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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적 심상(synesthesis image)이란 어떤 하나의 자극에 의하여 생겨나는 어떤 감각의 작용과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영역의 감각이 함께 작용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떠한 시인이 청각적인 소리를 듣는 동시에 시각적인 색체나 형태를 함께 느끼는 경우일 것입니다. 이 공감각적심상은 시를 보다 생동적이며 역동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역활을 합니다.또한 시의 심상 처리의 기교는 시인의 개성을 잘 나타내기도 하지만 시에 있어서 신선미를 맛 볼 수 있게 하며 시를 감성적으로 이끌고 나가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물의 서정적인 인식을 지적으로 더 높혀주기도 하며 정감적인 형상화에 북을 돋아주기도 합니다.
이 공감각적 심상에는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촉감적 미각적인 인간 오감각을 모두 포함하는 심상을 말합니다.
자 그러면 공감각적 심상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이쯤으로 하고 그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2001년 월간문학 9월호 홍석하 님의 시 <나 혼자 서러워>에서
접시곷이 피었다.
마당 가득 날고 있는 고추잠자리 떼
얻은것 보다 잃은 것이 더욱 많은 생애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산협엔 딸리도 변하는 계절
물소리조차 서먹해져
나 혼자 서러움을
산모롱이에 파묻고 돌아서면
봇물로 쏟아지는
귀뚜라미 떼 울음
정말 견디기 힘들구나
위의 시에서 공감각적 심상은 5행과6행(선협은 빨리도 변하는 계절/물소리조차 서먹해져) 그리고 9행과 10행(봇물로 쏟아지는/ 귀뚜라미 떼 울음)이라고 봅니다. 늦여름에 빨강색. 하이얀색의 접시꽃이 마당 안에서나 울넘어에서 따가운 햇살을 한껏 머금고 피고 있는 거기에 고추잠자리가 날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나 "가을이 오고있구나!" 하는 계절 바꿈의 느낌을 받으면서" 아! 빠른 세월. 나는 무엇을 하였지?" 라는 감회를 갖게 될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항시 느끼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어버린 것이 더많았다>고 생각이 될 것입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자기만큼 잘난 사람은 없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을 도외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모래알 속의 자아> 이것이 현대 사회의 인간 모습이지요 그래서 화자는 소외의식을 느껴<4행에서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않는다>라고 외로움을 실토했습니다. 5행의 산협은 도시에서 멀어져 자연속에 생활하는 화자의 생활무대로 보이는데 인간사회의 빠른 변화 뿐만 아니라 자연 마져도 <쌍전이 벽해가 될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고속도로 개설공사로 산이 헐리고 도시근처의 산은 부로도자로 밀어버리고 최 고층 아파트로 변해버린 현실과 댐공사로 수몰된 실향민들의 망향의 아픔. 그리고 우리강토를 가르켜 금수강산. 산자수명 하다고 했는데 강물은 오염되어 섞어가고 바다도 적조현상으로 어족이 죽어가는 현실을 화자는<물소리조차 서먹해져>라고 표현하였다. 오늘날 인간 쇠외 현상과 자연파괴 현상을 시각적심상과 청각적 심상을 함께 적용하여 보다 공감각적인 신선함과 더불어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또한<봇물로 쏟아지는 /귀뚜라미 떼 울움> 역시 공감각적 심상으로서 세류에 밀는 변화를 거역 못하는 화자의 비애를 절실하게 부각 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월간 문학 9월호의 송재옥 시인의 새만큼 덕 맑힌 뚝방에서.1 을 한번 살펴봅시다.
만약 들이나 뻘이 그냥
평지로 남는 다면
몇군데 탕탕 말뚝을 박겠네
그러나 바다는 아직도
날마다 두어 번씩 쳐들어와서
싹쓸이로 포부를 뭉개고 간다
어장을 꾸밀까
변화하는 세월만큼이나 쿨럭인다
길아! 열려라 길아 열려라
큰 차로 부려봤자 풍덩!만 남던
시퍼런 거짓이 이제 참으로 되살아나
山몇을 훔쳐먹고 태동한 염원과
한통속이된 전북민의 속앓이 끝에
등줄기를 세운 뚝방은
풍파에 찌든 고군산을 삼키고
지금 군산행을 재촉한다
벽해가 쌍전이 되겠다
텃밭이 되겠다.
