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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수원(1998년 10월 인쇄본) 용인(1997년 4월 인쇄본) 한남정맥 광교산 지나 1번국도 지지대고개로 내려서기전 도면상 367봉인 광교헬기장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299.5봉어깨(290, 1.2)-이진봉(241, 1.5/2.7)-영동고속도로 명아리고개(130, 1.1/3.8)-△157.6봉-갓모봉(166, 1.5/5.3)-청련사도로(90, 0.5/5.8)부터 도심지를 가르며 장안문 사거리(70, 1.5/7.3) 이후 성곽을 따라 팔달산 서장대(130, 1.5/8.8)-수원향교입구 도로(70, 1/9.8)에서 도심지 한가운데를 관통해 수인선과 경부선 철로가 만나는 곳(30, 2.2/12)을 지나 논두렁 밭두렁을 진행해 수원시 권선구 대황교동 광교천이 황구지천을 만나는 곳(30, 4/16)에서 끝나는 약1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신경수님 글] |
팔달산(130) : 수원시 팔달구
갓모봉(166) : 수원시 장안구
이진봉(241) : 수원시 장안구
★산행코스 : 수루레미다리 버스정류장-옻나무골 약수터-본릉(쉬어가는 숲)-등산로(모수길)-광교산헬기장(분기점)-△299.5-
이진봉(x241)-50번 영동고속국도(명아리고개)_△157.6-갓모봉(166)-청련암(불이문)_경기도립 중앙도서관-북수
원중고교사거리-경기교육청-장안문-화성-팔달산(X145.5),화성장대-수원시립 중앙도서관-매산초교-42,43번 국
도-세류동-세류지하차도(광교천)-경부선철도-신곡동, 새터말-비행장-신곡동,새터말-세류역
[산행지도]
짧은 시간에 산행할 수 있는 거리를 찾다 또 수원으로 오게 된다. 가마솥 더위가 끝 마무리를 장식하는 듯 비가 올 듯 구름
이 잔뜩 하늘 공간을 메우고 있는 아침,
수원역 4번 출구를 나와 13번 버스에 오르는 두 번째라 늘 그랬던 것처럼 어색하지가 않았다. 팔달문과 장안문을 지나 광교
저수지의 풍광은 구름속에 갇혀 있는 듯 하여도 오늘 산행하게 될 저수지 뒷산의 산줄기가 아침 인사를 한다.
한남정맥의 형제봉에서 내리던 날도, 문암동에서 한남정맥을 오르던 날도 이 길이었고 오늘도 저 산의 산줄기를 밟으러 가는
여정은 주어진 시간 위에 산행을 마쳐야 하는 것,
'상광교신다리'의 버스정류장에 하차하여 수루레미다리를 건너
수원 팔색길 중 2색의 지게길의 이정철주을 지나 '금빛농원'의 안내판을 보며 산행하게 될 산줄기가 펼쳐진 구릉아래 개발제한구역
의 안내판을 지난다.
백운산과 광교산이 펼쳐진 그 아래 좌측 분기점도 보이는 푸른 산릉에 먹구름 가득 몰고 온 하늘은 머리위에 따가운 햇볕마져
거둬가는 여름날 아침은 그렇게 펼쳐졌다.
물소리 찰랑대는 작은 또랑을 건너고 또 건너 옻나무골의 논두렁 농로를 따라 산릉의 v라인 속으로 가게 되는 옻나무골약수터
가는 길의 골짜기를 따른다.
연두색 철책을 따라 농로끝 언덕을 오르면 풀덤으로 가득한 묘를 지나
[옻나무골 약수터]에 오른다.
수원시 장안구에서 설치해 놓은 안내판과 약수터의 물은 멈추고,옆에서 내려오는 물을 먹을 수 있나 보다. 약수터를 지나
나무가 가득한 숲으로 잠시 오르면
[쉬어가는 숲]의 산릉인 본릉에 오르게 된다.
이곳엔 수원 팔색 길중 1색의 모수길의 등산로로 구직포가 깔려 있어 광교헬기장과 백운산 오름길에 편한 산책로로 단장되어
있어 걷기 편하다.
