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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 원만치 못하면 성불하기 어려워
호흡조절·법륜 굴려야 무념무상 경지 도달
경전공부 소홀하면 교학도·선수행도 모두 성취할 수 없어
성급하게 부처되겠다 생각 버리지 않으면 그 욕심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있는 듯 없는 듯 직지사 벽안당에 머물며 학인들을 가르치고 홀로 선수행에 힘쓰니 이것이 의룡스님의 가풍이다.
아이가 꿈을 꾸었다.
아름다운 언덕을 넘어 가니 커다란 호수도 있고 호수 한 쪽에는 절벽과 폭포도 있었다. 호수를 구경하면서 길을 가는데 호수 가운데에서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물결 속에서 용 한 마리가 꿈틀대며 몸을 드러내는데 물이 하도 맑아서 물속의 몸도 잘 보였다. 용은 호수를 휘휘 세 바퀴 돌더니 아름드리 버드나무에 난 큰 구멍을 빠져 나가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 용이 꿈틀거릴 때 마다 구름이 뭉게뭉게 모여 들었다. 그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며 ‘저것이 용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뒤에서 한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용이 바로 저런 것이다. 구름을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용이 움직이면 구름이 따라 모이는 것(도운승천, 圖雲乘天)이다. 용이 없는 구름을 만들며 승천을 하듯이 성인과 영웅도 스스로 자기의 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노인은 웃음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
아이는 계속 용을 바라보았다. 푸른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구름을 모아 하늘로 오르는 용. 한참을 바라보니 마침내 용은 한 점으로 보이고 그 한 점마저 사라졌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아이는 그 꿈을 잊을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 말도 하지 않았고 하루에도 수 십 번 꿈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중이 되라는 꿈이다’라는데 생각이 이르자 가슴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집을 떠났다. 절 이름에 용(龍) 자가 들어 있는 수원의 용주사를 향해 안성 땅을 떠나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입산. 아이의 나이는 여섯 살이었다.
의룡(義龍, 직지사 강주) 스님의 출가 인연이다. 스님은 워낙 어린 나이에 스스로 걸어서 입산을 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여러 어른 스님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절 생활의 예법과 경전 공부까지 남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익어 더욱 사랑을 받았다. 12세에 만해 스님(한용운 스님이 아님)으로부터 사미계를 받고 2년 뒤에 일해 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는데 그때까지 스님은 한학도 배우고 경전도 열심히 배웠다.
직지사 응진전과 관음전의 뒤쪽에 자리한 벽안당(碧眼堂)에 주석하며 직지사 강원 화엄반 학인들을 지도하는 의룡 스님의 법호는 능허(凌虛). 법명에 용자가 들어간 것이나 법호가 허공을 업신여긴다는 의미이고 보면 스님의 출가담에 등장하는 용꿈에 대해 수긍이 간다.
의룡 스님은 명봉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다. 명봉스님은 우리나라 근대 강맥의 두 산맥인 진응 스님과 한영 스님 중 한영스님으로부터 강맥을 전수 받은 대강백이었다. 청담 스님이 해인사 주지로 부임하면서 명봉스님을 해인사 강주로 모시기 위해 3번이나 찾아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강주 스님이기에 경전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게 될 것으로 생각 했는데 스님은 의외로 선 수행에 대한 말씀에 힘을 주었다.
“사교입선(捨敎入禪)에 대한 오해가 요즘 불교를 이상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교학을 무시하고 선만 하라는 것이 아니거든요. 교를 배워 바탕을 삼고 선을 실천하여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치인데, 그러기 위해 선을 할 때는 이미 배운 교학에 대한 집착을 떠나야 한다는 것인데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고 선만 하면 성불을 한다고 생각하니 거기서 잘못이 시작되는 겁니다. 선 수행을 하는 방법이 다 교학에 있는데 그걸 무시한 채 뛰어 넘으면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스님은 부처님도 늘 선정에 들어 설법을 했다는 점과 법회 때 법문을 듣기 전에 입정을 하는 것이 다 같은 이치임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은 직후 석 달 동안 그 깨달음의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중생들을 위해 무상(無上)의 진리를 설해 달라는 제석천의 간청을 받고서야 설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깊은 선정에서 얻어진 진리를 말로 표현하는 데는 역시 선정의 자리에서 가능하므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기 전에 항상 선정에 들었다.
