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재조명한 영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그동안 이승만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해온 좌익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이 최근 몇년 사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부터다.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로 확산된 좌익 이념은 건국 이후 80년 가까이 우리 민족이 이룩한 수많은 업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반한국적 정서를 쌓게 하는 핵심요인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좌익 이념의 역사관, 가치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하는 교육에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미국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이 아닌 외국의 국가원수로서는 처음 뉴욕 맨해튼의 ‘영웅의 거리’에서 카 퍼레이드를 한 영상을 통해 미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인정받는 인물이었음을 밝혀낸 기록영화 ‘건국전쟁’이 등장했다.
더욱이 이 영화를 제작한 김덕영 감독은 한 강연을 통해 국립 영상 기록물에서 이 같은 카 퍼레이드 영상이 의도적으로 훼손되고 사라진 흔적을 발견, 좌익 이념을 가진 집단이 이승만 죽이기를 의도적으로 자행해왔다는 의심을 품게 되면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 영화 제작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월 1일로 개봉을 확정한 이후에도 초기에는 개봉관이 10여 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의 핵심주역으로서 인간 이승만의 역할에 대한 관심 등 사회적 여건 변화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면서 개봉관 수가 145개로 늘어났다.
영화 ‘건국전쟁’ 포스터
다음은 이 영화를 제작한 김덕영 감독이 영화제작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밝힌 그의 고백이다.
2021년 여름,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개봉한 이후 여러 도시를 돌며 강연과 홍보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날도 부산에서 상영회와 강연이 있었다. 오랜만에 부산에 온 김에 남구에 유치한 유엔기념공원에 가서 헌화를 했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곳은 입구부터 사람을 숙연하게 만든다.
한국전쟁 때 알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에 와서 목숨을 바쳤던 전 세계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온 청년이 거의 200만 명에 달한다. 미국 한 나라에서만 180만 명의 젊은이들이 왔다. 거의 18세에서 19세 정도의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었다. 우리로 치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대학 초년생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 젊은이들 200만 명이 생면부지 손 한 번 잡아보지 않은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한국인으로서는 늘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다. 그날도 그랬다. 햇살은 따갑고 날씨는 한 여름 날씨처럼 무더웠지만, 마음을 정돈하고 묘비들 사이를 무작정 걸었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부터 고민하고 있는 마음속 숙제 하나가 떠올랐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비난과 왜곡에 관한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사실 80년대 중반 대학을 나온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승만이란 존재는 말 그대로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한강다리를 끊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대통령’, 사람들은 그걸 아직도 ‘런승만’이라고 부른다. 도망치다란 영어 단어 ‘Run’과 이승만의 이름 뒤를 붙여서 만든 신조어다. 누가 이런 걸 만들었는지 참, 하지만 언어란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위력을 지닌다. 비난과 모욕을 담고 있는 개념들은 더욱 그렇다.
아무튼. 2021년 ‘김일성의 아이들’ 이후 어떤 영화를 만들지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이승만’이라는 존재가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에겐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던 존재였지만, 글쎄 왜 갑자기 그해 ‘이승만’이 마음속에 들어왔을까?
그건 사실 북한과도 관련이 있었다.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만들면서 나는 북한의 실체를 보게 됐다. 그들이 저지른 온갖 범죄의 역사들을 되돌아보겠다. 그 현장들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이 발견됐다. 그것이 바로 ‘이승만’이었다. 그들에게 이승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존재였다. 심지어 몇십 년까지도 그들은 ‘대한민국을 이승만의 괴뢰 정부’라고 칭했다. 얼마 전 아시안게임 때 축구 중계를 하면서 TV 화면에 대한민국을 ‘괴뢰’라고 표기한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북한의 역사에서 이승만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그런 존재였다. 목적을 위해선 어떤 거짓말도 할 수 있고, 어떤 불의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공산주의자들이다. 그런 자들의 입에서 ‘이승만 괴뢰 정부 타도’가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현실은 나에게 호기심을 안겨 주었다. ‘도대체 이승만 정권이 무엇이길래 저러는 걸까?’ 2021년부터 시작된 ‘이승만’에 대한 호기심은 곧바로 리서치와 연구로 이어졌다.
