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우리대학은 개교 30주년을 맞았다.
동양사상에서 `3'이 가장 완전한 숫자로 여겨지기 때문일까.
1백 년처럼 꽉 찬 느낌은 아니더라도 `30년'에서는 나름대로 `알참'이 느껴진다.
사람의 나이 `서른'이 그렇듯 질풍노도의 시간을 지나왔으나 이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넉넉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1백의 절반이 채 못 되면서도 무시못할 무게가 느껴지는 숫자 `30'은 과연 우리 삶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을까.
30초--- 사랑하는 사람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그러나 볼일 급해 뛰어든 공중화장실에서 앞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
이왕에 화장실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정부가 지정한 손 씻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은 딱 `30초'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건강지침 제20장 `손 씻는 법'에서는 흐르는 물에 적어도 30초 동안 닦아야 손에 있는 균과 더러움을 없앨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렇지만 딸기를 씻을 때는 30초 이상 물에 담그면 비타민C가 빠져나가 좋지 않다.
`30초'는 각종 게임과 경기, 시험 등에서 주변 규칙을 정하는 가장 적절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배구에서는 각 세트 당 타임아웃 시간을 30초로 규정하고 있으며 농구에서는 공을 소유한 팀이 30초 이내에 슛을 하지 않으면 공격권을 상대팀에 넘겨줘야 한다.
운전면허 장내기능시험에서는 특별한 사유 없이 출발선에서 30초 이내에 출발하지 못하거나 교차로 내에서 30초 이상 정차한 경우 가차없이 불합격된다.
한편 119구급대가 출동 명령을 받으면 그로부터 30초 이내에 반드시 출동해야 하고, 서울 시내 지하철은 한 역에서 30초간 정차한다.
30초가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되는 케이스는 아무래도 CF다.
최근에는 보통 15초 짜리 광고를 내보내지만 30초 광고는 상품에 대한 정보 외에 다양한 이미지를 연출함으로써 소비자에게 한층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30초의 또 다른 승부처는 바로 면접시험장.
초반 30초 동안 보여주는 인상이 전체 면접 성적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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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다음 중 30분 동안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아닌 것은?
탕수육, 참치김밥과 치즈까나페, 까르보나라 스파게티, 영양돌솥밥.
정답은? 없다.
어떤 요리책도 `30분 상차림 완벽 가이드' 없이 출간되지 않기 때문에.
30분은 분명 30초보다 긴 시간이지만 따사로운 봄날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 보다 깜빡 잠들었다 깰 때면 아쉽기 그지없는 짧은 시간이다.
의학 전문가들은 낮 시간 중 30분의 토막잠만으로 육체적‘정신적 피로와 각종 스트레스를 가뿐하게 해소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 외에도 `30분의 법칙'은 우리 몸에 다양하게 적용된다.
조깅은 최소한 30분은 해야 지방분해 등의 건강 효과를 볼 수 있고, 목욕시간은 30분이 적당하며, 식후 30분간은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한다.
또 3세의 어린이에게 하루 30분씩 책을 읽어주면 5세 때 9백 시간의 영양분을 뇌에 공급한 효과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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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9~30일.
그레고리력에서 기원한 현대의 달력에서도 한 달은 대략 30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약속과 행사를 빼곡이 적어 놓았던 달력 한 장을 30일마다 어김없이 떼어낸다.
30일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에 `이보다 더 적당할 수 없는' 주기다.
심지어 신용카드 사용 고지서가 날아오기에도.
한편 전 세계 12억의 이슬람교도들은 매년 30일 동안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음식을 끊는 라마단 금식을 한다.
그런데 이슬람력은 태양력과 달라 이 기간은 매년 바뀐다.
30년--- 1806년 나폴레옹은 오스테를리츠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파리 샤를 드골 광장에 개선문을 짓도록 했다.
이 개선문은 그로부터 30년 후인 1836년에 완성됐다.
전쟁에 이겨 30년 동안 개선문을 세우기도 했지만 30년 간 꼬박 전쟁을 치른 적도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종교와 왕조, 영토 및 통상 등을 이유로 1618년부터 벌인 `30년 전쟁'. 독일을 주무대로 유럽 전역에서 벌인 이 전쟁이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종식됐을 때 유럽의 지도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30년'이라는 시간은 적지 않은 범위에서 사회적 기준이 된다.
`한 세대'는 보통 30년을 가리키고 `평년 기온'은 최근 30년 간의 기후를 평균 낸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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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cm--- 군사독재 시절 우리 경찰은 `정의사회구현'을 위해 반드시 `30cm 자'를 지참했다.
무릎 위 30cm 보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아무리 아리따운 아가씨라도 예외 없이 단속의 대상이 됐다.