모든 경전의 시작이 그렇다. <금강경>을 보면 부처님이 걸식을 마치고 수행처로 돌아와 발을 씻고 정좌하여 입정에 든 후 설법을 시작하는 대목이 먼저 나오지 않는가. 의룡 스님은 경전공부를 소홀히 하면 선 수행을 제대로 할 수없다는 점을 간과한다면 교학도 성취할 수 없고 선 수행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부처님이 설산으로 출가하여 6년을 닦아 성불했다는 것은 현생에서의 수행을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부처님은 무량겁을 두고 공덕을 쌓았습니다. 그 무량겁의 공덕이 원만하여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공덕을 쌓는 다는 것은 바로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6바라밀, 10바라밀을 실천하는 등 선행을 무수히 쌓아 그 공덕이 원만해 질 때 성불이 가능한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이 모두 성불은 못하고 아라한과를 증득하는데 그친 것도 아직 공덕이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만큼 성불이 어려운 것입니다. 공덕을 닦기 위해서는 선행을 실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전을 공부하고 선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의룡 스님은 여래선을 닦을 것을 권한다. ‘이 뭐꼬’ 화두도 자칫 망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성급하게 부처가 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그 욕심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게 공부하지 않고 선사들의 어록 몇 줄이 선의 경지를 다 드러내 보인 것으로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이란 삼매에 드는 길 아닙니까?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기 위해서는 호흡을 조절하고 법륜을 굴려야 합니다. 법륜은 설법이 아니라 자신에게 내재된 불성(진리)입니다. 그것을 순일하게 굴리는 수행이 여래선입니다. 몸 안의 물 기운과 불기운을 조화 시키는 것. 물 기운은 위로 올리고 불기운은 아래로 내리면서 법륜을 굴리는 선 수행을 해야 하는 겁니다. 스스로 선을 닦고 선행을 닦아 공덕을 쌓는 것이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스님은 무량겁을 두고 점수(漸修)를 한 공덕이 원만하게 익으면 몰록 깨치는 돈오(頓悟)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며 거기서도 늘 선정 삼매에 들어 진리를 펼쳐 보일 수가 있다는 점수돈오를 가풍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스님이 일어나 벽안당 큰 방 서가(書架)에서 한 권의 책을 찾아 펼쳐 보였다. <선요(禪要)>. 고봉대혜(高峰大慧 1238-1295, 중국선사) 화상의 금쪽 같은 가르침이 간결하게 수록된 책으로 강원의 필수 과목이기도 하다. 고봉화상의 게송 하나를 읽어 내리는데 잘 알려진 것이었다.
해저니우함월주(海底泥牛啣月走)
암전석호포아안(巖前石虎抱兒眼)
철사찬입금강안(鐵蛇鑽入金剛眼)
곤륜기상로자견(崑崙騎象鷺 牽)
이 게송은 일반적으로
“바다 밑 진흙소는 달을 머금고 달아나고 바위 앞 돌 호랑이는 새끼를 안고 졸고 있다. 철 뱀은 금강신장의 눈을 뚫고 들어오고 곤륜산을 탄 코끼리를 백로가 끌고 간다”
는 정도로 해석 하고 있다. 격외 경지를 상징하는 선시라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룡 스님은 다르다. “바다 밑의 진흙소는 달을 머금으려고 달려가거늘 바위 굴 앞의 돌 호랑이는 새끼를 안고 졸도다. 금 뱀이 금강안을 뚫고 들어오고 곤륜이 탄 코끼리를 갈매기(새)가 끄는 도다”라 해석한다. 그리고 이 게송이야말로 여래선의 수행법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임을 낱낱의 시어들이 갖는 상징을 풀이하며 설명했다.
바다 밑은 단전을 의미하고 진흙소는 물의 기운을 말한다. 달은 높은 곳이니 단전의 물기운을 위로 끌어 올리는 호흡법을 설명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다음 행의 돌 호랑이는 우리 인간의 마음자리이고 새끼는 바로 그 마음자리 속의 불성이다. 즉 돌 호랑이가 새끼를 안고 존다는 것은 부처가 아기부처를 안고 조는 것으로 우리가 마음자리에 불성을 품고 있음과 그 불성이 나날이 자라는 것(아기가 자라듯)을 뜻한다. 돌이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부동심(不動心)인 것이다. 쇠로 된 뱀은 광명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광명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지혜의 광명을 본다는 것이다. 마지막 행의 곤륜은 도의 경지이며 이것을 태운 코끼리는 수행자이다. 도를 태운 수행자의 정진은 코끼리를 새가 끌고 가듯이 느리게 마련이니 수행은 성급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래의 물 기운은 위로 올리고 위의 불기운은 아래로 내리는 호흡법으로 자기 내부의 법륜을 굴리는 수행을 하면 그 속의 불성자리가 아이 자라듯 하여 마침내 지혜 광명이 눈에 어리어 부처님이 샛별의 눈빛으로 정각을 이루셨듯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스님은 고봉화상의 이 게송만 잘 이해해도 참선을 하는 방법과 그 성취의 가능성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기에 나름대로의 해석법을 강조하고 있다.