이곳에서 광교헬기장인 단맥분기점에 이르기 까지 빨리 걸어 북진하게 된다.
너른 헬기장에 올랐다.
[단맥분기점]
이곳 부터 한남정맥의 단맥분기점이 되는 광교헬기장인 도면산 367봉이다. 헬기장에 앉아 쉬는 산객들도 여유롭게 시간을 노닐
고 '광교산 등산로 폐쇄 안내문'과 '광교헬기장'의 이정목겸 구조목은 통신대헬기장 1,5km, 시루봉 4.1km, 경기대 10.1km의 거리
표기를 하고
수원 팔색길 중 6색의 눈 익은 수원둘레길과 교차되는 가 보다.
'화장실 20m'의 팻말이 하얀로프줄에 걸린 길을 따라 길다란 나무숲 따라 간다. 북진하여 올랐던 정상에서 남진하여 내려가게
되는 것
'광교헬기장, 통신대헬기장, 한철약수터와 청련암'의 갈림길인 이정목을 지나
광교산 철쭉군락의 안내판에 쓰인 광교산 철쭉군락의 전설을 읽어 옮겨 보며
옛날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다가 해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곁에는 높이 천 길이나 되는 돌산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바다에 닿아 있는데, 그 위에는 철쭉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그 곳을 보고 좌우의 종자들에게 그 꽃을 꺾어 바칠 자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으므로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였다. 마침 그 곁으로 암소를 끌고 가던 노옹이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고 또 가사(歌詞)를 지어 받쳤다고 하는데 그 노옹이 누 구인지 모른다. [헌화가] 붉디 붉은 바위 끝에 잡고 온 암소를 놓아두고 나를 부끄러워 아니 한다면 저 꽃을 받치겠나이다. |
또한 광교산 철쭉 군락지의 구간별 표기되어 있고
광교헬기장 갈림길의 이정목을 지나
노송의 그늘속을 나와 길에서 약간 비껴있는 삼각점
[△299.5봉]에 밟았다.
수원중부 경찰서의 현위치 번호가 수시로 나무에 걸려 있고 '잔털벚나무'등 이름표가 붙고 '지원행정 연수원갈림길'에 이정목은
'광교헬기장 1.6km, 통신대헬기장 3.1km'을 알린다.
등산 안내판과 세멘으로 만든 상수보호구역임을 알린다.
[약수암 갈림]과 [약수암정상]의 이정목을 지나
수원 팔색길 중 육색길의 안내판이 있는 옻나무골 약수터에서 올라온 본릉에 올랐던 '쉬어 가는 숲'의 쉼터로 내려선다.
[모수길]
[한철약수터 갈림길]의 이정목을 지나 수원중부경찰서의 현위치 팻말은 아-14와 그 숫자로 이어지는 팻말은 수시로 붙고
구직포도 수시로 깔려 있어 수원시의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산줄기를 따라 간다.
낯선 여인의 산책로 에서 보듯 여유로운 시간을 이 산릉에서 보내는 뒷모습을 찍어 보았다. 8월에는 들꽃이 흔하지 않다.
눈코뜰새 없이 보이던 봄빛의 야생화들 지고 대신 산속에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이 산의 정적을 깨운다. 어째서 단 한 해
만 살고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소리는 한여름을 알리는 전령사같다.
'구기약수터 정상'의 이정목에는 광교헬기장 2.9km, 청련암 3.9km, 이정목옆 '모수길'은 계속 이어진다.
[이진봉 x239.2]
길에서 약간 비껴있는 이진봉에 걸린 표지기 하나가 산정을 알린다. 이진봉에는 작은 공터에 잡풀이 무성하고 트럼펫
의 노랫가락이 다소곳 들리는 음악이 있는 봉우리에 앉아 쉬어 간다.
산 중 숲속의 산소같은 O2 클래식 아닐까.
'거북바위정상' 100m 아래 거북바위를 살펴보며
[거북바위]
거북바위 위 숲속의 클래식을 전파하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거북바위를 지나 '철탑밑유당마을 갈림길'의 이정목을
지나 '고속도로 절개지 갈림길'의 이정목을 지난다.
