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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은 비워둘 때도 아름답다
우리 생활에서 필수품인 그릇
그릇은 우리의 삶을 영화롭게 한다. 그릇이 생활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릇은 음식을 담은 역할을 한다. 맛있게 요리한 음식을 그릇에 담아서 식탁에 내놓는다.
아무리 좋은 맛깔스러운 음식이라도 그릇에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 음식은 보잘 것 없이 보일 것이다. 음식이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담아준 그릇이 있기에 음식이 맛스러워 보이고 더 멋스러워 보인다.
그릇(Bowl)이란‘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릇의 종류로는‘종지.쟁첩.옴파리.보시기.접시.합(盒).항아리’등이 있다.
보시기에는 김칫보와 조칫보가 있다. 김칫보는 김치를 담고, 조칫보에는 찌개를 담는다.
종지는 가장 작은 그릇으로서 각종 조미료를 담는다. 그 내용물에 따라 간장종지, 고추장종지, 젓갈종지 등이 있다.
쟁첩은 얇은 접시 모양이고 뚜껑이 있어 나물을 담는 그릇으로 반상에 주로 썼다. 궁중에서는 반찬.밥에 갖추어 먹는 여러 가지 음식의 찬물(饌物) 그릇으로 썼다.
옴파리는 사기로 만들어 여성용 바리와 비슷하며 동치미 등을 담는데 쓴다.
접시에는 편육.전.적 등을 담고, 합에는 떡.약식.면.전골.볶음 등을 담는다.
항아리는 곡식을 저장하거나 식수를 담아 놓거나 김치와 간장.된장.고추장.장아찌 등을 담아 발효시켜 저장하는데 쓴다.
물건을 담는 제구(製具)의 총칭인 그릇은 비유적으로 사람의 인품(人品), 인격(人格), 행실(行實) 또는 연약하여 보호하고 사랑해 주어야할 대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음식을 담는 기구인 그릇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 불, 공기 등과 같은 것으로 자연과 인간의 의식주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특히 동양에서 그릇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의 모든 이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 심지어 사람의 마음도 담을 수 있으나 그릇은 곧‘사람(人)’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그릇 제악을 위해선 흙(土)이 필요하고 성형 시에는 물(水)을 흙에 적서야 하며, 구을 때는 나무를 태워 불(火)을 만들어야 하니‘토(土), 수(水), 목(木), 화(火)’가 다 동원된다. 게다가 색상을 내기 위해선 금속이 있어야 하니‘금(金)’이 추가되어 저절로 오행(五行)이 되는 셈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주체가 되니‘천(天).지(地).인(人)’과‘오행(五行)’이 망라되어 하나의 그릇이 된 것이다.
그럼 그릇은 어디에 쓰였을까?
그릇이란 저장(貯藏)과 식기용(食器用) 이외에도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릇은 이런 원초적인 용도 이외에 신분(身分)을 상징하는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화려한 대제국의 왕이나 부족의 우두머리에게는 일반인들이 도저히 소유하기 불가능한 다양한 장식과 기술이 동원한 그릇이 필요했다.
이러한 그릇들은 음식기(飮食器)뿐만 아니라 꽃을 담는 화병(花甁)이나 항아리 같은 장식용(裝飾用)이나 예식(禮式)을 행하기 위한‘예기(禮器), 부작용(副作用), 장례기명(葬禮器皿)’으로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그릇에 마음을 담기 마련이다.
신분이 귀해지면 가장 먼저 바꾸는 것이‘음식을 담는 그릇’이다. 황실 전용이 그릇을 쓴다고 해서 왕족이 되는 것은 아닐 텐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그런 것에 약한 면이 있다. 우리 국민은 그릇 애호가(愛好家)라 여길 정도로 그릇 예찬론(禮讚論)을 편다.
나도 그릇을 좋아하지만 메이커를 보고 고르는 일 없이 그릇 자체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담는다. 그릇 제품이 좋으면 그 제품에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가 가끔 누군가를 말할 때 그 사람은 그릇이‘크다.작다, 좁다.넓다’이렇게 말한다. 마치 내가 옳은 것처럼 나는 아주 큰 그릇인 것처럼 사실은 아닌데도, 잘 모르는 사람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마구 얘기한다.
식탁에 다 똑 같은 크기의 그릇만 올라오면 어찌될까?
밥그릇, 국그릇, 종기, 접시, 물컵 등 다 쓰임이 다르고 담는 것도 다 다르다. 똑 같은 그릇만 있으면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고 그 용도가 다르기에 음식은 돋보이지가 않을까한다. 음식마다 담는 그릇이 따로 있으며, 맞는 그릇에 담아주었을 때 그 음식은 빛나고 가치가 있다.