의룡스님은 남들 앞에 나서거나 큰 절의 주지를 하려고 애써 본 적이 없다. 황악산 직지사 대가람의 가장 뒤편에 자리한 벽안당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정진 하는 것이 스님의 가풍이다. 그러나 한 때 경전 공부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용주사에서 관응 스님에게 <금강경>을 배웠고 오대산으로 달려가 탄허 스님에게 <원각경>을 배웠다. 나머지 이력은 전강은사인 명봉스님에게서 마쳤는데 그 후 스님은 서울의 불광동에 작은 암자를 마련하고 35년이나 홀로 지냈다. 홀로 정진할 토굴의 자리를 불광동으로 정한 것은 순전히 동네 이름 때문. 그래서 암자를 지을 때 상량문에 ‘부처님 광명이 이 땅에서 나와 삼천대천세계를 비추게 하리라(佛之光明 出於此地 普照 於 三千大天世界)’라는 구절을 손수 지어 넣기도 했다.
울타리도 치지 않은 작은 암자에서 홀로 지내던 어느 날 스님은 선정 삼매에 빠졌었다. 사흘 후에 선정에서 깨어나 오묘한 마음자리를 드러낼 시 한수를 지었다.
홀좌중도삼마지(忽坐中道三摩地)
당처열반시화장(當處涅槃是華藏)
월인천강강강월(月印千江江江月)
불현만상상상불(佛現萬相相相佛)
홀연히 중도 삼매에 앉으니
그곳이 열반이고 여기가 화장세계라.
달이 천강에 도장을 찍어 강마다 달이요
부처가 만 가지로 나투시니 모양마다 부처로다.
이 시를 보고 건당은사인 서운 스님은 “자네가 오도송을 지었네”라며 칭찬했고 전강은사인 명봉 스님은 “불성 자리를 보았다”고 격려를 했다.
임연태 기자 ytlim@buddhapia.com
의룡스님은?
삼매정수선원 창건, 직지사 강원서 학인 지도
경기도 안성에서 1936년에 태어나 여섯 살 때 용꿈을 꾸고 스스로 용주사를 찾아가 출가 했다. 12세인 1948년에 용주사에서 만해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2년뒤인 1750년에 일해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용주사 월정사 해인사 등에서 관응, 탄허, 명봉스님에게 경전을 배웠고 명봉스님에게 강맥을 전해 받았다. 이후 서울 불광동에 삼매정수선원을 창건해 35년간 홀로 정진 했다. 찾아오는 신도들에게는 여래선수행과 경전을 가르쳤다. 6년 전 은사 서운스님의 다비식이 김천 직지사에서 엄수 되었을 때 직지사에서 녹원스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직지사 강원 강주를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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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룡스님은 놀랍게도 (?) 화두도 망상이 될 수 있고 <여래선>을 권하고 계시는데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위에는 너무 추상적으로 쓰여있어서...
첫댓글 ...()()()...
굉장히 정확히 수행 차제를 명확하게 설명하셨군요. 이런 말씀을 하시는 스님을 지금껏 알지 못한 저의 좁음이 부끄럽습니다.
제가 보기에 스님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수행, 그리고 성불을 꿰뜷어 보십니다. 스님이 [추상적]으로 말씀하신 게 아니라, 기자가 욧점만 추렸거나 아니면 우리가 아직 수준이 못되니 추상적으로 보이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스님은 핵심을 [모두]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중국 선은 크게 세 가지로 발전하게 됩니다. 첫째는 교학선이요, 둘째는 여래선, 셋째는 조사선입니다.
교학선은 안세고가 번역한 [안반수의경](카페 불교강의란에 올라와 있지요), 반주삼매경을 기본으로 하는, 주로 초기 불교의 선정을 닦는 선이지요.
여래선은 육조의 제자인 하택 신회가, 당신의 스승의 선이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해 달마가 전한 선을 여래선이라 구분 지은 것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저는 압니다.
조사선은 마조이후 임제에 이르러 정립된 선으로, 일반적으로 선사들은 [조사선]을 여래선을 넘어서는, 가장 뛰어난 선으로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조사선을 하는 분들의 말씀이고, 여래선 역시 뒤어난 선법으로 저는 압니다.
중국의 선은 중국적으로 변질되어 송대에 이르러 화두선이 등장하게 되며, 이것이 조사선을 대표하게 되지요. 지금 우리나라의 선사들이 [간화선]이 한국 불교의 정통이라 주장하시는 것은 정말 한심(?)한 노릇입니다. 현재 선사들이 금지옥엽으로 주장하는 신라 때 법랑과 도의스님을 통해 전래된 선은, 역사적 연대로 보면 적어도 [간화선]은 아니며, 시간적으로도 간화선이 될 수가 없지요.
송대에 이르러 선은 [문자선]과 [간화선]으로 나뉘게 됩니다(묵조선 제외) .
나무 관세음 보살 !!! 나무마하반야 바라밀 !!! 선은 선이되 다른 선이뭘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