흰로프줄을 따라
'추락주의'안내판 아래 보이는 50번 영동고속국도가 내려다 보이고 광교산이 발원하는 곳 광교천을 막아 생긴 저수지의 광교
저수지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전망이 조망된다.
[명아리고개]
광교교의 물결이 세게 흘러간다. 광교저수지에 담아져 지역 주민의 쉼터로 사랑받고 저수지와 어울어진 숲길의 두루 품는
여행객을 맞으리라
광교교의 이정목은 진분홍색으로 수원팔색길 중 2색으로 교차되고 광교교의 저편에 형제봉의 한남정맥의 산줄기와 맞닿아 보
인다.
광교교를 지나
경사진 낙엽쌓인 사면을 올라 서면 차소리 들리는 영동고속국도 위 산불감시초소앞에 닿는다.
[산불감시초소]
[△157.6봉]의 '수원 461, 1987 재설'의 삼각점 번호에 닿아 확인하여 지난다.
산책나온 강아지가 돌아갈 줄 모르고 쳐다보는 나 또한 서로 헤어질 줄 몰라 했다. 바위에 새긴 이정표는 '벽산아파트'가는
길을 표기했고
한마음광장의 길따라 이어지는 능선이 자연스럽게 등산로를 따르게 된다.
수원중부경찰서의 현위치 팻말은 '아-8'로 나무에 달려 있고 '도산 12곡'이황의 시석이 세워져 있어 발걸음을 묶었다.
[도산 12곡]
퇴게'이황'선생의 12곡 중 11곡에 해당하는 한 수를 보며 축쳐진 어깨를 도닥여 주는 것 같았다. 도심의 숲으로 사랑받고 있는
수원팔색길에 단맥능선에 떠오르는 시로 기억되리라.
[한마음광장]의 방갈로가 보이는 안부에 닿고
광교산
[모수길]의 안내판과
[우성위보]의 이야기가 전하는 마장산과 광교산이 전설이 되는 옛이야기를 알게 된다.
서서히 느릿걸음을 걸어갈 때쯤 나그네 앞에는 맑고 투명한 산속 광교저수지의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나뭇가지 사이로 사이로
내게로 왔다.
'산림욕장 금당약수터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야 했다. 광교저수지와 멀어져 갔다.
[갓모봉]의 힘기르기 숲이란 안내판이 세워진 곳에는 운동기구가 있고 수원경찰서의 현위치 팻말은 '아-1'로 표기되어 붙어
길은 역시 등산로여서 편한 길을 이어지며 양쪽 철책이 설치된 길을 따라 내려오면 화장실이 있는 옆, 담장 안으로 청련암으로
내려서게 된다.
청렴암입구의 이정목을 지나
'보훈복지타운'의 아파트 앞에 닿고
[청련암 환희루]
청련암의 부설인 연화유지원생들이 경내에서 수업중이었으며 극락보전에 흥선대원군의 친필과 편액, 영산회상도과 귀빈 엄 씨가
시주한 아미타후불탱,16나한챙, 신중탱 등이 남아 있다기에 볼 수 있으려나 했으나
시간은 물같이 흘러 청련암 불이문의 일주문을 나와야 했다.
보훈복지타운 아파트이 정문과 블루밍 아파트를 지나는 왼쪽 마루금 도로를 따른다.
수원북중사거리에 이른다.
도로의 산언덕 [퉁소할미바위]와 철조망 도로를 따라 영화공원의 버스정류장과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앞을 지나 경기도
교육연구원에 서게 된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정문앞 '세월호 참사 추모'의 현수막이 걸리고
42번 국도의 인천,안산, 화서역으로 직진하게 되는 도로의 오른쪽 도로에는'경기도교육 복지종합센타'가 자리하고 영화초교
사거리에 와서야
알뜰주유소의 베트맨주유소를 지나게 된다.
1번의 국도로 나왔는가 보다.
교통안내판에 쓰인 '화성(장안문)'의 장안문의 이름을 올린 방향따라 도로를 따르며 왼쪽 마루금이 차지한 '수원농생명과학고등
학교'앞 도로를 지나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
을 지나는 마루금 따라 교육청사거리로 서게 된다.
