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는 정말로 일본에서 들어왔을까?
통설로 알려진 일본전래설, 정작 일본에서는 '고려후추'라고 배운다는데..
한국인의 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물은 뭐니뭐니해도 고추다. 우리나라의 대표음식인 김치를 비롯해 고추장, 고춧가루, 갖은 양념에 고추는 빠지지 않는다. 이 고추는 일반적으로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는 우리와 정반대로 알고 있다. 일본에서 고추는 예로부터 '고려후추(高麗胡椒)'라고 불렀으며 임진왜란 때 참전한 일본 장수들이 조선에서 종자를 가져왔다거나 조선통신사들이 전해줬다고 알려져있다. 왜 같은 작물의 유입경로를 두고 두 나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배우고 있는 것일까?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고추라는 작물이 어디서 왔는지부터 추적해야한다. 지구상에 자라나는 고추는 모두 오늘날 남미 페루지역이 원산지로 알려져있으며 고추가 이 지역 너머 다른 대륙으로 건너간 것은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의 일이다.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등 다른 신대륙 작물이 동아시아에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560년대. 이를 고려하면 고추 역시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페루산 고추나무 모습(사진=청양군)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전파경로는 페루지역에서 포르투갈 상인들의 배에 실린 고추가 일본이 포르투갈과 교역하던 나가사키항을 찍고, 다시 대마도를 거쳐 부산을 통해 넘어온 경로다. 이것은 16세기 이후 구축된 국제교역로를 타고 자연스럽게 넘어왔다는 주장이다.
근거로 들고 있는 기록은 17세기 조선 학자 이수광이 집필한 백과사전인 지봉유설(芝峰類說)이다. 지봉유설에 일본에서 들어온 '왜개자(倭芥子)'라는 작물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고추라는 것. 이후 영조 때 학자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고추를 '왜초(倭椒)'라고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을 근거로 근대 이후 한국에서 고추는 주로 일본전래설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임진왜란 발발 100여 년 전인 1489년에 간행된 의학서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에는 고추를 뜻하는 한자 '초(椒)'자와 고추의 옛 한글 표기인 '고쵸'가 명시돼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선 1433년 쓰여진 의학서인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1460년 나온 식이요법서인 식료찬요(食療纂要)에 '초장(椒醬)'이란 단어가 나온다. 이것이 고추장을 가리킬지 모른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오히려 임진왜란 이전에 조선으로 들어온 고추가 역으로 일본에 수출된 것이란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고추장의 고향으로 알려진 전라북도 순창에서는 아예 고추의 유입시기를 고려말기 이전까지 올려잡을 수 있게 하는 설화도 있다. 이 설화에 따르면 고려말기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가 왕에 오르길 기원하며 만일간 기도를 드렸다는 만일사(萬日寺)란 절에 기거할 때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찾아왔고, 이때 무학대사가 순창의 특산물이라며 고추장을 대접했으며 이성계는 그 맛에 반해 왕이 된 이후 이를 진상품으로 지정했다는 이야기다.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고추장을 바쳤다는 순창 만일사 전경(사진=한국관광공사)
사실 음식문화에 있어서 한 외래작물을 통한 발효음식이 개발되려면 해당작물이 도입된 이후 최소 10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따라 아예 조선의 고추는 페루지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전래됐다는 설까지 나오면서 의견이 아주 분분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확한 과학적 근거나 기록은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단 DNA를 통한 유전자 검사에서 지구상의 모든 고추는 남미지역이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고추의 생김새나 맛이 지역마다 매우 다르지만 이것은 고추의 유전적 특성이 2세대만 지나면 변하며 돌연변이가 많이 나오는 특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17세기 이전에 동아시아에서 고추요리가 따로 있었단 증거도 없기 때문에 유럽 상인들을 거쳐 동아시아로 고추가 전래된 것은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과의 교역루트가 있었던 일본이 조선보다 먼저 고추를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일본이 포르투갈과 교역을 시작한 16세기 당시는 일본의 전국시대라 고추와 같은 외래작물이 일본 전국으로 퍼질만큼 내부 교역이 활성화되진 못했다. 오히려 각 지방 영주들의 비호아래 조선과의 교역이 훨씬 활발했다. 임진왜란 이전 전국시대 일본에서 조선과의 교역량은 포르투갈 등 유럽 상인들과의 교역보다 2배이상 많으며 교역의 대부분은 대조선 교역이었다.
나가사키를 통해 고추가 일본에 먼저 발을 딛었을 가능성은 높지만 그렇다고 일본 전역에 퍼질 상황이 아니었고 오히려 대내적으로 외래작물이 퍼지기 쉬운 조선에서 먼저 유행한 뒤 일본으로 역수출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선후기 이후 본격화 된 농법인 이앙법(移秧法)과 쌀 생산량 증대에 따른 조선 내부의 경제적 변화도 고추 수요를 늘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추의 생육시기는 주요 식량인 벼와 비슷하기 때문에 모내기철 이후 벼와 함께 돌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것. 또한 이 시기 쌀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쌀밥이 주식으로 정착됐고, 이에 매운 맛의 고추가 주요 반찬으로 정착하기도 훨씬 쉬웠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