.. 남자다워야 한다는 사슬에 묶여 힘들고 지쳐도 내색해서는 안된다는 짐을 나눠져서도 안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갈수록 경쟁력만 강조하는 글로벌 사회. 가족들을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고도 "부자아빠"가 아닌 탓에 울 장소조차 없는 우리의 "고개 숙인 아버지"들...
이런 "고개 숙인 아버지"가 등장하면서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모순점을 내비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현모양처라면 남편 뒷바라지에 부족함이 없고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주임무였다. 그러나 현재 사람들은 이제는 이런 알뜰한 가정주부 보다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적당한 경제적 능력이 갖춰진 여성을 더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현모양처론 안으로는 이전의 가부장제 사회로 복귀하기를 여성들에게 강요하며 밖으로는 가정경제에 대한 책임 혹은 경제 회복의 명목으로 여성의 욕구와 희망을 배제한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 여러곳에서 여성기혼인력을 대폭 감축하고 퇴직금 지급 부담이 없는 파트타이머를 채용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이러한 모순은 가부장 중심제도 아래의 권위 있는 아버지 상에서 벗어나 아파트 문화, 핵가족 문화에 어울리는 새로운 아버지 상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 명예퇴직이나 조기퇴직은 남자들에게 가정에 대한 책임의 중압감을 주고 여자에게는 적성이나 노력에 관계없이 집안에서 남편을 내조하고, 가사와 육아를 돌보도록 하고 있는 사회가 낳은 상징물이라고 본다.
기존의 가부장적이고 봉건적 가치관에 대한 역할과 사고를 전환해야 할 것이며, 제도적으로는 여남의 능력에 따른 기회균등의 인력정책과 실업의 보장적 장치를 확충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현실에서건 영화에서건 고개 숙인 아버지들을 양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 및 인력정책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끝으로 폴몬티.. 이 영화는 경제 불황의 여파로 하루하루 좀체 살맛이 안 나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우리 아버지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뜻밖에 전해오는 위로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정말 오늘 만큼은 따뜻한 미소로 그동안 아버지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감사와 위로를 전해봐야 하겠다. 아버지가 있기에 내가 이만큼 된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