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이야기 / 전수림
연일 폭염일거라는. 그래서 노약자는 외출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날 밤에 모처럼 찾아온 지인과 강가로 나갔다. 이런 날은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커피숍보다, 시끌벅적거리는 술집보다도 바람 부는 강가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 하는 것이 더 좋다. 그녀와는 이런저런 시시한 것들이 잘 맞았다. 이를테면 하염없이 걷는다거나,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무작정 기다리거나 하는 아날로그적인 것들 말이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 서너 캔을 사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어슬렁거렸다. 가로등이 비켜선 자리에 널찍한 돌로 된 평상이 텅 비어있다. 하루 종일 뜨거운 땡볕에 달궈져 뜨겁진 앉을까 하는 염려와는 다르게 그 뜨듯함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더구나 강을 마주보고 있지 않은가. 수다에 밤이 깊어가고 ‘가야지…’ 하면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슬그머니 누워 어렸을 적 평상에 누워 별을 헤듯 멀건이 하늘을 본다. 하늘은 무심하게도 짙은 회색이다. 도시의 온갖 불빛과 대기오염 뒤로 숨어버린 하늘. 그 흐림을 뚫고 멀리 123층짜리 고층빌딩의 불빛만이 반짝인다. ‘아이고 내가 뭘 기대한 거야…’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일어날 기미가 없다.
내 어린 시절 더운 여름밤은 주로 친구들과 늦도록 뛰어 놀던지, 아니면 주로 단짝 옥이와 놀았다. 그날은 옥이도 우리 집에서 저녁까지 함께 먹었다. 밥 때가 돼도 집에 가지 않으면 그 집 식구들 틈에 끼어 밥 한술 얻어먹는 일은 흔한 일이었으니까.
마당에 피워놓은 모깃불이 집안 곳곳에 자욱하게 퍼지고, 저녁상을 물린 평상엔 부채질하는 아버지와 뒷집아저씨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상 끝엔 가마솥에 찐 옥수수와 감자, 낮에 따온 참외 몇 개가 바구니에 담겨있다.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목욕을 하러간다며 갈아입을 옷과 비누를 챙겨들고 개울로 나갔다. 우리도 따라 나갈까 하다가 그만둔다. 그때 불편한 다리를 절룩이는 옥이아버지가 “출출한데 막걸리나 한 잔 하지!” 라며 노란 주전자를 들고 왔다. 안주라봐야 달랑 김치하나지만 아버지들은 그런 시간이 편안해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평상위에 누가 땅을 팔고 누가 샀다는 이야기, 노름해서 돈을 잃고 집을 나간이야기, 누구네 자식이 서울에서 돈을 많이 벌어 사장이 된 이야기, 또 누구네 집 혼사까지. 막판에는 목청을 높이는 정치판이야기까지 그 밤의 안주거리가 되었다. 옥이와 난 대청마루에 쳐놓은 모기장 속에서 방학숙제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냥 뒹굴뒹굴 키득거리기도 하고 속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평상에서 하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거리기도 하고, 흘끔흘끔 쳐다보며 아저씨의 얼굴에 제 멋대로 난 수염을 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개울에서 목욕을 마친 엄마가 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대문을 들어서며 또 무슨 술이냐고 잔소리를 해대지만 그것은 그냥 허공을 가르는 소리일 뿐, 아무도 들은 척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마당을 가로 지른 빨랫줄에 빨래를 널고 바지랑대를 곧추세웠다. 평상 옆에는 여전히 모깃불이 모락모락 피워 오르고, 빨래를 넌 엄마가 평상 끝에 걸터앉아 한손으로는 젖은 머리를 털고, 다른 한손으로는 노란 참외를 한 입 베어 아삭아삭 소리를 내었다. 하늘에 별이 총총해지고 달이 점점 훤해지면 돌 사이로 흐르던 개울물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밤이 이슥해지고 아저씨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이웃집 개들도 덩달아 짖어대고, 옥이는 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가거나 더러는 우리 집에서 자기도 했다. 아버지는 모기장 밖으로 나온 우리들의 발을 넣어주고 홑이불을 덮어주고서야 여름밤은 잠들어갔다.
그땐 하늘이 높은 것도, 별이 총총한 것도 뭐가 그리 좋은 건지 몰랐다. 개울 가득 넘치게 흐르던 물이 줄어 물 부족 국가가 될지는 더더욱 몰랐다. 그냥 비오고 흐린 날을 제외하고는 달은 밝을 것이고, 하늘엔 언제까지나 별이 총총할 것으로만 알았다.