교육청사거리의 신호를 받아 횡단보도 건너 교회를 지나 'kb손해보험 인재니움'의 버스정류장과 kb손해보험 건물을 지나면
장안문과 팔달산 정상이 눈앞에 펼쳐져지고
동쪽 북수문(화홍문)이 보이는 곳을 쳐다보며 장안문의 버스정류장을 지나 장안문에 이르는 수원의 도심속으로 들어 와 있
었다.
이제부터 장안문과 화성을 따라 걷게 될 나그네의 여정은 여행객으로 바뀐 기분으로 ..
성곽의 꽃 수원화성을 들여다 보자
수원화성은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의 원침을 수원화산으로 옮긴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2년 9개월만인 1796년 9월에 완공한 성곽이다. 둘레가 약 5.7km, 성곽의 높이가 4~6m로, 실학자 유형원의 이론을 바탕으로 정 약용이 설계하였고, 석재와 벽돌의 병용, 화살화 창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가졌다. 또한, 용재를 구격화하고 거 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축조해 '건축사(史)상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 받고 있다. 이후 200여 년 동안 성곽과 시설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케 파손되었다. 그러나 축조 상황을 기록해 놓은 [화성성역 의궤]에 의거, 1975년 부터 보수, 복원하여 1997년 12월 이태리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 으로 등록되었다. |
수원화성을 출입하는 4개의 관문이다. 팔달문, 장안문, 화서문, 창룡문이며 이 중 팔달문과 장안문은 각각 남북의 정문으로 석축
으로 된 무지개문 2층에 문루가 세워져 있고 벽돌로 쌓은 반원형 옹성이 문을 둘러싸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장안문]長安門은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이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마쳤다. 장안 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한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
4대문 중 장안문을 나오면 매표소가 있는 장안문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여 장안문 2층으로 올라 내
부을 볼 수 있었다.
장안문 내부에는 한층 더 오를 수 있는 계단과 마루가 있고 바람이 불어 와 시원했다. 문 밖으로 보이는 백운산과 광교산과 형제
봉의 한남정맥의 산줄기가 보이며 수원의 시가지인 한복판이었다.
또 한쪽 문으로 보이는 광교헬기장의 분기점에서 이곳까지의 산줄기를 연상하면서 마루바닥에 앉아 옛 숨결이 숨 쉬는 듯 정조임금
을 생각해 보았다.
수원화성을 따라 이어지는 성곽 위 성벽 길을 따르면 팔달산의 정상, 서장대(화성장대)까지 사진첩에 담아 장안문을 내려 설 수 있
었다.
화성의 이정목은 '화홍문 470m, 팔달문 1.3km, 화성행궁 700m, 화서문 500m'로 화서문으로 가게 되는 화성의 성곽 길을 따른다.
[북서적대]北西敵臺는
적대는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문 좌우 옆에 있는 치성 위에 세운 시설이다. 4대문 중 장안문과 팔달문 양쪽에만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서쪽에 위치한 북서적대의 높이는 성벽과 같다. 치성 밖 아래쪽에 성 아래 가까이 다가온 적들의 동 태를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3개의 현안(위아래로 길게 낸 구멍)을 만들었고, 쌓은 담장마다 총안(총구멍)을 내었다. |
[북서포루]北西砲樓는
북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하나이다.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에 위치하며 1794년(정조 18) 9월 24일 완공되었다. 포 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3층의 내부를 비워두고 그 안에서 화포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 이다. |
[북포루]北舖樓는
포루(舖樓)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 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북포루는 화성의 다섯 포루 중 하나로 1795년(정조 19) 2월 20일 완공되었다. 장안문과 화서문의 중간에 위치하여 근처 의 북서포루(北西砲樓)와 함께 성벽에 다가오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
[서북공심돈]이란, 보물1710호(2011.3.3)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1796년(정조 20) 3월 10일 완공된 서북 공심돈은 3층 건물로 아래쪽 부분의 치성(雉城)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는 전돌로 쌓았다. 내부는 전투에 필요한 구조를 갖추 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1797년(정조 21)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 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효과적인 재료 활용을 보여주는 서북공심돈은 역사 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
화성을 따라 걷다 드디어 화서문에 닿고
[화서문]이란, 보물 제403호의 사진보다 주택가 벽화을 사진에 담아 보았다.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이다. 1795년(정조 19) 7월 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 1월 8일 마쳤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403호로 지정되었다. |
화서문의 편액은,
[화서문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 석문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있어
찾아 사진으로 담았는데 마모되어 있었다.