제왕(帝王)의 자리에 앉을 능력이 있는 사람을‘큰 그릇’이라 한다.“그 사람 그릇이 커 참 훌륭한 사람이지, 그릇이 큰 사람이므로 분명 큰일을 해낼 것으로 봐”이렇게 그릇으로 사람을 표현한다.
그 마음이 가진 만큼 산다는 것이라 자기의 마음에 가진 것이 마음먹은 대로 그 만큼 세상에서 삶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담는 것을 보고 그릇이라 말한다. 그릇은 무엇일까?
난 이렇게 생각한다. 그릇은 수레이다. 사간의 바퀴를 단 수레이다. 시간이 같은 곳에서 시간이 다른 곳으로 무언가를 옮기는 수레이다.
사람들은 사람 때문에 행복하디고 하고, 사람 때문에 고통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람 때문에 욕망하기도 하고, 사람 때문에 인내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마음속에서 사람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싣고, 시간을 달리는 수레이기 때문이다.
그릇이란?
어떠한 문제에 흔들림 없이 변함없이 평정심(平靜心)을 가지는 그 크기를 말한다. 작은 문제부터 큰 문제까지 해결하고, 참아내는 힘을 그릇이라 한다.
작은 일에 초조하여 안절부절 하는 사람은 그릇이 작고, 그걸 버티고 해결하는 사람은 그릇이 크다 한다.
그릇이란?
비워있어야, 빈공간이 있어야 빈 공간만큼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바람 이는 언덕 위에 서면
허전하니 한구석 다가오는 것들
그리고 그리움
들꽃의 미소와 사랑
이것들을 담을 수 있는 것은
마음이란 그릇이다.
흘러넘치는 것이
그리움이라면 마음이 어떠할까?
흘러넘치는 것이
사람이라면 마음이 어떠할까?
모두가 소중한 것들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가득차면 흘러넘치는 것들
채움과 비움을 적절히 잘 하는 사람이 되자.
사람의 그릇이란?
성격.마음.됨됨이.야망.목표.추진력.능력.포용력.이해력(상호의 이해, 사람의 이해, 미래의 이해, 득과 실의 이해 등).매너 등이 있으며,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절제할 수 있는 메타인지능력이 그릇의 크기라 본다.
나를 채운다. 나를 비운다.
비우면 비울수록 오묘하게도 채워진다.
항상 비워두어야 여유가 생긴다.
몸과 마음, 모두 비우면 편하다.
허허실실, 비움의 미학
쉬고 쉬면서 돌이켜 보는 시간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우고 또 채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며
무엇을 비우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인생이란 그렇게 채우고 또 채우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길이다.
에릭 시노웨이, 메릴 미도우의 하워드의 선물 중에서 나온 말이다.
채움과 비움, 비움과 채움의 반복이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반복하면서 진화되고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진다.
세상 먼물을 더 깊이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사람을 더 깊이 더 잘 사랑하게 된다.
비우는 것아 먼저이다.
사람은 너무 채우려하다 보면 큰 욕심에 그릇되기 쉽다. 욕심이 과하면 그 만큼 부족한 면보다 못하는 채우나마나가 된다. 채움도 적당히 행하였을 때 탈이 없고 아름다워진다.
그렇다고 너무 비운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너무 욕심껏만 채우려하지 않은 상태로 채우거나 비운다면 그건 최상의 조화이며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채움과 비움의 미학은 비율이다. 비율은 적성 선을 말한 것으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인다거나 하면 우리는 이런 것을 두고 비율이 안 맞는다고 한다. 비율이 안 맞으면 기울게 되어 결국 무너지게 된다. 만약 배가 한쪽에 다먼 짐을 가득 실은 다면 그 배는 곧 중심을 잃고 바다 깊숙이 가라앉고 말 것이다. 재도 그렇지만 차도 그렇고 건축불도 그렇다. 모든 것들이 중심이 있으며 그 중심으로 균형을 이룬다.
사람도 중심을 갖고 움직이게 되며, 그 중심이 어떠냐에 따라 똑 바로 서거나 걷고 안서고 걷고 한다.
균형 잡힌 몸매,
몸매가 잘 균형이 잡혀져있다면 그 사람은 옳은 서기와 걷기를 할 것이다. 물론 마음을 쓰기를 바르게 먹고 진실 되게 쓸 것이다.
