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왔는데도 하늘은 비를 쏟아내며 하루에도 몇 번씩 계절을 넘나들며 변덕을 부렸고, 우리는 여전히 마스크 뒤로 표정을 숨기고 좀비처럼 거리를 걷고 있었다. 어쩌면 영원히 이 늪에 갇혀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9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이어졌고 마침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모든건 그렇게 갑자기, 예상치 않은 선물처럼 왔다. 그제서야 나는, 우리는, 모두 무사히 강을 건너 왔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말, 코비드 백신의 공급이 발표될 때만해도 언제 백신을 맞을 수 있는지, 그 백신을 맞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코비드가 주는 암울한 공포와 더불어 시간이 지나갈수록 조금씩 옥죄어 오는 경제적 압박이 퇴로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해 하던 나날이었다.
가장이라는 무게는 체념했으나 포기할 수 없게 했고, 날마다 불안했으나 다시 희망으로 버티게 했다. 유일한 출구는 하루빨리 백신을 맞는 것이었고 백신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만나면 누가 어떤 백신을 맞았는지와 어떤 백신이 안전한지, 어디서 백신을 맞을 수 있는지 정보를 나누었고, 언제 백신을 맞을 예정이라는 것, 운좋게도 1차 접종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위로받고 위로하는 나날을 보냈다.
맨해튼에 사는 큰 아이가 지난 마더스 데이에 기차를 타고 왔다. 지난 1년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불안해서 아이가 집에 온다고 할 때마다 데리러 갔었는데 기차를 타고 집에 다녀갈 수 있다는 것은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여겨졌다. 아이의 손에는 꽃과 케익이 들려있었고 아이를 반기는 아내의 얼굴은 꽃보다 환하게 빛났다.
언뜻 30여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젊고 곱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게 좋아하는 꽃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아내가 잠든 틈에 아이와 장을 봤다. 아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메인 메뉴로 정하고 애피타이저와 디저트까지 준비하기로 했다. 아이와 단 둘이 장을 본 것은 처음이어서 꼼꼼이 재료를 고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가 요리사가 되었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는 보조를 자처했다. 아이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식탁을 닦았고 테이블을 세팅했다. 아이가 사온 장미꽃을 테이블 한 가운데 올려놓고 아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와인까지 곁들이니 제법 풍성하고 아름다운 식탁이 되었다.
코비드로 지난 한 해를 건너 뛰어서 더 간절했던 이런 일상은 준비하는 내내 우리를 설레게 했고 휴가지에서 맞이했던 어느날의 성찬처럼 여겨졌다. 엄마의 헌신과 사랑에 존경을 담아 정성을 다하는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순간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오는 비 덕분에 가보지 않았던 뒤뜰에도 봄은 허리까지 깊이 내려앉아 있었다. 목련이 지고 난 자리 위로 연산홍이 활짝 피었고 지난해 심어둔 장미가 붉은 봉오리를 내밀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코비드로 세상이 봉쇄되기 직전에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의 사진들을 담아 놓은 디지털 앨범을 꺼내왔다.
한장 한장 넘어갈 때마다 기록영화를 보듯 서로의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가며 추억여행을 했고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1년전의 일상을 그리워했다. 내년 쯤엔 다시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소망하며 각자의 여행 후보지를 나열하며 웃었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조금 흔들렸으나 그렇다고 꽃잎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멀리서 새 소리가 들렸고 석양이 천천히 마을 어귀를 돌아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가 보낸 지난 1년을 이야기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코비드 상황에 도시는 고립되었고 맨해튼 한 복판의 작은 아파트에 갇혀 그 시간을 견디던 아이에겐 외로운 투쟁의 시간이었을 것이었다. 하루종일 이어지는 다급한 응급차량의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텅빈 거리는 섬뜻한 공포였으나 오히려 그 소리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너머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리여서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기도 했었다는 말을 들으며 마음이 아팠다.
앰뷸런스의 사이렌은 한 사람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확인시키지만 당신이 그 다음 대상일 수도 있다는 공포스러운 메시지로 들려오는 것이어서 스스로 고립되는 것만이 사는 방법어었다고도 했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거리와 콘크리트 숲 사이로 가로등이 켜진 도시의 밤 거리는 좀비들이 숨어있는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며 웃었다. 날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로 안부를 가늠하며 걱정했던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 다 지난 일이라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이제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 때를 이야기한다. 아직은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일상이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천천히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작은 뜰 위로 석양이 내려왔다. 키 작은 꽃들도 붉게 물들었고 먼 산이 마당 가까이 성큼 들어왔다. 우리는 함께 강 가에서 서성거렸고, 함께 기다렸고, 함께 그 강을 건넜다.
< 최동선 수필가> 미주 한국일보 2021년6월5일(토)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