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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회] 대호군 장영실, |
▣방송 : 2008. 7. 12 (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연출 : 고정훈 PD
▣글.구성 : 정종숙 작가
임금의 어가가 부러졌다! |
노비에서 종3품으로 |
조선 최고의 과학자… 그의 갑작스러운 퇴장
1442년 3월, 임금이 탈 가마가 부러졌다! |
▶조선시대 어가 |
장영실의 갑작스러운 퇴장, 이를 둘러싼 전후 사정 속에는 수상한 점들이 발견된다! |
장영실은 사대교린 외교의 희생양이었다?
당시 천문관측은 오직 중국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중국의 조공국으로서 중국과 사대교린의 외교정책을 취하던 조선으로서 독자적인 역법을 갖는다는 것은 곧 천자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됐고 독자적인 천문관측은 중국에 비밀로 부쳐야하는 것이었다. | ||
간의대가 경회루에 세워져 있어 중국 사신으로 하여금 보게 하는 것이 불가하므로 옮겨 지으려 하였고… | ||
지난번에 명사신에게 준 《지지(地誌)》에 간의대(簡儀臺)도 아울러 기록되어 있었다. 천조(天朝)에 기휘(忌諱)해야 될 점이 있을까 염려되어 저번에 하문했었는데 … |
손재주 뛰어난 노비
장영실의 어머니는 부산의 관 소속 기녀였다. 부모 중 한쪽이 노비출신이면 자식도 노비가 되어야했던 노비법에 따라 장영실의 신분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유독 손재주 뛰어났던 장영실은 관직천거제인 도천제에 의해 태종12년 조정에 발탁되었고 이어 세종대에는 임금의 총애를 받아 종3품으로 파격 승진을 한다. 조선의 역법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에게 있어 눈으로 한번 보고 뭐든 뚝딱 만들어내는 장영실은 꼭 필요한 손이었다. |
정확도 100%에 도전한다
'칠정산 내외편' 만들어지게 된다! |
조선의 하늘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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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최초의 자동물시계, 자격루를 만든 장영실. 실력 하나로 부산 관소속 노비 출신에서 종3품 대호군에 오르기까지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가마사건으로 파직된 후 그의 삶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최고의 과학자로 존경받던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자취를 감춘 까닭은 무엇일까? 대호군 장영실, 그를 둘러싼 기록들을 한국사傳에서 재조명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