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중립평화 정책
변 광 수
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명예교수
중립국가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스위스와 스웨덴을 떠올린다. 그 밖에 잘 알려진 나라로는 오스트리아와 핀란드를 들 수 있는데 나라마다 중립주의를 채택한 동기와 방식이 다르다. 스위스는 강력한 국방력에 기초한 수백 년의 중립주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1815년 이래 강대국들은 물론 국제법상으로도 그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스위스의 중립형태는 아주 철저하여 2001년까지도 유엔과 유럽공동체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 나라가 중립평화 정책을 성공적으로 지탱하려면 꼭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로 효율적인 국방체제, 둘째 국제 관계에서 강대국 사이의 균형 유지, 셋째 중립정책에 대한 대내적 합의, 넷째 자국의 중립주의가 강대국이나 주변국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스웨덴의 중립주의는 1814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태동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대한 어느 정도 일관된 정책은 19세기 말에야 틀을 잡기 시작하였다. 그 뒤 점차로 국민들 대다수의 지지를 얻게 되었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공식적으로 중립주의를 선언하였다. 스웨덴의 중립주의는 헌법조문이나 어떤 공식 문서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어느 국제협약에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전쟁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고 나라의 자주성을 지키며 국민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려는 목적에 제 정당과 함께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곧 확고한 중립정책이야말로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모든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담보라는 확신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스웨덴은 외부로부터 직접 공격을 받지 않는 한 어느 분쟁에도 개입하지 않는다는 대 원칙 아래 어느 나라와도 군사조약이나 동맹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따라서 냉전시대에는 서방측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공산진영의 바르샤바(WARZSAWA)동맹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한 나라의 중립주의 노선은 선언만으로 이를 보장받기 어려우며 특히 전시에 어느 동맹국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강력한 국방력이 뒷받침 되어야한다. 스웨덴의 경우 침략자가 공격해 올 때 득보다 실이 더 많도록 방위력의 목표를 정해 놓고 안보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병역은 국민개병제로 18-47세 사이의 모든 남성은 군 복무를 마쳐야한다. 매년 50,000명의 신병들이 징집되어 기초군사 훈련을 받고 있으며 유사시 동원령이 내리면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850,000명이 무장하여 실전에 투입된다. 그 외로도 전투기, 장갑차 등 최신 무기들을 개발하여 수출까지 하고 있다. 자유 개방 사회답게 집총 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매우 신축성 있게 운영되어 병역의무자 20명 중 1명이 이에 해당된다.
스웨덴이 현재까지 중립노선을 지켜오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에 스칸디나비아반도가 독일군과 연합군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요성이 고조되면서 먼저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나치에 점령당하자 스웨덴의 외교적, 전략적 운신의 폭은 극도로 제한을 받았다. 독일과 영국 측에서는 각기 자기편에 협조하라는 회유와 협박이 계속되었다. 이에 스웨덴은 하는 수 없이 노르웨이로 향하는 독일군의 군수물자를 실은 100여량의 화차가 스웨덴 영토를 통과하는 것을 허용하는 최소한의 양보로서 자국의 중립성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후일 이웃 형제국들로부터 배신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하였다.
전쟁시의 중립유지와 평화시의 비동맹 정책이 스웨덴으로 하여금 국제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이를 외면하는 자세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2차대전 직후 결성된 유엔에 가입한 스웨덴은 유엔의 각종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인권이나 민주적 가치를 해치는 국제적 사건에 적극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자기들의 중립주의가 결코 방관자가 아님을 강조하였다. 스웨덴은 팔메(Palme) 정부 시절인 1968년 소련의 체코 침공과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강력히 비난함으로써 약소국의 권익을 옹호하여 한때 제3세계로부터 세계의 양심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남아공의 인종 차별 정책을 비판하고 아프리카의 식민지 해방 전쟁을 지원하여 신생독립국가의 탄생에 도움을 주었다. 1814년 나폴레옹 전쟁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192년간 이웃 어느 나라와도 국경분쟁을 일으키거나 어느 지역으로부터도 위협을 받지 않은 채 평화를 유지해오고 있다. 한편, 대내적으로는 고도의 의회민주정치를 발전시켜오면서 시장경제 하에서 지속적인 사회개혁을 통한 복지사회 건설에 성공하여 오늘날 사회정의가 살아 숨 쉬고 평균적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1960년대 이래 세계평화를 위한 군비축소와 핵확산 방지 운동에 장기간 앞장서 왔으며 인류의 공존공영이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스웨덴 사례를 거울삼아 지난 한 세기 동안 열강들의 세력 다툼에서 야기된 갖은 수난과 고통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 통일로 가는 길을 앞 당겨야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력신장은 물론 탁월한 외교역량을 길러 우리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주변국의 전략을 항상 꿰뚫어보고 미리미리 대처하는 혜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