욕심 때문에 그릇에 음식을 가득 채워, 그 음식을 과식하듯이 먹는다면 배가 배른 것을 넘어 장에 큰 부담을 주게 되고 이상이 올 것이다. 음식을 적당하게 먹어줬을 때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되며, 건강에 이롭게 한다.
간혹 같이 식사를 하다보면 음식을 과하게 든 분들을 보곤 한다. 아무리 대식가라도 자신의 몸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먹어 되는 사람이 있다. 무리한 식사는 건강을 해친다. 과식은 욕심에서 나온다. 욕심은 마음에서 이루어지게 되며, 마음이 그릇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 일로, 마음상태가 잘 각추어지지 못한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음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욕심을 낸다. 어떤 물건이든 자기소유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욕심껏 채워놓고도 또 채우려는 마음을 갖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채움에는 비움이라는 등식이 등장한다. 그래서 채우기만 하지 않고 비우기도 한다.
채움과 비움의 미학에서는 정해진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식에 의하여 자신 스스로의 채움과 비움을 조화롭게 한다. 간혹 어떤 사람은 절대 채우려하려고만 하지 비움에는 인색 한다. 그러므로 인해 탈이 생기고 결국은 자신을 망치는 일로 남게 된다.
주변을 보니 어떠한 사람은 비움보다 채움에 더 관심이 큰 것 같다. 본인 자신은 좋은 그릇에 좋은 음식을 담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릇은 좋은데 그 음식이 왠지 미덥지가 않다.
고춧가루가 너무 들어간 것 같고 심지어 소금도 적당 선을 넘은 듯하다. 보잘 것 없는 고기에 그저 잔뜩 양념만 뿌려났다. 본인의 그 음식이 좋은 듯 배부르게 먹어 된다. 내가 보기에는 무 개념의 음식요리에 무 에티켓을 식사인 것 같은데 그저 맛있다고 냠냠해 된다.
그릇에 잔뜩 음식을 담아 놓은 다면, 그릇은 아름다운 모습을 잃은 것이다. 그릇에 적절하게 음식을 담아주었을 때 그 그릇은 풍기는 아름다움이 넘칠 것이며, 돋보일 것이다. 가치가 뛰어나게 될 것이다.
“이 사람아 자네 왜 자꾸 그릇에 음식을 담는가?”
“먹을 만큼만 담아 들지 그게 뭔가?”
같이 식사를 한 사람이 음식을 접시에 가득 채우려는 옆 친구를 보고 하는 말이다.
욕심내는 건 좋은데 욕심도 적절했을 때 그 욕심이 행복욕심이 된다는 친구의 그릇 론이다.
“저 사람은 그릇이 안 되는데 왜 자꾸 그릇에 채우려할까?”
“난 이해가 안 돼”
“자기 주제를 알고 그 그릇에 맞게 채우려고 욕심을 부려야한데, 그릇은 작은데 왠 욕심만 커가지고 저럴까?”
“탈 날 것이야. 암만 그렇게 되고 말구”
“그릇도 작은 주제에 욕심은 커가지고 가득 채우려기 만하니”
“뭔가 생각이 없어 보이고 아니 될 사람이야”
그릇이 작은 사람이 큰 그릇처럼 행세하는 짓을 한다.
또한 그릇은 큰데 소심하다.
주변을 보면 그릇이 작은데 좁은데 채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일을 그르치게 됨을 엿볼 수 있다.
사람은 자기 분수에 맞게 살면 그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지게 된다. 주제에 넘는 분수를 모르고 망각 하듯이 주제를 넘고 분수를 지키지 않은 사람은 필시 실패를 불러들인다. 사람들이 그런 사람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릇은 분수(分數)이다. 식탁은 작은데 큰 그릇을 올려놓은 다면 식탁에는 여러 먹거리들이 올라오질 못할 것이다. 몇 가지의 음식으로만 채워질 것이다. 식탁에 밪은 작은 그릇들이 음식을 채워 놓여 진다면 식탁을 작지만 풍성하게 보일 것이다.
당신이 만약 주변에서“넌 말이야 그릇이 작아”
“그런데도 말이야 작은 그릇 주제에 담을 건만 생각하니”
“넌 생각이 없는 애야”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인생 그릇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식탁과 그릇은 아름다운 관계이다.
식탁은 그릇을 위해
그릇은 식탁을 위해
서로 역할을 해주면서 돋보이게 한다.
조화롭지 않을 때는 식탁도 그릇도 서로 있으나마나다.
그릇으로 식탁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
맞지 않은 그릇을 놓여
또는 그릇에 어울리지 않은 음식을 담아
식탁은 어색함에 부끄러워한다.