화서문을 나와 작은초가집 위 성벽을 따라 걸으며
[공심돈과 화서문]을 배경으로 수원의 도심과 그 뒤로 보이는 백운산과 광교산의 산줄기가 이어지는 하늘금을 그려 보았다.
또 몇 발짝 띄우면 수리봉도 조망되고
[서북각루]에 이른다.
서북각루란, 군사적 욧새지에 건물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기도 하고 때로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곳, 수원 화성에는 동남각루, 동북
각루, 서남갈루(화양루), 서북각루 중 서북각루이다,
[서일치]西一雉란,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 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 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
[서포루]西砲樓란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 20) 5월 30일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火砲)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 나오게 만든 치성의 발전된 형태다. |
[서이치]의 구불거린 소나무가 운치를 더하고
성벽의 계단을 따라 오른다. 노송이 두 손 벌려 환영하는 그늘에 잠시 쉬어가니 솔솔바람에 옛 정조의 숨결도 쉬어 간다.
계단을 밟아 오르면
[화서문과 서남각루]의 이정철주가 도심을 가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맞을 무렵 팔달산 정상, 서장대(화성장대)에 오른다. 서장
대에 서니 수원 도심의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며 백운산과 광교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더 높아 있었다.
멀리 관악산까지 조망되며
[서노대]西弩臺란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2곳이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다. |
[서장대,화성장대]西將臺, 華城將臺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용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2곳 이 있다.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공사를 시작하 여 9월 29일 완공되었다. 정조는 1795년 (정조 19) 윤 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 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
즉 팔달산 정상(x145.5)에는 화성장대와 서노대가 있으며
[세계문화유산화성]과 KBS 1박 2일의 촬영지임을 알게 된다.
수원 시가지가 조망되는 곳, 화성장대에서 바라본다.
[서암문]西暗門란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문이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 서암문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 졌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 전에는 암문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춰져 있다. 1796년(정조 20) 6월 18일 완공되었다. |
서암문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천장의 목재 개판이 부식되고 전벽돌 일부가 떨어지는 등 노화가 진행되어 더 이상의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보수공사 중임을 알 수 있었다.
매표소앞
[효원의 종각]
타종안내판에 쓰인 '효원의 종'은 모든 이에게 효성심을 심어줌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수원 시민의 염원을
담아 만든 종이다. 누구나 종을 칠 때는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부모님에 대한 효성심을 되새겨 보는 값진 시간이 되시기 바란다
는 내용이다.
제1타종: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효도를 다짐하며
제2타종: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바라고
제3타종:자신의 발전과 소원 성취를 기원 한다는 타종을 칠 때마다 생각해야 할 것들을 적어 놓았다.
즉 정조임금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느껴지는 타종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서포루]를 지나
[세계문화유산화성]비를 지나며
성벽을 따라 팔달산 정상의 화성장대를 내려가게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성벽 바깥으로 수원화성 관광 안내소와 진달래 화장실이 있으며
[서삼치]를 지나
[3.1독립운동기념탑]
3.1독림운동기념탑은 단기 4302년(서기 1969년) 3월 1일 우리 선열들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항쟁한 성업을 길이 빛내고 선열의
명복을 빌자는 참뜻을 두고 건립한 탑이란다.
[대한독립기념비]는 대한민국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단기 4281(1948년) 8월 15일 수원 시민이 세운 기념비와 나란히 있다.
3.1독립운동기념탑 앞
[서남암문]西南暗門과 [서남포사]란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을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이 문은 용도(담을 양쪽으로 쌓아 만든 길)의 출입문이기도 하다. 5개의 암문 중에서 유일하게 포사가 설 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796년(정조 20) 8월 6일 홍예가 완성되었다. 포사(舖舍)는 성 밖의 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신호를 전달 하였다. |
[용도동치]와 [용도서치]가 양쪽으로 나란히 있는 긴타원형의 깃발이 곳곳에 선 성벽을 따라 걸어 화양루에 이른다.
