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트맨>, 두 번째 보다
1. 2023년 아카데미 영화상 시즌을 계기로 후보작들을 명필림에서 집중 상영하고 있다. 그 중에는 2022년 초에 개봉된 <배트맨>도 있다. 두 번째 관람을 통해 떠오른 가장 첫 번째 생각은 절망과 희망, 어둠과 빛이라는 배트맨 특유의 영화적 색깔을 넘어, 묵묵히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숨어있는 존재에 대한 자기위로이자 소수적 연대의 단단함이다.
2. 영화 속 ‘고담시’는 철저하게 부패하고 타락되어 있다. 시장과 경찰청장, 검사들은 폭력배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들만의 추악한 공간 속에서 권력과 쾌락, 부와 욕망의 세계를 탐닉하고 있을 뿐이다. 권력자의 어둠을 공개하며 그들을 제거하는 도시의 파괴자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동하지만 결국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정의’는 철저하게 기만적인 언어로 통용되며, ‘복수’라는 이름의 수단은 폭력의 재생산이자 도시를 몰락시키는 핵심적인 기제일 뿐이다.
3, 영화는 우리를 지배하는 어둠을 극단적으로 조명한다. 어디에서도 희망의 불꽃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오직 폭력과 음모 그리고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만이 지배한다. 도시를 떠도는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배트맨의 행위도 결국 ‘복수’라는 이름의 결코 생산적일 수 없는 파괴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것은 도시를 파괴하는 거대한 음모를 꾸민 집단의 아이디어가 배트맨의 행동에서 나왔다는 아이러니에서 발견된다. 배트맨의 더 큰 절망은 가장 큰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또한 범죄자와 결탁했다는 점이다. 비록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배트맨의 수많은 행동을 이끌었던 근본적인 토대가 무너진 것이다.
4. 그럼에도 배트맨은 현재의 고통과 악에 집중한다. 도시를 파괴하려는 음모를 제거하고, 도시의 타락을 막기위해 새로 선출된 시장과 협력하며, 그의 오래된 파트너인 유일하게 좋은 경찰인 고든 경위와 연대한다. 음모는 막았지만, 범죄자들은 또다시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또다른 파괴의 계획을 세운다. 혼란 속에서 일어난 도시의 숨은 지배자인 마피아 두목의 죽음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더 큰 폭력배들의 다툼을 가져오는 재앙을 예고한다. 삶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악의 확장처럼 느껴지는 절망이다.
5. 최악의 상황에서 고담시를 떠나자는 캣우먼의 권유도 거절한 채 배트맨은 다시 도시를 순찰한다. 그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가 필요하고 그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완벽하게 인정받고 존중받기는 불가능하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제거할 수는 없고 악은 끊임없이 독버섯처럼 어둠과 습기 속에서 자라날 것이다. 그 속에서 배트맨은 자신의 언어를 바꾼다. ‘복수’가 아닌 ‘희망’으로. 그것은 배트맨이 행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언어가 아닐까? 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배트맨의 삶의 과정 속에서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그의 삶에 어떤 희망이 나타날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며 무엇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인지 모른다. 두 번째 관람을 하며 떠오른 생각은 삶의 어떤 의미를 선택하고 그것의 가치를 인정했다면 다만 그것을 향해 묵묵히 실천하는 것이라는 점을, 그때 만날 수 있는 아주 적은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우리의 삶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홀로가는’ 것임을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다.
첫댓글 - 스스로의 선택과 불사르는 열정, 그 속에서 삶이라고 부르고 싶은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