아마 식탁에 놓인 그릇에 담은 음식이 맛깔스럽지가 않다면 조화롭지가 않는다면 식탁에 아무리 잔뜩 차려났어도 수저.젓가락에 손이 가질 않을 것이다.
그렇다.
어떠한 요리사가 덜된 실력으로 조리한 요리를 그릇에 담아 식탁에 내놓겠다고 요리사 모자(토크 브란슈)를 썼다. 모자를 써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셰프다운 셰프는 아닌 것 같아 과연 그 요리가 가족에게 찬사를 받을 것인지에 의문이 든다.
요리사나 요리사를 보조하는 분들도 그릇에 잔뜩 음식을 채우기만 하지 진정한 맛과 적절한 채움이라는 모양새는 찾아볼 수 없으니 군침이 안 간다.
온갖 욕심에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비움의 미학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릇은 가득 채운 것보다 덜 채워났을 때 멋져 보인다.
가령 집안에 온통 가구들로 가득 채우면 어떠한가?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가구가 좋아서 마구 좁은 공간이지만 채워 놓으려는 욕구심리, 집안에 필요한 가구여서 놓았다고 하지만 실은 개인의 욕구를 채우려고 가구로 집안을 꽉 메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굳이 가득 채우지 않고도 만족하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가지고 싶다” 란 욕망이 강한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고 어떻게 다른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것이다. 굳이 가득 채우려고 하면 채워지지만, 가득 채운다고 마음속을 가득 채울 수는 없다. 그리고 가득 채워진 것은 다시 자신에게 부담으로 돌아오고 새로운 불만족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채움인가?
비움인가?
어떻게 채울까?
어떻게 비울까?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은‘욕심(慾心)’을 비우다다.
욕심을 비우면 그만큼 업(殗)이 사라지게 되고 욕심에서의 채움보다는 자연스러움에서의 채움을 할 때 그릇은 품격과 격조를 높인다는 얘기다.
기허즉수물(器虛則受物)
심허즉수도(心虛則受道)
그릇을 비우면 물건을 담을 수 있고
마음을 비우면 도를 받을 수 있다.
증산도 2장 142절에 나온 말이다.
마음을 비우듯이 업(殗)의 그릇을 비우면 마음 그릇에 복(福)이 채워진다.
잡념(雜念)을 제거하는 수련(修練)이 자신의 업(殗)을 비우는 것이라는 뜻이다. 업은 남을 죽이고 흔들어 놓는 것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감당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 쥐고 있는 것도 커다란 업이 되어서 계속 몸이 안 좋은 게 된다.
마음을 비운다 함은 원래 존재하던 부분의 업을 비워내는 것이다. 수련으로 채워진 부분은 계속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며, 원래 존재하였던 부분을 덜어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해업(害殗)이며, 운명의 변화를 이루어 선인(仙人)이 되는 길인 것이다.
‘업의 그릇을 비워라’ BTN 불교TV 100만 시청자의 꽉 막힌 마음을 시원히 뚫어준 무명 스남의 명쾌한 생활법문이다.
번뇌(煩惱)가 병을 만들고 욕심이 병(病)을 키우고, 어리석음이 업(殗)의 그릇을 짓는 원인이 된다는 무명 스님의 설법이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마음(心)’의 병이고 또 하나는‘육신(肉身)’의 병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을 따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게 육신의 병으로 옮겨간다는 걸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알게 모르게 업을 짓는다. 그리고 그 업들이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불가항력적인 사실이다. 그러므로 행복의 수레는 누가 대신 끌어주지 않듯이 자신이 지은 업은 반드시 자신이 지워야만 하고, 그 인연을 잘 갈무리하는 것이 미래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다.
현대인들은 재욕(財慾) 또는 물욕(物慾, 가지고 싶은 욕심), 식욕(食慾, 먹고 싶은 욕심), 명예욕(名譽慾,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 수면욕(壽眠慾, 자고 싶은 욕심), 색욕(色慾, 종족보존을 위한 이성에 대한 욕심) 등 다섯 가지의 욕락(慾樂)에 깊이 빠져있다. 이중에서 단 한 가지만이라도 자제할 수 있다면 누구나 성신(聖神)이 되어 마음의 행복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깊은 나락에 빠져들어 스스로 업의 그릇을 짓고 있다. 미래의 성공은 오욕락(五慾樂)으로 인해 채워진 업의 그릇을 비워야만 한다.