며칠 뒤 나는 평상인 듯 탁자인 듯한 것을 하나 들여놓고 베란다 창가에 바짝 붙여놓았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시원하지가 않다. 그래도 요란한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소리가 정겹다. 나는 평상인 듯 아닌 듯한 곳에 앉아 그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참외를 한입 베어 물기도 하고, 강원도 찰옥수수라고 목청껏 외치던 아저씨에게서 사온 옥수수를 먹으며 뜨거운 여름밤을 보낸다. (월간 한국수필 2016년 10월호 추억의 명수필 코너)
신택환 수필가의 「여름밤의 속삭임」 읽고
전수림
신택환 수필가의 「여름밤의 속삭임」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아! 그런 때가 있었지 싶어 흐뭇해하지 않았을까싶다. 현대인들이 잊고 있던 이야기. 요즘 아이들에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쯤으로 알고 있을 이야기로. 캄캄한 계곡 어디쯤에선 반딧불이 반짝였을 것이고, 밤이 깊어도 쉽게 잠들지 못한 아버지가 평상위에 앉아 부채질로 웽웽거리는 모기를 쫓았으며, 쌔근거리는 아이들의 곤한 숨소리를 들었으리라 상상하게 되는 글이다.
「여름밤의 속삭임」 은 지극히 서정적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추억으로 아련하고 편안하게 읽혀졌다. 자정이 다 되도록 수돗물이 나오지 않던 시절에 쓴 글이라 좀 짠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다 늘어진 메리야스에 꼬질꼬질한 파자마를 입고 수돗물이 나오길 기다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서민의 일상적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니만큼. 잠시 그 옛날을 추억하며 빙그레 웃어본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면서 발가벗고 천방지축 뛰어놀던 때가 그리운 것은 말할 나위없다. 살랑거리는 밤바람 대신 칙칙한 선풍기 바람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자신이 처량했을지도 모르겠다. 물 부족으로 목욕은 고사하고 먹을 물도 시간 맞춰 받지 않으면 안 되었던 때에. 마루에 벌렁 누워 두 팔을 베개 삼아 잠시 휑하니 여행처럼 어린 시절을 다녀왔을 것이다.
수필은 그림이라 했던가. 잔잔하게 들려오는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지냈던 그 시절의 이야기. 한여름 밤에 일어난 일들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다. 고요히 잠든 마을을 살금살금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들과 함께 밤새 뛰어논 것 같이 잠시 아련한 추억에 졌었다. 여름밤은 그렇게 말없이 속삭이며 아이들을 성숙한 어른으로 키워냈을 것이다.
「여름밤의 속삭임」에는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 많다. 어색하지만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가요콩쿨대회 라든가, 큰애기, 머슴애, 호롱불, 다릿목, 칙간, 상엿집, 햇보리쌀을 대끼고 등등. 지금은 다소 생경하지만 따뜻하다. 오랜만에 적막한 여름밤에 평상을 차지하고 앉은 기분이다. 서리라는 것이 보통으로 인정되었던 시절의 이야기. 시골에서 자란 이들의 유년 속에서 추억이 되어 자리 잡고 있을 만한 이야기로. 그렇기에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지 않던가. 추억이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하리라. 그들은 그렇게 청정지역의 자연 속에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알아가며 성장했다. 사람 냄새나는 사람으로.
신택환 수필가는 수필다운 수필을 한편이라도 쓰고 마감하는 것을 소망하였다. 오랜 세월 수필을 쓴다고 끙끙거렸으나 아직도 길은 멀고 고개는 높다는 생각에 방황도 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작품집 「석화 따는 이야기」 「물이 좋아 가는 길」 「치자나무 한 그루」 장편소설 「잠들지 않는 숲」「돌아앉은 산」과 시집 「그리움은 몇 뼘이나 될까」 등등을 낸 천성이 글쟁이다. 그는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등 활발한 문단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좋은 글에 대해 목말라했다. 결국에는 2016년 제9회 올해의 수필인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안았다.
글은 쓰면 쓸수록 오묘한 맛이 있다. 어쩌면 그도 그 맛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지금껏 글을 써왔을 것이다. 그것은 행복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던가. 더운 여름밤 시원한 냉수 한 사발을 들이 킨 것 같다. 수필이 넘쳐나지만 좋은 수필을 만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그의 어린 시절로, 아니 동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의 유년의 시절로 훌쩍 다녀온 기분이다. (한국수필2016.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