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길 소고.
한해가 바뀌었다. 벌써 대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해가 바뀌는 설 명절 때는 대보름이 되기 전에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아뵙는 성묘행사가 내 마음을 압도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니 전통문화도 변화고 있고 각 가문의 성묘나 제사풍습도 변하며 우리 가문도 역시 변하고 있다.
고향에서 지내던 어릴 때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따라 다니던 성묫길도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고 때론 배울 점도 있었고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먼 곳에 있는 산소는 날짜를 정하여 가까운 자손 되는 친척이 함께 성묫길에 들리는 묘지기 댁에서 제공하는 음식도 먹고 어쩌다 간혹 받기도 하는 세뱃돈도 어릴 때는 즐겁기도 하였다.
이제는 바쁜 세상살이에 점차 묘진(제후답)과 묘지기풍습도 없어지고 산소에서 시제도 모시지 않고 고향 재실에서 청사로 합사시제를 모시기도 하면서 3배로 올리던 술잔도 단배로 그치는 둥 간소화되어가고 벌초도 대행업자들이 시행하는 것으로 바뀌어가고들 있다.
명절차례나 기제사도 가족이 모두 모여 모시기도 점점 어려워지는 형국으로 변하고 있는데 대면식도 없는 조상님들 제사 모시기로 어려움과 분란을 일으키기 보다는 2대나 앞으론 부모님으로 한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사료되기도 한다. 우리 집의 경우도 앞으로 제사를 물러 받을 장손인 아들이 병원을 개원한 후 명절이나 제사 때 당일 와서 겨우 제사만 모시고 입원환자들 관리로 서둘러 먼 길을 재촉해 상경하는 것을 보노라면 애처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날 선친 혼자서 조상님들 기제사 모실 것을 생각하여 기차나 자동차로 부산에서 고향까지 가서 12시 넘은 이른 새벽에 제사모시고 새벽에 바로 귀가하여 뒷날 강의하던 옛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엊그제 미루던 고향 조상님들 설 명절 성묘를 다녀왔다. 각자 따로 살고 있는 형제나 숙질이나 가까운 친척도 같이 성묫길에 나서기도 어려워지고 고향에 가도 간혹 고향에서 지내는 동생과 함께 할 때도 있지만 요즈음은 대체로 나홀로 성묫길이 대부분이다.
과거에 쉽게 다니던 산길도 점점 거칠게 되고 오르막 산길은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니 신체활력도 떨어지게 되어 숨길도 씩씩거리며 힘에 부대끼곤 한다.
가을 시제 때 제참자가 자꾸만 줄어들게 되고 특히 청년층은 이 바쁜 세상 투잡(겹치기 일)을 해도 살기 어려운 경제가 불안한 시대에 시제에 참가한다고 고향까지 갈 시간 낼 수 있는 한가한 형편이 아니라는 데 이런 저런 핑계에는 설득의 한계가 무너지기도 하고 이들의 항거에도 이해할만 한 이유가 인정되기도 한다.
나 역시 가까운 집안일에 소임을 맡아(7대 장손) 젊은이들의 시제참여도 권장하지만 집안 장손인 내 아들 녀석도 참석할 형편이 못됨으로 스스로 권장하기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길흉사 등 특히 장례, 제사문화와 관련하여 시대의 변천으로 개선해야하거나 변경시켜야 할 풍속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숭조상문의 정신으로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고 조상님들의 업적을 계승하여 그보다 더욱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 내도록 자손들은 물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집안은 매장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젠 매장보다는 화장식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판단된다. 추모원에 모시거나 산소에 모실 때에도 납골당과는 달리 좋은 곳에 한곳의 산소를 정하여 계속하여 조상과 함께 자손의 납골도 추가하면서 함께 모시는 방법으로 관리적인 면에서 장지의 확장도 막고 숭조상문과 가족 간 우애가 돈독히 유지되도록 되어야 한다고 사료된다.
아직도 우리 풍습은 조상을 숭배하며 살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조상이나 부모님의 산소에 가서 조상의 업적을 되새겨보면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심기일전하여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좋은 풍속도 계승되어져 우리 삶에 보탬이 되는 방법으로 확립해 나가야 형제자매와 친척 간에 우애 있고 건전한 생활의 미풍양속이 이어지리라 사료된다.
이처럼 시대의 변천에 부응하여 생각 나름이지만 조상도 섬기고 가족 간에 우애도 유지하는 숭조상문의 좋은 풍속은 힘이 다소 들더라도 지켜가면서 개선해야할 풍속들은 개선하는 합리적인 방법이 빨리 정립되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효도가 천륜의 근본임을 떠올려 보면서 아래의 시조를 읊조리며 끝을 맺는다.
성묘길
어릴 적 명절 때면 숭조상문 정신으로
아버지 할아버지 함께 하던 성묫길
험한 산 오르면서도 신나게 뛰어갔지
산등성 가마득한 윗대 산소 먼 산소
숨길이 씨근씨근 가슴도 숨이 차서
신세대 청년들처럼 빠지기도 하지요.
이제는 소임 맡아 조상숭배 외쳐 봐도
젊은이들 핑계 대며 시대가 변했다고
조상도 세계여행에 동참시켜 드린다네.
계묘년 설날을 지나보내며, 옥당 최 주 수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