[서남각루' 화양루]西南角樓, 華陽樓 란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 다. 서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팔달산 남쪽 능선에 설치한 용도의 남쪽 끝에 세워졌다. 1796년(정조 20) 4월 16일 공사하여 7월 20일 완성하였다. 편액에는 화양루華陽樓라고 쓰여져 있는데 '화'자는 화성을 뜻하고 '양'자는 산의 남쪽을 뜻하는 것이다. |
화양루를 돌아
서남암문과 서남포사를 나왔다. 성벽으로 이어지는 성벽의 끝에 위치하고 있는 사적 제3호인 남포루을 내려서 성벽도 끝.
[남포루]南舖樓, 사적 제3호란
남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舖樓) 중 팔달문과 서남암문 사이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7월 9일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 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火舖)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팔달문 주위의 성벽과 화 양루를 수비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
남포루 아래
[고향의 봄]노래비가 있어 잠시 들러 성벽을 내려섰다.
그 외 화성 옆 정조대왕 상이 있는 화성행궁과 용주사의 융,건릉을 가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팔달약수를 지나 카페가 있는
도로를 따르며 화성 끝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녹음진 나무를 보면서 걸었다.
능선은 [팔달산 지석묘군]가는 길과 [중앙도서관].[수원시민헌장 탑][수원문화원]으로 이어지는 가 보다.
도로는 2차선 도로의 수원향교와 매산초등학교 사이로 이어지며 목백일홍이 활짝 피어 있는 향내음 맡으며 풋사과를 먹으니
달콤한 맛은 없고 말 그대로 풋내만~
건강왕약국 앞 사거리를 지나 팔달구 보건소와 중앙교회가 있는 4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풍림아파트를 지나 주택가와
수원제일야간중고등학교 정문 골목 끝 능선일 것 같다.
수원시 드림스타트 건물과 교동맨숀 위 능선일 것 같고 사거리로 나와 분홍빛 건물의 학교가 매산초등학교인가 보다.
이제부터는 능선을 오른쪽에 두고 세류중학교 쪽 교통안내판을 보고 걷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능선에는 LH아파트가
위치하고 있고
셀트럴타운1단지 후문의 버스정류장을 지나
[윗버드내사거리]를 지나
오른쪽 LH 202동 도로의 고개가 능선을 보면서
주택가 도로를 걸어 도로는 더 넓은4차선도로 이어지며
장안문의 그림이 있는 LH수원센트럴타운 3단지와 기차어린이공원과
[수인선 세류공원]과 세류중학교를 지나 동진레미콘이 보이는 8차선 도로의 지하차도 위를 능선으로 보며 능선은 왼쪽으로 방향은
바뀌어 가고
세터마을 버스정류장과 세류대교를 지나는 수원팔색길 중 모수길의 팻말이 붙고
이정철주를 보면 수원팔색길 중 육색과 모수길은 교차가 이곳에서 교차하는 가 보다.
경부선이 지나는 세류지하차도에 벽화가 걸리고 새터마을의 주택가로 도로따라 이어지며 권선제일교회와 성화아트릴빌의 주택
가를 따른다.
삼두복층유리 건물을 지나
담장위 철조망은 가는 길을 막았다.
공군제10전투비행단의 건물이 보인다.
부광운수의 팻말따라 이어진 발걸음은 공군제10전투비행단의 담장을 바라보면서 단맥종주도 멈추게 된다. 즉.밭두렁 논두렁이
공군제10전투비행단이 위치하고 있었다.
무심코 경부선 열차나 전철을 타고 지나던 세류역 서쪽에는 공군제10전투비행단임을 이제사 알게 된다.
주택가를 돌아 지나던 길따라 지하차도를 지나
공군제10전투비행단 정문을 지나 세류역에서 전철에 오를 수 있었다.
세류역에서~~~
한남정맥의 팔달단맥은 세계문화유산의 수원화성의 팔달산을 두루두루 공부하게 되는 역사기행이 되었다. 정조임금의 수원화성
서장대(화성장대)를 되새기면서 산행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던 기록도 마침표를 찍게된다.
[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