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중학교 시절의 채플 시간
2013 07 26 권호덕
단촌면이 의성군에 속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안동시에 있는 상급 학교로 진학했다. 그 이유는 단촌에서 의성(義城)이 비록 가깝지만 안동과 경주를 오가는 중앙선 철로 통학열차의 편리함 때문에 그렇게 한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우리 집 앞으로 지나 통학열차를 타러 가는 수많은 남녀 중고등 선배 학생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다보면서 어떤 동경에 사로잡히곤 했다. 나도 언젠가 저런 교모(校帽)를 쓰고 저런 교복(校服)을 입고 안동으로 가는 통학차를 타겠지 하고 말이다.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졌다.
나는 특별한 이유 때문에 먼저 합격한 공립 안동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그 해 처음을 세워진 영안중학교(현재 경안중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유일하게 이 공립학교에 합격했기 때문에 단촌초등교 교장님은 어머니에게 이 학교에 입학시킬 것을 간곡히 권했으니 어머니는 나를 미션 스쿨인 영안중학교에 입학시켰다. 지나놓고 보니 나는 여기서 특별한 신앙교육을 받은 것 같다. 시간표에는 1주일에 한 시간의 ‘성경’ 시간이 있고 두 번에 걸친 ‘경건회’가 있었다. B 교목님은 학생들에게 신앙교육을 잘 시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그는 학생들에게 산상보훈, 십계명, 사도신경, 히브리서 4장 등등을 암송시켰다. 그는 ‘성경’ 시간을 지루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가르친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분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영국의 청교도 작가인 존 번연의 ‘천로역정’(순례자의 진행)을 연재로 설교해 주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여름 성경학교에서 담임 목사님이 집중적으로 이 이야기를 연재로 들은 적이 있어서 그 설교를 친숙한 마음으로 들었다.
‘천로역정’ 이야기는 20세기 중엽부터 성결교 부흥사였던 고(故) 이성봉 목사를 통해 한국교회 전체에 소개되었다. 이 저서는 복음을 받은 그리스도인(크리스챤, 기독도)이 회심 이후 마침내 천국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험과 어려움을 당하고 극복하는 내용을 뼈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내용의 설교는 일제 강점기에 고통을 당하던 성도들을 위로하며 그들로 하여금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데 필요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윤회적인 시간관을 가졌던 한국인들에게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나 개인 구원 문제에 치중한 나머지 한편으로는 공동체 구원 문제를 간과하도록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세를 멸시하고 미래의 유토피아에만 치중하도록 만들어 문화 변혁의 자세를 만드는 일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구원 과정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에 대한 내용이 배제되어 있어서 자칫하면 인간의 힘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밑에서의 구원’의 펠라기우스주의 오류에 빠질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성봉 목사의 업적을 무모하게 폄하(貶下)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상당히 많은 경우 그의 사역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던 성도들을 믿음에 굳게 서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서정(序程)을 성경주석을 통해 얻은 결과를 조직적으로 가르치지 못한 점이다. 그럼에도 미션 스쿨을 통해 이런 명저를 더 깊이 알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미션 스쿨인 우리 학교는 1년에 한 번씩 교내 수양회를 가졌다. 첫 번째 교내 수양회 강사는 대구 제일교회 담임목사인 이상근 박사였다. 그는 2년 전인 1959년에 미국 텍사스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분이었다. 맑은 얼굴 표정만 보아도 매우 조용하고 신중한 분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기독교 복음의 특징을 다른 종교와 비교하면서 쉽게 가르쳐 주었다. 발음이 매우 정확하고 그의 음성은 잔잔했다. 이 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할 것이다. 사실 이 분은 나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친 분 중에 한 분이다.
나는 1학년 어느 음악 시간에 ‘로렐라이’라는 독일 민요를 피아노로 반주한 덕분에 중학교 채플의 반주자가 되었다. 교목님은 채플 장소인 안동서부교회 사찰 집사님에게 방과 후에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었다. 그 덕분에 풍금만 알았던 내가 피아노로 찬송가를 4부로 치는 것을 배웠다. 이런 훈련은 정확한 음정을 소리 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소프라노, 알토, 테너, 그리고 베이스 등 4 음이 협력하여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것을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즉 내 중심적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