그리고 3년 동안 속된 말로 그 ‘이승만’을 파기 시작했다. 이승만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책은 거의 읽은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 같은 386세대들에게 익숙해 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 너머, 아니 그에 가려져 있었던 그늘과 어둠 속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이승만’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다시 부산 유엔묘지로 돌아가서, 그날 강연 때 나는 ‘김일성의 아이들’의 뒤를 이을 차기작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당연히 내가 선택한 주제는 ‘이승만’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지만, 그때 내가 무슨 큰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잘 모르는 것도 많았고,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우스갯소리지만 그때 ‘이승만’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까, 아내부터 지인들까지 하지 말라며 만류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왜 그렇게 위험한 인물을 다루냐’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2023년 이후 지금처럼 이승만에 관한 붐이 일어나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뭔가를 결정할 때 논리보다 가슴이 앞설 때가 있다. 뜨거워지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며 그냥 칠흑 같은 어둠 속이라도 달려 나간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인생을 살면서 공교롭게도 그런 순간일수록 틀리지 않는다는 어떤 근거 없는 확신도 있었다. 그렇게 절반의 두려움과 절반의 두근거림을 안고 강연장에서 다음 작품을 발표했다.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지속되었던 이승만에 대한 거짓과 비난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품을 만들겠노라. 일종의 제작 선언을 한 셈이다.
그리고 그 말을 이어 우파 지식인이라는 어떤 사람이 마이크를 물려받았다. 의례 이럴 때는 그냥 ‘힘내시라’ 정도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하는 게 공개된 강연장에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의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김덕영 감독님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괴벨스가 와도 이승만에 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순간 사고의 회로가 정전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부끄럽고 당황하기도 했다. 내게는 힘겹게 용기를 내서 다음 작품으로 이승만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며 쉽지 않은 결정을 한 자리였다. 그런데 돌아온 첫 번째 반응이 ‘괴벨스가 와도 못 바꾼다’는 말이었으니, 그냥 ‘하지 말라’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서울로 올라와 며칠 동안 다시 원점에서 ‘이승만’에 관한 생각들을 점검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도대체 ‘너는 왜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하나의 작은 점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떤 파도와 덮쳐도 나는 이 영화를 끝까지 완성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결국 며칠에 걸쳐서 그 하나의 질문, ‘왜 하려고 하는가?’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깨달았다. 그 질문에 정면으로 그리고 제대로 답을 한 영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게 다큐멘터리 감독의 운명이다. 이미 남들이 수없이 다녀서 반질반질해진 편안한 길을 가는 것은 아무래도 성이 차지 않는다. 풀무더기, 나무로 가득 찬 어두컴컴한 숲 속이라도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었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계속 그 길을 걸어가 볼 이유가 하나 생긴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를 찾았다. 북한이 그토록 증오하고 미워하고 그래서 70년 동안 남한 좌파들과 합세해서 몰아내려고 했던 이승만이라면, 분명 그것 또한 가치로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70년 동안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반민족적, 반국가적 세력들과의 싸움이라면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의 영화 ‘건국전쟁’이 시작됐다. 늘 그렇듯이 숱한 난관과 복잡한 갈등,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걸 뚫고 전진하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보람이고 즐거움이었다. 다행히 교회도 잘 나가지 않지만, 늘 누군가 내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건 2019년 ‘김일성의 아이들’을 제작하면서 눈구덩이 속을 헤치며 동유럽의 겨울을 지날 때도 경험했던 일이었다. 이번에도 너무 힘들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순간마다 그 신비로운 존재가 내 길을 인도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영화 ‘건국전쟁’은 2024년 봄, 어느 날씨 좋고 따스한 날 정식으로 극장에 개봉할 계획이다. 영화의 제작은 완성했지만, 앞으로 극장 배급과 홍보, 마케팅까지 또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부활을 반길 수 없는 거짓 세력이 존재하고, 그 출발에 북한이라는 거대한 악의 집단이 존재한다. 70년 전 이승만은 그렇게 그들과 목숨 걸고 싸웠다. 어쩌면 그 길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너무나 큰 영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