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4 (팔포항 노산공원 - 박재삼 문학관 -늑도, 초양도, 모개도와 삼천포, 남해군 창선도)
5월 어린이날과 이어진 연휴동안 계속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로 경기도에 사는 딸아이 가족의 방문을 미루고 우리는 삼천포로 간다. 아들아이가 어버이날이 평일이므로 일요일에 식사하러 나가자는 의견이었다. 비단 어떤 행사가 아니라도 가까이 있으니 늘 함께 하는 날이 많건만 그래도 의미를 두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일요일에는 어디든 트레킹을 나갈 계획이었기에 하루쯤 맑게 개일 것을 기대하면서 내가 미리 트레킹 코스를 잡아 둔 사천시로 떠난 것이다. 삼천포는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노래 “삼천포 아가씨”와 어머니께서 남기고 가신 마지막 육성이 “삼천포 아가씨”란 노래였기에 지금은 사천이라 하는 곳을 구태어 삼천포라 하면서 의미 없는 의미를 부여하고 그 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천시는 1995년 5월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통합되어 탄생했으며 시내 중심부에 남해 바다인 사천만이 깊숙히 밀고 들어와 시내가 크게 둘로 나뉜다. 이처럼 사천시는 해안평야 지대인 만큼 청동기 시대의 유적,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고인돌이 많다. 이곳은 3년 전 남편과 1박을 하면서 꼼꼼하게 둘러보았던 기억이 있건만 어디든지 같은 지역이라도 또 다시 찾아보면 가볼만 한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번에 이모저모 찾아보면서 그 때 가보지 못했던 노산공원과 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박재삼 문학관을 둘러볼 참이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는데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노산공원 앞 바닷가 주변에 비는 내리고 구름은 끼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결국 아들아이는 자동차에 두고 남편과 각자 우산을 들고 노산공원에 오르기로 했다. 노산공원은 사천시 시내 중심부인 서금동에 위치한 도시공원이다. 바다를 향해 돌출한 언덕이며 언덕 위에는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시민의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노산공원의 맨 위에서는 한려수도의 일부인 삼천포 앞바다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공원 안에는 충혼탑과 판문점 자유의 집 모양을 하고 있는 승공관(팔각정)이 있었다. 남해의 어디를 가나 당연히 있을 법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동상도 늠름한 모습으로 삼천포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공원 아래에는 팔포항의 횟집들이 즐비하다. 삼천포 노산공원이 낮은 산위에 만들어진 공원이라 한 바퀴를 둘러도 힘들지 않을 정도로 걸을 수 있는 거리이다. 비오는 팔포항의 봄 바다에 삼천포아가씨상이 보인다. 사천시에서 삼천포항을 전국에 알린 가수이자 작사가 반야월 선생의 가요 '삼천포아가씨'를 기념하려고 바닷가에 세운 것이며 삼천포 아가씨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물고기상이 있다. 사천의 대표 어종으로 꼽는 상괭이, 참돔, 볼락, 전어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렇게 산책로를 조금 따라가면 박재삼문학관이 나온다. 사실은 이 공원에 문학관이 있는 줄은 몰랐었다. 새삼 이곳에 올라와 박재삼 시인에 관하여 읽어보고 알아가는 것이었다. 시인은 저마다 각자의 색깔이 있기 마련이다. 박재삼은 사천 출신의 시인으로 슬픔의 빛깔을 시로 빚어낸 시인이다. 그의 시 세계는 시 「춘향이 마음」(1956)과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59) 등으로 대표된다. 그는 이런 시들을 통해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했으며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한 독보적인 시인으로 소박한 일상생활과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섬세하고도 애련한 가락을 노래했다. 또한 제삿날을 맞아 큰집을 찾아가다가 저녁노을에 젖은 가을 강을 바라보며 인생에 대한 상념을 노래한 그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옯겨본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 보담도 내 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전문-
박재삼의 시로 마음을 녹이니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 듯 마냥 훈훈하다 우리 셋은 잠시 비와 추위를 피해 카페에 들어 앉아 각자의 취향을 찾아 멀리 남해를 배경으로 여행 중 달콤한 휴식을 가졌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각자 무슨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편안함 속에서 사천시 팔포항은 온종일 비가 내릴 참인가보다. 우리는 이대로 귀가를 서둘렀다. 이곳에서 늑도, 초양도, 모개도와 사천시 삼천포, 남해군 창선도를 이어주는 드라이브 코스를 선택하여 출발하기로 하였다. 삼천포대교는 경남 사천시 대방동과 모개섬을 이으며 초양대교는 사천시 초양도와 모개도를 잇는다. 늑도교는 사천시의 늑도와 초양도, 창선대교는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와 창선면 지족리를 각각 잇는다. 사천8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히는 창선 삼천포대교는 교량전시장으로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관광자원과 결합해 관광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 길을 택하여 달리다보니 그야말로 비오는 날의 고즈넉하고 멋진 드라이브가 되었다. 일부러 선택하기에도 대단한 사전답사정도가 필요할 만큼 만족한 길이었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는 남해를 둘러 해안도로를 하염없이 달려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또 다른 안온함과 편안함이 있었던 만족스러운 일정과 노선이었다. 매주 단 하루의 여행이라도 고속도로위의 소소한 맛과 휴게소에서의 자잘한 간식으로 흥분되는 일상인가 하면 다시 돌아온 내 집의 안온함은 여행의 끝에서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 하루 중 가장 따뜻했던 말이 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자동차에서 내리는 아들의 말은 “어버이 날인데 내가 해 줄게 하나도 없네” 독백처럼 남기고 간 그 말이 암만 돌이켜보아도 좋다. 그것은 가족모두가 서로가 서로의 덕분이라 여긴 마음의 표현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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