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섣달 그믐날이다. 다른 말로 제석(除夕)이라 하기도 한다. 除는 구력(舊曆)을 덜어 낸 다는 뜻이다.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통과 의례가 있었다. 오늘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다. 어릴 적 부모님 세찬을 준비하는 일을 도와 드리며 경험한 것들을 몇 자 적어 보려고 한다. 섣달 그믐날은 잠을 자지 않고 곧 지나가는 해의 밤을 지키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을 수세라 하고 다른 말로는 해 지킴, 날밤 세우기라 하는데, 집안 곳곳 방, 마루, 부엌, 다락, 심지어 흰 사기 접시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꼬아 만들어 장독대, 헛간, 대문까지도 환하게 불을 밝혔다. 이런 일은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영원히 자는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새날과 연결 짓기 위하여 닭이 울 때까지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은 평소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식구들이 모처럼 모여 앉았으니 밤새 붙어 앉아 이야기 보따리를 풀며 세찬을 함께 준비하는 삶의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머니 곁에서 일을 돕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면 어머니는 나의 눈썹에 만두를 빚는 밀가루를 칠해 놓으시고 흔들어 깨운 후 거울을 갖다 주시며 보라 하여 잠결에 일어나 눈썹이 하얗게 변한 모습을 보고 울던 기억도 이젠 참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새김된다. 등잔불 하나하나에 식구들 이름을 정해 놓고 외 할머니는 점을 쳐 주시기도 하였다. 불이 가물 거리면 액땜을 해 주신다고 정화수를 떠 대보름날 빌어 주셨고 등잔불이 환하게 불이 좋으면 운수대통이라 하시며 그 기운을 식구들과 나누어 주라 권하시기도 하셨다.
또한 섣달그믐에는 외지로 나갔던 식구들이 다 돌아오는 날이라 하여 밤샘을 하며 세찬 준비를 하면서도 한쪽에서는 윷놀이하며 감주나 호박엿 등을 나누어 먹는 일도 다반사였으며 귀신이 찾아와 신발을 훔쳐 간다 하여 간수를 잘하던 일도 있었는데 현실에서는 좀처럼 위와 같은 일을 경험하기에는 제약이 많이 따르는 것이 요즈음이다. 아무튼 그래도 세찬을 준비하여 집안의 조상님, 어르신께 정중하고 귀하게 드린 후 식구들과 모여 앉아 밥을 먹는 일이 있고 제대로 된 식구로서 행실이 있어 보기 좋은 것만은 사실이다. 옛 추억을 생각하시며 모처럼 다복하게 보내시기를 빌고 밤샘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토요일 뵙고 눈썹이 하얗게 변하신 분은 그 이유를 알것 같습니다. 설,명절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