무엇이든 비우면
그릇이 된다
비우면 비울수록
그릇이 된다
밤낮 포개지고 뒤척이며 채우고 비우는 반복
그 선에 오른 것 중
금 안 가고 이 빠지지 않은 것
세상 어디 있으랴마는
그릇은
드러나는 바닥을 보면서도
단 한 번 단 한 순간도 번민하지 않는다
차지 않은 만큼 비움 그득하기에
비우려 채우는 무엇이든
그릇이 될 수 있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 큰
그릇이 될 수 있다
2012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한 권순학 시인의‘그릇’이라는 시 구절이다.
그릇은 음식을 담아내고자 만든 생활도구이다. 그릇은 채우면 더 멋져진다. 그러나 너무 많이 채우면 의외로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적당히 채웠을 땐 그릇의 멋짐을 엿볼 수가 있다. 그릇은 꼭 채우기만 하질 않는다. 채웠다가도 비운다. 비워진 그릇에도 또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렇듯 우리 인간에게도 채움과 비움이 일어나곤 한다. 좋은 것은 채우려하고 나쁜 것은 비우려고 한다. 이걸 제대로 하질 못했을 때는 업이 탈이 생기고 결국은 병을 얻게 된다. 채움과 비움을 적절하게 해주었을 때 비로소 인간은 편안한 삶을 이루게 된다.
“저 사람이 지금 저렇게 된 것은 욕심이 과했기 때문이야!”
“그것도 쓸데없는 것을 탐냈기에 그런 거야!”
그릇 채우기, 비우기를 잘 할 줄 모른 사람이었기에 저렇게 거덜 난 것이라는 그 사람에 대해 평가를 한다.
당신은 어떠한 그릇인지요?
종지입니까?
쟁첩입니까?
옴파리입니까?
보시기입니까?
접시입니까?
합입니까?
항아리입니까?
종지.쟁첩.옴파리.보시기.접시.합(盒).항아리
어떤 것이든 제 그릇 노릇을 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됐으면 한다.
당신은 그릇을 어떻게 채우고 비운지요?
전남 방언인‘오가리’란 항아리가 있다.
아래위가 좁고 배가 부른 질그릇인 항아리는 물건을 담아 저장하는데 쓰는 질그릇, 즉 호(壺)을 말한다.
옹기인 항아리는 공기와 빛이 안팎으로 드나들게 해서 장 등 안에 들어간 음식을 맛있게 발효시켜 주는 작은 숨구멍이 있어 음식발효를 잘 하게 한다.
자연적인 소박함이 묻어있는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합한 것으로 공기의 유통이 좋아 곡식(穀食)을 담아 두어도 벌레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
발효식품인 김치를 비롯해 간장.된장.고추장.젓갈.술.식초를 발효시키고 저장하는 데에도 옹기가 적격이다. 옹기는 곡식과 식수를 저장하는데도 쓰였다.
이것은 옹기가 살아 숨 쉬는 그릇으로서 통기성(通氣性)이 좋기 때문이다. 옹기에 식품을 보관했을 때 신선함이 오래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옹기의 통기성으로 인해 음식물이 숨을 쉬기 때문이다. 필요한 산소(공기)는 유입하고 불필요한 노폐물(老廢物)은 외부로 내보내기 때문에 옹기에 든 음식물은 오랫동안 신선함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옹기인 항아리, 오가리는 투박하면서도 과학적이다. 어쩌면 투박한 것이 소박한 것이 가장 한국적이며, 아름다움을 보여준 최고의 그릇으로 볼 수 있다.
그릇은 채우기만 하면 안 된다. 비워주기도 해야 한다.
그릇은 채울 때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릇은 비울 때도 아름답게 보인다.
항아리에 채운 물,
비우면 비울수록 그 새로움과 신선함이 따르게 된다.
그 가치를 더한다.
개인적으로는 투박한 항아리에 더 매력을 느낀다. 항아리가 숨을 쉬기 때문이다. 좋은 공기는 넣어주고 나쁜 노폐물은 밖으로 빼내어주기에 항아리를 사랑한 편이다. 예쁜 접시나 밥그릇.반찬그릇.찻잔 등의 그릇을 좋아하지만, 옹기인 항아리에 더 친근감이 간다.
뭐든지 욕심껏 채우려고만 한 당신,
그릇의 채움과 비움의 미학을 당신의 삶의 철학으로 삼았으면 한다.
비로소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릇,
나의 작품을 빚는 참됨을 빚다.
나만의 작품을 빚다.
지친 일상에 선물 같은 힐링공간
채움과 비움의 미학 그릇
빚다 입니다.
김대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