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설레는 마음.....
이 얼마나 고되 하던 꿈인가! 물론 주변에서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지언정 내 인생의 세 가지 꿈 중 그 하나를 얻는 다는 것은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순간인가! 물론 산행을 해 보아야 그 성공가능성이 나오겠지만 이 순간을 얻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과 두려움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했다.
1994년 8월 24일 처음으로 산을 올랐다. 지리산 2박 3일 종주! 그 곳에서 난 지리산을 알게 되었다. 아니, 산을 알게 되었다. 그 아름다운 일출!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일출을 나는 처음 산을 오르는 그 순간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의 움직임을 보았다. 그때부터 난 내 마음을 산으로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 우연히 서점에서 접한 백두대간 책자는 그때부터 날 백두대간을 내 꿈으로 정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 꿈을 가진지 만 5년이 지난 지금 난 그 꿈을 현실화한다.
대간을 위해선! 내 20대의 최대 목표인 백두대간을 위해선 적지 않은 심적인 갈등을 겪는다. 경기 악화로 재취업이 불투명한 현 실정에 퇴사를 해야하고 이 백두대간 단독종주라는 미친 짖을 하는데 산에 대한 아무 것도 모르는 내 주변사람들을 이해시켜야 했다.
4월 10일이나 11일 사이에 출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난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 인터넷을 뒤지고 백두대간 카페를 찾고, 하지만 어차피 대간이 자기와의 싸움이며 그 인내를 시험해 봄이라면 정보 따위가 무슨 소용이라 그냥 가면 된다. 배낭하나 달랑 메고 떠나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정보 수집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마음을 굳히고 큰형에게 메일을 띄우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형의 답장을 읽는다. 적지 한을 내용의 메일을 읽는 동안 난 형이 승낙했다는 것을 안다. 부모님은 어차피 산 그 자체를 모르는 분이니 끝내 숨기려 한다. 이제 회사를 퇴사하는 일만 남았다. 회사는 형편이 더 어렵다. 부서원 4명중에 팀장과 대리가 이미 퇴사한 상태이며 지금은 동갑내기 여자와 둘이서 어렵게 부서를 꾸려 나가고 있는 실정에 나까지 그만 둔다고 하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사직서를 쓰고 공장장님께 드리고 3일 동안 3회에 걸쳐 면담을 한다. 그러나 난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회사야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건 이젠 더 이상 꿈을 외면 할 수 없다.
사직서는 나의 적극적인 대간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예비군 훈련을 위해 오후 3시에 퇴근을 약속하고 남은 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제품 박스를 쌓는다. 마지막 1개의 박스를 들어올리는 순간 그 시간이 퇴근을 5분 앞둔 시간이다.
윽~!
난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허리의 통증! 주저앉는 그 순간 난 혹시나 백두대간이 좌절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부랴부랴 퇴근을 하고 한의원에 가니 인대가 눌렸다고 한다. 그 후 난 3일간을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걷는 그 자체가 무리였고 하루에 한끼만 먹으며 난 간신히 병원을 왕진했다. 이대로 대간을 포기한다면 난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아니 내 인생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그 후 사고가 있던 3월 27일부터 대간을 떠나는 그 전날까지 병원을 다녔다. 그 와중에도 난 계속 대간 준비를 했다. 등산 장비를 구입하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백두대간 산악회 카페를 기웃거리며 정보 수집에 힘썼다. 그러나 내가 아는 산을 아는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내 백두대간 단독 종주 그 자체가 무리라며 부정했다. 내 체력을 의심했으며 인내 또한 의심했다. 하지만 어쩌랴 내 마음은 이미 굳었는데.... 난 백수가 되었는데.... 더 이상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 떠나자!! 죽더라도 산에서 죽자....
거의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난 4월 7일 형의 결혼식을 위해 원주로 내려 같다. 그리고 결혼식을 마친 다음날 서울로 돌아와 대간을 떠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말했다 백두대간 을 간다고 하면 어느 부모든 허락 할리 없다. 여행을 간다고 어머니께 말했다. 다른 것은 다 무시하고 떠날 수 있지만 부모님의 말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되리라 생각했다.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난다 말하자 어머니는 많은 걱정을 하신다. 걷기조차 힘든 아버지 한평생을 기관지염을 앓아오신 그분은 십 여년을 한 번도 누워 주무시지 못했다. 항상 벽에 반쯤 기댄 체 주무셨다 .누우시면 기침이 심해서 한 잠도 주무시질 못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신다 어쩌면 시한부 삶을 살고 계시는 아버지 때문이다. 4월 14일에 못자리를 하신다고 한다. 일할 사람도 없고 많은 밭이며 논은 누가 거두는가!
머리 속에 혼란이 온다. 나의 이 독자적인 행동이 과연 누구를 위하는 것인가? 끝없는 불효 그 불효의 연속인가! 하지만 가야한다. 그래야만 난 정당한 삶을 살 수 있다. 끝내 난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막바지 준비를 위해 서울로 돌아왔다.
장비를 사고 구급약을 준비한다. 이직 다친 허리의 통증이 남아 있어 보온벨트 하나를 산다. 반찬류를 사고 행동식을 준비하여 배낭을 꾸린다. 한 시간 여의 배낭 꾸리기 끝에 23kg의 배낭을 쌓다. 그러나 겨우 식량은 3일일뿐이다. 당장 주말에 지원을 받는다면 25kg은 넘을 것이다. 다시 꺼내어 짐을 풀어 본다. 지갑을 빼고, 침낭 커버를 빼고, 버너 등을 과감히 빼낸다. 19kg 이다. 이제 더 이상 줄일 것이 없다.
이제야 가는가 보다. 드디어 내 20대의 목표인 백두대간 단독종주가 시작된다. 하지만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허리가 아프다. 1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통증이 온다. 이 몸으로 대간이라니 난 분명 미친놈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 미쳐야 한다 미치지 않고는 꿈을 이룰 수 없다. 미치자 철저하게 미치자! 어차피 우리의 삶 자체가 무리한 욕심 아닌가! 욕심 없이 어찌 꿈을 이루려 하는가
언젠가 읽었던 글귀가 생각난다. "노력 없는 욕망은 마음의 도둑이다" 해야 한다 아니 해 낼 수 있다. 혼자라는 그 고독만 참을 수 있다면 대간을 이룰 수 있다면 어머니의 그 슬픈 울음소리도 결코 헛됨이 아니리라.
내일이면 출발한다. 그 역사의 날 2002년 04월 11일!!!!
많은 것을 느끼자 내 가슴 안을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가지고 오리라 내 몸 부서지더라도 쓰려져 그대로 산이 되더라도 성공하자.
"내 죽거든 백두대간 능선에 묻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