`한 자'에 해당하는 이 30cm는 또한 낚시에서 `월척'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한편 인도 사람들에게 30cm는 세상에서 가장 긴 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처럼 어떤 사람들은 머리(머리로 생각하는 삶)에서 가슴(가슴으로 느끼는 삶)으로 이동하는데 평생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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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리--- “눈감고 30리”라는 말은 그 방면에서는 매우 도통하다는 뜻.
“인왕산 그늘이 30리를 덮는다”는 말은 어떤 한 사람이 잘 되면 그 덕을 입어 도움을 받는 사람이 많게 된다는 말.
전력으로 뛰어도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30리 길은 마라톤 풀코스 거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30리는 단지 먼 거리가 아니다.
30리 길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10리도 못 가서 발병 나고 20리 못 가서 불한당 만나고 30리 못 가서 되돌아 오”길 바라는 애달픈 길이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30리마다 `역'을 두어 공무여행자에게 말과 숙식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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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원--- 지금은 3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만 한 때는 두툼한 연애편지도 30원짜리 보통우표 한 장만 붙여 보낼 수 있었고, 공중전화기에 30원만 넣으면 다이얼을 돌려도 좋다는 통화 대기음이 `뚜-' 울렸다.
그뿐 아니다.
조금 더 오래 전에는 아이스케키, 바나나우유, 봉지라면 등 30원으로 못 살 것이 없었으며,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서처럼 왕서방의 낫에 아내 복녀가 죽었어도 눈감아 줄 수 있을 만큼 큰 돈이 30원이었다.
30점--- 고등학교 시절 수학 점수 30점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점수다.
30점은 그 과목을 지독히 싫어하는 학생 혹은 시험 전날 갑작스럽게 배탈이 나 공부는커녕 잠 한숨 못 잔 학생이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점수다.
그렇지만 30점에 대한 예외적인 평가도 있다.
우리대학 중간시험은 30점이 만점이다.
30도--- 경주 석굴암 본존불상은 멀리 동해의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지만 의외로 정동(正東)에서 약 30도 남쪽으로 틀어져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문무대왕의 대왕암이 있는 `동해구'(28.5도)를 바라보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오랫동안 지배적이었으나, 논쟁 끝에 석굴암 본존불은 동짓날 해뜨는 방향(약 29.5도)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현재 국내에서 시판 중인 소주는 대부분 25도지만 열매나 야채, 과실류 등으로 술을 담그고자 한다면 30도 소주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열매와 야채, 과실류에서 빠져나온 수분이 소주의 도수를 대략 5% 낮추기 때문이다.
30번--- 국도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에서 대구광역시 서구에 이르는 30번 국도는 우리나라 길 중 풍광이 좋기로 유명하다.
30번 국도를 따라가 만날 수 있는 변산반도에는 이미 2월부터 봄이 찾아온다.
이태백이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해 `채석강'이라 불리는 해안절벽, 전나무 숲이 아름다운 내소사, 정갈하고 한적한 멋이 아름다운 개암사 등을 돌아볼 수 있다.
30걸음--- 떨리는 음성으로 “우리 이제 그만 헤어져!”라고 말한 후,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30걸음 걸어 왔다면 심장에서 둔탁한 바람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뒤돌아보지 말 것.
망설이며 멈칫거리며 돌아본 길에서 그 사람의 상심한 뒷모습조차 볼 수 없을 것이므로.
우리 이제 그만 헤어져”라고 말하고 돌아선 그 사람이 비록 상심한 어깨를 하고서라도 30걸음이나 걸어갔다면 망설임 없이 그 자리를 떠날 것.
그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므로.
30세기--- 아직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 가운데 30세기가 어떤 모습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러나 공상과학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변화의 바람(The wind of change)>에서 언급한 30세기는 우리 예상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이 30세기에서 우주 여행은 끔찍할 정도로 따분하고 시간낭비에 불과해.”
그리고 30세---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간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삼십세>.
잔치는 끝났다 /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김광석 <서른 즈음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 서른 살은 온다”-최승자 <삼십세>. 20대에는 대부분 서른 이후의 삶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시인 기형도와 소설가 이상과 `도어즈'의 짐 모리슨이 서른을 맞지 않고 서둘러 세상을 떠난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때문에 어떨 때는 예수가 30세에 세례를 받고 인간사에서 `기적'을 펼쳤다는 신화나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마저 중퇴한 안데르센이 서른 살에 첫 동화집을 발표하며 꿈을 이룬 일, 화가 뭉크가 서른 되던 해에 <절규>, <마돈나>를 통해 삶과 죽음의 세계를 모색한 일 등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서른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길 위에 결코 놓여있지 않다.
얼핏 청춘은 잠식돼 보이지만 이미 진창에 발 담궈 본 `삼십세'의 내면에는 `남루한 삶'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
그러니 누가 삼십세를 두고 청춘이 아니라고 할까.
뜨거운 피와 일렁이는 심장이 없다고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누구에게나 `삼십세'는 온다.
바흐만은 `삼십세'에게 다시 한 번 주문한다.
"일어서서 걸어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