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도에서 굴업도까지
인천에서 덕적도까지 배를 타고 1시간
덕적도에서 굴업도까지 또 1시간여.
굴업도는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세파에서 벗어나 공해지역의 바깥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인천은 전국 제일 공해유발도시로 소문난 곳인데 같은 인천인데도 사람들은 섬주변은 신경을 쓰지 않기에 굴업도는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지요.
일행중 젊은 아가씨들입니다. 헤맑은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아침 8시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우리 일행은 덕적도로 항로를 잡았습니다.
굴업도를 갈려면 덕적도에서 또 작은 행정선을 타고 1시간을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덕적도에서 1시간 반을 기다려서야 굴업도행 작은 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심사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덕적도는 주유소도 있는 큰 섬이었습니다. 아마 관광객들의 두꺼운 지갑을 눈여겨두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이나 지방에서 올려면 새벽잠을 설치고 부랴부랴 나와야만 겨우 8시 배에 댈 수 있을 것 같고 그때 되면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배시간 때문에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쫄쫄 굶고 덕적도에 도착할 즈음 선착장에서는 토박이 아줌마들이 바다에서 갓 잡아 부산하게 이고 온 해산물들을 풀어놓고 관광객들의 코끝을 유혹합니다.
선착장 끄트머리에는 각종 식당들이 자리잡고 이제는 냄새로 1시간 반동안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먹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지요.
아침안개 때문에 배가 굴업도를 못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뜬소문이 있었으나 우리는 무사히
굴업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조사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프로의식이 돋보입니다.
망망대해의 끝에서 갑자기 안개를 헤치고 굴업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도 말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굴업도가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 섬은 해안도로가 없는 1킬로 떨어진 마을로 들어가는 길만 시멘트로 포장해 놓은 때묻지 않은 섬이었습니다.
직경 500미터가 채 되지 않고 반경 100미터를 넘지 않는 총 52만평의 규모를 지닌 섬인데
최근 그룹 CJ에서 98%를 매입해서 종합휴양시설을 갖춘 18홀의 골프장을 개발한다고 하며 지난 4월말 옹진군청에 허가요청서를 낸 상태라 합니다.
섬에는 우리들을 맞으러 민박집 주인이 기아 1.5톤 봉고트럭을 가지고 마중나왔습니다.
경험미숙한 몇몇 젊은 사람들과 노약자들은 트럭을 타고 먼저 들어갔고 나머지 호기심 많고혈기왕성한 사람들은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사실 이런 경치좋고 공기좋은 곳을 오면 당연히 걸어들어가야 하는 것이 순서인 것입니다.
그와 같았기 때문에 오늘 이들은 많은 곤충들과 나비떼, 그리고 희귀한 식물들과 멋진 경치들을 함께 조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착장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샛길입니다. 트럭은 빙 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미리 준비된 무공해 밥상을 받고 활동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 주인은 일찍이 삼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데 할아버지때부터 충청도 아산쪽에서 고기를 잡다가 이곳 굴업도가 민어떼가 많아 자연히 이곳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뭍으로 나가 살다가 나이가 들어 다시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는 인천 연수동 문학초등학교 지나서 고가도로 옆 동네에서 “굴업도”란 일식집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곳 쥔장 사모님의 음식솜씨가 섬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깔끔하기도 하였고 음식들을 농약을 주지 않고 유기농으로만 하여서인지 뱃속이 편안하였습니다.
이곳 굴업도는 CJ의 골프장 개발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었습니다.
현재 9가구 20여명이 살고 있는데 제일 젊은 사람이 이장으로 40중반을 갓 넘겨 아이들 둘은 인천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하였고 대부분이 나이많은 노인네들로 이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CJ는 몇번의 통지서를 보내 주민들을 내보내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굴업도에서의 거주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아주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선대때부터 땅에 대한 개념이 없고 이웃이 이 섬을 떠나면서 남겨주고 간 땅도 아주 귀찮아서 떠넘기듯 주고 간 땅이라서 등기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어느땐가 누가 땅을 사서 개발한다고 나섰을 때는 이미 땅은 남의 소유가 되어버려 법의 잣대로 판단내리는 관청에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다고 이제는 내손으로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를 내보이고 계셨습니다.