위의 시에서 공감각적 시어들을 가려보면<몇군데 탕탕 말뚝을 박겠네- 역동적심상과 청각적심상의 조화> <길아! 열려라 길아 열려라-청각적심사과 역동적심상의 조화><큰차로 부려봤자 풍덩!만 남던-역동적심상과 청각적심상의 조화> 로 볼 수 있겠습니다.이 시는 새만금 간척사업장의 모습을 노래한것 같습니다. 공감각적 시어들이 가져다주는 그 현장의 사실성을 더욱 실감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대구문학 1999년 겨울호에서 박상옥 님의 <보리>를 보면
자갈논 서 마지기
어린 소 쟁기 매어 벼 그루트기 사이로
보리골을 타고 씨를 넣다
할배의 곰배는 엷은 가을 햇살로
흙덩이를 부수고 보릿골을 덮었다.
"할배요. 보리는 겨울에도 살아요."
그래, 이놈아 할배처럼 산단다."
서릿발 끌어안고 빙판길 건너와
퍼렇게 몸을 푸는 보리
자리개 타작마당 햇살 따갑다
살터지는 열일곱 살 어깨
보리 까끄라기 까끄럽다
"할배요,까끄러워예."
"이놈아. 까끄라운 게 까끄라기뿐인가.
살아보래이"
위의 시는 가난한 농부집에서 조손이 나누는 정겨움을 노래한 시이다. 여기에서 일련에서 1-5행까지는 시각적심상을 6-7행은 청각적심상을 도입하여 농촌에서 보리타작하는 전경을 보다 실감나게 그리고 정겨웁게 노래 하였다. 제 이 련에서는 보리가 한겨울에 자란 모습을 시각적심상으로 묘사 했으며 제 삼 련은 1-3행은 시각적 심상을 4-6련은 청각적심상을 도입하여 시적 감흥과 서정성를 더욱 높여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대구문학 1999년 겨울호에서 김동국님의 < 큰부리까마귀>를 보면
굴거리나무
꽝꽝나무
단단풍나무
활활 붉에타는 활엽수림을 거느리고
한라산능선을 오르는
구상나무
가지 끝에 앉아있는
큰부리까마귀
꿈틀대는 바다
산돼지 떼처럼 달려오는 파도를 노려보다
"까욱"
허공을 차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한라산 자락을 들어올린다
깔까르르 까르르
손뼉 치며 일어서는 풀잎들. 나무잎들
처얼썩
해안선을 물고 드러눕는 파도
위 시에서 공감각적심상에 해당되는 시어를 보면<산돼지 떼처럼 달려오는 파도를 노려보다-역동적심상/ "까욱"-청각적심상> <깔까르르 까르르_청각적심상/손뼉치며 일어서는 풀잎들. 나무잎들-역동적심상> <처얼썩-청각적심상/해안선을 물고 드러눕는 파도- 역동적심상> 입니다. 이들 시어들은 한라산에 살고 있는 큰부리까마귀를 생동감 있게 그려낼 뿐만아니라 보다 실재적이고 멋서러움을 느끼게 하고 있지않습니까?
홍윤기 저 詩창작법 이론과 실제에서 오세영님의 바람소리를 그 예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肉身으로 타고 오는
바람 소리
잘있거라.잘있거라
해어름 나루터에 달빛 지는데
강건너 사라지는 님의
말 소리
肉身으로 타고 오는
갈잎 소리
잘가거라. 잘가거라
새모시 옷고름에 별빛 지는데
속눈썹 적시는 가을
빗소리
이승은 강물과 바람뿐이다
옷고름 스치는 바람뿐이다
치마폭 적시는 강물뿐이다
肉身으로 타고 오는
물결 소리
마른 河床 적시는 가을
빗소리
이 시에서 제일련의 바람 소리. 말 소리. 제2련에서 갈잎 소리. 빗소리
제4련에서 물결 소리. 빗소리는 어느것이나 공감각적 심상을 역동적으로 구상화 시키고있으며.생동감이 넘치면서 독자들에게 사물의 서정적 인식을 지적으로 드 높혀주고 있습니다. 특히 <바람 소리>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동어반복의 표현입니다. 제1련의 <잘 있거라 잘 있거라>와 같은 정감 넘치는 상대적인 동어반복은 이시를 두드러지게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제3련 전체의 감각적인 동어반복과 이어반복은 절묘한 조화미 속에서 정감적인 형상화에 성공하고 잇다고 보여집니다. 즉 情限의 주제를 눈부시게 현대적인 시각에서 승화 시켰다고 보여 집니다
< 공감적 이미지의 표현 74p-75p 에서 발췌>
김소엽 님의 시집 <마음속에 뜬 별>에서 <피리소리>를 한 번 봅시다.