이곳은 물맛도 아주 좋았습니다. 주인의 말대로 프라스틱 물통에 우물물을 떠서 먹어보았는데 안성의 물맛좋은 지하수에 비교해 보아도 상급이었습니다.
지하수는 하루 500인이 먹을 정도로 풍부한 양을 자랑하고 있는데 CJ가 골프장을 짓는다면 물이 부족할 것은 뻔한 일이고 각종 농약과 비료, 제초제로 얼룩진 섬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과연 온전하겠느냐며 흥분하시며 바닷물을 담수화하는데 수십억 들여서 식용수로 만드는데 그 비용은 독과점이니 나중에 피해당할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이곳에 사셨거나 이곳으로 시집을 오신 할머니들이십니다.
또한 관청에서는 인천 연안도서지역의 섬을 망라한 해양생태조사에서도 굴업도를 제외시켜 주민들은 섬의 개발을 추진시키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나 하며 나중에 관청에 항의하니 7월초에 조사를 나온다고 설명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또 한 주민은 섬은 52만평이지만 섬의 가로 세로 길이가 짧고 우뚝 솟은 구릉지가 많아 산을 25m 이상을 깍아야만 라운딩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된다면 섬을 깍은 돌과 흙들은 자연히 바닷밑에 수장이 되어 섬을 둘러쌓아 마을을 보호하고 있는 3개의 아름다운 해수욕장은 지금의 모습을 보존하기 힘들 것이란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이 곳의 해수욕장은 동해의 해수욕장과 달리 움푹 안으로 들어간 천혜의 형상으로 파도가 애들을 삼키지 않아 밀물이 들어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바닷가에서 놀도록 하고 농사를 짓고 고기잡이를 나간다 하였습니다.
이 섬도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지구의 온난화현상으로 조류의 방향이 틀어지고
바닷물의 수위가 조금씩 낮아지면서 지난 40여년 전에 난파당했던 배들이 드러나는 등 선착장의 위치도 낮아져 배들이 들어오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보기에는 아름다운 섬이 이토록 어려운 난관과 싸우고 있는 줄 우리들은 누구도 꿈엔들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30여년 전에 폐교되었던 굴업도의 분교가 민박집 바로 코앞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 집 주인도 이 곳 분교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덕물산은 선착장의 오른편에 위치해 있었고 산을 올라보니 굴업도의 아름다운 좌우 해변이 한눈에 조망되었습니다. 칠점사는 바로 그곳에서 맞닥뜨렸던 것입니다.
덕물산은 당나라의 소정방 군대 15만이 주둔하면서 군수물자를 쌓아두면서 유래된 산이름이라 합니다.
신라의 왕세자 법민이 이곳까지 찾아와 소정방을 영접했다 합니다.
덕물산 정상으로 가는 중간에서 칠점사를 맞닥뜨렸습니다.
같이 가신 수의사님. 힘차게 머리를 누르고 있는 사이 한껏 긴장하면서
셔터를 눌렀습니다.
저녁에 비가 내렸습니다. 잠시 그칠 비가 아니었습니다. 내일 나가야 하는데 비가 와서 걱정스러웠습니다. 덕적도에서 들어올 때도 안개가 끼어 배가 가지 않는다 하여 잠시 애를 태웠었으니까요.
우리들은 모두 모여 그날의 성과를 이야기했습니다. 단연코 우리가 발견한 칠점사가 관중을 휘어잡았다고 단언합니다.
산중 섬에 비가 내리는 모습은 구슬퍼 보였습니다. 맑은 날 저녁 전등빛도 없는 백사장에 나가 드러누워 하늘천장을 바라보면 빛난 별들이 금새 쏟아져 내릴 것 같이 공기좋은 섬이라며 민박집 주인은 자랑을 합니다. 정말 누워서 찬란히 빛나는 별들을 품에 안아보고 싶었습니다.
무엇인가 하나하나 잃어버리고 앞만 보고 아득바득 살아가는 제 자신이 문득 가여워졌습니다.
섬을 좋아하는 건전한 사람들은 부르는 노래도 건전합니다. 정지용의 “향수”를 듀엣으로 부르길래 같이 따라 불렀습니다. 내심 나의 18번으로 삼아야겠다고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덕물산 정상은 바위로 이루어져 굳이 접근을 하지 않고 3분의 2쯤 되는
지점에서 머물렀습니다. 뒤 해변은 선착장 뒤편 해안입니다.