그대 순결로
뽑아올린 맑은
피리소리
그대 맑은
영혼으로
밤마다 불어주는
고운
피리소리
별의 노래는
하늘에서 불어주는
그대 사랑
피리소리
위의 시에서< 뽑아 올린. 밤마다 불어주는. 하늘에서 불어주는 >은 역동적심상 이고 <맑은/ 피리소리. 고운/피리소리. 그대사랑/피리소리>는 청각적심상입니다. 이 시어들이 잘 조합하여 신선하고 깔끔하며 청량한 서정의 맛을 한 가슴 가득히 불어 넣어주는 설레임을 갖게 합니다.
영덕문학 2001년31호 김도현 님의 <아침 뜰>을 보면
들창을 밝히는
나뭇
가지에 열린
아침의 여운
촐랑이는 합창의 물결은
마침내 뜨락의 초대
좌우로 눈치보는 조바심은
재롱보다 천성을 되풀이하는
생활의 지혜
쫒기듯 생존을 찾는
생동의 움직임은
싱싱한 생명의
자유로운 공간
일련의 <들창을 밝히는 나뭇가지ㅡ 시각적 심상.< 아침의 여운-청각적 심상>
이련의 <촐랑이는 합창의 물결은-청각적심상. 마침내 뜰에의 초대-역동적심상>
사련의 < 쫒기듯 생존을 찾는/생동의 움직임_ 역동적심상>.< 싱싱한 생명의 자유로운 공간-시각적심상>
위의 시는 시각적심상. 청각적심상. 역동적심상의 3박자를 조화롭게 배치해 가는 가운데 공감각적심상을 동원 하였으며 신선한 아침뜰을 역동적으로 나타내었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화자의 내면의 뜰을 그려낸 시라고 보여집니다.
성춘복 님의 시집 혼자 부르는 노래에서< 내 가슴 복판에도 곷빛이>를 보면
내뒤를 밟아오던 햇살이
골목 끝에 멎어
소리 없이 터지네
황망하게 달리던 시간
주춤거리다 돌아보면
더러 환한 웃음기도 던지네
더딘 내 손에도 잡힐듯
얕은 담장을 뛰어넘어
쉽게 풀어지는 따순 바람들
내 가슴 한복판에
찻물 끓는 소리 일더니
천지가 꽃밭으로 물들고 마네
위 시의 제 1 련은 시각적심상 제 2 련은 역동적심상 제 3 련은 촉감적
심상 . 제 4 련은 시각적심상을 잘 조화시켜 아늑하고 따뜻한 품성을
지닌 시인의 마음을 정감있게 묘사했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특히 제4련의 내 가슴 함복판에 /찻물 끓는 소리 일드니/천지가 꽃빛으로 물들고 마네 하고 맺음으로서 그 아늑함이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볼 수있습니다.
월간문학 1975년 소수권님의 <지리산 뻐꾹새>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 산 봉우리에 여러마리의 뻐꾹새가
울음울다
떼로 울음울다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나는 길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지리산하(下)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한 울음을 토해내면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우는 것을
알았다
지리산중(中)
저 연연한 봉우리들이 다 울고나서
오래남은 추수림 끝에
비로소 한 소리 없는 江이 열리는 것를 보았다
섬진강 섬진강
그 힘센 물줄기가
하동쪽 남해를 흘러들어
남해군도(南海群島)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지리산하(下)에 울던 한마리 뻐꾹새 울음이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이 세석 철쭉 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
누가 아기자기 하면서 아름답기는 금강산이요 수려하고 웅장하기는 지리산이라고 했던가! 은자(隱者)는 언제 어느 때고 품안에 안아 주었던 지리산 행정단위 3개도 9개군을 품에 거느린 그 풍성한 품에 인간은 어떤 역사의 한 페에지에서 피 눈물의 총성을 울려 아픈 상처를 안고있는 산! 그 산 어느 봉우리 어느 골짝이고 간에 통곡이 없었던 곳이 있었을 까? 화자는 뻐꾹새 한 마리의 울음 소리로 이 모든 것을 다 함축하여 은연 중에 표현하고 있는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 1련에서 < 여러산 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국새가/ 울음울어/떼로 울움울어>는 지리산 봉우리를 타고 넘어온 뻐꾹새 울음소리의 메아리가 산봉우리 봉우리를 넘어왔다는 시각적심상과 청각적심상을 혼합한 공감각적심상을 동원하여 시의 생동감을 추출하였으며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지각적심상을 통하여 독자에게
여러마리의 뻐국새울음이 아니라 한마리의 뻐국새 울음의 메아리가 산봉우릴 타고 산발치에 울려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제 3 련에서 <저 연연한 산 봉우리들이 다 울고나서/ 오래남은 추스림 끝에/비로서 한 소리 없는 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에서는 시각적심상을 동원하여
시상의 광대화를 시도 하였다고 보여집다. 제 4련의< 남해군도의 여러 섬을 밀어올리는 것을 보았다.>는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면 날씨가 화창하게 갠 날이면 남해 앞 바다가 아슴히 내려다보입니다. 화자는 뻐국새가 거기까지 가서 울고 돌아와 제 5 련에서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남아/ 이 세석 철죽 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시각적심상과 역동적심상이 혼합된 공감각적심상을 통하여 그의 특유한 수법으로 지리산의 애절한 아픔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기팔 님의 <저문산>을 보면서 시각적심상과 청각적심상이 어울려 공감각적심상이 주는 멋서러움을 살펴봅시다
저문산이
무쇠울음을 운다
쇳물을 녹여부은
어두운 하늘
무딘 쇠망치들이 부딪치며
별의 비명처럼 살아나는 것들이
바람을 일으킨다
무수히 떨어져 내리는
종의 날개여
바람부는 쪽을 향해 앉으면
횅하게 뚫린 구멍속으로
새들이 날아갔다
아! 지금
한 사내의 등이 활처럼 굽어 있다
제 1련의 저문산이- 시각적심상. 무쇠울음-청각적인심상
제 2련의 어두운 하늘-시각적심상. 무딘 쇠망치들이 부딛치며-청각적심상. 제3련의 무수히 떨어져 내리는 鐘의 날개여- 공감가적심상 탁울한 은유.횅하니 구멍뚫인 속으로/새들이 날아갔다ㅡ 시각적심상. 한 사내의 등이 활처럼 굽어있다.-시각적심상. 시인의 탁월한 시어 활용의 기교가 돋보이지 않습니까?
이 한편의 시에서 웅장함(무쇠울음).화려함(종의 날개) 섬세함(횅하게 구멍 뚫인 속으로 새들이 날아갔다) 비장함(한 사내의 등이 활처럼 굽어 있다)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감명을 느끼게하는 것은 공감각적 심상의 탁월한 효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시인의 독특한 은유의 기법과 아울러 심상처리의 기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시 전편에 감각적심상이 대부부인 시를 찾아본다면
이소림 님의 시집 <순간에서 영원으로> 중에서 <나비들의 노동은 무용으로>를 예 들어 보겠습니다.
벌들의 노동을 노래로 (청각적심상)
나비들의 노래는 무용으로 한다( 역동적 심상)
그들의 노력의 대가는
달콤한 사랑의 꿀 (미각적심상)
그들은 대자연속의
예술가들이라네
그들이야 말로 창조했네(역동적심상)
노래와 무용 속에 있는
삶의 방식을
붕붕대는 벌들의 노래가락(청각적심상)
나폴대는 나비들의 나래춤(운동적심상. 시각적심상)
그것이 노동이자 예술임을
모든 동작의 원리인 것을
역동적심상이 시 전편을 통해서 대부분인 시 이태수 님의 시집< 내 마음의 풍란> 중에서 <물. 또는 젖은 꿈>을 살펴보면
흐르면서 깊어진다. 물은 지나온 길 지우며
푸르고 맑아진다. 마음 끼얹어도
물길 따라 내려가 보아도. 나는 푸르게
깊어지지 않는다.맑아지지 않는다.
흘러흘러 여기까지왔지만.더듬어 가는 길
하늘마저 무겁게 흔들린다.길은 안보이고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해가 기운다. 별이 뜨고 달이 간다
물위에 써보는 내 이름. 물아래 지은
내 마음의 집. 모든 방들이 흔들린다.
어두워지다 지워진다. 하지만 물은 흐르면서
더욱 깊어진다. 모든 길들을 지우며
푸르고 맑아진다. 나는 서럽도록 들여다 본다
물아래 다시 집을 짓고. 그 안쪽 방에 창을 낸다
풋풋하게 눈뜨는 말들을 기다린다.
별빛 흩어지는 물아래 풍경 소리 아득하고
불현듯 탑 하나 솟는다. 내 마음도 발바닥도
하늘의 옥빛 속에 들어 젖은 꿈을 꾼다
이처럼 감각적심상을 어떻게 시작(詩作)에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시인의 개성과 시적영감(詩的靈感)따라 다르게 처리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